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회
페이지 정보
작성자 한겨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조회 1,606회 작성일 12-12-13 20:43본문
맛살은 햇볕이 잘 드는 쪽의 방갈로 바깥 난간에 소쿠리를 받쳐 널어 놓고, 꼬막살은 밀폐할 수 있도록 특별히 만들어진 유리병에 소금을 버무려 넣었다.
“두 번 만 더 갯벌에 나가면 올해 밑반찬 장만은 끝!“
하면서 영주는 서둘러 어부 마누라 옷을 벗어 던지고 목욕탕으로 들어가 시원하게 몸을 씻고 큰 수건으로 하체만 가린 채 나와 성주를 재촉했다.
“빨리 씻고 나와 시내로 점심 먹으러 가요. 나 배고파.“
하면서 뻘흙투성이인 성주의 등을 떠밀었다.
열어젖힌 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시월의 찬란한 햇빛을 받으며 영주의 팽팽한 젖무덤 한가운데 무르익기 전의 붉은빛이 감도는 산딸기처럼 도드라진 두 개의 젖꼭지가 강렬하게 성감을 자극했지만, 애써 참으며 성주는 목욕탕으로 들어가 몸을 씻기 시작했다. 찬물을 끼얹어도 가라앉지 않는 욕정을 참다못해 성주는 대충 물기를 닦고 알몸으로 목욕탕을 뛰쳐나와 화장하고 있는 영주를 끌어안았다.
“어머, 어머, 대낮에---“
하면서도 영주는 기다렸다는 듯 휘감겨 왔다. 풋익은 산딸기처럼 단단한 젖꼭지를 혀끝으로 더듬는 애무에 꿈틀거리는 영주의 매끄러운 알몸을 구석구석 불태워 올리는 한낮의 정사가 끝나자 영주는 아쉬운 듯 누운 채로 한동안 성주의 품에 안겨 있었다.
“어머, 나 좀 봐, 어서 점심 먹으러 가야지.“
영주는 서둘러 일어나 화장을 고치고 외출채비를 했다. 둘은 차를 몰아 십여 분을 달려 오스트엔데 중심가의 한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저 앞의 중국식당 팔보채가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만큼 맛이 있어. 해물이 싱싱해서 그런가 봐.“
하면서 영주는 피곤한 듯 성주에게 매달려 걸었다.
갓 잡아온 듯한 싱싱한 해물의 향기와 신선한 채소의 맛이 어우러진 오스트엔데의 팔보채는 과연 천하제일의 진미라 할 만했다.
“정말로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치 맛있네, 영주 네가 사라져도 모를 만큼 맛이 있어.“
“뭐야 그럼, 나보다 이 팔보채가 더 좋다는 말이잖아 ?“
영주가 눈을 흘기며 뾰로퉁해서 돌아 앉는 시늉을 하자, 성주는 서둘러 전복 한 조각을 젓가락으로 집어, “자아, 아-하고 이것 좀 먹어봐.“ 하면서 영주의 입에 넣어 주었다.
“하도 맛 있어서 그냥 해 본 소릴 가지고 삐지기는---“
“내가 삐지기나 해야 잘 해주면서.“
영주는 입을 삐죽이면서도 전복 한 조각을 받아먹고 마음이 풀린 듯 방그레 웃었다. 그 순간 영주의 웃는 얼굴에 겹쳐지며 떠오르는 오복의 원망 어린 얼굴을 성주는 보았다.
-
내가 지금 죄를 지어도 큰 죄를 짓고 있구나, 아마도 천벌을 받을 거야.-
하는 생각이 들어 입맛이 싹 가셨다. 그래도 내색 없이 영주의 기분을 맞추어주며 점심 식사를 마친 성주는 피곤하다는 핑계로, 자동차로 바닷가를 드라이브하자고 조르는 영주를 달래어 방갈로로 돌아왔다.
서너 시간 등걸잠을 자는 둥 마는 둥 침대에 누워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고민을 하다가, 내내 쥐죽은 듯 아무 소리 없이 눈치를 살피고 있는 영주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짐짓 쾌활한 목소리로, “아하, 잘 잤다! 저녁 먹으러 안 나가?“ 하고 물었다. 영주는 반색하며 ”나가야지” 하고 채비를 차렸다. 시내를 향하여 달리는 차 안에서 영주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당신, 아까는, 언니하고 아이들 생각나서 우울해진 거지?“
“응, 그랬어.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내와는 아까와 같은 다정한 시간을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갑자기 들어서---“
하는 성주의 솔직한 대답에,
“내가 당신을 언제까지나 차지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조만간 언니한테 돌아가서 더 잘 해주면 되잖아.“
하고, 대꾸하는 영주의 목소리가 젖어 있었다. 영주는 눈물을 흘리며 운전을 하고 있었다.
“울지마! 안 그래도 그렇게 작정했으니까, 마음 풀어.“
성주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래자, 영주는 길가에 차를 세우고 와락 성주의 목을 끌어안으며 울음을 터뜨렸다.
“여보, 나 어쩌면 좋아. 날이 갈수록 당신이 소중해져서 놓아주기 싫으니.“
영주는 몸부림까지 치면서 펑펑 울었다.
“영주야, 이게 어쩔 수 없는 우리의 숙명인가 봐. 우리가 서로 놓을 수가 없다고 해서 내가 아내를 버리면 너와 나는 천벌을 받을 거야.“
성주도 자신이 하는 말에 서러워져서 소리내어 울고 말았다.
이렇게 울고 웃는 성주와 영주의 밀월여행이 꿈결같이 지나갔다. 돌아오는 날 새벽에는 고기잡이배들이 들어오는 부둣가의 생선시장에 들러, 한나가 좋아한다는 소라와 꽃게, 그리고 다섯 마리씩 아가미를 꿰어 꾸둑꾸둑하게 말린 북어를 사서 차에 싣고 영주의 집으로 향했다.
“어서 와요. 성주. 여행은 재미있었어?“
“와우! 외삼촌이다, 외삼촌!“
안젤라와 한나의 환영을 받으며 여행 짐과 생선 보따리들을 들여놓고, 네 식구가 거실에 모여 앉아 떠들썩하니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면서도, 성주는 오복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렸다.
이튿날은 네 식구가 함께 쾰른 근교에 있는 판타지아란트로 놀러 갔다. 동화의 나라, 어린이 천국이라는 미국의 디즈니랜드를 본떠서 만들었다는 놀이공원은 명성 그대로 어린이들의 천국이었고, 어른들까지 동화의 세계로 빠져들게 하는 훌륭한 시설들을 갖추고 있었다. 손뼉을 치며 즐거워하는 한나의 놀이상대를 온종일 해 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안젤라가 눈치 없이 물었다.
“그런데 성주는 집으로 안 들어오고 언제까지 기숙사에 있을 거야?“
운전대를 잡은 영주는 잠잠했고, 성주는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결혼할 사이도 아니고, 삼 년 계약 끝나면 한국으로 돌아갈 건데, 들어갈 수가 없지요. “
안젤라는 두 사람의 결합을 기정사실로 알고 있었던 듯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영주에게 물었다.
“이게 무슨 소리야? 한국으로 돌아가다니?“
“결혼한 부인과 아이들이 있는데, 그럼 안 돌아가구 어떻게 해?“
영주가 퉁명스럽게 대꾸하자 안젤라도 입을 다물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