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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겨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조회 1,190회 작성일 12-12-09 20:58

본문

 
성주는 두 사람의 대화 가운데 귀가 번쩍 이는 대목이 있어 이 박사에게 물었다.
"
사회상담실이라니---?"
"
안 그래도 지금 마악 얘기를 꺼낼 참이었는데---, 실은 내가 여기 독 기독교 기관 장학금으로 공부했거든. 학위를 끝내고 귀국하려는데 한국정보기관에서 '유신독재 반대투쟁' 경력을 꼬투리로 무슨 각서라나 사상전향서라나 하는 것을 제출해야 한다는 거야. 그 거 안 쓰면 귀국 후의 신변안전을 보장 못 한다는 으름장을 놓으면서 말이지. 내가 무슨 좌익사상을 가졌기라도 해야 사상전향서를 쓰지. 기가 막혀서.
이런 상황을 알게 된 기독교기관에서 제의를 해 왔어. 한국 정치 상황이 좋아질 때까지 당분간 제네바에 있는 세계기독교교회협의회 본부에서 일해보라는 거지. 기왕에 외에 나왔으니 국제기구에서 일해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어서 그러기로 작정하고 있었는데, 레크링하우젠 광산 일이 터진 거야. 그 일로 송 회장하고 최형을 자주 만나면서 여기 독에서 일하고 있는 우리 파독근로자들이 당하고 있는 해고 · 사고 · 직장 이동 · 국제결혼 문제 · 체류 문제 등등 법률 · 사회 상담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걸 실감했어.
   그래서 제네바 가는 걸 포기하고 종교청 외국인 담당국장을 설득해 여기 루르광산지역에 기독교사회봉사국 산하의 한인사회상담실을 개설하고 내가 상담자로 근무하기로 했지. 보쿰 기독교사회봉사국 담당자들의 준비작업이 끝나는 대로 문을 열게 될 거야. 개설 축하행사를 의미 있게 하고 싶은데, 사실 오늘 초면이지만 심정적으로는 옛친구와 다름없는 한형이 좋은 아이디어를 주었으면 해."

두 가지의 박사 학위를 받고도 출세의 지름길인 국제기구 근무를 사양하고 자청해서 독종교청 말단 기관에서 파독근로자들의 상담자가 되기로 했다는 이 박사의 말에 성주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뜨거운 감동을 느꼈다. 강원도 황지에서의 광생활 이후 은근히 가슴속에 응어리져 있던 가진 자와 배운 자들에 대한 경멸과 분노가 가슴 속 저 밑바닥에서 천천히 녹아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
아직 시간이 있으니 나중에 생각해 보기로 합시다. 한인사회상담실의 개설이 갖는 의미를 표현하는 간단한 연극 공연 같은 게 좋을 것 같지만---"
"
나도 그 생각을 해 보았는데, 연극 대본을 누가 쓰고 누가 연출을 해서 무대에 올릴지를 생각하니 엄두가 안 나더라"
"
참 걱정할 것도 많다. , 대본은 여기 우리 한형이 쓰고, 배우들은 교회 식구들이 맡고 연출은 대본 쓴 사람이 하면 되는 거지 뭘 망설여?"
  이 박사가 주저주저하자 답답하다는 듯 태영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
연극 대본 아무나 쓰는 거 아니야, 최형. 연출도 그렇고---, 나야 물론 한형이 승해 준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지만, 아무래도 너무 어려운 청인 것 같아서---"
"
경험은 없지만 어디 한번 해봅시다. 단 두 최형께서 보쿰교회 교우들의 전폭적인 협조를 받아낼 수 있다면---"
"
그건 내가 책임져. 우리 교회에 결혼하고 싶어 안달하면서도 주위 사람 눈치 때문에 마음 놓고 만나지 못하는 처녀 · 총각들이 몇몇 있는데, 이 사람들을 배우로 뽑아서 연습시키면, 그거야말로 일거양득, 꿩 먹고 알 먹는 거 아니겠어."
  성규가 신이 나서 활기찬 음성으로 답했다.
"
어이 조카, 그러다가 염불에는 맘 없고 잿밥에만 눈독 들여 연극 망치면 어떻게 하라"
  태영이 기막혀 하는 표정으로 핀잔을 주었지만, 기분이 들뜬 성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
그거야 연출하고 감독하는 사람 능력이지. 배우들끼리 연애하는 건 연극 연습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다구. 아냐 오히려 연습에 큰 도움이 될 걸, 호흡이 잘 맞을 거니까."
   제풀에 신이 난 성규는 연신 희희낙이었다.
"
처녀 총각들이 연극 연습하면서 짝을 맺어 결혼까지 골인하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없지, 어디 한번 해 봅시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 장 목사라는 분, 도대체 어떤 분이기에 빨갱이 목사라는 말을 듣습니까?"
"
빨갱이 목사! 참 아이러니한 일이지. 빨갱이한테 잡혀 죽을까 봐 부모형제들을 다 고향 땅에 놔두고 혈혈단신으로 사선을 넘어온 사람을 빨갱이라니---"
"
기숙사 환영예배 때 들으니, 장 목사 말씨가 함경도 같던데---"
"
맞아. 한형! 함흥학생사건 알지?"
"
함흥학생 사건이라, 광복 후 석 달 만에 신의주에 이어 함흥에서 학생들이 일으킨 반소(反蘇반공(反共)시위 사건 말입니까?"
"
그래! 바로 그 사건, 소련군의 만행과 그런 소련군의 앞잡이 공산당원에 대한 분노를 참지 못한 학생들이 신의주에 이어 함흥에서도 궐기한 사건. 그때 소련군의 기관총 · 따발총 사격과 전차의 기총소사에도 굴하지 않고 보안서를 습격한 함흥학생사건의 한가운데에 당시 함남중학생이었던 장성환 목사도 있었는데, 그 일로 보안대의 추적을 받는 생명의 위협을 피해 부모와 가족을 남겨둔 채 혈혈단신으로 삼팔선을 넘어와 갖은 고생을 하며 고학으로 연세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하고 목회자가 된 분을 '빨갱이'라고 하는 건 좀 웃기는 일 아니야?"
"
연신을 나왔다면---, 감리교 목사이신가?"
"
아냐, 복음교회야"
"
복음교회? 순복음교회가 아니고---?"
"
한형이 처음 듣는 교파인가 보군. 비록 외형적인 교세는 보잘 것없어도 한국 기독교 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의미가 있는 교파지, 선교사 중심의 외래 기독교에서 조선인 중심의 조선기독교로 뿌리를 내려야 한다고 외쳤던 최태용 목사가 해방 전에 창설한 교회인---, ! 그러고 보니까, 최태용 목사도 빨갱이로 몰린 적이 있네. 사도행전에 나오는 사도 시절의 교회와 같은 공동생활을 추구했던 선교방식 때문에 공산주의자로 보였던 모양이야.
아무튼, 혼자 몸으로 월남해 서울에 온 장성환 학생은 종로 6가에 있는 복음교회에 몸을 의탁하고 날마다 종로6가에서 신촌 연희대학을 걸어서 오가는 고학을 시작했다는데, 당시는 신의주와 평양 · 함흥 등지에서 월남한 학생들이 '서북학련'을 조직하고 이철승의 '전학련'과 힘을 합쳐 좌익학생 조직과 혈투를 벌이고 있을 때였지. 장성환 학생은 그 와중에 휩쓸리지 않고 어찌나 공부에만 매달렸는지 당시 함께 공부한 어른들 사이에선 지금도 '공부벌레'란 별명으로 통하고 있다는 거야."
"
그런 양반이 어쩌다가 빨갱이 목사로 몰렸지?"
"
그게 사실은 좀 오래됐어. 박 대통령의 종신 집권을 위한 유신헌법이 공포될 무렵 장 목사는 기독교방송 칼럼을 맡고 있었는데, 여기에서 유신체제를 비판하기 시작하면서 정부의 미움을 받기 시작했으니까. 비판의 강도가 점점 높아져 감에 따라 정보기관에서는 반공법 위반 · 긴급조치 위반 등 죄목으로 장 목사 체포구금을 검토할 단계에까지 이르렀을 때, 때마침 독일 개신교회총회(EKD)로부터 독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광부들과 간호사들을 위한 선교사 파송을 의뢰받은 한국 기독교교회협의회(KNCC)가 장 목사를 선발해 로 보냈다지 아마. 일종의 피신인 셈이지. 내가 직접 확인해 본 건 아니지만 KNCC 안에서는 대부분 그렇게 알고 있어. 이 어른이 독에 와서는 유신체제를 반민주적인 독재체제로 규정하고 이를 반대하는 교포단체인 <민주사회건설협의회>에 가담했지. <민건>은 김형욱이 확대 조작한 동백림사건의 피해자인 윤이상 교수를 비롯한 재유럽 지식인들과 노동자연맹을 조직한 노동자들이 유신헌법을 반대하는 모임을 가지면서 창설된 반독재 민주화운동단체인데, 장 목사와 함께 내가 들어가 보니, 윤이상 교수는 평양을 왕래하고 있었고, 몇몇 사람들은 친평양적인 언행을 거침없이 하는 묘한 분위기가 있어서 뜻이 안 맞는 거야. 결국 용공 · 친공을 용납하고 북한을 찬양할 수 없었던 장 목사와 나는 <민건>을 탈퇴하고 뜻이 맞는 몇몇 교우들과 함께 <한국민주사회건설협의회>, 약칭으로 <한민건>을 새로 창설해서 남쪽의 대한민국을 조국으로 하는 반독재 민주화운동을 하고 있는데, 이런 과정에서 '빨갱이 목사'라는 도장이 찍힌 것 같아."
"
아니 그런데, 도대체 여기 독에서 할 수 있는 반독재 민주화운동이 뭡니까?"
   성주는 이 박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그게 가장 궁금했다.
"
그게 사실 '강 건너 불구경'하면서 불 끄자고 떠드는 격이지만,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으니까 세미나도 열고, 성명서도 발표하고 때에 따라서는 공관 앞이나 공공장소에서 집회도 고 하는 게 고작이지 뭐. 예를 들면, 작년에 명동성당에서 엄중한 사전 검색을 피해 결혼식으로 위장하고 모인 민주화 투쟁 인사들이 발표한 <삼일 구국선언> 사건으로 김대중 선생과 함께 체포 구속된 수많은 민주인사 석방하라는 집회를 열고 공개 단식투쟁을 벌여서, 독일 개신교회와 사민당을 통해 한국정부에 외교적 압력을 넣는, 그런 방법이지.
   서독 공영방송이 우리 집회와 단식투쟁을 보도하면서 '외견상으로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라고는 하지만, 국회의원의 삼분지 일을 대통령이 임명하는 한국의 유신 정치체제는 사실상 군부독재'라는 논평을 내 보낸 것은, 우리의 성명서를 인용한 좋은 예지."
"
보쿰교회에 한두 번 출석했다가 안 나가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으니, 설교시간에 한국정부 비난만 하고 예배가 끝나면 불온한 문서나 나누어주고 해서 무서워서 안 나간다고 하던데. 정말 그래요?"
"
아니라고는 할 수 없지. 장 목사님의 신조가 일반 한국기독교 신자들이 받아들이고 있는 '예수 믿고 천당 가고 복 받는 기복신앙'이 아니라 '하느님의 공의와 평화를 이 땅에 흘러넘치게 하는 일에 부름을 받은 일꾼신앙'이니까 하느님의 공의와 평화를 짓밟는 위정자들을 꾸짖을 수밖에 없지. 구약성경의 예언서들이 모두 당시의 위정자들을 꾸짖는 내용이잖아.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장 목사는 이 시대의 예언자인 셈이지. 구약시대나 지금이나 예언자는 늘 핍박을 받게 마련이잖아?"
"
사람들 얘기로는 불온문서가 수도 없이 많다는데, <노연통신><주체> 말고도 또 있는 모양이지"
"
캐나다 『민건』에서 발행하는 월보와 지금 캐나다에 계신 김재준 목사님이 만드시는 국내 반독재 민주화 투쟁일지와 민주정치 사회정의 구현을 기독교의 선교사명이라고 주장하는 평론지 <제삼일>, 캐나다에서 발행하는 주간신문 <뉴코리아 타임스> 등이 있는 데다가 가끔 국·내외 투쟁단체들의 성명서 등이 배포되고 있으니, 내용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겁도 나겠지"
"
그만하면, '빨갱이 교회' 소리 듣고도 남음이 있네, 여기가 독이니 망정이지, 한국교회에서 그런 일 벌어지면 순식간에 교회 문 닫아야 할걸"
"
하기는 그래, 먼 외국 땅이니까 그나마 할 수 있는 거지"
"
자 얘기들 그만하, 이제 우리 떡국이나 먹읍시다"
안주인이 거실 한쪽 식탁에 김이 무럭무럭 나는 떡국 상을 차려 놓고 손뼉을 치며 소리쳐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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