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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겨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조회 757회 작성일 12-12-07 20:32

본문

 
사흘을 영주와 함께 보내고 기숙사로 돌아온 성주는 보쿰교회 소식이 궁금해 4층에 있는 3호실 건우의 방부터 들렸다.
"
한형, 바른대로 말해, 어디서 누구와 사흘을 보내 왔어? 윤형 말로는 기막히게 늘씬한 아가씨가 방게 차를 몰고 기숙사로 한형을 찾아왔었다는데, 도대체 누구야 ? "
"
누구긴, 어릴 때 한집에서 자란 육촌 누이동생이야. 지금 헤르네 마리안 호스피탈에 간호사로 근무하고 있는데, 일인 양어머니와 네 살배기 딸아이와 함께 살고 있길래 어떻게 살고 있나 볼 겸 가서 성탄절을 함께 보내고 온 거야. 그건 그렇고, 어땠어 보쿰교회는?"
"
뭐 겉으로 봐서 알 수 있나. 성탄예배 끝나고 떡국 잔치 벌이고 친교 시간에 여러 가지 게임하고, 그냥 그렇게 놀다 왔는데, 우리 기숙사 휴게실에서 예배드리는 참빗장수 교회처럼 울고불고 통성기도 하는 교회는 아니데. 뭐랄까 좋게 말하면 차분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는 교회고, 나쁘게 말하면 신앙의 열성이 없는 차가운 교회라고나 할까. 교인은 대부분 간호사 결혼해서 광산 삼 년 근무 끝마치고 독일 회사에서 일하는 친구들 가족이고, 보쿰대학 유학생들이 몇 사람 있더군.
왜 거 참빗장수 교회 사람들은 신들린 사람들처럼 찬송도 신 나게 부르고 기도도 울며불며 큰소리로 하고, 헌금도 모두 종이돈 봉투에 넣어 내고 동전 내는 사람은 아예 없잖아. 또 예배가 끝나도 성령 받은 얘기, 은혜 받은 간증으로 서로 신앙생활 격려하고 기도생활 권면하는 얘기를 하다가 헤어지는 데, 보쿰교회는 그게 다르더라구 찬송 소리도 맥이 없고 기도 소리도 책 읽는 것 같은 데다가 헌금도 지폐 내는 사람보다는 동전 내는 사람이 더 많더라구."
"
참 자세히도 보 왔네, 남의 교회 헌금 바구니까지 뒤집어 보고 왔으니…"
성주가 감탄사를 내뱉자 건우는 신이 나서 보고 온 얘기들을 쏟아 내었다.
"
. 그런데 그 기도 내용과 장 목사의 설교 내용이 일품이야. 참빗장수 교회처럼 예수 믿으면 복 받고 천당 간다는 설교가 아니라, 어둡고 죄 많은 세상을 구하러 인간세상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따르겠다는 제자라면, 예수처럼 헐벗고 굶주리는 사람들, 자기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 핍박을 받고 있는 사람들과 아픔을 함께하며 이 세상에 하늘나라가 이루어질 때까지 헌신 봉사해야 한다는 설교야.
또 홍 집사라는 여신도가 대표기도를 하는데, 기막히게도 첫마디가 한국 정치의 민주화와 사회정의야. 두고 온 고국에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민주주의가 만발하게 해 달라고 차분하게 책 읽듯이 하는 여신도의 기도를 들으면서 난 기숙사 휴게실에서 부자 되게 해 주고 건강하게 해 달라고 울며불며 통성기도 하는 참빗장수 교회 식구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어.
과연 하느님이라는 절대자가 있다면, 이 두 무리 중에 어느 무리를 자기의 백성이라 할까? 하는 궁금증이 생겨서 말. 예배 끝나고 떡국 먹으면서 장 목사한테 단도직입으로 물었더니 그 대답이 또 기가 막혀, 장목사 가라사대 '하느님께서는 두 무리를 다 차별하지 않으시고 자기의 백성으로 삼으셨다'는 거야. 아니 그럼 모자라는 놈이 아니고서야 어떤 놈이 핍박받는 자의 편이 되어 헌신 봉사하고 아픔을 나누냐 말. 성령의 삼박자 은혜 받아서 부자로 건강하게 살다가 하늘나라로 가는 편을 택하지. 솔직히 말해서 장 목사 말이 난 좀 이해가 안되더라구.
교인들 화제도 믿음 · 성령 · 은혜 이런 단어들은 거의 없고 직장에서 일하는 이야기들, 맞벌이 부부들 애 키우는 이야기들, 한국군사독재에 대한 비분강개, 해외 반정부민주화운동단체들과의 연대투쟁 이야기 등등으로 내가 교회에 와 있는지, 무슨 사회봉사단체에 와 있는지 아니면 무슨 민주투쟁단체에 와 있는지 얼떨떨 하더라구."
"
그래, 그 교인들 마음에 들어?"
성주는 건우의 보쿰교회에 대한 인상을 이런 식으로 물었다.
"
마음에 들고 안 들고가 어디 있어, 어차피 난 교회 같은 덴 담쌓은 사람인데---"
"
왜 언제 교회하고 원수 척 진 적 있나?"
"
그런 건 아니지만, 난 신의 존재를 믿지 않아, 신의 은혜 신의 사랑 따위는 어리석은 사람들을 현혹 매어두고 수족으로 삼으려는 지배계층의 조작인 것을 잘 알고 있으니까"
"
그렇다면 역으로 보쿰교회가 이형 마음에 드는 거 아니야?"
"
아냐 천만에---"
건우는 완강한 반대의사를 표시하기 위해 고개를 가로젓는 것이 모자란다는 듯 손사래를 치면서 언성을 높였다.
건우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목소리를 가다듬어 다시 말을 이어갔다.
"
속 모양이 어떻든 기독교는 기독교잖아. 로마카톨릭교회가 중세사회에서 저지른 죄악은 옛날 일이어서 눈감는다 해도, 서세 동침의 식민지 개척시대에 기독교가 선교사를 앞세운 사례들과 현대에 와서는 무고한 양민들을 떼죽음으로 몰아넣는 큰 전쟁을 일으키면서도 그 전쟁터에 신부·목사들이 따라다니며 신의 축복을 외치는 기독교 국가들의 죄악상을 바로 볼 줄 아는 사람이라면, 기독교라면 몸서리가 쳐질 거야, 안 그래? 어떻게 생각해?
어디 그것뿐이야. 난 성경을 안 읽어봐서 잘 모르지만, 얼마 전에 김종필이 반독재 민주화를 외치는 기독교인들을 가리켜 '기독교인의 탈을 쓴 사탄의 무리'라고 하면서 증거로 들이댄 성경 말씀에 '위에서 오는 권력에 복종하라'는 가르침도 있다면서---"
"
그거야 국가 권력이 기독교를 왜곡시킨 거지, 본연의 기독교는 그런 게 아니지"
"
본연의 기독교가 어떤 건데"
"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 전에 전한 복음과 가르침이 본래의 기독교지. 바울이 헬레니즘 세계에 전도하기 위해 변질시키고 어거스틴이 로마제국의 지배권력을 위해 변질시키기 전의 기독교가 본래 모습의 기독교라고 난 생각해. 우선 한 가지 예를 들면, 성경에 보면 예수는 분명하게 '회개하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오고 있다."라고 외쳤거든. 그런데 요새 교회에서는 '회개하고 예수 믿고 천당 가시오!' 하거든. 이 세상에 하늘나라가 이루어진다는 예수의 가르침은 어디론가 실종되고, 이 세상일은 다 소용없는 일이니 예수만 믿고 죽어서 천당에 들어가자고 가르치니, 그게 왜곡됐다는 거야. 물론 성경에는 '내가 먼저 가서 하늘나라에 너희의 처소를 예비하겠다'는 예수 말씀도 있지만, 예수가 살아있을 때의 말씀과 행동에 비추어 볼 때 그 부분은 후대의 성경 기록자가 마음대로 썼다고 나는 생각해.
또 이형이 말한 '위에서 오는 권력에 복종하라'는 말은 예수의 가르침이 아니고 당시 로마제국 판도를 대상으로 한 바울의 전도전략으로서, 로마 귀족들의 노예를 비롯한 하층민들이 지하에서 모였던 초기 로마교회에 보내는 바울의 서신에 쓰여있는 구절이지.
로마제국의 강대한 국가권력의 핍박과 박해에서 살아남아 기독교를 전파할 방법은, 당시는 권력에 대한 복종밖에 다른 길이 없었을 거야. 그걸 가지고 현대에 와서 독재권력도 하느님이 주신 권력이니 순종라 하면 좀 웃기는 얘기 아니겠어.
한 가지 더 예를 들자면 예수는 굶주린 사람들, 헐벗은 사람들, 핍박받는 사람들, 갇힌 사람들, 그리고 나그네 된 사람들에 대한 실질적인 도움을 베푸는 믿음의 행위를 강조했는데, 바울은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역설했거든---. 이것 역시 율법을 지키며 메시아를 기다리는 헤브라이즘에 전혀 접해본 적이 없는 소아시아 · 희랍 · 로마 사람들에게 기독교를 전하 방편이었다고 난 생각해. 바울이 로마 판도에 전도하면서 믿음도 없는 초심자들에게 믿음의 실천행위를 강조할 수는 없었겠지, 우선은 믿음을 갖도록 하는 것이 급했을 테니까---"
"
난 그런 데 관심이 없어서 뭔 소린지 못 알아듣겠네. 그건 그렇고, 보쿰교회에서 최태영이 인사를 시켜줘서 이 박사라는 사람을 만났는데, 박사학위를 두 개나 받았다는 사람치고는 털털하니 붙임성도 있고 괜찮더라구. 우리 일 WAZ 신문에 나게 해서 오히려 일을 망쳤다고 한형이 펄펄 뛴 얘길 했더니 자기는 그런 일 절대로 하지 않았다고 펄쩍 뛰면서, 한형 한번 만나자고 하데. 아마 최태영이 만나면 말할 거야. 결론을 말하자면, 보쿰교회가 다른 교회에 비해서 한국 정치에 대해 비판적인 관심이 지나치게 많은 것 같아. 그러니 공관이나 보수적인 교회에서 불순한 교회로 볼 수밖에 없잖아.
참빗장수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여자가, 내가 보쿰교회 갔다 왔다는 말을 누구에게서 들었는지 참빗장수와 함께 내 방으로 찾아와서 한참 푸닥거리를 하더니 '그 교회에는 성령이 없고 은혜도 없다.'라고 단정 지어 말하더군. 글쎄 나야 기독교인도 아니고 앞으로도 교회에 출석할 마음 전혀 없으니 그놈의 성령이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 은혜가 뭔지 관심 없지만 말, 한 쪽에서는 모두가 하느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데, 다른 한 쪽에서는 '그 교회는 성령도, 은혜도 없다'고 매도하면 도대체 어느 쪽이 하느님을 제대로 믿는 거야? "
"
참 이형도, 실컷 말해주니까 또 그러네---, 양쪽이 다 제대로 믿는 거야. 누가 잘못 믿고 누가 잘 믿는 그런 구별이 안 되는 거라. 다만 믿음을 갖고 구원을 받도록 이끌어 주는 단계와 믿음으로 구원받은 이들에게 믿음의 실천을 요구하는 단계의 다름이 있을 뿐이야. 그런 의미에서 장 목사께서도 이형의 물음에 '하느님께서는 두 무리를 다 차별하지 않으시고 자기의 백성으로 삼으셨다'고 대답하셨을 ."
"
거 한형도 이제 보니까 먹물깨나 먹은 놈들이 씨부렁거리는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잘하네.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적대하고 비방하면 둘 중의 하나는 잘못된 것이지, 어떻게 둘 다 잘못이 없다는 말을 할 수가 있냐구 내 말---, 이거야 원 도통 무슨 말인지 알아먹을 수가 있어야지. 에이! 답답해, 이래서 많이 배운 놈들하고 얘길 하자면 복장이 터지는데, 제 보니 한형이 그런 놈들하고 다를 바가 없네."
건우는 답답하다는 듯 주먹으로 가슴을 쳤다.
"
이형, 그러다가 정말 속 터지면 어쩌려고 가슴을 그렇게 때려, 진정해 진정하라. 이형이나 나나 국민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배워 온 공부라는 게, 스스로 탐구하거나 사유한 결과를 정리해서 발표하는 공부는 거의 없고, 그저 선생이 예시해 준 문제에 O X로 답하든가, 아니면 보여주는 네 가지 답 중에서 정답 하나를 골라내는 공부 방법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이것이 틀렸으면 저것이 옳은 거, 저것이 틀린 거면 이것이 맞는 거다 하는 식의 단답식 사고방식에 길들 있어서 그래.
그런데 우리네 인생살이는 그런 게 아니잖아. 모든 놈이 다 틀린 걸 주장할 수도 있고, 모든 놈이 다 제각각 주장하는 것들이 다 틀림이 없을 수도 있는 게 인생살이고 자연의 모습 아니겠어."
"
시끄러! 그만 해! 배운 놈들은 뭔 말을 해도 기면 기다 아니면 아니다 하고 딱 잘라서 말할 줄을 모르고 그냐앙 빙빙 돌려서 뭔 소리가 뭔 소린지 모르게 하는 못된 버릇이 있다더니, 제 보니 한형이 그런 못된 버릇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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