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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겨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조회 1,019회 작성일 12-12-04 23:44

본문

 
부운 스님은 그 말을 남기고 내설악 장수대 들어가는 계곡 길을 그야말로 구름에 달 가듯 멀어져 갔어. 고 나서 나는 '그래, 이승에서는 더 누릴 것이 없는 궂은 인생이라면 어디 한번 얼마나 어디까지 궂어질 수 있는가 겨루어보자!' 하는 오기로 남들은 다 도망가는 월남파병을 자원했는데, 공교롭게도 그 사이에 영주 네가 인제로 날 찾아온 거야. 그렇게 찾아온 너를 낯선 인제 땅에 놓아둔 채 생사를 기약할 수 없는 남의 나라 전쟁터로 떠나는 내 마음을 그때는 네게 설명해 줄 수 없었어.
   그때 나는 이승에서 나에게 주어진 단 한 번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절절명의 물음을 월남파병 자원에 던지고 있었으니까.
월남에서의 스물네 달 동안, 내가 듣고 보고 겪은 것들은 아마도 평범한 사람의 인생 스물네 해보다도 더 많은 사건과 더 큰 깨달음을 주었다고 나는 생각해.
   아무리 전쟁터이지만 영문도 모르고 누가 쏘았는지도 모르는 폭탄과 포탄에 떼죽음을 당하는 착한 백성의 주검을 보면서, 나는 '이 억울한 떼죽음을 두고 운명이니 업보니 하고 말하는 건 개수작이다.'라고 외칠 수밖에 없었어. 그들과 내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어도 그냥 슬프고 눈물 나고 당혹스럽고 누구에겐지 모를 분노가 치밀어 올랐어.
나는 그때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느님의 실존'에 도리질을 했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를 희생양으로 인간세상에 보내신 하느님이 살아 계다면 어떻게 이런 참혹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을까 하면서 도리질을 한 거야.
   또, 금 전까지 함께 고향에 두고 온 소장난 시절의 각시 이야기를 하던 전우가 차 안으로 날아 들어온 수류탄의 폭발음과 함께 조각조각 난 살점으로 찢는 참혹하고 어이없는 현장에서 살아남으면서, 나는 고엽제 살포로 무성한 잎사귀를 잃고 앙상하게 서 있는 야자수 가지에 걸린 달을 쳐다보며 밤새워 울기도 했어.
중부 월남을 관통하는 유일한 산업도로이자 군사작전의 생명선과도 같은 19번 도로를 장악하기 위해 캄보디아를 통과하는 호지명 루트를 통해, 맹호사단 작전 지역으로 잠입한 월맹군 대대 병력을 포위 섬멸하기 위한, 치열했던 맹호 9호 작전이 끝나갈 무렵에는 아열대의 우기를 맞은 밀림에서 썩어가는 백 팔십구가 넘는 월맹군의 시체에 손을 댈 수가 없어 부득이 불도저를 동원해 구덩이를 파고 묻어 주는 일을 공병부대원들과 함께 마치고 막사로 돌아와 닷새가 넘도록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구역질을 하면서, 제사 지내는 마음으로 시() 한 편을 썼어. 들어볼래.

내 형제여 !
그대는 듣는가 ?
피의 향기를 실어오는
저 바람 속에서 지저귀는
보금자리 잃은 들새의 슬픔을…

아직도 타오르는 저 폐허 위에
답다(Dap Da)강물은 붉게 굽이쳐 흐르는데
마지막 신음마저 잦아든 싸움터의
스산한 바람 소리를
그대는 듣는가 ?

기뻐할 수 없는 승리가
우리 마음을 어둡게 하고
내 심장을 노리던
이름 모를 그대의 주검 위에
뜨거운 눈물을 흘리노라.

나는 그대의 손을 마주 잡고
고향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니,
포근한 어머니의 가슴과
사랑하는 소녀의 검은 눈동자를,
그리고 수많은 벗들의 이야기를---
전쟁이 아니다면,
저 배우고 가진 자들의
쪽 같은 이데올로기만 아니었다,
아아! 우리는 고향 얘기 주고받을 수 있는
다정한 벗이 될 수 있었을 것을---

지금쯤 그대의 고향에는
노랗게 익은 바나나 가지 아래
향을 피우는 어머니의 기다림이 있고
전쟁을 저주하는
소녀의 눈망울이 빛나고 있을 것을---

지금 내 전우들의 조용한 눈길이
그대들의 처참한 주검 위에
승리의 참담함을 말하고 있나니
터질듯한 오열을 짓깨물며
그대들의 명복을 빌 뿐이노라.

어때? 마음속으로나마 제사 드리는 그때의 내 심정이 나타나지 않아? 아마 제사를 드린 공덕이었는지, 그런 일이 있고 난 며칠 후 월맹군과 베트콩이 월남 전역을 장악하다시피 했던 68년 구정 총공세의 포위망 속에서, 나는 월남인 목수의 딸 웬 티 낌옌(元金燕)의 목숨을 건 사흘간의 애틋한 보호를 받아 살아나면서, '! 이래서 인생은 살아볼 만한 것'이라고 혼자 중얼거렸어. 그녀의 이름 낌옌은 우리말로 '금빛 제비'라는 뜻을 지닌 이름이어서 나는 늘 '금제비'라고 불렀지.
그 무렵 우리 맹호사단 공병대는 퀴논 공설운동장의 실내체육관 준공에 이어 본부석 시설물 공사 중이어서, 월남어 통역하사관인 나는 월남인 인부들을 지휘하기 위해 공사장 옆에 천막을 친 야전 막사에서 공병부대원들과 함께 숙식하고 있었어. 그런데 두 해가 넘도록 우리 공병대 목공 일을 도맡아 해 온 웬() 영감이 자기 집이 공사장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으니 아침과 저녁의 식사는 자기 집에서 자기와 함께 하는 것이 어떻겠냐 하고 조심스럽게 제의를 해왔어. 그렇지 않아도 월남인의 평범한 가정을 보고 싶었던 참인데 얼마나 반가웠던지 '고맙다'고 하면서 그날 저녁부터 웬영감 집으로 밥을 먹으러 다녔지. 하얗고 길쭉한 안남 쌀밥에 생선튀김, 두부 지짐, 조개 무침까지는 우리 한국 반찬과 똑같았고, 한 가지 특이한 음식은 숙주나물과 박하풀 그리고 여러 가지 생야채를 큰 소쿠리에 담아 식탁 가운데에 놓고 각자 큰 접시에 덜어다 충분히 숙성시킨 생선젓갈에서 짜낸 '늑맘'이라고 하는 조선간장 비슷한 것을 뿌려서 먹는 것인데, 처음에는 냄새가 역겨웠지만, 나중에는 거기에 밥을 비벼 먹을 만큼 그 고소한 맛에 익숙해졌어.

   월맹군의 구정 총공세가 있던 날도 웬영감과 함께 저녁 식사를 끝내고 주월 미군 TV 방송을 보면서 영감과 함께 스민 차를 마시고 있는데, 갑자기 정규방송이 중단되면서 월맹군과 베트콩의 구정 총공세 정보로 월남 전역의 미군과 연합군에게 비상경계령이 내려졌다는 긴급보도가 나오는 거야. 서둘러서 부대로 돌아가려고 일어서는데 여고생인 그 집 딸 금제비가 밖에서 황급하게 들어와 문을 막아서면서 하는 말이, 퀴논 시가지 이미 베트콩 장악하고 있어서, 지금 거리에 나가면 사살당하거나 포로가 된다는 것이었어. 잇달아 공설운동장 공사장에 남아 있던 미장공 고()영감이 헐레벌떡 달려와 공설운동장의 공병부대원들이 저녁 식사를 하다 말고 사단사령부의 철수 명령을 받고 이미 남땅의 본대로 철수했다는 소식을 전했어. 그땐 정말 난감했어. 고립무원의 절해고도에 홀로 표류해 있는 느낌이라 할까? 그냥 아득하기만 했지. 지만 그건 눈앞의 현상만 볼 줄 아는 아둔한 인의 절망이고 탄식이었지.

   웬영감은 혹시라도 이웃의 밀고로 베트콩들이 '따이한'을 찾기 위해 집 뒤짐이라도 할 경우를 생각해 나를 금제비의 방에 숨어있게 하고 만약의 경우에는 방구석에 있는 옷 고리짝 속으로 숨으라고 일렀어. 지하실이나 다락방은 집 뒤짐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샅샅이 뒤지는 곳이니 오히려 안전하지 못하고, 규중처녀의 방에 외국군인을 숨겨준다는 것은 월남인으로서는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일이기에 발각될 염려가 없다는 웬영감의 계산이었지.

   이틀을 숨어 지고 사흘째 되는 날, 웬영감의 전갈로 부대에서 보내 준 지프차를 타고 본대로 돌아갈 때까지 다행히 집 뒤짐은 없었지만, 그 사흘 동안에 난 난생처음으로 여자를 알게 됐어. 이틀째 되는 날 밤 금제비가 내 침대 속으로 숨어들어와 나를 끌어안았는데, 지금 생각해도 이상하게 난 그녀를 뿌리치지 않고 그녀가 이끄는 대로 운우(雲雨)의 꿈속에서 헤매면서 그녀의 처녀성에 스물다섯 해를 간직해온 내 동정을 쏟아부었어. 참 이상한 일이지. 그 일이 있고 난 다음부터 세상이 달리 보이고 지 자신감이 생기더라. 그래서 웬영감을 '장인'이라고 부르면서 처가처럼 드나들었는데, 금제비는 다른 월남여인들이 그러하듯 한없이 상냥하고 헌신적이었지. 저녁이면 세대야에 따뜻한 물을 떠 갖고 들어와 발을 씻겨 주고 아침이면 일찍 일어나 몸단장을 함으로써 잠자는 여자의 흐트러진 모습을 절대 남자에게 보이지 않는 금제비와의 살림은 마치 내가 조선 시대에 는 선비인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하고도 남음이 있었지.

   꿈결 같은 아열대의 우기가 끝나고 건조기에 들어서면서 마당 우물가의 파초에 바나나가 노랗게 익을 무렵부터 금제비의 배가 눈에 띄게 불러오더라. 내 분신이 그녀의 뱃속에 잉태되어 자라고 있었던 거야.
   지금 생각하면 참 대책 없는 일이었지만, 그때는 내 아이를 뱃속에 키우고 있는 금제비가 그렇게 소중하고 귀엽고 대견할 수가 없었어. 이승에서는 누릴 것이 없다는 내 인생, 등 대고 빌 언덕이 없어 허우적대며 이 악물고 빈 들판을 달려온 내 스물다섯 해의 삶 가운데 단 하나 하늘나리 꽃 같은 위안이었던 영주, 너를 어쩔 수 없이 낯선 인제 땅에 내팽치고 왔다는 허우룩한 마음까지도 물찬 제비같이 영롱한 자태의 금제비가 가없이 따뜻하고 보드라운 숨결로 가득 채워주었어. 정말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때는 그 애 앞에만 서면 내 인생의 앞길이 장빛으로 보이는 거야. 영주, 너한테는 정말 미안한 말이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그때는 정말 네 생각은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어.
    그래서 난, 가는 데마다 빨 신호등 켜지는 한국을 잊고, 내 인생에 자신감을 심어준 월남에서 제대하고, 미군 용역회사인 미국의 P&E 나 한진상사에 취업해 착한 누이 같은 금제비와 단란한 가정을 꾸려 월남에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어. 그런데 금제비의 생각은 달랐어. 정식으로 결혼해 준다면 오랜 전쟁의 땅인 월남을 떠나 한국에 가서 살고 싶다는 거였어. 웬영감도 내가 금제비를 데리고 한국으로 가서 살기를 바랬지. 그래서 일단 귀국을 해서 제대를 하고 민간인의 자격으로 다시 월남에 가서 결혼식을 올리고 금제비를 한국으로 데려간다는 수순을 밟기로 하고, 그해 12월 퀴논 항구에서 배가 남산만 하게 부른 금제비의 전송을 받으며 귀국선을 탔지만, 그것이 영이별이 되고 말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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