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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겨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3건 조회 1,286회 작성일 12-12-10 20:43

본문

 
영석의 문병을 다 온 날 밤, 영학이 급경사 막장을 굴러 내려오는 축구공만 한 돌덩어리를 미처 피하지 못하고 허리를 맞고 쓰러져 레크링하우젠 병원 응급실로 실려갔다. 경제성이 없어서 열지 않았던 탄층이었지만, 막장 채탄작업에만 임한다는 고용계약 조건의 한국광부들이 오는 것을 기회로 새로 굿문을 연 23번 갱도는 에발트 광산에서도 처음 발견된 경질 탄층이었다. 다른 광산이나 에발트 광산의 다른 갱도에서 나오는 시커먼 가루 모양의 연질탄에 비교하여, 여기 23번 갱도에서 나오는 석탄은 윤기가 나면서 덩어리로 떨어져 나오는 경질탄이었다. 이 경질탄은 독일 철광업이 필요로 하는 높은 열량의 공업용 코크스를 만드는 데에 가장 적합한 품질의 석탄으로 판매가격도 가정 난방용에만 사용하는 연질탄에 비교하여 훨씬 높다고 했다. 그러나 채탄막장의 작업환경은 연질 탄층인 안나(Anna)갱도나 칼(Karl)갱도에 비해 너무나 험난했다.
평균높이 180 cm의 석탄층이 30도 경사로 5편 갱도에서 6편 갱도까지 260m 길이로 비스듬이 서 있는데다가, 다른 갱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단단한 사암층이 아니라, 반질반질하면서도 켜로 떨어지는 탄질 다이크층이어서, 막장 바닥이 유난히 미끄러운데다가 천반도 언제 조각조각 떨어져 내릴지 예측할 수 없었다. 바닥이 유난히 미끄러워 운신이 자유롭지 못한 작업장에서 일하던 영학이 위쪽 막장에서부터 가속도가 붙어 굴러 내려온 축구공 같은 돌덩어리를 미처 피하지 못하고 허리를 다친 것이다. 영학의 아래 위 막장에서 일하던 성주와 건우·인남·기선이 일손을 놓고 서둘러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비명만 질러대는 영학을 들것에 실어 경사 막장에서 끌어내리는 한편 안전과에 전화를 걸어 구급차를 대기시켰다. 연락을 받고 허겁지겁 달려온 작업반장은 체격이 건장한 인남을 지명하여 영학을 부축해 병원까지 동행하라 하고 나머지 사람은 다시 작업장으로 돌아가 하던 일을 마저 하라고 지시했다.

  모두 풀이 죽어, 일을 하는 둥 마는 둥 시간을 채우지상으로 올라오니 인남이 목욕탕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
어떻게 됐어? 많이 다쳤어? "
  목욕할 생각도 잊은 석탄가루투성이의 동료의 물음에 둘러싸인 인남이 비명에 가까운 탄식 조로 답했다.
"
몰라. 도무지 말을 알아먹어야 어떻게 됐는지를 알지. 눈치를 보아 하니까 그리 심각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엑스레이 찍고 응급처치해서 잠들게 해 병실로 옮기는 것 만 보고 왔어, 뭐 말을 할 줄 알아야 물어보기라도 하지, 제기랄---"

   이튿날 아침, 서둘러 아침밥을 먹고 속옷을 챙기고, 시장에 들 병실용 가운을 하나 더 사 가지고, 대성과 함께 스를 타고 한 시간 넘게 걸려 레크링하우젠 병원으로 가 병실로 들어서니 영학은 병실 담벼락을 마주 보고 돌아누워 숨죽여 울고 있었다. 아들을 둘씩이나 키우고 있는 서른 살 중반의 사내가 병실에서 벽을 향해 돌아누워 숨죽여 우는 모습을 보는 순간 성주도 울컥 뜨거운 눈물이 가슴을 치밀고 올라와 눈으로 쏟아졌다.
   빨래라고는 태어나서 한 번도 해 본 일이 없는 하늘 같은 남편을 위해, 독생활 하는 동안 입다가 더러워지면 빨아 입지 말고 버리고, 열흘에 한 번씩 새것으로 갈아입으라고 독일행 가방 속에 닝셔츠와 팬티만 각각 여든 벌씩 챙겨 넣어 준 살뜰한 아내의 손길이 그리워서일까? 비록 사주팔자를 잘못 타고 태어나 변두리 시장 상인으로 살고 있지만, 자식 대에만은 이 나지라기 인생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이 악물고 살면서도 애지중지해 온 토끼 같은 두 아들의 귀여운 모습이 어른거려서일까? 영학은 성주와 대성이 병실에 들어서는 기척도 듣지 못하고 소리 죽여 흐느끼고 있었다.
"
어허, 이봐 윤형! 여편네처럼 울기는---, 뭐야 아파서 우는 거야? 슬퍼서 우는 거야?"
   대성이 짐짓 큰 목소리로 너스레를 떨며 영학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제야 인기척을 느꼈는지 영학이 두 손바닥으로 황급히 눈물을 닦으며 힘겨운 몸짓으로 돌아누워 겸연쩍은 웃음을 보였다.
"
일 다니기도 힘든 데 뭘 하러 이렇게 일찍 왔어. 나중에 와도 되는데"
"
나중에 올 일이 따로 있지. 그래 다친 덴 어때?"
"
? 뭐라고 하는지 말을 알아들어야 어떻게 된 줄을 알지, 제기랄. 대충 눈치로 봐서는 심각한 건 아닌 것 같은데도, 아프기는 왜 그렇게 아픈지. 침대에서 조금 돌아누우려 해도 소스라치게 허리에 통증이 오더니, 아마 이 링거 주사약에 진통제를 섞었는지 이거 맞고부터는 통증은 가시더라구."
   영학은 팔에 꽂은 주사침과 걸개에 매달려 한 방울씩 떨어지고 있는 주사약 병을 가리키며 힘없이 말했다.

일을 마치고 틈나는 대로 영석과 영학이 누워있는 병원을 오가는 동안에 한 달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말 그대로 세월이 유수와 같았다. 그런 분주 가운데에서도 성주는 주말이면 어김없이 기숙사까지 데리 오는 영주와 함께 지냈다. 한나의 놀이상대가 되어주기도 하고, 영주와 함께 시장을 보러 가기도 하고, 공원 숲길을 함께 걷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에 둘은 그 오랜 헤어짐의 시간에 가슴 속에 묻어두었던 그리움과 아울러 살아오면서 겪은 일들을 나누었다.

" 도대체 주말마다 어디에 가 있는 거야 ?"
주말마다 기숙사에서 종적을 찾을 수 없는 성주의 행적을 태영이 집요하게 추궁했지만, 성주는 자신의 행동이 그리 떳떳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한사코 이리저리 둘러대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밤, 월요일의 새벽 출근을 위해서, 다른 주말과는 달리 이른 밤에 기숙사로 돌아온 성주가 방으로 들어서기 무섭게, 대성이 기다렸다는 듯 다급하게 말을 꺼냈다.
"한형! 아까 저녁에 재원이가 구급차에 실려갔어."
"뭐야? 아니 왜?"
" 몰라, 온몸에 열꽃이 돋고 몸이 불화로처럼 뜨거워서 헐떡거리고 누워있는 걸, 한방을 쓰는 채중석이 안 되겠다 싶어 나통에게 연락하고, 나통이 와서 보고 즉시 구급차를 불렀다는데---"
"어느 병원으로 갔는지는 알어?"
"나통 말로는 가까운 엘리자베스 병원으로 간다던데---."
"누가 따라갔어 ?"
" , 나통하고 채중석, 그리고 우리 진 회장 이건우가 따라갔다가, 병원에서 응급처치받고 잠드는 걸 보고 왔다면서 조금 전에 돌아왔어."
" 이건 또 뭔 일이람, 제기랄"
성주는 되짚어 나와 기숙사에서 2Km가량 떨어져 있는 엘리자베스 병원으로 자전거를 타고 달려갔지만, 밤이 늦어 면회할 수 없다는 당직자의 거절을 당하고 맥이 빠져 돌아왔다.

이튿날, 일을 마치고 병실에 들리니, 재원은 온몸이 벌겋게 달아오른 보기 흉한 몰골로 누워 있다가 걱정 가득한 성주와 눈이 마주치자 빙긋이 겸연쩍은 웃음을 지었다.
" 그 몸으로 웃음이 나와?"
재원의 웃는 얼굴에 조금은 마음이 놓인 성주가 면박을 주자, 재원은 피식 웃으며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 병은 내가 아니까 걱정할 거 없어"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자기가 안다니?"
"글쎄 그런 게 있어, 나중에 기운 차리면 말해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가봐 "
하고 뒤척이며 돌아누운 재원이 잠드는 걸 본 다음 성주는 병실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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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님의 댓글의 댓글

한겨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triumph 님 !  weinrot 님 ! 고맙습니다. 시간이 허락하시면 읽으시며 느끼신 점이나 비평도 해 주시면, 제가 앞으로 글 쓰는데 큰 도움이 되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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