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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나지라기 제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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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겨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조회 2,519회 작성일 12-11-24 22:46

본문

<4>
"여러분이 앞으로 광산근무를 시작하면, 작업의 지시는 작업반장들이 하겠지만, 그 밖의 인사, 후생, 복지 문제는 이 세 분이 담당하게 됩니다. 맨 오른쪽에 계신 분이 광산의 인사담당 소장 파울, 그다음 분이 사회과장 슈미트, 그리고 마지막 싱글싱글 웃고 계신 분이 이 기숙사의 사감인 브랄입니다."
라 통역의 소개에 이어 파울 소장 의례적인 인사말을 한 다음, 라 통역과 종길이 미리 준비해 둔 보따리를 하나씩 나누어주었다.
"이 기숙사는 자취를 하 돼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기본적으로 필요한 취사도구를 싼값으로 일괄구해서 나누어 드리는 겁니다. 물건값은 첫 달 노임에서 공제됩니다. 그리고 또 광산에서는 첫 노임을 탈 때까지의 생활비로 우선 백오십 마르크를 오늘 선불해 드립니다. 이것도 첫 달 노임에서 공제됩니다. 쌀과 부식은 기숙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한국식품상회에서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라 통역의 친절한 설명을 들으며 성주는 보따리를 열어 보았다. 법랑 냄비가 하나, 주전자 하나, 유리 국그릇 하나, 큰 접시와 작은 접시가 각각 하나씩, 부엌칼이 하나 그리고 숟가락과 포크와 빵칼이 각각 하나씩 들어있어서 자취의 살림도구로서는 모자람이 없었다.
"
한마디로 말하면, 자취하면서 광산 일 다니라 이 말이잖아!"
영학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성주를 쳐다보았다.
"
두 마디로 해도 그 소리 아닙니까! 왜요? 독일 빵 먹는 것보다야 밥 먹는 게 더 좋지 않습니까?"
"
좋기야 좋겠지만, 내 평생에 아직 한 번도 밥을 해 본 적이 없는데--- 밥은 또 그렇다치구 반찬은 또 어떻게 해 먹는다지---"
", 윤형두 차암! 궁하면 통하는 법이오, 설마 산 입에 거미줄 치겠오? 어떻게든 다 꾸려나가는 수가 있을 테니 겁부터 내지 마."
"
아이구 난 모르겠소, 난 한형만 믿구 따라다닐 테니 굶기지만 말아주슈."
"
놓치기 전에 허리띠를 꽉 잡으라구"
건너편 자리에 마주 보고 앉았던 김대성이 말 추렴을 해왔다.
"
김형두 자신이 없는 모양인데, 돌아내리지 말구 이쪽 허리띠를 잡는 게 어때 ?"
영학이 여싯거리는 대성을 뒤집고 핥았다는 듯 스스럼없이 바라보며 지레꿰지는 소리를 했다.
"
그거 좋은 생각인데, 어차피 나이가 비슷한 사람끼리 한 방에 있는 게 좋을 , 아직 장가도 안 간 어린 녀석들하구 한 방에서 뒹굴기는 좀 뭣하지, 안 그래 ?"
대성은 냅뜰성 있는 경북 억양으로 제 말에 그루를 앉히면서 줄통을 뽑았다.

"다 모이셨습니까? 그럼 이제 이야기를 시작합시다."
세 명씩 혹은 두 명씩 짝을 지어 방을 배정받은 다음 짐을 정리하느라고 미처 저녁 식사 준비를 할 짬이 없을 거라고 짐작한 선진들의 배려로 그들의 방에 두셋씩 초대되어 식사를 마친 일행 서른여덟 명이 또 무슨 일인가 하고 기웃거리며 모여든 3층 휴게실에서 성주는 입을 열었다.
"
우선 여기 상황을 선진들로부터 들은 대로 대충 말씀드리지요. 우리가 지금 들어있는 여기 90번지 기숙사하고 기숙사 옆 철도건널목 너머 102번지 기숙사에 우리 한국인 동료가 백삼십 명가량 살고 있는데, 74년도에 와서 다음 달이면 계약이 끝나는 제2진이 스물여덟 명, 7612월에 온 제3진이 서른 명, 우리와 같이 올해 1월에 수도공고에서 모래가마니를 들어 올리는 심사를 통과하여 한 발 먼저 4월에 온 제4진이 서른여섯 명, 그리고 우리가 제5진이라는데, 진마다 회장단을 선출해서 그 회장단이 임원이 되는 '에발트광산 한인자치회'가 구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음 달이면 지금까지 이 자치회의 회장단을 맡아오던 제2진이 귀국하기 때문에 이달 안으로 새 자치회장을 뽑아야 한답니다. 그래서 우리 5진도 오늘 밤 회장단을 선출해서 자치회에 그 명단을 제출해 달라고 합니다. 그러니 여러분! 어떤 방법으로 우리 회장단을 선출했으면 좋겠습니까? 의견을 말씀해 주세요."
"
-무얼 또 새로 뽑고 자시고 하-할 필요가 어-어디 있소! -한형이 지-지금까지 우리 대-대표로 이-인솔해 왔으니 그-그대로 하면 됐지. -안 그렇소 여-여러분!"
성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발언권도 얻지 않고 김춘성이 더덜거리며 앉은자리에서 외쳤다.
"
아니,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앞으로 삼 년 동안 우리를 대표할 사람을 뽑는 거니까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할 일이 아닙니다."
성주가 손사래를 치며 좌중을 둘러보자 정인남이 손을 번쩍 쳐들고 일어나 흘러내리는 바지를 추스르며 입을 열었다.
"
사실 말이지, 우리가 서로 무얼 알아야 회장이고 나발이고를 뽑지? 안 그래? 생판 낯 설은 남의 땅에 왔지, 서로 속속들이 아는 처지도 아니지, 갑자기 누구를 우리 대표자로 뽑는다는 거요? 그러니 한형이 그냥 회장으로 나서고 나머지 부회장이니 뭐니 하는 자리는 한형이 적당히 알아서 지명해 갖고 꾸려나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
"
옳소! 옳소!"
손뼉치는 소리와 탁자를 두드리는 소리로 휴게실이 잠시 소란스러워졌다.
"! ! 조용히 하시고 제 말을 들어주세요. 아까 저녁에 4진 송 회장과 밥을 같이 먹으면서 들은 이야긴데, 여기서 회장 노릇을 하려면 사실 여러 가지 이유로 술도 좀 할 줄 알고 필요할 때는 힘도 좀 쓸 줄 알아야 한답니다. 회장이 그쯤 돼야 선진들도 우리를 후진이라고 깔보지 못한다는데, 저는 여기 윤형이 알다시피 술은 한 모금도 못 하는데다가 힘이라고는 보시다시피 어디 나올 구석이라고는 한 군데도 없는 보잘것없는 체구이니 어디로 보나 회장감은 되지 못합니다. 그렇다고해서 제가 우리 진을 위한 일을 안 하겠다는 건 아닙니다. 제가 제안을 하나 하지요. 사실 실질적인 일은 총무가 다 하는 거니까 어느 분이 회장이 되시든 거절만 안 하신다면 제가 총무를 맡겠습니다. 그러니 여러분께서는 마땅한 분을 추천하셔서 우리 5진의 회장으로 내세워주시기 바랍니다."
성주가 단호하게 결론을 내리자 좌중은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
그거 듣던 중 별 희한한 소리를 다 듣겠네
, 술을 잘해야 회장이 될 수 있다? 허 참 ! "
"
일리가 있는 말이야
, 힘깨나 쓸 줄 알고 깡다구가 좀 있어야 오사리잡놈들이 다 모인 우리를 이끌어갈 수 있을 거라고---“
"
하기는 저녁에 잠깐 들으니까 여기서 얼마 멀지 않은 어느 광산에서는 나중 온 친구가 고분고분하지 않다고 먼저 온 친구들이 지하실에 가두고 뭇매질을 한 일도 있다는데
---"
"
내남없이 가진 것 없어서 벌어보자고 남의 나라까지 온 처지에 그게 무슨 개 같은 경우야
?"
"
우리라구 그런 경우 당하지 말란 법이 어디 있어
? 한형 말이 옳다구."
"그럼 어디 뽑아 보자구. 나는 그럼 개발공사에서 교육받을 때 반장을 했던 백한식 형을 추천하겠어."
"
여기 우리는 충청도 사나이 이건우 형을 추천합니다아
."
"
나는 천기원 형을 추천합니다
."
주거니 받거니 오가는 말 가운데 세 사람의 후보가 추천되었고
, 미리 마련한 백지를 돌려 투표를 한 결과 이건우가 회장으로 당선되었다. 차점자인 천기원을 부회장으로 세우기로 양해가 되었고, 총무는 약속대로 성주가 맡기로 했다.
5진 회원의 원만한 서독생활과 권익을 위하여 전심전력으로 봉사하겠노라는 건우의 회장 취임 인사말을 끝으로 파독 첫날밤의 모임은 막을 내렸다.
                                        <5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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