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동포 미디어 베를린리포트
커뮤니티 새아리 유학마당 독어마당
커뮤니티
자유투고
생활문답
벼룩시장
구인구직
행사알림
먹거리
비어가든
갤러리
유학마당
유학문답
교육소식
유학전후
유학FAQ
유학일기
독어마당
독어문답
독어강좌
독어유머
독어용례
독어얘기
기타
독일개관
파독50년
독일와인
나지라기
관광화보
현재접속
681명

라인강의 갈매기(마지막 회)

페이지 정보

작성자 한겨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6건 조회 2,597회 작성일 13-02-02 18:08

본문

 
두 집안 어른들이 서울에서 만나 중구와 순영의 결혼식을 내년 봄에 서울에서 올리기로 했다는 소식을 두 집안 어머니들이 번갈아 전화로 알려왔다.
윤 장관이 몸소 찾아오셔서 시간을 내라 하시기에 아버님 모시고 서울로 나가 윤 장관 내외와 윤 서방 누님들을 만나 너희 혼사문제를 매듭지었다. 어른들은 예전에 알고 지내던 사이여서 천생연분이라며 좋아들 하셨다. 처음부터 네가 윤 장관 아들이라고 알려주었으면, 그동안 마음고생 안 해도 되었을 것을~~ 부모 덕 안 보고 살아가겠다는 네 옹고집도 어지간하다. 하여튼 잘 된 일이지 뭐냐. 네 아버님도 그날 이후 ‘암, 이 남성필의 맏딸인데, 아무렴 어디 간들 제 앞가림을 똑 부러지게 못할까? 고맙다! 내 딸!‘ 하시면서 요즈음은 아주 활기있게 지내고 계신단다. 결혼식 날짜가 확실하게 잡히면 다시 연락 하겠지만, 그때는 라라 하고 세 식구가 시간을 좀 여유 있게 가지고 나와서 친정과 시댁에서 얼마간 머물다 갈 수 있도록 준비를 해서 나오너라.“
어머니는 순영이 대견스럽다는 목소리로 긴 통화를 통해서 그동안의 경과를 들려주었다.
아직 반년이나 더 남았지만 순영은 신바람이 났다. 어머니의 눈물 배웅을 뒤로하고 김포공항을 떠난 일이 엊그제 같은데, 되돌아보니 어느새 일곱 해가 지나가고 있었다. 처음 와서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공부에 열중하느라고 시간 가는 줄 몰랐고, 중구를 만나고 나서부터는 신접살림의 깨 쏟아지는 재미에 흠뻑 취해서 세월 가는 줄 몰랐던 자신이 부모형제에게는 너무 매정하게 여겨졌을 거라는 후회의 마음도 생겼지만, 그건 잠깐이었고, 두 집안 어른들의 축복 속에 결혼식을 올리기 위해 귀국한다는 사실이 가슴을 뿌듯하게 만들었다. 일시 귀국은 아직 반년이나 더 남았지만 순영은 낼모레의 일처럼 마음이 바쁘고 들뜨기 시작했다.
처음 서독 올 때 입고 온 옷을 다시 입고 갈 수는 없으니 순영의 옷도 새로 장만해야 했고, 중구 역시 양복을 한 벌 새로 장만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라라의 자질구레한 유아용품도 빠짐없이 챙겨야 했고, 일곱 해 만에 다시 만나는 부모님과 형제들에게 선물이 없을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마음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가을이 거의 다 지나갈 무렵 어느 날, 중구는 서울에서 온 영도물산 김영걸 상무라는 사람의 안내와 통역으로 스웨덴에 사흘 동안 다녀오겠다며 뒤셀도르프공항에서 비행기를 탔다. 그리고 그날 오후 스톡홀름에 잘 도착했다는 전화 한 통화를 한 뒤로부터 소식이 끊어졌다. 영도물산은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밍크코트를 비롯한 고급 모피의류를 제조 판매하기 시작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기업이라고 설명해 주면서, 스웨덴에 독일사람이 운영하는 밍크사육장이 있는데, 그 밍크 원단을 직거래하기 위한 상담을 하러 간다고 중구는 말했었다.
순영이 애를 태우며 기다리는 가운데 돌아온다는 사흘이 지나고 닷새가 지나도 중구는 감감무소식이었다. 순영은 중구에게 통역 일거리를 연결해주던 대사관의 안 영사에게 전화를 걸어 중구의 소식이 끊긴 상황을 설명하고, 어떻게 된 건지 알아봐 달라고 부탁을 했다.
안 영사는 영도물산 김영걸 상무라는 사람을 연결해 준 일이 없다면서, 알아봐 줄 터이니 기다리라고 한 후 대여섯 시간이 지난 저녁 무렵, 서울 영도물산에는 김영걸 상무라는 사람이 없으며, 스웨덴으로 출장을 간 사람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아무래도 무슨 사고가 생긴 것 같으니, 우선 쾰른 경찰청에 실종신고부터 하라고 일러주었다.
순영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이튿날 경찰청을 찾아가 실종신고를 했지만, 담당경찰관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집에 가서 기다리라고만 했다. 순영은 서울 시가에 연락하고 싶었지만, 곧 돌아올지도 모르는데 공연히 방정을 떤다는 꾸지람을 들을 것 같아서 참았다.
순영이 초조한 마음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데, 새벽녘에 전화벨이 울렸다. ‘중구 씨다!‘ 하고 얼른 수화기를 드니 뜻밖에도 서울 시아버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사관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아직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니 너무 놀라거나 초조해하지 말고 기다리거라. 스웨덴에서 소식이 끊겼다면 혹시 북한과 연관이 있는 일이 아닌가 하는 염려도 되지만, 하여튼 북쪽에도 우리 사람들이 있으니 조만간 소식을 알 수 있을 게다. 그러니 공연히 여기저기 알아본다고 나다니지 말고 집에서 기다리고 있거라. 내가 좀 더 알아보고 연락하마.“
시아버님의 전화를 받고 순영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그럼 납북이 됐단 말인가? ? 공부하는 학생을 납치해서 무엇에 쓰려고? 아니냐 그럴 리가 없어~“
하면서도 순영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김영걸 상무라는 사람 때문에 북한공작원에 의한 납치라는 심증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종적도 없이 아무 소식도 없이 두 달이 지나갔다. 순영에게는 그 두 달이 한순간 같기도 했고, 한 천 년이 되는 것 같이 아득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너무나 큰 충격이 순영의 시간관념을 혼란스럽게 또는 아무 의미가 없게 만들었다.

중구의 실종이 석 달째 들어서는 어느 날 새벽, 서울 시아버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늘 아침 평양 김일성대학에서 열린 군중집회에 중구가 나와 <남조선 반독재 혁명투사>로 소개됐다. 그쪽 우리 요원의 보고에 의하면, 당분간 김일성대학에서 공부하면서 대남방송요원으로 일하게 될 거라고 한다. 아무튼, 죽지 않고 살아있는건 확인됐으니, 어떻게든 북한에서 탈출시키는 방도를 연구해 볼 작정이다. 그런데 너는 어떻게 할래? 혹 너도 납북 대상이 될 수도 있고 해서 힘들 터인데, 라라 데리고 들어와서 우리랑 살지 않으련?“
하는 시아버님의 권유를 순영은 울면서 단호하게 거절했다.
아니에요 아버님, 저는 여기서 기다릴래요! 라라 데리고 의학공부하면서 기다릴래요. 얼마가 걸리든지요~“

중구가 평양으로 납치된 사실이 확인됐다는 연락을 받고, 정애가 짐보따리를 싸들고 순영의 집으로 왔다.
웬일이니? 짐보따리까지 싸들고?“
당분간은 내가 니 옆에 있기로 작정하고 안 왔나. 아무래도~ 라라 데리고 일하고 공부하자면, 니 혼자 사는 거 보다는 내가 옆에 있으면서 거들면 좋지 않겠나 생각했다. 괘않지?“
그래, 고맙구나! 크게 힘이 될 거야.“
그런데, 니 생각보다는 쌩쌩하네 ! 밥도 안 먹고 늘어져 있을 줄 알았구마.“
그런다고 납치된 사람이 돌아온다든? 지네들이 우릴 떼어 놓으면 얼마나 오래 떼어 놓을 성 싶어? 기껏해야 몇십 년이지! 정애야 내가 말한 적 있지? 우린 천 년이 넘는 사랑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라고~. 너는 안 믿을 줄 모르지만, 우리는 천 년의 시공을 오가며 살고 있단다. 그러니 그까짓 몇십 년의 이별이 무슨 대수냐? 나는 굳게 믿어. 우린 언젠가 꼭 다시 만난다는 걸! 우리에겐 천 년 세월이 하루일 수도 있으니까~“
아무 대답도 없는 정애와 함께 순영은 라라를 유모차에 태우고, 중구를 처음 보았던, 아니 천삼백 년의 시공을 넘어 중구가 순영 앞에 모습을 나타낸 라인강변의 수양버들이 서있는 산책길로 나갔다.

! 거기 강물 위에 흰갈매기가 날개치며 힘차게 날고 있었다. <>

댓글목록

한겨레님의 댓글

한겨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이사때문에 당분간 인터넷 연결이 안될 것 같아서 마지막회까지 모두 올립니다. 다음에 뵐 때까지 건강하고 평안하게 지내시기를 빕니다.

ImNebel님의 댓글

ImNebel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한겨레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왠지 계속해서 연속 되는 줄 알았는데 , 아주 서운하고 좀 슬프네요.
이별 같아서,앞으로  님도 더욱더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고, 제가 님께 지금까지 죄송하게 군 것 모두 용서 바래요.
감사합니다.

triumph님의 댓글

triumph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한겨레님, 우리 한국사람들의 장단점 이 무엇일까요?
저는 바로 그 끈끈한 정 인것 같습니다.  저역시 안갯속님 말대로 서운하고 슬픕니다.
이사하시고 꼭 재미있는 대화로 다시 만나게 되길 기원합니다.
건강하세요.


초롱님, 어데 계세요! 마음이 너무 허전해서....

weinrot님의 댓글

weinrot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한겨레님, 너무나 잘 읽었습니다. 벌써 끝나다니 너무 서운하네요..매일 매일 기다리며 한회씩 읽어나가는 재미가 정말 좋았는데... 그럼 이사잘 하시구요.. 좋은 주말 되세요

초롱님의 댓글

초롱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어제 음주가무.... 하고 노니라고 못 들어왔는데 그새 끝이 나다니요. 정말 재밌었는데 이렇게 끝나다니 서운해요.

아, 다 잘 되어가는데 납북이라니, 이렇게 기막힐 데가 또 어디 있겠어요? 이것도 실화를 바탕으로 쓰신 건가요?

이사 잘 하시고 무사히 돌아오셔요. 그때도 재밌는 얘기 많이 들고 오셔야 합니다. 건강하세요.

숲에서놀기님의 댓글

숲에서놀기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마지막 회라고 적혀 있어서 깜짝 놀랐어요. 이제 막 이야기가 시작되나보다 했는데... 위의 글도 실화를 바탕으로 쓰셨다고 했는데, 세상에는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실화가 참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겨레님, 수고 많으셨어요. 이번 주 내내 날도 춥고 계속 흐리던데, 이사까지 겹쳐서 고생하시겠어요.
이사 잘 마치시고 건강하신 모습으로 다시 뵙겠습니다.

이용약관 | 운영진 | 주요게시판사용규칙 | 등업방법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무단수집거부 | 비밀번호분실/재발급 | 입금계좌/통보방법 | 관리자문의
독일 한글 미디어 베를린리포트 - 서로 나누고 돕는 유럽 코리안 온라인 커뮤니티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