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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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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12-09 21:04 조회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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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 측이 약속한 대화의 자리가 1월 중순 토요일에 호클라마르크에 있는 광산연회장에서 열렸다. 광산 측에서는 인사담당 파울 소장과 에발트 광산 단위노조의 휴고 위원장, 그리고 슈미트 사회과장이 나왔고, 에발트 광산에 한국광부들이 오기 시작한 이후 처음 마련되는 대화의 자리라는 데에 큰 기대를 한국광부들은 거의 다 참석하고 있었다. 대사관에서는 임정길 수석 노무관이 참석했고, 한인자치회의 강력한 요구로 이삼열 박사가 통역으로 참석했는데, 광산 측의 말을 한국말로 통역하는 일은 라통이 맡았고, 광부들의 한국말을 독일어로 통역하는 일은 이 박사가 맡았다.

   성주의 예측대로 파울 인사담당소장과 휴고 노조위원장이 개인적인 애로사항을 듣겠다고 서두를 꺼내자마자 개인들의 시시콜콜한 청원이 쏟아지기 시작해 애초에 광산 측으로 하여금 대화의 자리를 약속하게 던 해고 철회문제와 경고장 · 해고장 남발 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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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신으로 기숙사에서 살다가 결혼해 집을 얻어 살림을 차렸는데, 광산에서 기혼자에게 주는 난방용 석탄을 어떻게 신청하는가?" 하는, 평소에 나통한테 물어도 될 일을 이 소중한 기회에 애로사항이라고 말하는 철없는 새신랑 광부가 있는가 하면, "광부로 오기는 했지만, 신분이 목사인데 채탄작업이 아닌 다른 일자리를 줄 수 없는가 ?" 하는 자칭 목사 광부의 하소연, "작업 중 부상으로 몸이 불편하니 좀 쉬운 일자리로 옮겨 줄 수 없느냐?"라는 물새 광부의 호소 등등을 민망한 낯빛으로 통역하면서 이 박사는 연신 실망하는 눈빛을 성주에게 보냈다.

   파울 소장은 사회과장에게 지시할 사항은 그 자리에서 지시하는 한편 "고려해 보겠다.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겠다." 하면서 한국광부들의 개인적인 요구들에 대해 의기양양한 말투로 답변한 후 마무리를 하려는 듯 한 마디 더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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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해고문제도 개인의 신상에 관한 일이므로 당사자가 직접 경영협의회나 노동조합을 찾아와 대화를 통해 풀었으면 원만하게 될 일을 공연히 집단행동을 벌여 시끄럽기만 하고 서로 난처하기만 했다. 앞으로는 모든 일을 이렇게 당사자들이 직접 찾아오기를 바란다."
파울 소장이 말을 마치기 무섭게 참다못한 태영이 불쑥 일어나 노기에 떠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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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파울 소장께서는 해고문제가 개인의 신상에 관한 문제라고 하면서 당사자가 직접 찾아와 얘기하라고 하지만, 우리 동료들은 독일어를 많이 배우지 못한 까닭으로 자신의 사정과 형편을 설명할 능력이 없습니다. 따라서 라 통역을 대동해야 하는데, 라 통역은 광산으로부터 봉급을 받는 사람이기에 광산 경영자 측 입장에서 통하게 됩니다. 무슨 말인고 하면 당사자의 딱한 사정과 절절한 호소가 제대로 다 전달되지 않는다 이 말입니다. 그런 경험들이 있기에 우리 중 많은 동료 라 통역을 불신하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 힘없고 약한 우리의 의사를 확실하게 전달할 수 있고, 또 우리의 주장에 힘을 실는 방법은 지난번과 같은 집단행동 밖에 없습니다. 파울 소장께서는 이런 우리의 상황을 이해해 주셔야 합니다. 특히 남발되는 경고장과 해고장의 문제는 당사자가 혼자 찾아가 해결할 문제가 아닌 우리 전체의 문제입니다. 경영자 쪽에서 볼 때는 노동효율이 낮은 사람들을 해고 정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겠지만, 우리는 먼 나라에서 왔고, 또 여기에 오기 위해 교육을 받고 기다리는 동안 많은 빚을 진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 빚도 다 갚기 전에 일을 잘못한다고 해고를 당하면 그 사람의 인생이 파괴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우리로서는 참으로 받아들이기 어렵고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어려운 사정들을 인간적으로 배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박사의 통역을 통해 태영의 말을 듣던 파울 소장이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사회과장과 무엇인가 말을 주고받은 다음 정색을 하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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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받는 동안에 빚을 졌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우린 당신들이 한국에서 선발되어 교육을 받는 3개월 동안의 생활비를 지급했다. 그리고 항공요금도 우리가 선지급했다. 다시 말해서 당신들을 불러오기 위해 우리는 많은 경비를 들였. 그런 까닭으로 당신들을 계약기간 안에 해고하는 것은 우리에게도 손해가 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불성실한 사람을 해고할 수밖에 없는 것은 생산성을 높여야 하는 광산 경영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파울 소장의 이 말이 전해지자 좌중이 웅성거리며 소란해지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우린 생활비 받은 적이 없다. 파울 소장이 이런 좌석에서 거짓말할 리가 없으니 어느 놈이 중간에서 가로챈 것이 분명하다. 생활비는커녕 우린 오히려 수속비다 수수료다 하는 적지 않은 돈을 개발공사에 내느라고 빚까지 얻어대지 않았는가"하는 두런거림이 여기저기에서 오갔다.
   광산 측에서 지급했다는 파독광부 교육 기간의 생활비를 받은 적이 없다는 사실을, 광부들을 대신한 이 박사를 통하여 들은 파울 소장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임정길 수석 노무관을 바라보았다. 임정길 수석 노무관은 너무도 갑작스러운 일이었는지 말을 못하고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한형, 이걸 어떻게 마무리하지 ?"
   돌발사태에 이 박사도 당황했는지 옆자리에 앉아 있는 성주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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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작이 가는 일이지만, 여기서 잘못하면 한국인 모두가 개망신을 당하게 생겼습니다. 이 문제는 노무관과 우리가 내부적으로 알아본다고 하고 여기서는 더 언급하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성주의 대답에 태영이 벌컥 화를 냈다.
"
무슨 소리야 지금, 말이 나온 김에 여기서 진상을 밝혀야지"
"
여기서 진상이 밝혀질 일이 아니잖아. 짐작하건대 이건 개발공사가 한 일이 아니야. 정부가 개입된 일이라"
"
뭐야? 무슨 증거라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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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 참고로 말하지. 내가 월남전에 참전해서 두 해를 사병으로 근무하면서 미군 장교들을 통해 알게 된 일인데, 미국은 파월 한국군에게 미군 장병과 같은 수준의 봉급과 전투수당을 지급했다는 거야. 그런데 당시 한국정부는 파월장병에게 한국군 봉급과 전투수당만 지급하고, 미국이 주는 장병의 본봉은 가로채서 다른 일에 사용했다는 거야. 내가 월남에 있을 때 한국휴가를 가면서 비행기 안에서 만난 미군 장교들과 휴가비에 해 이야기하면서 알게 된 일이야. 당시 나는 행정과에서 휴가비 명목으로 삼십 달러를 받았는데, 이 말을 들은 미군 장교들이 사병 휴가비가 삼백 달러가 지급된다면서 봉급과 전투수당 이야기까지 나온 거야. 당시 우리 파월사병 병장이 육백 원인가의 국군봉급이 한국 국방부 중앙경리단에 적립되고 있었고, 하루 전투수당 1달러 80센트 그러니까 한 달에 오십사 달러를 지급 받았는데 그 중 80 퍼센트 이상을 의무적으로 한국 가족에게 송금을 하고 있었지. 이런 설명을 들으며 참 딱하다는 표정을 짓는 그 미군장교에게 내가 뭐랬는지 알아? 최형! 지금 생각하면 참 기가 막힌 소리지만, 당시만 해도 맹목적인 애국심에 불타는 젊은이였던 내가 미군 장교에게 한 말이 뭐였겠어?
'우리 정부는 군사혁명을 일으킨 정부다. 썩은 정치와 낡은 질서가 수백 년 동안 쌓아온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혁명을 했고 야심적인 경제개발을 시작했다. 우리 정부는 이를 위해 모든 가능한 재원을 동원하고 있다. 그 과정과 수단에 다소 무리가 있다 하더라도 국가 경제 도약의 염원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웬만한 것은 묵인하고 있는 것이 지금 우리 국민의 정서다. 월남파병도 어떤 면에서는 이런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나는 믿는다. 지금은 비록 우리 정부가 파월장병의 피 값을 돌려쓰고 있지만 언젠가 국가 경제가 성장하고 국고가 넉넉해지면, 이자에 이자까지 쳐서 개인에게 돌려줄 것이다.'라고 말했지. 속으로는 부아가 치밀어 올라와도 양키놈들 앞에서 우리 정부 망신시킬 수는 없더라. 아무리 미워도 내 식구 밑구멍까지 들낼 수는 없는 게 우리네 인지상정 아? 오늘 일도 난 그렇게 생각해. 뻔하게 짐작이 가는 일이지만 독 사람들 앞에서 우리나라 망신시킬 수는 없잖아? 밝히려고 해 봤자 지금은 밝혀지지도 않는 일이 하니, 이 일은 나중에 우리끼리 알아보겠다 하고, 우선은 경고장과 해고장 남발 문제부터 거론하자"
"
환장하겠군"
   태영은 분을 삭이느라고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면서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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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형 말이 일리는 있지만, 지금 그냥 얼버무리고 넘어갈 수도 없잖아?"
   이 박사도 일단 덮어두자는 성주의 말에 불만이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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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이 사람들 앞에서 노무관과 콩이야 팥이야 따져가면서 내 식구 팬티까지 벗겨 밑구멍 들어내게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어쩌면 노무관도 마른하늘에 날벼락 맞은 일인지도 모르고, 또 내용을 알고 있다 해도 여기서야 '한국 관계자에게 알아보고 답변하겠다'고 대답할 것이 뻔한데."

   장내 분위기를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한 성주는 손을 번쩍 들어 발언을 신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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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 소장님, 우리 독에 오기 위해 교육을 받는 3개월의 생활비를 지급했다는 사실을 우린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우리나라의 관계기관을 상대로 알아보아야 할 일이니 여기서는 더 언급할 필요가 없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보다는 아까 파울 소장께서 지난번 해고 문제를 개인의 신상문제라고 하면서 개인이 직접 경영협의회나 노조를 찾아와 대화하라고 하면서 집단항의한 일을 대단히 불쾌하게 여기는 말씀을 하셨는데, 해고통지서를 받은 세 사람은 그 누구로부터도 경영협의회나 노조를 찾아가 변명할 기회가 있다는 정보를 들은 적이 없습니다. 그저 일방적으로 해고 통지를 받으면 즉시 귀국해야 한다는 것 말고는 다른 길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 한국광부의 실정입니다. 우리는 오늘 비로소 파울 소장님의 말씀을 듣고 해고장을 받으면 경영협의회나 노조를 찾아가 변명할 기회가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오늘 이 대화의 자리는 매우 보람이 있는 자리입니다.
   그리고 파울 소장님께서는 개인 신상에 관한 일을 가지고 집단행동을 하는 한국광부들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뜻의 말씀을 몇 번이나 하셨는데, 그 점에 대해서는 파울 소장님께서 이해해 주셔야겠습니다. 그건 독일과 한국의 역사 배경과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겁니다. 독일사람들은 각 지방 영주들이 지방분권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사회체제의 역사를 오랜 세월 살아왔으므로 '개인의 일은 개인이 해결한다'는 개인주의가 발달해 왔습니다만, 우리 한국은 천 년 이상의 긴 세월을 좁은 국토 안에서 중앙집권적인 왕조체제를 유지하면서 가문과 족벌로 뭉쳐진 집단생활의 역사를 살아왔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우리 한국인은 따지고 보면 모두가 혈연으로 얽혀져 있어서, 남의 일이라고 해서 모른 체라 외면하는 사람은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는 한국인 특유의 정서가 있습니다. 더구나 이역만리 외국에 품팔러 나온 신세여서 서로서로 형제로 의지하는 마음이 더욱 강합니다. 이러니 누구 하나가 해고를 당해 귀국해야 한다면 그게 내 일처럼 억울하고 서럽고 화가 나는 겁니다. 독일광부들과 다를 수밖에 없는 이런 정서의 차이를 파울 소장께서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독일의 역사까지 들먹이는 성주의 말을 이 박사의 통역을 통해 듣고 나서 파울 소장이 라 통역에게 성주의 직번을 물어 수첩에 메모하는 모습을 보며 성주는 지 불안했다. "독에 가면 나 죽었소! 하고 삼 년 동안 일만 부지런히 해 돈이나 벌어 가지고 오겠다."고 한 아내와의 약속을 어기고,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나 갈 걸 공연히 또 제갈동지 마냥 나서서 '찍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파울 소장이 성주를 두고두고 기억하려는 듯 직번을 수첩에 기록해 두는 모습에 더 해야 할 말을 잃어버린 성주가 엉거주춤 자리에 앉자 휴고 노조위원장이 재빨리 말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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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헤르 한의 말을 들으니, 지난번 해고철회를 요구하는 집단행동이 그동안 경영주 측과 한국광부 사이에 원활한 대화 창구가 없어서 일어난 것으로 판단된다. 내가 한 가지 제안을 하겠다. 앞으로는 한국광부들이 일하는 각 작업 갱도마다 한 사람씩의 대변인을 선출해서 모든 애로사항이나 문제점을 이 대변인을 통해 광산 측에 전하고 대화의 자리를 마련해 그때그때 풀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
   휴고 노조위원장의 제안을 한국광부들이 박수로 받아들이자 파울 소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면 오늘 모임은 이것으로 끝내고 여러분이 각 작업 갱도별로 충분히 의논해서 대변인을 선출해 라 통역을 통해 통보해주기 바란다."
   부당한 해고를 철회하라는 요구로 시작한 투쟁은 이렇게 문제 발생 시 원활한 대화를 하기 위한 대변인 선출이라는 유명무실한 성과 하나를 얻는 것으로 막을 내리고 말았다. 이로써 세 사람에게 내려진 해고조치는 돌이킬 수 없는 기정사실이 됐고, 노임이 절반으로 삭감되는 경고장 남발의 문제는 아예 거론조차 하지 못했지만, 대부분의 동료들은 마음속에 쌓여 있던 불만들을 광산경영자 앞에서 털어놓을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풀어져 기숙사로 돌아가는 발걸음들이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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