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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겨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조회 914회 작성일 12-12-08 21:14

본문

 
이른 저녁 식사를 마치고 성주는 태영과 함께 성규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보쿰대학이 있는 언덕에 자리한 이삼열 박사의 집을 찾았다. 일찍 자고 새벽에 일을 가야 했기에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태영이 오늘 밤 꼭 가야한다고 강권하는 바람에 따라나선 것이다.
"
도대체 오늘 꼭 이 박사를 만나야 할 까닭이 뭐야?"
"
미안해, 내가 약속을 해놔서 그래. 이번 성탄 연휴 때 한형을 만나고 싶어했는데 한형이 기숙사에 없었잖아. 오늘 마침 성규도 시간이 있고 해서 자동차 가지고 기숙사로 오라고 했지. 그런데 도대체 사흘 동안 어딜 싸돌아다닌 거야?"
"
싸돌아다니긴---, 헤르네 마리안호스피탈에 근무하고 있는 친척 누이가 있어서 그 집 식구들과 성탄절을 함께 지내고 온 거야"
"
친척 누이라, 윤형 말로는 심상치 않은 사이 같다던데?"
태영이 뭔가 석연치 않다는 물음을 담은 눈길을 보냈다.
"
억측이야"
성주는 대답이 궁색해져서 짧게 끊어버리고 호클라마르크에서 43번 고속도로를 타고 부퍼탈 방향으로 달리는 차 창 밖의 풍경들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창 너머 멀리 불과 몇 시간 전에 영주와 함께 거닐었던 헤르네 거리가 정겹게 눈에 들어왔다. 헤어진 지 하루도 안 지났는데도 종탑이 뾰한 성당 앞을 휘황찬란하게 비추고 있는 성탄 장식의 거대한 샹들 아래에 슬픈 미소를 짓고 있는 영주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영주와 만나고 있을 때는 그저 편안하고 즐겁지만 헤어져 영주를 생각하면 가슴이 저 밑바닥부터 저려왔다. 얼음처럼 차가운 덩어리가 가슴 밑바닥부터 차곡차곡 쌓여 마침내는 그 서늘한 저림이 차가운 눈물과 큰 한숨으로 터져 나왔다.
"
왜 그래? 무슨 걱정거리 있어? 젊은 사람이 무슨 한숨이야? 뭐야 도대체?"
태영은 말없이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성주의 입에서 큰 한숨이 터져 나오자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
아무것도 아냐. 그저 식구들 생각이 나서 그래"
성주는 당황해서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며 얼버무렸다. 눈물을 닦으며 영주의 환영이 보였던 성당 앞 샹들리에를 쳐다보니 거기 영주가 한나를 품에 안고 성주 자신을 향하여 필사적으로 달려오는 모습이 어른거렸다.
"
그래 영주야, 너와 내가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윤회의 업보로 맺어져 있다면, 내게로 달려오는 너를 뿌리치거나 네게서 도망칠 도리가 없겠지. 하지만 아내는…?, 아이들은…?, 할 수만 있다면 한나도 내 딸로 키웠으면 좋으련만, 오복이 그걸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런 내 꼴을 부운 스님이 보신다면 또 뭐라 하실까."
문득 어둠 속의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차창이 거울이 되어 그 안에 낡은 가사 장삼에 탁발 바랑을 짊어지고 죽장을 짚고 서서 "구름 흘러가듯 여여(如如)하게 가시게" 하는 모습이 아스라하게 떠올랐다. 그리웠다.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라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허적거리며 걸어가는 머나먼 돌밭길이 싫어지지 않도록 힘을 주고 맛을 내 주는 말이 그리웠다.
"다 왔어, 내려!"
가없는 생각에 잠겨 있는 성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는 태영은 걱정스러운 낯빛이었다.
"
왜 그런 눈으로 봐? 걱정 마, 아무 일도 아냐 !"

   전망이 확 트인 언덕 위에 조성된 연립 주택단지 가운데 이 박사의 집이 있었다. 마치 서울 이태원 외국인 주택단지의 분위기를 연상시키는 깔끔한 주변경관이 여유 공간이 많게 조성된 택지 곳곳에 심어져 있는 수목들과 어울려 찾아오는 이들에게조차 안정감을 주고 있었다.
이삼열 박사. 독에서 박사 학위를 두 개나 받았다고 해서, 옥골선풍의 선비 모습을 예상했었으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정말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라고 반기며 두 손을 마주 잡고 맞아들이는 이 박사는 마치 부잣집 맏아들 같은 여유와 자신감이 어딘가 모르게 흘러나오는 듬직한 풍모를 갖고 있었다.
"
어서 오세요. 반가"
   인사치레가 아니라 정말 반가워하는 자태로 세 남자를 맞아들이는 안주인 손덕수 여사는 행주치마를 두르고 손님맞이 부엌일을 하다가 나온 모습 그대로였다.
대부분의 독 집들이 그러하듯 응접실을 겸한 거실 의자에 손님들과 주인이 마주 앉자 안주인이 진품을 다려 진하고 독특한 향기가 나는 삼차를 내왔다.
"
아니 손 여사, 사람 봐 가면서 대접이 달라지는 거요? 내가 왔을 때는 한 번도 이런 거 내온 적이 없으면서, 한형이 온다니까 이런 귀한 걸 준비하고---"
   태영이 자주 드나 듯 허물없이 농을 걸었다.
"
에이 설마. 우리도 이런 거 오늘 처음이야. 실은 내 후배가 이번에 보쿰대학으로 유학 오면서 친정집에서 보내주는 삼을 조금 가져왔거든. 그래서 독삼탕으로 다렸는데 때마침 귀한 손님들이 오셨네"
"
그럼 약으로 드시는 건데---"
   성주가 민망한 낯빛을 보이자 이 박사가 두 손을 내저으며 마치 오래 사귄 친구 같은 말투로 삼차를 권했다.
"
한형,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어서 들어요. 그런데 내가 보기엔 한형 그 체격에 광부라니 아무래도 믿어지지 않네, 더구나 한국에서도 광산에 있었다는 사실이---, 선비라면 딱 맞을까--- "
"
이 체격 가지고 광부로 벌어 먹고살자니 그 고생이 오죽하겠소. 이 형은 그런 거 모를 거요"
   성주대신 태영이 옆자리에서 이 박사의 말을 받았다.
"
그럼 한국광산에서는 얼마나 오래---"
"
얼마 안 . 두 해 남짓하다가 로 도망쳤으니까"
"
아 그러고 한형! 최형 말을 들으니 지난번 에발트광산 신문기사 건에 대해서 뭔가 한형이 날 오해하고 있는 것 같던데, 난 전혀 모르는 일이요. 청원서를 에발트광산 노조나 경영위원회에 보내지 않고 루르광업소 노조에 보낸, 한형 지적대로 노동운동 경험이 전혀 없는 내 실수라고 인정하겠지만, 정말 신문기사 건은 모르는 일이요. 최형이 전하는 한형의 분노를 듣고 당장 WAZ 신문사에 연락해 그 기사를 쓴 기자를 만나보았는데, 놀랍게도 에발트광산 광부로 10여 년 동안 일하면서 대학공부를 한 요한 카차로프스키라는 이름의 폴란드 젊은이였소. 그 친구 말로는, 광부 시절 동료인 루르탄광 노조 서기로부터 에발트광산 한국광부들의 청원서 얘기를 듣고 호클라마르크 기숙사를 세 번 찾아가 악한 시설들을 확인했고, 기숙사에 는 한국인 광부들과 기숙사 주변에 는 터키나 모로코 등 외국인 광부들을 상대로 기사자료를 취재했다는 거였소. 내 한형한테 해명하고 오해를 풀려고 그 친구한테 사정사정해서 그 친구가 취재했다는 한국인 광부 사진을 받아 놓았는데 한번 봐요."
   이 박사는 신문기사용으로 찍은 듯한 흑백사진 한 장을 성주 앞에 내밀었다. 사진은 우중충한 호클라마르크 90번지 기숙사를 배경으로 먼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5진 동료 이기선과 정인남의 모습이었다.
"
어허 바로 이 친구들이었군. 11호실 이기선이 하고 정인남이 아냐? 내가 알기, 이 친구들 독일말이 짧아서 제대로 인터뷰도 못했을 텐데"
   태영이 옆에서 사진 속의 기선과 인남을 가리키며 거들었다.
"
신문기자들은 말이 안 통하면 손짓 발짓 몸짓을 보고 소설을 쓰는 사람들이니까. 그건 그런데 이 친구들 왜 여태 아무 말이 없었지? 신문기자가 사진까지 찍어 갔는데 말"
"
독일말이 안 통했으면 뭘 하려고 사진 찍어 가는지 몰랐을 수도 있지"
   성주가 의아해하자 이 박사가 그럴 수도 있다는 투로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성주의 기억 속에 아련한 사진 한 장이 떠올랐다. 남루한 옷차림의 일곱 살짜리 까까머리 사내애가 두 살배기 사내동생을 포대기 둘러업고 또 다른 네 살배기 사내동생의 손을 꼬옥 잡은 채 양코배기 사진사를 신기한 듯 쳐다보는 모습이었다.
6.25 사변이 일어난 직후 한강 다리가 끊겨 미처 피난하지 못한 탓으로 남편이 한밤중에 친구에게 붙들려 가고 난 후 졸지에 올망졸망한 사내아이 셋을 거느린 스물 일곱 살 청상과부가 된 어머니는 1.4 후퇴 소문이 들리자마자 맏아들은 앞세워 걸리고 머리 위에 피난 짐 보따리를 인 채, 막내아들을 등에 들쳐 없고 둘째 아들 손을 잡아끌며, 명륜동에서 영등포역까지 종일 걸어 피난민 대열에 합류했다.
어머니는 남들이 하는 대로 언제 떠날지 알 수 없는 뚜껑도 없는 목판 화물칸에 올라앉아 세 아들을 부켜 안고 살을 에는 듯한 칼날 같은 서북풍이 조금이라도 아이들에게 덜 가게 하려고 애를 쓰면서 꼬박 이틀을 기다렸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이틀째 되는 날 긴 기적 소리를 울리며 증기기관차가 달려와 목판 화물열차를 달고 남쪽으로 달리기 시작했을 때, 어머니는 "이제는 살았다." 하면서도 서울 쪽 하늘을 자꾸만 돌아다보며 세 아들을 꼬옥 감싸 안았다.
나중에 철이 들어 그때를 회상하다 보니 어머니가 자꾸만 서울 쪽 하늘을 바라본 까닭은 그쪽에서 헤어져 생사를 알 수 없는 아버지를 걱정하는 슬픈 몸짓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저녁 무렵부터 시작해서 밤새 퍼붓는 진눈깨비를 뚜껑도 없는 목판화물칸에 앉아서 고스란히 맞아 온몸이 얼어붙어 한겨울의 동태 같은 꼴로 네 식구가 대전 신안동에 있는 이모 집에 새벽같이 들닥치자, 이모는 대성통곡을 하며 어머니를 얼싸안았다.
"
아이고 이것아! , 이자 오냐? 그래 한서방은 어쩌 너희만 오냐? 아이고 이게 웬일이냐? 이게 웬일이야? 어서어서 방으로 들어가 옷부터 갈아입자. 얼어서 버석버석한 걸 입고 어떻게 예까지 왔냐? 어유 불쌍한 것들---"
   이모는 울며불며 부엌으로 방으로 뛰어다니며 갈아입을 옷가지를 내놓는다, 뜨거운 숭늉을 떠다 아이들에게 먹인다 하면서 또 한 손으로는 부엌 아궁이에 장작불을 지펴 밥을 안치고 미역을 물에 씻어 국솥에 앉혔다. 이모가 부엌으로 방으로 휘돌아 치는 동안 어머니는 이모가 내어 준 옷으로 갈아입고 꽁꽁 아이들 셋을 부엌으로 데리고 나가 뜨거운 물로 몸을 씻기며 녹였다.
   사촌 형제들이 부산스러운 집안의 분위기에 놀라 깨어나 눈을 비며 '새벽에 웬 거지들이냐?' 하는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
뭘 그렇게 멍청하게 보고 섰냐? 서울 이모하고 너 이종 형, 이종 오빠다. 어서 일어나 세수하고 마당 쓸고 밥 먹을 차비 하거라"
처음 만나는 서울 이모와 서울내기 이종형제들이 신기한 듯 남자 둘 여자 둘의 이종 형제들은 좀처럼 눈길을 떼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한 대전에서의 피난살이.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던 빈손의 어머니가 생계를 위해 생각해 낸 돈벌이는 머릿짐 쌀장사였다. 닷 말들이 쌀자루를 들고 새벽에 기차를 타고 이리시장으로 가서 쌀 닷 말을 사서 머리에 이고, 되짚어 대전으로 와 싸전에 넘기면 이문이 조금 남았다. 게다가 이리시장은 됫박질이 후해서 고봉으로 퍼담아 주기 때문에 대전 싸전에서 되팔 때 됫박 모서리를 밀대로 밀어내는 됫박질을 하면 쌀이 한 되 가웃은 남아 네 식구 양식으로 하고도 남았다. 그 쌀을 모아 팔아 반찬거리를 사기도 하면서 어머니는 아이들을 이모 집에 맡겨 놓고 매일 같이 기차를 타고 이리시장을 다녔다. 기차 삯은 물론 무임승차였다. 여러 가지로 혼란한 그 시절이어서 대전역 사무주임이었던 이모부의 배경만으로도 대전에서 이리 왕복의 무임승차가 가능했다.
머릿짐 쌀장사로 약간의 돈이 모아지자 어머니는 서울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이 당시 허허벌판이었던 은행동에 무허가 판자집을 짓고 모여 살던 동네의 판집을 하나 사서 피난살림을 차렸다. 그 판집에 성주에게 두 어린 동생들을 맡겨 두고 어머니는 이리 왕복의 머릿짐 쌀장사를 한참을 더 했다. 그 무렵 어머니가 장사 가고 없는 빈 집안이 너무나 심심해서 성주는 두 살배기 막동생 용주를 포대기 둘러업고 네 살배기 동생 형주와 함께 전쟁통에 폭격을 맞아 폐허가 된 충남 제사공장 터에서 병정놀이하며 놀다가, 지금 생각하면 아마도 외국신문 특파원인 듯한 사진사들의 표적이 된 것이다. 그들은 영문을 모르는 성주에게 이리저리 손짓 몸짓으로 자세를 잡아주며 연신 셔터를 눌러댔는데, 성주는 나중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우연히 6.25 사변 당시 외국사진기자들이 전쟁의 참혹함을 증언하는 화보에 실린 가지가지 사진들을 보고 나서야 , "아하 내가 그때 동생 업고 손잡고 찍힌 사진도 이런 화보 어딘 가에 '불쌍한 피난민 어린이'로 실려 있겠구나" 하고 탄식을 한 적이 있었다.
성주는 기억 속에서 까마득하게 지워졌던 스물여섯 해 전의 일을 문득 새삼스럽게 떠오르게 기선과 인남의 사진을 다시 한번 드려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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