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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회   

 
레크링하우젠 에발트광산 한인자치회원 일백이십 여 명은 이른 저식사를 마치고 초겨울 저녁 어둠이 찾아온 90번지 기숙사 3층 휴게실에서 임정길 노무관과 마주 앉았다.
"
여기 오기 전에 에발트광산 인사담당소장 파울 씨를 만나고 오는 길이요. 여러분이 해고당한 동료 생각해서 집단행동을 하는 마음은 잘 알겠지만, 처음부터 방법이 틀렸어요. 일단 광산 측과 협의를 하는 것이 순서가 아니겠소. 댓바람에 상부 노조에 들이댔으니 광산 측 기분이 어떻겠소. 광산 측 입장은 극히 개인적인 해고 문제를 가지고 집단 행동하는 것부터 이해할 수 없다는 거요. 더구나 이런 일이 갑자기 외부에서 터져 나오는 바람에 자존심이 매우 상해 있는 것 같소.
   서양 격언에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소. 독일사람들은 해고가 부당하다고 생각되면 당사자가 직접 노동조합을 통해 중재신청을 하거나 법에 따라 노동재판을 신청하는 것이 상식이요. 이렇게 동료들이 집단으로 항의하는 것만으로도 광산 측으로서는 황당하고 이해가 안 되는데, 하물며 광산 측에는 일언반구도 없이 일방적으로 외부에 공개해 문제를 크게 만들었다고 대단히 노해 있소. 그리고 이건 또 뭐요? 이 신문에 난 기사 도대체 누구 짓이요? 이런 터무니없는 신문기사가 나게 하고서도 광산 측이 여러분의 요구를 들어줄 거라 생각했단 말이요? "
   임 노무관은 "레크링하우젠 에발트광산 한국인 광부 기숙사에 소요"라는 기사가 실린 WAZ 신문을 가방에서 꺼내 보이며 조금 언성을 높였지만, 결코 노기를 띠거나 흥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유만만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
내 생각으로는 이번 일은 시작이 잘못된 것 같소. 해고가 부당하다고 생각되면 일단 노무관에게 연락해서 상의하면서 법대로 순리대로 처리하거나, 광산 측과 절차를 밟아 대화해야지, 이렇게 덮어놓고 일을 저질러 버리면 잘 해결 될 일도 어렵게 지 않소. 도대체 이번 일 주동자가 누구요?"
   송대균 회장, 오한규 부회장과 함께 창가에 서 있던 부회장 태영이 '그것 봐라, 내가 뭐라든' 하는 뜻의 눈짓을 좌중에 앉아 있는 성주에게 보내며 피식 웃고 있는데, 성질 급한 김춘성이 앉은자리에서 소리를 버럭 질렀다.
"X
까는 소리 하네. 주동자는 왜 찾아? 주동자가 어디 따로 있다."
   춘성의 험한 말씨에 좌중이 깜짝 놀라는 가운데 임 노무관의 눈길이 번쩍 빛을 발하며 춘성을 순간적으로 쏘아보았지만 역시 '대사(大蛇)'라는 별명에 걸맞게 노기를 감추고,
"
그거 못 까면 어른 노릇 못하는 거요."
   하는 우스 말로 돌발적인 험악한 분위기를 풀어 버리는 능글능글한 여유를 보여주었다.
"
주동자를 찾는 이유가 뭡니까? 구태여 주동자를 찾는다면 이번 일의 책임을 진다는 뜻에서 자치회 회장인 제가 주동잡니다. 그러나 신문에 난 일은 우리는 전혀 모르는 일입니다."
   송대균은 아무래도 WAZ의 보도기사가 마음에 걸리는지 변명부터 하고 나섰다.
"
오해하지 마시오. 책임을 지라고 주동자를 찾은 것이 아니라 앞으로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할 것인지 의향을 듣고 싶어서요. 어디 한번 말해 보쇼. 광산 측이 해고를 철회하지 않으면 정말로 다음다음 주 월요일에 입갱 거부 투쟁을 벌일 셈이요?"
   임 대사(大蛇)가 그렇게 묻는 진의가 무엇인지 짐작이 가지 않아 송대균이 답을 못하고 머뭇거리자 옆에 서 있던 태영이 불쑥 나서서 말을 가로챘다.
"
자치회 부회장 최태영입니다. 노무관께서는 이 일이 무슨 애들 장난인 줄 압니까. 적어도 한 가정의 운명을 책임지고 있는 일백 명이 넘는 가장들이 밤새도록 토론하고 의논해서 결정한 일입니다. 회장 혼자서 실행하고 고를 결정할 일이 아니란 말입니다. 만약에 광산 측이 우리의 요구를 무시한다면 입갱 거부 투쟁 실행해야지요. 이렇게 인간대접 제대로 못 받으면서 툭 하면 해고 위협에 시달릴 바에야 한번 죽기 살기로 싸워서 결판을 내야지요."
"
결판이라, 그 각오와 용기는 알겠지만, 여보, 부회장이라 했소? 이런 걸 한번 생각해 본 적이 있소? 여러분이 독일에 광부로 오게 된 것은 이들 독일 광산경영주들의 요청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한국정부가 외화가 필요해서 사정사정해서 마지못해 여러분을 고용했다는 사실을 말이요. 솔직히 말해서 우리 공관에서는 힘도 제대로 못 쓰고 병가도 많은 한국광부 제 그만 불러들이라는 광산경영주 측의 아우성을 겨우겨우 달래고 있는 판인데, 거기에다가 한판 결전까지 붙으면 그 결과는 어찌 되겠소? 그렇소 여러분들이 권익 주장을 하는 게 어떤 면에서는 우리 한국사람의 참모습을 보여주고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 될 것은 분명한 일이요. 지렁이도 밟으면 꿈들 한다는데 억울하게 당하고 가만히 있으면 사나이들이 아니지. 그렇지만 잘못 꿈틀대면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손해 보는 일이 많을 거요. 다시 말해서 광산 측과 화해의 합의를 보지 못한다면 말썽 많은 한국광부 더고용하지 않겠다 하면서 무더기로 해고시키는 일이 없으란 법도 없소. 여러분은 돈을 벌러 왔지. 자존심 싸움하려고 독일까지 온 것 아니잖소?"
   비록 간접적이기는 하지만 광산 측은 한국 노무관의 입을 빌려, 세 동료의 부당한 해고를 철회하라는 한국광부들의 청원에 대해 '무더기 해고'라는 보복조치를 하겠다는 일차 답변을 보낸 셈이었다.
임 대사의 위협에 가까운 말에 좌중이 할 말을 잃고 침묵에 잠겨 들어가는 것을 보다 못해 성주가 손을 들어 발언권을 얻고 나서 입을 열었다.
"
노무관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겠습니다. 또 해고를 당한 당사자들이 순서대로 법대로 대응해야지 집단항의는 이해할 수 없다는 광산 측의 입장도 이해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해고당하고 돌아가면 가정이 풍박산이 나는 우리 개개인의 입장도 노무관께서 광산 측에 설명해 주시고 이해를 구해 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순서를 밟지 않고 상부노조에 먼저 청원서를 보낸 것은 분명히 실수입니다. 그건 인정합니다. 그러나 실수를 했다고 해서 우리의 청원을 없던 것으로 되돌릴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저는 말도 잘 안 통하고 독일사회의 조직에도 서투른 외국인 노동자의 실수를 빌미로 해서 '무더기 해고 운운'하면서 위협하는 말이 올바른 노사관계를 자랑하는 독일인들 입에서 나왔다고는 믿고 싶지 않습니다. 노무관께서 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해 보시는 말씀으로 듣겠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집단항의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절박한 이유를 노무관께서는 정말 모르시겠습니까? 제가 듣기로는, 노무관께서도 손수 막장에 들어가 보시고 '정말 광산 경험이 있고 힘이 센 사람들을 선발시켜 보내야겠다'고 느끼셔서, 파독광부 선발 과정에서 40 킬로그램 무게의 모래가마니를 불끈 어깨 위로 올릴 수 있는 장정들만을 뽑아서 보내라고 하셨다고요? 여기 앉아 있는 저희 모두 그 모래가마니를 단숨에 어깨 위로 올리는 시험에 합격해서 온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막장에 들어가 일을 하다 보면 힘에 부쳐서 다치기도 잘하고 병도 잘 납니다. 당연히 병가도 많고 작업감독과의 마찰도 많게 마련입니다. 그럴 때마다 이번처럼 해고를 당하면 삼년 계약 무사하게 끝마치고 귀국할 사람 몇 안 됩니다. 그런 염려와 불안 때문에 선례를 남기지 않기 위해 저희가 집단으로 청원하는 것이지 결코 항의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집단행동이 광산 측에 대한 항의가 아니라는 점을 노무관께서 광산 측에 잘 이해시켜주시기를 바랍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던 임 노무관은 성주의 말이 자신의 책무에 관한 방향으로 흐르자 서둘러 말을 끊고 나섰다.
"
알고 있소. 설명 안 해도 여러분들이 얼마나 힘든 일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소. 다른 광산에서는 채탄부가 아닌 간접부로 수월하게 삼 년 근무 끝내는 사람들도 더러 있지만 여기는 그런 기회가 전혀 없어서 다른 광산보다 병가율이 높다는 것도 잘 알고 있소. 그러나 말이요. 여러분이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돈 버는 것만을 목적으로 서독에 왔다면 여기 이 에발트광산에 오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해야 하오. 우리 대사관 노무과의 통계로 보면, 여기 에발트광산 근무자들은 정말로 체질이 허약해서 일을 감당하지 못하거나 게으른 사람을 빼놓고는 모두가 다른 광산의 한국광부들보다 노임도 훨씬 많이 받고 송금도 가장 많이 하고 있단 말이오. 일이 힘든 대신 돈도 더 많이 벌뿐만 아니라 다른 잡생각 할 여유가 없으니 돈 쓸 일도 없어서 송금도 다른 광산 근무자들보다 더 많이 하게 되니 전화위복이랄까, 사람에 따라서는 오히려 여기에 오게 된 것을 고맙게 생각할 수도 있단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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