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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강의 갈매기(마지막 회)   

 
두 집안 어른들이 서울에서 만나 중구와 순영의 결혼식을 내년 봄에 서울에서 올리기로 했다는 소식을 두 집안 어머니들이 번갈아 전화로 알려왔다.
윤 장관이 몸소 찾아오셔서 시간을 내라 하시기에 아버님 모시고 서울로 나가 윤 장관 내외와 윤 서방 누님들을 만나 너희 혼사문제를 매듭지었다. 어른들은 예전에 알고 지내던 사이여서 천생연분이라며 좋아들 하셨다. 처음부터 네가 윤 장관 아들이라고 알려주었으면, 그동안 마음고생 안 해도 되었을 것을~~ 부모 덕 안 보고 살아가겠다는 네 옹고집도 어지간하다. 하여튼 잘 된 일이지 뭐냐. 네 아버님도 그날 이후 ‘암, 이 남성필의 맏딸인데, 아무렴 어디 간들 제 앞가림을 똑 부러지게 못할까? 고맙다! 내 딸!‘ 하시면서 요즈음은 아주 활기있게 지내고 계신단다. 결혼식 날짜가 확실하게 잡히면 다시 연락 하겠지만, 그때는 라라 하고 세 식구가 시간을 좀 여유 있게 가지고 나와서 친정과 시댁에서 얼마간 머물다 갈 수 있도록 준비를 해서 나오너라.“
어머니는 순영이 대견스럽다는 목소리로 긴 통화를 통해서 그동안의 경과를 들려주었다.
아직 반년이나 더 남았지만 순영은 신바람이 났다. 어머니의 눈물 배웅을 뒤로하고 김포공항을 떠난 일이 엊그제 같은데, 되돌아보니 어느새 일곱 해가 지나가고 있었다. 처음 와서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공부에 열중하느라고 시간 가는 줄 몰랐고, 중구를 만나고 나서부터는 신접살림의 깨 쏟아지는 재미에 흠뻑 취해서 세월 가는 줄 몰랐던 자신이 부모형제에게는 너무 매정하게 여겨졌을 거라는 후회의 마음도 생겼지만, 그건 잠깐이었고, 두 집안 어른들의 축복 속에 결혼식을 올리기 위해 귀국한다는 사실이 가슴을 뿌듯하게 만들었다. 일시 귀국은 아직 반년이나 더 남았지만 순영은 낼모레의 일처럼 마음이 바쁘고 들뜨기 시작했다.
처음 서독 올 때 입고 온 옷을 다시 입고 갈 수는 없으니 순영의 옷도 새로 장만해야 했고, 중구 역시 양복을 한 벌 새로 장만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라라의 자질구레한 유아용품도 빠짐없이 챙겨야 했고, 일곱 해 만에 다시 만나는 부모님과 형제들에게 선물이 없을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마음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가을이 거의 다 지나갈 무렵 어느 날, 중구는 서울에서 온 영도물산 김영걸 상무라는 사람의 안내와 통역으로 스웨덴에 사흘 동안 다녀오겠다며 뒤셀도르프공항에서 비행기를 탔다. 그리고 그날 오후 스톡홀름에 잘 도착했다는 전화 한 통화를 한 뒤로부터 소식이 끊어졌다. 영도물산은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밍크코트를 비롯한 고급 모피의류를 제조 판매하기 시작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기업이라고 설명해 주면서, 스웨덴에 독일사람이 운영하는 밍크사육장이 있는데, 그 밍크 원단을 직거래하기 위한 상담을 하러 간다고 중구는 말했었다.
순영이 애를 태우며 기다리는 가운데 돌아온다는 사흘이 지나고 닷새가 지나도 중구는 감감무소식이었다. 순영은 중구에게 통역 일거리를 연결해주던 대사관의 안 영사에게 전화를 걸어 중구의 소식이 끊긴 상황을 설명하고, 어떻게 된 건지 알아봐 달라고 부탁을 했다.
안 영사는 영도물산 김영걸 상무라는 사람을 연결해 준 일이 없다면서, 알아봐 줄 터이니 기다리라고 한 후 대여섯 시간이 지난 저녁 무렵, 서울 영도물산에는 김영걸 상무라는 사람이 없으며, 스웨덴으로 출장을 간 사람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아무래도 무슨 사고가 생긴 것 같으니, 우선 쾰른 경찰청에 실종신고부터 하라고 일러주었다.
순영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이튿날 경찰청을 찾아가 실종신고를 했지만, 담당경찰관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집에 가서 기다리라고만 했다. 순영은 서울 시가에 연락하고 싶었지만, 곧 돌아올지도 모르는데 공연히 방정을 떤다는 꾸지람을 들을 것 같아서 참았다.
순영이 초조한 마음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데, 새벽녘에 전화벨이 울렸다. ‘중구 씨다!‘ 하고 얼른 수화기를 드니 뜻밖에도 서울 시아버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사관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아직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니 너무 놀라거나 초조해하지 말고 기다리거라. 스웨덴에서 소식이 끊겼다면 혹시 북한과 연관이 있는 일이 아닌가 하는 염려도 되지만, 하여튼 북쪽에도 우리 사람들이 있으니 조만간 소식을 알 수 있을 게다. 그러니 공연히 여기저기 알아본다고 나다니지 말고 집에서 기다리고 있거라. 내가 좀 더 알아보고 연락하마.“
시아버님의 전화를 받고 순영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그럼 납북이 됐단 말인가? ? 공부하는 학생을 납치해서 무엇에 쓰려고? 아니냐 그럴 리가 없어~“
하면서도 순영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김영걸 상무라는 사람 때문에 북한공작원에 의한 납치라는 심증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종적도 없이 아무 소식도 없이 두 달이 지나갔다. 순영에게는 그 두 달이 한순간 같기도 했고, 한 천 년이 되는 것 같이 아득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너무나 큰 충격이 순영의 시간관념을 혼란스럽게 또는 아무 의미가 없게 만들었다.

중구의 실종이 석 달째 들어서는 어느 날 새벽, 서울 시아버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늘 아침 평양 김일성대학에서 열린 군중집회에 중구가 나와 <남조선 반독재 혁명투사>로 소개됐다. 그쪽 우리 요원의 보고에 의하면, 당분간 김일성대학에서 공부하면서 대남방송요원으로 일하게 될 거라고 한다. 아무튼, 죽지 않고 살아있는건 확인됐으니, 어떻게든 북한에서 탈출시키는 방도를 연구해 볼 작정이다. 그런데 너는 어떻게 할래? 혹 너도 납북 대상이 될 수도 있고 해서 힘들 터인데, 라라 데리고 들어와서 우리랑 살지 않으련?“
하는 시아버님의 권유를 순영은 울면서 단호하게 거절했다.
아니에요 아버님, 저는 여기서 기다릴래요! 라라 데리고 의학공부하면서 기다릴래요. 얼마가 걸리든지요~“

중구가 평양으로 납치된 사실이 확인됐다는 연락을 받고, 정애가 짐보따리를 싸들고 순영의 집으로 왔다.
웬일이니? 짐보따리까지 싸들고?“
당분간은 내가 니 옆에 있기로 작정하고 안 왔나. 아무래도~ 라라 데리고 일하고 공부하자면, 니 혼자 사는 거 보다는 내가 옆에 있으면서 거들면 좋지 않겠나 생각했다. 괘않지?“
그래, 고맙구나! 크게 힘이 될 거야.“
그런데, 니 생각보다는 쌩쌩하네 ! 밥도 안 먹고 늘어져 있을 줄 알았구마.“
그런다고 납치된 사람이 돌아온다든? 지네들이 우릴 떼어 놓으면 얼마나 오래 떼어 놓을 성 싶어? 기껏해야 몇십 년이지! 정애야 내가 말한 적 있지? 우린 천 년이 넘는 사랑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라고~. 너는 안 믿을 줄 모르지만, 우리는 천 년의 시공을 오가며 살고 있단다. 그러니 그까짓 몇십 년의 이별이 무슨 대수냐? 나는 굳게 믿어. 우린 언젠가 꼭 다시 만난다는 걸! 우리에겐 천 년 세월이 하루일 수도 있으니까~“
아무 대답도 없는 정애와 함께 순영은 라라를 유모차에 태우고, 중구를 처음 보았던, 아니 천삼백 년의 시공을 넘어 중구가 순영 앞에 모습을 나타낸 라인강변의 수양버들이 서있는 산책길로 나갔다.

! 거기 강물 위에 흰갈매기가 날개치며 힘차게 날고 있었다. <>

한겨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13-02-02 (토) 18:10 6년전
이사때문에 당분간 인터넷 연결이 안될 것 같아서 마지막회까지 모두 올립니다. 다음에 뵐 때까지 건강하고 평안하게 지내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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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Nebel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13-02-02 (토) 18:45 6년전
한겨레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왠지 계속해서 연속 되는 줄 알았는데 , 아주 서운하고 좀 슬프네요.
이별 같아서,앞으로  님도 더욱더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고, 제가 님께 지금까지 죄송하게 군 것 모두 용서 바래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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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iumph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13-02-02 (토) 19:24 6년전
한겨레님, 우리 한국사람들의 장단점 이 무엇일까요?
저는 바로 그 끈끈한 정 인것 같습니다.  저역시 안갯속님 말대로 서운하고 슬픕니다.
이사하시고 꼭 재미있는 대화로 다시 만나게 되길 기원합니다.
건강하세요.


초롱님, 어데 계세요! 마음이 너무 허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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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inrot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13-02-02 (토) 21:32 6년전
한겨레님, 너무나 잘 읽었습니다. 벌써 끝나다니 너무 서운하네요..매일 매일 기다리며 한회씩 읽어나가는 재미가 정말 좋았는데... 그럼 이사잘 하시구요.. 좋은 주말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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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롱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13-02-03 (일) 10:10 6년전
어제 음주가무.... 하고 노니라고 못 들어왔는데 그새 끝이 나다니요. 정말 재밌었는데 이렇게 끝나다니 서운해요.

아, 다 잘 되어가는데 납북이라니, 이렇게 기막힐 데가 또 어디 있겠어요? 이것도 실화를 바탕으로 쓰신 건가요?

이사 잘 하시고 무사히 돌아오셔요. 그때도 재밌는 얘기 많이 들고 오셔야 합니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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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놀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13-02-03 (일) 23:40 6년전
마지막 회라고 적혀 있어서 깜짝 놀랐어요. 이제 막 이야기가 시작되나보다 했는데... 위의 글도 실화를 바탕으로 쓰셨다고 했는데, 세상에는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실화가 참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겨레님, 수고 많으셨어요. 이번 주 내내 날도 춥고 계속 흐리던데, 이사까지 겹쳐서 고생하시겠어요.
이사 잘 마치시고 건강하신 모습으로 다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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