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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라인강의 갈매기 1회

페이지 정보

작성자 한겨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2,943회 작성일 13-01-23 18:35

본문

 
              라인강의 갈매기

 
순영은 설래이는 마음을 안고 융단같은 푸른 잔디가 끝간데 없이 펼쳐진 라인강 둔치의 산책길을 천천히 걸어갔다. 저만치 가지가 칭칭 늘어진 수양버들 밑에 오늘도 그 남자가 강물을 향하고 앉아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뒤로 한 쌍의 늙은 부부가 작은 강아지 한 마리를 데리고 오손도손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나란히 걷는 정다운 모습에서는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아온 삶의 무게가 전해져 오고, 드넓은 잔디밭에서 배드민턴을 즐기는 젊은 연인들의 밝은 웃음소리는 출렁이는 강물 위로 싱그러운 봄의 향기를 번져가게 하고 있었다.
늦은 봄의 기우는 해가 강 건너 멀리 쾰른 대성당의 뾰죽탑에 걸려있는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난데없는 흰 갈매기 한 마리가 너울너울 강물 위를 날고 있었다.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이 내륙에 웬 갈매기일까 ? 라인강 하구에서 강물을 거슬러 올라오는 화물선을 따라왔을까 ? 따라오다가 지쳐서 잠시 쉬는 동안에 화물선을 놓치고 길을 잃었을까 ? 갈매기는 강물 위로 날개치며 솟아올랐다가 다시 강물을 스치듯 낮게 날기도 하면서 정처없이 맴돌고 있었다. 떠나온 바다로 돌아가는 길을 잃고 낯선 강가에서 누구를 찾는지 가끔씩은 구슬프게 울부짖기도 하면서 이리저리 날다가 , 강가 모래톱에 앉아 모래를 부리로 헤집기도 하다가 멍하니 강물을 응시하기도 했다.

그 남자는 사흘째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어제 등뒤로 지나가면서 어깨너머로 들여다 본 그림은 강 건너 성당이 오른 쪽으로 자리잡은 라인강변의 풍경이었다.
한국사람 같은데..... 유학생일까 ? 오늘은 꼭 말을 걸어봐야지....“
순영이 이런저런 상상을 하며 걷다보니 어느새 그 남자의 등뒤에 다달았다. 걸음을 멈추고 숨을 죽여 어깨너머로 보니, 어제 본 그림 그대로였다. 남자는 무엇이 잘 안 풀리는 지 넋을 놓은 사람마냥 강물만 내려다보고 앉아 있었다. 오늘은 꼭 말을 걸어봐야지 했던 순영은 그런 분위기에 눌려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그 남자를 지나쳤다.
순영은 몇일 후 근무가 없는 날, 오랫만에 기숙사에서 한국음식을 해먹으려고 시내 한국식품점에 들렸다. 고추장을 비롯한 찬거리를 이것저것 고르다가 노란 단무지를 보고 문득 김밥이 먹고 싶어져서 김 두 톳과 단무지를 사 들고 나서는데, 그 남자가 식품점 안으로 들어섰다. 역시 한국사람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까닭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밖에는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아침부터 내리던 이슬비가 굵은 빗줄기로 변하여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전차 정류장까지 가려면 한참을 걸어가야 하는데, 이 비를 다 맞으면서 걸어갈 수야 없지 하면서, 순영은 식품점 문앞에서 비가 긋기를 기다렸다.
괜찮으시다면, 제 차로 모셔다 드리지요.“
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뒤돌아보니 그 남자였다. 무언가 가득 들어있는 장꾸러미 두 개를 양손에 들고 서서 순영을 바라보는 눈빛이 알 수 없는 우수에 젖어 아득해 보였다.
괜찮아요, 전차 타고 가면 돼요.“
비가 이렇게 쏟아지는데 전차정류장까지는 어떻게 걸어가시려구요 ? 금방 그칠 비가 아닌 것 같은데, 그러지 마시고 타세요. 댁까지 모셔다 드릴테니까요.“
빗속에서 차문을 열어놓고 재촉하는 바람에 순영은 마지못한 듯 차에 올라 앉았지만, 아까부터 두근거리기 시작한 속마음에서는 북소리가 나고 있었다.
댁이 어느 방향이죠 ?“
대학병원까지만 데려다 주세요.“
, , 대학병원 근무하세요 ? 간호사세요 ?“
, 그래요.“
전 유학생이구요, 중구라고 합니다, 윤중구...“
그러세요 ? 저는 남순영이에요. 그런데, 그림은 다 그리셨나요 ?“
그림이요 ?“
강가 버드나무 밑에서 그림 그리셨잖아요 ? 그 그림 다 그리셨냐구요 ?“
아하 ! 거기서 그림 그리는 절 보셨군요. 그거 찢어버렸습니다.“
어머 ! 왜요 ?“
길 잃은 갈매기의 슬픔을 그리려고 했는데, 도무지 마음 속 느낌대로 그려지지 않아서 끙끙 앓다가 그만 포기했지요.“
아까워라. 그림이 참 좋던데요.....“
그림 좋아하세요 ?“
그림은 잘 몰라도, 사흘씩이나 그리시는 그림 보니까 참 마음에 들던데요.“
아니 그럼 ? 사흘씩이나 제가 그림 그리는 걸 지켜보셨다구요 ? 그럼 아는 척이라도 하시지 않구....“
아주 푹 빠져서 누가 옆에 서 있어도 모르시던데요 뭘...“
제가 그랬어요 ? 그래서 그런지 낯설지가 않아요.“

차가 병원 기숙사 앞에 서자 줄기차게 내리던 비가 조금 수그러들었다.
잠깐 들어가서 차 한 잔 드시고 가세요.“
장꾸러미를 내려주는 중구에게 순영이 권했다.
초면에 그래도 될까요 ?“
저는 초면이 아닌데요 .“
아 참, 그러시다고 했지. 그럼 이 꾸러미는 제가 들고 들어가지요.“
장꾸러미를 들고 순영의 뒤를 따라오는 중구를 창너머로 본 듯, 옆방에 살고 있는 정애가 방문을 열고 의아한 낯빛으로 내다보다가 문 닫으라는 순영의 눈짓에 찔끔하고 문을 닫았다.
들어오세요.“
, 아이구 ! 방이 참 아담하고 정결합니다. 혼자 쓰시는 모양이지요 ?“
, 그래요. 좀 앉으세요.“
자리를 권하며 순영은 장꾸러미를 받아 부엌에 들여놓고 서둘러 커피를 앉히고 나서 , 꾸러미를 풀어 찬장에 넣으며 중구에게 물었다.
미술공부 하시는가 봐요 ?“
아닙니다. 법학입니다. 어릴 적부터 화가가 되는 게 꿈이었는데, 어머님이 환쟁이는 밥 빌어먹는 직업이라고 극구 반대하셔서 할 수 없이 어머님이 원하는대로 법대에 들어갔지요.“
법대생들은 대개 고시공부 하지 않나요 ? 유학 오는 경우는 못본 거 같은데...“
그래요. 대부분 고시 합격해서 판, 검사 되려고 하지요.“
그런데 왜 유학을 오셨어요 ?“
그게 사연이 좀 있습니다. 혹시 민청학련 사건이라고 아십니까 ?“
아뇨. 그게 뭔데요 ?“
민주청년학생연맹이라는 전국 조직의 대학생 단체가 있었어요. 정부가 하도 유신이다, 긴급조치다 하고 대학생들을 숨도 제대로 못쉬게 하니까, 우리도 제대로 된 민주정치를 해보자고 대학생들이 조직한 단체입니다. 이 단체를 북한공작원들이 배후 조종을 한다고 하면서 대표 학생들을 모두 잡아들인 사건이 있었지요. 있지도 않은 인민혁명당이라는 걸 조작해서 죄 없는 시민들을 옭아매어서 눈 깜짝할 새에 억울하게 사형을 시켜놓고, 민청학련이 그들의 지시를 받아 반국가 이적행위를 했다고 발표한 기막힌 사건이었죠. 그래서 모두들 잡혀들어 갔는데, 나는 아버지가 고위공직자인 덕으로 풀려나서, 아버지 엄명으로 유학을 나왔지요. 솔직하게 말하자면 유학이 아니라 유배지요.“
아아~ 그러니까 요새 말하는 운동권 학생이셨네요 ?“
, 그런 셈이죠. 제대로 하지도 못한 얼치기였지만.....게다가 처벌도 받지 않고 풀려나는 바람에 친구들 한테서는 배신자로 눈총까지 받고....“
말을 주고받다가 순영이 김과 단무지를 들고, 찬장에 넣을까 식탁에 놓을까 망설이고 있는데 중구가 물었다.
어디 놀러 가십니까 ?“
아뇨, 왜요 ?“
김밥 만들려고 하는 것 같아서요.“
~~, 김밥은 뭐 놀러 가서만 먹나요. 오늘 식품점에서 단무지를 보니까 갑자기 김밥이 먹고 싶어져서 사 왔어요.“

커피가 다 내려 진한 모카커피향이 좁은 방안을 가득 채웠다. 순영은 찻잔과 설탕 그리고 연유를 챙겨 중구 앞의 탁자 위에 가즈런히 놓았다.
자아, 커피 드세요 ! 설탕은 얼마나 ?“
듬뿍이요, 설탕도 듬뿍, 연유도 듬뿍, 이 끓이는 커피가 나한테는 너무 쓰더라구요. 그래서 집에서는 그냥 인스턴트 커피를 마셔요. 촌놈이죠.“
전 마시는 것보다 끓일 때 방안에 퍼지는 향기가 좋아서 늘 이렇게 끓여요.“
그래요 ? 냄새가 참 좋아요. 이런 커피향내는 처음인 거 같아요.“
말대로 설탕도 듬뿍 넣고, 연유도 듬뿍 넣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나서 중구는 김밥 얘기를 다시 꺼냈다.
김밥 오늘 저녁에 드시게요 ?“
그럴까 하는데, 왜요 ?“
김밥 먹을 때는 시원한 콩나물국하고 같이 먹어야 더 맛있거든요. 날씨가 오늘같이 궂은 날은 얼큰한 콩나물국이 최고라서 오늘 제가 콩나물하고 두부를 좀 샀거든요. 그래서 말인데, 제가 콩나물하고 두부를 가져 올 테니, 아예 콩나물국까지 끓여서 저도 저녁 한 끼 부탁하면 안될까 해서요...“
식품점에 콩나물이 있었어요 ? 전 못봤는데....“
그냥 내놓으면 말라비틀어지니까, 가게 안 냉장실에 넣어두지요.“
그런 걸 모르고, 전 마음속으로만 콩나물은 없는가보다 했지요.“
어때요 ? 콩나물하고 두부, 차에서 가져올까요 ?“
그러세요 그럼. 김밥에는 콩나물국이라야 제맛이라면서요.“
그럼, 차에 갔다 오겠습니다.“
중구가 밖으로 나가 차에서 콩나물 한 봉지와 두부 한 모를 들고 들어왔다. 순영은 콩나물을 받아 씻어서 국을 앉혀놓고, 단무지와 당근을 길쭉하게 썰어 김밥 만들 준비를 했다.
                            <2회로 이어집니다>

댓글목록

Noelie님의 댓글

Noeli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한겨레님
어제 베리에 못 들어왔습니다.
오늘 새 소설 1등 댓글 답니다. (초롱님 새 소설이니까 용서해 주세요)

요 아래 대화에서 어떤 주제의 소실인지 미리 말씀을 들어서 그런지 긴장됩니다.
좀 무서울 것 같기도 하고, 동백림 사건도 떠오르고 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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