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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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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12-16 20:42 조회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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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주일 만에 일터로 복귀한 성주는 허리가 성하지 않아 팔다리의 힘을 도무지 쓸 수가 없어서 성과 없는 용만 쓰다가 나오는 처량한 날들이 이어졌다. 한 주일도 다 채우지 못하고 지쳐서 다시 병가를 내고, 다시 출근하여, 한 주일 일하고 또 다시 병가를 내어야만 하는 최악의 상태에까지 도달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했지만, 한인 사회상담실 개설 축하 연극공연에서 맡은 배역이 그대로 현실이 되어버린 상황을 성주는 무심코 넘길 수가 없었다.
  그래도 태영과 성규의 기대를 저버릴 수가 없어 주말이면 이를 악물고 교회로 가서 연극 연습을 지도하고 돌아오던 어느 일요일 저녁, 레크링하우젠으로 가는 전차 안에서 성주는 갑자기 현기증이 나면서 심한 구역질이 나는 바람에 때마침 정차한 전차에서 뛰어내렸다. 길 옆 구석진 곳으로 가서 쪼그리고 앉아 한동안 헛구역질을 하다가 간신히 진정이 되어, 성주는 공중전화로 영주에게 도움을 청했다.
  놀라서 차를 몰고 온 영주가 자신이 근무하는 마리엔 호스피탈로 가자는 걸 달래어 광산기숙사 근처의 엘리자베스 병원 응급실로 가니, 일요일 밤저녁이어서 당직의사만 있어 정밀진단은 월요일 오전에 하기로 하고, 일단 응급처치를 받은 후 입원을 했다.

  월요일 오후에나 받은 정밀진단의 결과는, 위험할 정도의 저혈압과 과로로 말미암은 신경 이상성 근무력증이라는 복잡한 병명으로 한동안의 입원치료를 요한다는 것이었다. 갈수록 태산이라더니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허리를 다쳤으면 요양에만 전념했으면 괜찮았을 텐데, 공연히 각본 쓴다구 구부리고 앉아 밤 새우고, 먹는 것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하면서 연극 연습 한다구 그 먼 거리 전차 타고 오가며 신경 쓰고 다녔으니 병이 안날 리가 있어? 그러니 내 말대로 진즉 집에 와 있었으면 입원까지는 안 했을 거” 라며 원망을 퍼붓는 영주에게 성주는 대꾸할 말이 없었다.
“헤르 한, 당신의 건강상태는 좋아지기는 했지만, 혈압상태와 현재의 체력으로서는 지하 채탄작업을 할 수가 없다는 게 내 소견이요. 의사로서 지상의 일자리를 제공하라는 소견서를 광산에 보내겠소.“
회진을 들어온 담당의사가 진료기록을 떠들어보며 선언하듯 말했다. 지하 채탄작업 불가의 건강상태라는 진료소견서의 답은 해고통지서였다.

  보름 후 성주에게 배달된 해고통지서에는, “불규칙한 출근으로 광산의 생산계획에 차질을 주고 있기 때문에 부득이 삼월 말일부로 해고한다.“라고 적혀 있었다. 광산사고 후유증으로 불규칙하게 출근할 수밖에 없었다는 변명을 할 수도 있었지만, 성주는 그동안 애오라지 일에만 전념하지 않았다는 심한 자책감이 들어, ”이 역시 오는 인연이니---“ 하면서 해고를 순순히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굳혔다.
성주의 해고 소식을 듣고 영주는 다른 편한 직장을 알아보자고 위로했고, 이 박사는 승산이 있으니 노동재판을 걸자고 했다. 성주는 노동재판에서 승소한들 어차피 지하작업을 할 수가 없다 하니 다른 길을 찾아보다가 저엉 안되면 미련 없이 귀국하겠다며 소송제의를 사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영주가 기분 좋은 얼굴로 찾아왔다. 성주의 새 직장을 알아보기 위해 여기저기 도움을 줄 만한 사람들에게 전화하다가 아카데미 클라우젠호프의 야스퍼씨와 통화를 했는데, 성주가 해고를 당한 사유를 듣더니, “좋은 일이 있으니, 일월 마지막 날에 클라우젠호프로 오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성주는 야스퍼씨가 책임자인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 프로젝트가 시작되는 것이라고 짐작했다. 어차피 한 달 반을 앞두고 예고된 해고였기에, 병원에서도 삼월 말까지의 병가 증명서를 발부해주어서, 성주는 기숙사와 영주의 집을 오가며 쇠약해진 몸을 추스르는 한편, 주말에는 교회로 가서 연극 연습에 몰두했다.
“이 판국에 무슨 놈의 연극 연습을  한다구?“ 하며 영주가 핀잔을 주었지만, “빈둥빈둥 놀면 뭘 해, 그거나마 할 일이 있으니 다행이구만.“ 하며 성주는 태평인 것처럼 웃으며 복잡한 심경을 감추었다.

  일월 마지막 날, 영주가 근무였기 때문에 기차와 버스를 갈아타며 클라우젠호프에 도착하니, 지난해 가을 독일어 강좌 수강생들의 송별만찬에서 친숙해진 뮐러부인이 반갑게 맞아 구내 카페로 안내하며, 조금 전 영주가 병원에서 성주의 도착 여부를 묻는 전화를 했다고 전했다.
  카페에는 삼월 말과 사월 말에 각각 삼 년 계약근무가 끝난다는 딘스라켄, 오버하우젠, 겔센키르헨 지역 광산의 한국광부들 열대여섯 명이 모여 앉아 있었다.
  일일이 통성명을 하고 앉아 있자니까, 야스퍼씨와 설명책자를 한 아름 안은 뮐러부인이 들어오고, 그 뒤를 따라 대사관의 임정길 수석 노무관이 들어섰다. 인사를 나누며 자리에 앉으려다가 성주와 눈이 마주친 야스퍼씨가, “오우! 헤르 한도 왔군, 그래 해고를 당했다면서? 다친 허리는 괞찮아?“ 하고 안부를 물으며 악수를 청했다.
“견딜만합니다.“
  성주는 해고를 당했다는 사실이 부끄러워서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은 심정으로 마지 못해 야스퍼씨가 내민 손을 마주 잡았다. 
“그래 당신의 그 아름다운 부인은 여전하시고?“
  야스퍼씨는 영주를 성주의 안사람으로 알고 있는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해 가을 송별만찬에서 영주는 사람들이 보라는 듯 유별나게 성주의 안사람 행세를 했었다. 야스퍼씨와 인사를 마친 뒤 성주는 임 노무관에게도 인사를 했다.
“안녕하셨습니까? 레크링하우젠 광산기숙사에서 뵌 적이 있는 한성주입니다.“
“아, 그래, 낯이 익다 했더니, 당신이구만, 그런데 해고를 당했다구? 어쩌다가?“
  라 통역의 보고로 이미 알고 있을 텐데도 능청을 떨었다.
“사고로 허리를 다쳐서 병가가 너무 잦았습니다. 면목없습니다.“
“그것참 안됐군.“
  임 노무관은 건성으로 성주를 위로한 다음 야스퍼씨에게 물었다.
“이번 프로젝트에 해고자도 포함됩니까?“
“당연하지요. 우리는 그동안 해고를 당했거나 스스로 광산을 이탈하고 불법으로 체류하고 있는 사람들도 본인이 원한다면 받아들여 기술연수에 참여시키려고 합니다. 이들이 불법체류자로 떠도는 것보다는 한 가지 기술이라도 배워 돌아가는 것이 독일사회에도 좋고 한국사회에도 도움이 되지 않겠소?“
야스퍼씨의 뚜렷한 대답에 임 노무관은 입을 다물고 못마땅한 얼굴로 성주를 다시 한번 쳐다보았다. 그 번뜩이는 눈길에서 성주는 전태일과 삼동친목회를 끈질기게 감시하며, 결국은 전태일을 분신자살로까지 몰고 간 노동청 서울 중부사무소의 근로감독관 임정길의 교활한 모습을 보고 남몰래 치를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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