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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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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12-11 19:10 조회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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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홉째 마당: 부당해고

자치회장 송영근과 김진화, 김춘성에게 해고장이 우편으로 송달됐다. 송영근은 일을 마치고 출갱하기 위해 수갱탑 아래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에 터키 동료와 말다툼이 벌어져 멱살을 틀어잡고 뒤 잽 이를 하다가 터키 동료가 넘어지면서 벽에 머리를 부딛 조금 다친 사건이 해고의 사유였고, 김진화와 김춘성은 평소에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괴롭히는 작업반장의 못된 버릇을 고쳐 준다고 둘이 합세하여 곡괭이자루를 휘두르며 위협하는 바람에 작업반장이 비명을 지르며 달아난 사건이 해고의 이유였다.
큰 피해가 생긴 사건은 아니었지만, 인명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갱내 폭행을 엄중하게 금지하고 있는 광산보안수칙을 어겼으니 해고사유는 충분했다. 그러나 송영근은 자치회장으로서 지난해 있었던 해고 철회청원서 사건을 주도했고, 김진화와 김춘성은 누구보다 앞장서서 큰 목소리로 광산 측의 태도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아 미운털이 박힌 사람들이어서, 그 보복으로 해고했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이들의 해고 소식을 들은 이 박사는, 이번 기회에 광산 측의 부당해고를 뿌리 뽑겠다면서 스스로 소송대리인이 되어 노동재판소에 <부당해고 철회소송>을 걸었다. 노사경영위원회의 신상변론 절차를 뛰어넘는 초강경 대응이었다. 한국인 사회상담실은 아직 개설되지 않았지만, 독일 종교청으로부터 이미 기독교사회봉사국 소속의 한인 사회상담실 책임자로 발령을 받은 상황이었기에 소송대리인으로서는 적격이었다. 이 박사는 노동법 전문가들과 외국인노동자들에게 호의를 갖고 있는 WAZ의 차바로코프스키 기자를 비롯한 노동문제 전문 언론인들의 지원을 받으며, 새로 출범하는 <기독교 한인 사회상담실>의 위상을 이 소송에 걸고 전력투구했다.
 
한국인 광부에 대한 최초의 노동재판은, 노동계와 언론의 공세에 등을 떠밀려 빠르게 진행되었고, 종교청과 기독교계가 후원하는 박사학위자가 소송대리인이라는 묵시적 압력도 작용하여 불과 석 달 만에 원고 측의 승소로 끝이 났다.
"폭행사건이 악의적인 것이 아닌 우발적인 행위에 의한 것이고, 피해도 거의 없는데도 해고를 한 것은, 지난해에 있었던 광산 측과 한국광부들 사이의 갈등에 대한 광산 측의 보복"이라는 제소 이유에 재판관이 손을 들어 준 것이었다.
"광산 측은 세 사람에게 재판기간 동안 지하지 않은 석 달 치 노임을 지급하고, 해고 시점의 일자리에 복귀시켜야 한다."는 판결이 떨어지자, 방청석을 가득 메운 한인동료광부들은 모두 벌떡 일어나 만세를 부르며 환호했다. 이 박사를 통해 얼굴을 익힌 WAZ의 차바로코프스키 기자는 성주를 향하여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워 보이며 만면에 웃음을 가득 실어 보냈다.
1978 부당해고 노동재판 승소 기사.jpg
       당시의 재판 승소를 보도한 WAZ 의 기사 (자치회장 송영근과 변호사)
 
WAZ 는 이날의 재판 결과를, "부당해고는 빙산의 일각" 이라는 제목으로 사회면 머기사로 실으며, "광산 측의 외국인 광부에 대한 열악한 처우와 차별 처사"를 샅샅이 보도해 광산 측을 난처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일자리에 복귀한 세 사람에게는 언제나 작업조건이 험악한 막장이 배정되었고, 그나마 작업공구가 고장이 나 있거나 자재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서 아무리 기를 쓰고 덤벼들어도 작업능률을 올릴 수가 없었다. 이들의 상황을 전해 들은 이 박사는 백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대형토목건설회사인 다일만-하니엘이 에쉬봐일러 광산 그룹의 큰 하청을 새로 받아서 수백 명의 경력광부를 모집한다는 것을 알아내고, 곧바로 도르트문트 본사의 인사담당자를 찾아가 교섭했다.
그 결과 송영근, 김진화, 김춘성과 아울러 지난해 해고를 당했지만, 척추수술을 하면서 서독에 머물고 있던 김영우, 그리고 력이 달려 악전고투를 하고 있던 3진의 송인호와 4진의 최영진, 고삼수, 5진의 이건우 등을, 에발트 광산에 계약해지 통보를 하게 한 뒤, 다일만-하니엘에 입사시켜 서독 서부 접경 도시인 아헨 근교 알스도르프에 있는 광산기숙사로 이사까지 시켰다.
고용계약을 스스로 해지한 이들이 한국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다일만-하니엘로 직장을 옮긴 것을 뒤늦게 알게 된 에발트 광산 측이 다일만-하니엘과 이들의 노동허가서를 새로 발급해 준 도르트문트 노동청에 항의했지만, 이들의 재고용에 법률적인 하자가 없다는 노동청의 공식 답변문서를 받고 나서는 잠잠해졌다.

이들의 직장 이동과 이사로 한동안 바쁘게 지냈을 듯한 이 박사가 어느 날 오후 연락도 없이 광산기숙사로 불쑥 성주를 찾아왔다.
"한형이 어떤 곳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보고 싶어서 일부러 온 건데, 카페라니---." 하면서, 이 박사는 한사코 길 건너 카페로 가자는 성주의 등을 떠밀며 기숙사로 들어왔다. 지하실에 있는 낡은 샤워시설(네 개의 물 꼭지 가운데 두 개가 고장 나 있는)과 세탁실, 발걸음을 떼어 놓을 때마다 삐거덕거리는 복도와 나무층계, 칠을 하지 않은 지 열 해도 더 넘은 듯한 우중충한 사방의 벽과 천장, 그리고 난장판이 되어 있는 공동부엌과 공동화장실까지 샅샅이 둘러본 후 성주의 방으로 들어온 이 박사는,
"이런 방에 이층 침대를 놓고 네 사람씩 기거하게 하고도 한 사람당 일백 마르크의 방세를 받는다니. 이건 폭리도 이만저만이 아니야. 이런 상황이니까 차바로코프스키 기자가 그런 내용의 기사를 썼군." 하면서 머리를 내저었다.
성주가 부랴부랴 주전자에 물을 끓여와 내놓은 인스턴트커피를 마시며,
"
뭐 경험이 있는 사람도 없고, 완벽한 공연예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니까, 그냥 한인 사회상담실이 왜 필요한지를 알리는 내용으로 간단하게 준비하면 될 것 같은데---."
한 달 반 정도 남은 한인 사회상담실 개설을 축하하는 연극공연문제를 조심스럽게 꺼내는 이 박사의 겸손한 태도에 성주는 새삼스럽게 우애와 같은 친밀감을 느껴 우선 인사치레부터 했다.
"이번에 우리 동료들이 옮겨간 직장이 힘도 들지 않고, 사람들도 모두 인간적으로 대해주어서 아주 흡족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 ! 마음에 든다고들 해요? 거 정말 다행이네. 그쪽 인사담당자 말로는, 자기네 회사는 체력으로 하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하더니만 정말 그런 모양이야. 정말 잘 됐네. 이게 다 사회상담실이 해야 하는 일이니 고마워할것 까지야 없어요. 이런 일이 있어야 나도 봉급 타는 게 떳떳하지---."
이 박사는 직장을 옮겨주고도, 또 고생스러우면 어쩌나? 하고 걱정을 많이 한 듯, 성주의 말을 듣고 안도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런데 말이야, 한형과 최형도 지난번 일로 점찍혀 있을 텐데, 힘들지 않아?"
"그래서 요즘은 둘 다 납작 엎드리고 있지요. 그건 그렇고 연극은 염려 말아요. 그동안 좀 생각해 둔 게 있으니까, 주말까지 대본 써 가지고, 보쿰교회 교우들 가운데에서 배역을 정해 연습을 시작할 겁니다. 말씀하신 대로 모두 처음 해 보는 거니까 간단하게, 그러나 심금을 울릴 수 있도록 힘을 써 보지요."
성주의 장담에 이 박사는 두툼한 두 손으로 성주의 손을 덥 감싸 쥐면서,
"내가 정말 좋은 친구를 만났어. 이게 무슨 복인지---. 고마워 정말 고마워!"
하면서 좋아했다.
                         <40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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