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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겨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856회 작성일 12-12-05 20:33

본문

 
남의 나라 전쟁터에 고집부리고 가서 밤낮으로 마음을 이게 하던 맏아들이 두 해 만에 귀국해서 겨우 한다는 말이 월남처녀를 맏며느리로 데려온다는 데에 기한 어머니는 "말도 안 통하는 며느리와는 못산다."고 하시면서 아예 머리를 싸매고 누우셨지. 속담에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있지만, 사실 '홀어머니 이기는 맏아들 없다'는 말도 있는지 몰라. 어머니의 '머리 싸매고 누워 굶기 투쟁'이 나흘째 계속되자 난 일단 손을 들고 말았지. 월남행을 포기하고 취직을 하겠으니 그만 일어나시라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지. 월남의 금제비에게는 집안의 상황을 알리고 일단 기다렸다가 기회를 보아 월남으로 가겠노라고 편지를 띄우고 나서 직장을 찾아 나섰어. 복학해서 대학을 졸업해 보았자 연좌제 때문에 출세의 길이 열리지 않는다면 그까짓 대학 뭣 하러 힘들게 다녀, 차라리 일찌감치 돈 버는 길에나 나서지 하는 심산으로, 30 예비사단에서 제대증 받고 나오는 날로 수입 약품 회사판매사원으로 취직을 했어.
당시 한국의 갓난아이들에게 필수적인 약품이었던 미국제 홍역예방 주사약 <라이루겐>과 소아마비·백일해·파상풍·디프테리아를 종합해서 예방하는 오스트리아 약품 <테트라 임뮨·일명 DPT&P>을 전국의 병·의원에 판매하는 일이었어.
이 수입 약품 판매원 생활 두 해 반 동안 전국의 군·읍 땅을 다 누볐지. 그러면서 부지런히 월남의 금제비와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그 사이 금제비는 딸을 낳았어. 이름을 '옥리엥(玉蓮)'으로 지어 보내고 나서 난 마음을 다잡지 못하고 며칠을 집에도 들어가지 않고 직장에도 나가지 않은 채 정처 없이 발길 닿는 대로 산길을 방황했어. 부운 스님 만났던 법주사 오리 숲길로, 백담사 들어가는 한계령 계곡으로, 영주 너와 재회했던 인제천 자갈밭으로, 마지막에는 단발머리 여중생인 영주 너를 처음 불러낸 삼청공원 계곡 숲길에도 갔었지. 월남에 두고 온 영롱한 금제비와, 아비와는 수륙만리 떨어진 먼 곳에서 태어난 내 딸 옥련이 때문에 괴로워하면서 무엇 때문에 영주 너와 관련된 추억의 장소로 발길이 닿았는지 그건 나도 모르겠어. 아마도 내 안에는 착하고 예쁜 누이였던 너와 역시 어릴 때의 너처럼 숫저운 눈웃음 보이며 하늘 마음 내어준 금제비를 같은 사람으로 여기는 의식이 잠재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어.

'
되돌리려고 헛애 쓰며 발버둥치지 말고 여여하게 받아들이며 살' 라는 부운 스님의 가르침을 환상 속에 받아들고서야 닷새 동안의 방황을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온 난 그제야 내가 영주 너를 인제에 홀로 남겨두고 월남으로 떠났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어. 그래서 삼척-묵호-강릉-속초를 들는 출장길의 귀로에 진부령을 넘어 인제읍 인제의원에 들려 네 행적을 물었지만, 춘천인가 서울인가로 갔다는 확실하지 않은 대답만 들었지. 삼청동 자애 병원에도 찾아가 보았지만 거기서는 내가 입대하기 전까지의 네 행적으로 그만이야. 찾을 길이 막연했지. 그러다가 지금의 아내를 만나 무엇에 홀린 듯 맞선 본지 한 달 만에 약혼하고 석 달 만에 결혼식을 올려버렸지. 지금 생각해보면 일종의 몸부림이었는지도 모르겠어. 갈 수 없는 월남 땅의 금제비도, 찾을 수 없는 애틋한 첫사랑 영주 너도 모두 잊어버리기 위한---, 아니야 이렇게 말하면 정말 남편의 애틋한 사랑도 받지 못하면서 내 아들을 둘씩이나 낳아준 아내에게 죄를 짓는 걸 . 아무튼, 괴로움에도 그리움에도 몸부림치거나 발버둥치는 일 없이 오는 일이나 만나지는 사람을 받아들이고 세월의 물 흐름 따라 마음 실려 보내며 살자고 다짐 다짐을 하면서 살았지만, 가슴속은 늘 월남을 향한 오매불망의 그리움 반쪽과 영주 너를 찾아야 한다는 괴로움 반쪽으로 가득 차 있어서 정작 아내 오복이는 비집고 들어설 틈이 없었나 봐. 남의 속도 모르고 하루는 아내가 "사랑도 모르는 사람이 어쩌자구 결혼을 했냐?'고 핀잔을 주더군. 뭐라구 대답할 말이 없었지.

   결혼하고 여섯 달을 그렇게 살다가 11월에 정신이 번쩍 나는 사건이 일어났어. 약품 판매 일로 청계천 5가와 6가 사이의 동화상가 앞길을 지나다가 한 청년이 분신자살을 하는 현장에 부딪힌 거야. 전신을 휘감는 불길 속에서 그 청년은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고 외치며 불길에 그슬려 나뒹굴었어. 경찰이 달려오고 구급차가 오는 소란 가운데, 나는 그 청년이 청계천 피복상가 종업원들의 '하루에 한 시간만이라도 햇빛을 보게 해달라'는 염원을 실현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다가 어둠의 벽에 부딪혀 오도 가도 못하게 되자 자신을 불태워 어두운 밤거리에 횃불을 밝힌 전태일임을 알게 됐지. 그의 시신을 안치한 명동 성모병원 영안실에서 전태일의 노모는 신문보도를 읽고 찾아온 대학생들에게, "태일이가 얼마나 대학생 친구를 필요로 했는데, 죽은 다음에야 찾아왔느냐?" 하시면서 울부짖었지. 그때 영안실을 찾았던 장기표를 비롯한 대학생들은 중학교도 마치지 못한 전태일이 법으로 보장된 노동자의 권리를 찾기 위해 '근로기준법'을 공부하면서 대학생 친구 사귀기를 갈망했다는 노모의 울음 섞인 하소연에 자신들이 우골탑 안에서 외쳤던 '민주사회 사회정의'라는 것이 얼마나 우스꽝스럽고 허울뿐인 말장난인가를 깨달았다고 해.
그래서 그들 대부분은 학교를 그만두고 저마다 학력을 속이고 노동현장에 취직했어. 보세 가죽제품공장 여공들의 뒤에서 가위 갈아주는 보조공으로, 다락방 한 평도 안 되는 재단실의 재단보조공으로, 또는 봉제공장 수출품 상자 끝마무리 공으로 밤낮으로 일하면서 고달픈 노동의 삶을 몸으로 체험했지. 그들은 노동자들과 함께 일하고 먹고 마시고 자며 울고 웃으면서 차츰 진짜 노동자가 되어 갔어.
   나는 그때, 강원도 출장길에 들렸던 탄광촌의 거리에서 받은 강렬한 인상 때문에 '인생 막장'이라고 불리는 '강원도 황지의 탄광'을 마음속에 두고 있었지. 내가 전생의 업보로 이 세상에서 누릴 것은 하나도 없고 베풀기만 해야 한다면, 아예 죽음과 씨름을 해야 한다는 '광부의 벗'이 되어 베풀리라 하는 결심으로, 아내에게는 좀 긴 출장을 간다고 거짓말을 해놓고 무작정 청량리역에서 태백선 야간열차를 탔어.
노동청 황지 출장소에 들려 내기 광부도 받아들인다는 싸K 광산에 그날로 입적했지. 광산 경비실에서 소개한 하숙집을 찾아가 인사를 하고 나서 황지 중앙시장에 가서 검게 염색한 군 작업복과 고무장화, 안전작업모, 고무풀 덧씌운 작업 장갑, 플라스틱 물병을 사는 것으로 이튿날 아침 첫 출근준비를 끝내고 하숙방에 누우니 '내가 지금 무얼 하고 있나?' 하는 의문이 들면서 아무것도 모른 채 첫아이에게 젖 물리고 있을 아내의 모습이 떠오르더군.

   마음 단단히 먹고 이튿날 하숙집에서 싸주는 도시락을 들고 첫 출근을 했는데, '광부의 벗'이 된다는 내 생각이 얼마나 어잖고 교만한 것이었는지를 깨닫는 데는 하루도 필요하지 않았어. 산소가 부족해 성냥불도 켜지지 않는 막장에서 땀 범벅이 되어 갱목을 져 나르며 나는 내가 전혀 알지 못하고 있는 힘겨운 인생의 현장이 도대체 이 세상에는 얼마나 더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힘든 내색 하나 없이 일상의 일처럼 탄벽과 하나가 되어 일하는 그들이 얼마나 존경스러웠는지 몰라.

   반나절 일이 끝나고 한 조 여섯 명이 빙 둘러앉아 도시락을 까먹으며 처음 입갱한 햇돼지인 내게 이것저것 신상을 묻던 나이 지긋한 선산부가 '어때 힘들지? 거 손을 보아하니 막일하던 사람은 아닌 모양인데, 어쩌자구 인생막장 탄광까지 왔누? 낑낑거리며 갱목 져 올리는 꼬락서니 보니 한 번도 이런 일 해본 적 없는 책상물림 같은데---' 하고 묻길래, '그렇습니다. 이런 일은 난생처음입니다. 서울에서 사업한다 깝죽거리다가 다 들어먹고, 빚쟁이들 피해 도망다니다가 이판사판으로 덤벼들었습니다. 잘 좀 봐 주세요.' 하고 공손하게 대답했지.

   여덟 시간의 지하작업을 끝내고 인차를 타고 지상으로 올라오면서 머리 위로 빠꿈한 구멍을 통해 아스라하게 보이는 동전만 한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난 '생각 느니 아, 인생은 얼마나 깊은 것인가.' 하고 천상병 시인의 '소릉조' 마지막 시 구절을 마음속으로 읊었지. 날마다 지하 일천육백 미터의 채탄막장에서 석탄 속에 묻혀 석탄 덩어리가 되어 뒹굴다가 지상으로 나오는 일과를 되풀이하면서 '생각 느니 아, 인생은 얼마나 깊은 것인가' 하고 영탄했던, 천상병 시인의 절절하게 아픈 가슴을 비로소 알 수 있었지.
   한 주일도 채 못 가서 나는 책 읽어서 배운 거 말고는, 깊고도 다양한 인생살이에 대해 쥐뿔도 아는 게 없는 우물 안 개구리가 바로 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지. 그런 주제에 "베풀며 산다"는 주접떠는 생각을 품고 빈주먹 맨발로 인생의 험산 준령을 넘어온 광부들을 찾아갔으니, '맞아 죽기 전에 건방진 주둥아리 닥치라' 하는 동료 광부의 욕설을 들어도 싸지---"
    

댓글목록

초롱님의 댓글

초롱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손에 땀을 쥐며 읽고 있습니다. 정말 재밌어요. 그리고 배우는 것도 많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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