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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나지라기 제5회   

 
<5>

모두 제 방을 찾아서 뿔뿔이 가버리고 난 텅 빈 휴게실의 창문을 열고, 성주는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한국이라면 지금쯤 열어젖힌 창 너머로 초가을 하늘의 영롱한 별빛들이 반짝이련만 독의 밤하늘은 별 하나 보이지 않고 오히려 무거운 침묵이 내리누르는 듯했다. 그 무거운 침묵의 공간에 오련 하게 오복의 얼굴이 떠올랐다. 결혼생활 일곱 해 동안 참으로 영문도 모르는 고생을 아내에게 시켰다는 자책감으로 가슴이 저렸다.

-
오복은 딸 많은 시골 농사꾼의 다섯째 딸로 태어나서 별로 많이 배우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생의 밑바닥을 아는 여자도 아니었다. 농촌에서나마 세상 물정 모르고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라난 여자였다. 직장생활은커녕 인생의 험난함을 맛보기도 전에 큰언니의 소개로 만난 남자, 그 알량한 남자가 바로 이 한성주가 아닌가? 남자가 착하니까, 형제들이 우애가 좋으니까, 제 앞가림은 하는 남자니까, 그만하면 여자의 한평생을 의지하고 살만할 것 같아서, 아니야! 남들이 다 하는 결혼이니까 별로 싫지 않은 남자가 하자는 대로 깊 생각해보지도 않고 덜커덕 결혼이라는 일을 저질러 놓고 나서야 무언지 모르는 두려움에 신혼여행의 귀로에서 신랑 몰래 눈물을 흘리던 여인, 첫아들을 낳고 살림에 정을 들일만 하니까, 남편이라는 작자가 다니던 직장 때려치우고 무슨 오도깨비에 홀렸는지 사나흘씩 집을 나가 나돌아다니다가 거지꼴이 되어 돌아오곤 하더니 둘째 애를 낳고 나서는 아예 괴나리봇짐을 싸들고 듣도 보도 못한 강원도 탄광촌으로 가자는 마른하늘의 날벼락 같은 요구에도 옥 생각 하는 일 없이 순순히 따라준 여인, 그러고 보면 나는 처복이 있는 남자라고 할까? 세상에 어느 여자가 그렇게 여낙낙할까? 다른 여자들 같았으면 그런 터무니없는 남자를 남편이라고 믿고 따르지도 않았을 것이다. 진작에 무슨 요절이 났을 터인데.
강원도 황지에서의 광부생활은 그런대로 오복에게는 오붓한 살림살이였을 것이다. 서울에서와는 달리 성주의 출퇴근 시간이 명확했고 원체 좁은 바닥이고 타향이어서 다른 일에 시간을 빼앗기는 일이 없어서 성주가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았으니까. 모처럼의 휴일에는 도시락과 빨랫감을 챙겨 들고 태백산 금대봉 밑 절골의 맑디맑은 계곡물을 찾아가 성주가 아이들과 함께 발가벗고 멱을 감으며 가재를 잡기도 하고 숲에 들어가 연분홍빛 솔나리 꽃을 꺾기도 하는 동안 오복은 한여름에도 손이 시린 계곡물에 빨래를 하며 그 작은 행복을 오롯하게 간직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런 한 웅쿰의 행복도 잠이었다.
태백지역 일곱 광산에서 그 무렵 한두 해 사이에 끊임없이 일어났던 전에 없던 광부들의 조직적인 노동운동의 뒤에 성주가 있다는 사실이 어느 경망스러운 신문기자의 술좌석 입방아로 드러나고, 그런 사실을 알게 된 광업소 측은 은밀하게 갖은 수단을 동원해서 성주를 제거하려고 했다. 몇 가지의 우연하지 않은 사고들을 겪고 나서야 성주는 그런 음모를 눈치챌 수 있었다. 그동안 인생 막장이라고 표현되리만치 절망만이 앙금처럼 생활의 밑바닥에 깔 삭막한 광산촌을 인간이 살아 움직이는 생기 있는 땅으로 되살리기 위해 이름을 감추고 함께 뛰어준 동료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광산촌을 조용히 떠나야겠다고 성주는 결심했다.

한국노동운동사와 근로기준법을 함께 읽어가면서 토론을 해왔던 일곱 동료의 노동자로서의 역사의식은 어떤 시련이 닥쳐온다 하더라도 허물어지지 않을 만큼 튼튼했고, 마른 토양에서나마 운동의 뿌리를 뽑히지 않고 둘씩 열매를 따내는 실습도 비록 작은 것이기는 하지만 몇 차례 해왔다. 성주가 없더라도 그들은 제 몫의 삶을 향하여 문제를 제기하면서 슬기롭게 살아가리라고 믿었기 때문에 성주는 망설임 없이 그곳을 떠날 수 있었다.
오복은 그 무렵에야 성주가 왜 그동안 어머니를 비롯한 집안 식구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저질러왔는지를 어렴풋이 눈치채기 시작했다. 광업소에 사직원을 내고 돌아온 날 저녁, 오복은 결혼 후 처음으로 눈물을 흘리며 성주에게 불만을 털어놓았다.
"
당신이 뜻있는 일을 하는 것도 좋지만, 자식들 생각도 해주기 바래."
오복은 이 말 한마디로 모든 것을 표현했다. 그것은 참으로 비수로 심장을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요약이었다. 성주는 아내가 이 말 한마디에 묻어둔, 하고 싶었던 다른 말들을 너무나도 잘 안다. 아내는 세상의 모든 평범한 여자가 그러하듯 남편이 가정에만 충실해 주기를 원했다. 반반한 직장을 갖고 조금은 넉넉한 봉급을 거르지 않고 꼬박꼬박 타다가 아내의 손에 쥐주며, 저녁이면 제 시간에 퇴근해서 아이들과 어울려 놀아주다가 잠자리에 들어 아내를 포근하게 품어주는 그런 평범한 남편이기를 원했다.
노동자의 권리가 어쩌 노동자의 의식화가 저쩌 하면서 바쁘게 뛰어다니면서 처자식은 집도 절도 없이 길거리에 나앉아 굶주리게 하는 뜻 높은 남편보다는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세상에서 가장 흔한 보통의 남편이기를 바. 겉으로는 나타내지 않으나 속마음으로는 애면글면 매어 달리는 오복의 축축한 목소리에 무어라고 반박할 염치가 없어서 성주는 아내의 두 손을 꼬옥 마주 잡고 약속을 해버리고 말았다.
"당신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난 다 알아요. 암 알고 말고, 그러나 남자에게는 때로는 가정의 일보다 더 중한 것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걸 당신도 알아주었으면 합니다. 아니 난 당신이 그걸 모른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동안 당신이 잘 참고 따라와 준 것을 고맙게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 말이지만, 이 기회에 난 서독에 가려고 해요. 광부로 서독에 가면 삼 년 동안에 천만 원은 벌어 갖고 온다니까 우리 삼 년 만 떨어져서 삽시다. 삼 년 후에 돌아오면 조그마한 집이나 한 채 장만할 수 있을 테, 그러 나서 어디 마땅한 직장에나 다니면서 아이들 크는 재미로 살면 더 바랄 것이 무엇이 있겠소? 어때요? 나쁜 생각은 아니지요?"
"
글쎄요, 나는 잘 모르겠네요. 가장이라는 사람이 삼 년씩이나 처자식과 떨어져 사는 게 옳은 건지, 당신은 다른 쉬운 길이 없는 것도 아닌데 하필이면 어려운 길을 택하려고 하지요? 이번만이 아니고 언제나 그랬어요. 서독광부가 아닌 다른 길도 얼마든지 있지 않아요 ?"
된다거니 안 된다거니 하는 줄다리기가 며칠 이어지다가 마침내는 사회정의니 노동자의 권리니 하고 중뿔나게 나서는 일 없이 삼 년 동안을 오로지 일만 하다가 돌아오겠다는 맹세를 받고 나서야 아내는 독행을 허락했다.

"우르르릉- 우르르릉"
갑자기 우레 소리를 내면서 지나가는 긴 화물열차의 굉음에 소스라치게 놀라서 성주는 긴 회상에서 깨어나 현실로 되돌아왔다.
"
제기랄, 하필이면 철도 가에 기숙사가 있을 건 또 뭐야, 기차 지나갈 때마다 기둥뿌리부터 흔들리니 앞으로 삼 년 동안 포근한 잠자기는 다 틀린 모양일세"
언제부터 와 있었는지 등뒤에서 영학이 중얼거렸다.
"
한형 ! 어두운 데서 뭘 그렇게 생각하고 있소 ? 벌써 마누라 생각이오 ?"
"
벌써부터 무슨 마누라 생각은 …, 저 하늘 좀 봐요 이놈의 나라는 밤하늘도 삭막하기 이를 데가 없어서 어디 밤하늘 쳐다보며 마누라 생각이나 하겠습니까 ?"
"
한형 생각이 많은 모양인데, 풀쳐서 생각하지 않으면 미치는 수도 있소. 피곤할 텐데 그만 가서 잡시다. 오늘만 날이 아니구 내일도 있으니까. "
"
옳은 말씀이오. 내일도 해는 떠오를 테니까 가서 잠이나 잡시다."
 
                                                <제6회로 이어집니다>

나그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12-11-25 (일) 13:19 6년전
재미있게 잘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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