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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강의 갈매기 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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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겨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5건 조회 1,822회 작성일 13-01-26 18:33

본문

 
돌아오는 차 안에서 중구는 집안 이야기를 대강 했다. 아버지는 이름만 대면 한국사람 모두가 알 만한 고위직 정치인이고, 어머니는 교육자이며, 위로 누나 둘이 있고, 중구는 막내이자 외아들이어서 귀여움만 받고 자라 세상을 모르는 철부지로 대학에 들어갔다고 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윤중구라는 자신의 이름 대신 고위층 누구의 아들로 불리우는 것이 싫어지기 시작했다고 털어놓았다. 대학에 가서야 처음으로 인간 윤중구가 되어 운동권 학생들과 어울리며 세상을 알기 시작했고, 그들과 친구가 되어 보려고 했지만, 사건이 생길 때마다 아버지의 배경으로 말미아마 풀려나는 바람에, 운동권 학생들의 의심을 받고 따돌림을 당했다고 했다.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가 없을 정도로 부모의 울타리가 너무 견고해서, 아버지의 유학 권고를 받자 두 말 않고 나왔다고 했다. 부모의 울타리를 벗어나 자유인이 되고 싶다고도 했다.
그러나 자유인이 되고 싶다는 중구의 말이 순영에게는 부잣집 막내도련님의 응석으로 들려왔다. 진정 자유인이 되고 싶다면, 제 힘으로 돈을 벌어 경제적 자립을 해야 하는데, 중구는 부모가 보내주는 돈으로 여유있는 유학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건 바로 부모의 울타리 안에서 안주하고 있는 걸 뜻했다.
순영에게는 중구가 생각으로만 울타리를 벗어나 자유인이 되고 싶다면서도, 스스로 그 울타리를 뛰어넘지 않고 투정만 부리는 철부지로 보였다.

순영은 516 군사혁명에 참여한 해병대 영관장교의 맏딸이었다. 어머니는 전형적인 군인의 아내로 순종을 미덕으로 아는 여필종부형의 여인이었고, 순영 아래로 남동생 하나와 여동생 하나가 있었다.
아버지의 임지를 따라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학교를 다닌 까닭으로 추억할 고향이 따로 없고 친구도 없었다. 강원도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의 국립의료원 부설 간호학교에 들어간 건 순영의 외고집으로 내린 결정이었다. 학교에 기숙사가 있어서 아버지를 따라 옮겨다니던 떠돌이 학생 생활을 마감할 수 있다는 기쁨과, 무엇보다도 부모에게 얽매이지않고 독립할 수 있다는 것과 친구를 사귈 수 있다는 것이 마음에 들어서였다.
아버지는 그 무렵 516후의 반혁명 음모사건에 휘말려 강제 퇴역을 당하고, 선산이 있는 퇴계원에 그리 크지 않은 목장을 하나 꾸리고 들어 앉아 울분을 삭이며 살고 있었지만, 순영은 그런 아버지의 실의에 찬 삶에 연연하지 않고 제 앞길을 스스로 열어왔다. 그런 순영을 가리켜 어머니는 “매몰찬 계집애” 라고 하면서도 염려의 끈을 놓지 않았다.
학교를 졸업하고 국립의료원 간호사로 근무하다가, 정애를 비롯한 친구들이 돈 벌러 서독에 간다고 하는 바람에 친구따라 강남 간다는 말대로 친구따라 서독에 온지 벌써 다섯 해가 지나가고 있었다. 순영은 두 해쯤 더 간호사로 일을 한 다음, 그동안 알뜰하게 모은 돈으로 생활하면서 의과대학에 들어가 산부인과 전문의가 되려는 꿈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그렇게 부모로부터 독립한지 열 해가 다 되어가는 순영으로서는 아직도 부모의 돈으로 생활하며 방황하는 중구가 어려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법학공부는 계속하실 거에요 ?“
시작한 거니까 끝을 보아야지요.“
법학공부 마치면 무얼하실 건데요 ?“
여기 유럽에 있는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어요. 사실은 그것도 여기 와서 결정한 거지만...“
그래요 ? 그럼 공부 끝나도 귀국은 안하시려구요 ?“
서독에 오니까 지금까지 부모의 품안에서만 살던 내 세계가 너무 좁다는 깨달음이 생기더라구요. 그래서 세계를 무대로 살아갈 방법을 찾게 되었고, 국제법을 전공해서 유엔 같은 국제기구에서 일하면 폭이 넓은 사람이 될 것 같아서, 지금 국제법을 전공하고 있어요.“
그제서야 순영은 중구가 아주 대책 없는 부잣집 막내도련님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차가 기숙사 앞에 당도하자 중구는 뛰어내려 순영이 앉은쪽 차문을 열어주었다.
너무 늦었어요, 얼른 가세요.“
순영씨 들어가는 것 보고 갈게요, 그럼 잘 자요 !“
여자들만 살고 있는 기숙사여서 자정이 넘으면 현관문을 밖에서 열고 들어갈 수 없도록 잠가놓지만, 차 소리에 정애가 창너머로 내다보았는지 현관문을 열어주며 맞이았다. 순영은 돌아서서 떠나는 중구에게 손을 흔들어 배웅했다.
이 문디 가시나, 새벽 두 시까지 연애질하고 댕기나 ! “
정애가 한밤중임을 의식한 듯 낮은 목소리로 힐문하며 순영을 따라 방으로 들어왔다.
미안, 미안해 ! 생일파티에 초대받아 갔다 왔어.“
그 머스마 생일파티 ? 잘 차렸드나 ? 손님도 많고 ?“
차리긴..., 촛불 스물아홉 개 꽂은 케이크하고 포도주 한 병, 그리고 손님은 달랑 나 하나, 만찬이라고 오무라이스를 만들어 내놓았는데, 내가 맛있다고 하니까 뭐 평생이라도 해줄 수 있다나...“
가시나야, 그거 결혼하자는 소리 아니가 ? 그래서 뭐라캤노 ?“
뭐라카긴, 그냥 못들은 척 했지...“
또 뭐했노 ? 새벽 두 시까지 단 둘이서 오무라이스만 먹었을 리는 없고, 가시나야 답답하다, 속 시원히 말 좀 해봐라 ! 가만 있그라, 순영이 니 카쓰했제 ? 니 입술에 표 다 난다 아이가.“
순영은 당황해서 손으로 입을 가리면서 얼굴이 붉어졌다.
문디 가시나, 맞구나 ! 어떻드노 키스 맛이 ? 달콤하드나 ? 포도주 마시고 키쓰했으면 달콤했겠제 ?“
정애는 당황스러워하는 순영의 작태가 재미있다는 듯 연이어 캐물었다.
모르겠다. 난생 처음 키쓰라서 그런지 뭐가 뭔지 모르겠더라. 그냥 다리만 후들거리고...“
이 가시나 보래이, 뭐라꼬 ? 다리가 후들거렸다고 ? 니 그 머스마한테 그마 확 녹아버렸구마. 정신이 아뜩했제 ? 그제 ? 가만 있그라, 어디 진찰 좀 해보자.“
정애는 이리저리 몸을 피하는 순영에게 달려들어 가슴에 귀를 들여대고 진찰하는 시늉을 했다.
봐라, 봐라 ! 가슴이 아직도 벌렁벌렁 안하나 ! 바람이 들어도 보통 많이 들은 게 아니구마. 큰일이데이...“
그만 놀리고 가서 자라 ! ! 나 졸려서 잘테야.“
니 지금 잠이 오나 ? 그래 니는 결혼할 생각 있나 ?“
아직은 모르겠어. 싫지는 않은데, 너무 갑작스러워서....“
괘않다 ! 결혼상대는 없는 집 자식보다 부잣집 자식이 마음에 여유도 있고, 맺힌 게 없어서 좋다고 선배언니들이 안카드나. 서두를 것도 없지만 너무 빼지도 말거래이. 너무 빼다보면 다 잡은 고기 놓치는 수가 있데이.“
기집애두, 하는 소리라군, 다 잡은 고기라니 무슨 ? 가서 자라 ! 얼른 ! „
 

댓글목록

초롱님의 댓글

초롱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아차, 한발 늦었당. 트리움프님, 축하드려요.
한겨레님, 계속 재밌습니다.
한 눈에 반했단 말이 이런 것이로군요. 어쩜 속도가 이리도 제트기인지... 둘이 결혼할 것 같아요.

triumph님의 댓글

triumph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초롱님, 아프시다더니 좀 낳아지셨어요?
 감기몸살에는 휴식이 최고이지만 일을 하다 보면 꼭 집에서만 쉴 수가 없지요.
저도 머칠 고생했거든요,
그런데 중구 와 순영이 그렇게 빠른 속도가 좀 불안합니다, 기다려 보자구요!!!

초롱님의 댓글의 댓글

초롱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쉬면 낫고 돌아다니면 또 도지고 그래요. 그래서 몸이 계속 안 좋으면 제가 잘 쉬어주지 못한 탓이구요.

전 이렇게 가다간 중구와 순영이가 금방 결혼할 것 같거든요. 설마 중구 녀석, 집에서 부모님이 반대하셔 어쪄 하는 못난 소리할 남자는 아니겠죠? 그렇기만 해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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