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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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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겨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조회 1,726회 작성일 12-11-29 19:39

본문


"세상에---, 얼마나 좋으면 저럴까. 꼭 갓 태어나 처음 들판에 나온 아기 노루 같네, 그런데 한 선생님, 두 분 어떤 사이? 어머니 반대로 헤어진 연인? 아니면 영주 양이 돌부처 같은 한 선생을 짝사랑하면서 아 다니는 일방통행 사랑?"
영주가 동화 속에 나오는 숲 속의 요정처럼 흩날리는 아카시아 꽃잎을 희롱하며 깡충거리고 있는 사이 박 상사 부인이 궁금증 가득한 얼굴로 성주를 추궁했다.
"
둘 다 아니에요. 나중에 천천히 말씀드릴 , 사연이 좀 길어요."
"
어쨌거나 영주 양이 가, 얼마나 절실한 그리움이면 그렇게 터무니없는 길을 찾아 나섰을? 열여섯 살부터 한 선생님을 해바라기 했다니까 영주 양이 좀 조숙한 건가?"
"
태어날 때부터 부모 없이 남의 손에 컸으니까 조숙할 수밖에 없지요."
"
저런! 태어날 때부터 부모가 없었다니? 그게 무슨 소리에요?"
"
영주는 6.25 때 월북한 남로당 고위 간부인 아버지와 6.25당시 여맹위원장이었던 무당 사이에 태어난 유복녀에요. 어머니가 감옥에서 영주를 낳고 산욕으로 숨을 거두었지요."
"
아니 그럼 나이가 안 맞잖아. 6.25 이듬해에 태어났으면 지금 열다섯 살밖에 안 되잖아?"
"
저도 그게 참 이상해요. 실제 나이는 열다섯 살밖에 안돼도 열아홉 살 행세를 하면서 살면 그렇게 나이가 들어 보이도록 몸도 성숙해지는 건지---. 감옥에서 영주를 낳으면서 심한 산고(産苦)로 숨을 거둔 여인의 검시를 한 의사가 연고자 없는 영주를 데려다 키우면서 따로 출생신고를 하지 않고, 한 해 전에 죽었지만, 전쟁통에 미처 사망신고를 하지 못한 딸의 호적을 그대로 영주의 호적으로 삼은 거래요. 이름도 그대로. 그래서 국민학교도 남보다 한 살 더 일찍 만 다섯 살에 들어갔고, 어릴 적부터 제 나이보다 네 살이 더 많게 살아왔으니 조숙할 수밖에 없지요."
"
세상에 어쩌면 그런 일이---, 그야말로 남의 인생을 사는 셈인가?"
박 상사 부인은 저만치 떨어져서 아카시아 꽃잎을 두 손에 받고 서 있는 영주를 애처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
그렇다고 영주가 남의 인생을 사는 건 아니에요. 중학생이 되던 해 양아버지가 노환으로 죽으면서 영주에게 친부모의 이야기를 해 주고 의대 후배이면서 영주 친아버지의 고등보통학교 동기 동창이 서울 삼청동에서 열고 있는 자애 병원에 영주를 부탁했지요. 거기서 가정부 겸 간호보조원 겸 병원심부름을 도맡아 하면서 야간 중학교 다니면서부터는 천애 고아가 겪어야 할 제 몫의 인생을 잘 감당해 오고 있어요.
집안 형편이 어려운 제가 고등학교 때부터 그 병원 집 두 아들딸을 돌보는 입주 가정교사로 들어가 있었는데, 때로는 야간 중학교에 다니는 영주가 어려운 숙제의 도움을 청하는 일도 있어서 가까워지게 됐지요. 늘 다소곳하면서도 부지런해서 병원 원장과 그 부인으로부터 '무엇하나 탓할 것이 없는 아이'라는 칭찬을 들어도 기뻐하는 빛을 얼굴에 나타낼 줄 모르는 늘 어두운 얼굴이 마음에 걸려 더욱 관심을 게 됐는데, 그 관심 때문에 원장 부인으로부터 영주의 출생에 얽힌 이야기를 듣고 나서부터는 누이처럼 대하게 됐지요. 모르겠어요. 그런 관심과 감정이 무엇을 뜻하는지, 영주도 그런 제 마음을 알고 차츰 마음 문을 열기 시작했지요.
여자 형제 하나 없이 남동생 둘과 함께 삼 형제로 홀어머니 슬하에서 살아온 제게는 살뜰한 정을 주기 시작한 영주가 친누이나 다름없었지요. 그래서 쉬는 날이면 우리 집에도 데려가고 병원 근처 삼청공원 약수터 산책하러 함께 가곤 했는데, 붙임성이 좋은 영주는 얼마 안 가 우리 어머니를 '엄마'라고 부르면서, 틈만 나면 제집처럼 찾아와 집 안 청소니 빨래니 하는 일들을 귀찮아하지 않고 도맡아 해서 우리 어머니는 '늦게 딸자식 하나 생겼다'고 즐거워하셨지요."
"
그런데 어떻게 하다 헤어졌기에 영주 양이 그렇게 오빠 찾아 온 천지를 헤매게 만들었어요?"
"
어머니에게는 딸처럼, 동생들에게는 오누이처럼 굴면서도, 내게 대하는 태도는 심상치 않다고 보신 어머니께서 냉정하게 우리 집 출입을 못하게 하시는 바람에 절망한 영주가 자애 병원도 그만두고 어디론가 사라져 종적을 감추는 바람에 찾을 수가 없었어요."
"
세상에, 그때 나이 겨우 열둘 아니면 열세 살이었을 텐데---"
"
실제 나이는 그랬어도 영주의 정신연령은 그때 이미 열일곱 살이었지요. 어릴 적부터 네 살을 더 먹은 나이배기로 그렇게 살아왔으니까요. 아무튼, 어머니는 한밤중 잠자는 제 옆에서 애틋한 눈길로 저를 지켜보고 있는 영주의 모습에 당황하기 시작했고, 또 제 밥상을 차리거나 옷을 챙기는 일에도 늘 어머니를 앞지르는 데에 기분이 상하기도 하셨대요.
결정적인 일은 어머니 친구분들이 집에 놀러 오셨다가 그 중 한 분이 영주를 보고 '이 집 민며느리'라고 뼈 있는 농담을 했는데, 영주가 아니라고 하지 않고 배시시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인 일로 말미암아 벌어졌지요. 친구분들이 돌아간 다음 영주를 불러 앉힌 어머니께서 제게 대한 영주의 감정을 추궁했는데, 영주는 조금도 서슴 않고 '오빠를 남자로 사랑하고 있으니 장차 어머님의 며느리로 받아 달라'고 대답했다는 거예요. 기겁한 어머니께서 '나는 너를 며느리로 받아들일 생각이 전혀 없으니, 그런 마음이라면 다시는 내 집에 드나들지 말고 성주 앞에 얼씬거리지도 말아라!' 고 엄포를 놓으셨답니다. 그 후에도 영주가 몇 번 더 찾아왔지만 그때마다 어머니께서는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이 집안에 못 들어온다.' 고 고함치시면서 집안에 들이시지를 않으셨답니다. 그때 저는 자애 병원 집 큰딸의 고등학교 입학시험 준비 막바지 공부를 돌보느라고 두문불출할 때여서 집에서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까마득하게 몰랐지요.
영주가 어느 날 갑자기 소리 없이 종적을 감춘 뒤에야 비로소 어머니로부터 전후 사정을 들어 알게 됐지요. 말 한마디 편지 한 통 남기지 않고 삶의 둥지인 자애 병원을 떠날 만큼 영주의 절망이 클 거라고 짐작하고 여기저기 갈 만한 곳을 찾아보았지만 찾을 길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군에 입대하게 됐고요."
"
이제 저렇게 찾아왔으니, 한 선생님, 어떻게 할래요? 아니 그보다는 영주 양에 대한 한 선생님의 감정은 도대체 어떤 거에요? 사랑? 동정?"
"
그걸 저도 잘 모르겠어요. 우선은 그냥 누이처럼 편하게 지냈으면 좋았을 텐데, 영주가 너무 앞지르는 바람에 어머니의 심기를 건드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됐어요. 이런 게 사랑인지는 몰라도 전 영주가 참 편하고 좋아요. 영주가 내 일거수일투족을 챙겨주면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고, 영주와 함께 길을 나서면 온 세상이 다 낙원인 것 같은 느낌이 와요. 그러면서도 영주가 여자라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는데, 영주는 언제부터 저를 이성으로 대하기 시작했는---. 우선 얘길 들어 봐야죠. 무슨 생각으로 여기까지 찾아왔는지?"
"
내가 보기에는 물어보고 자시고 할 것도 없네요. 어머니께서 그렇게 완강하게 물리치셨다는 데도 여기까지 찾아온 걸 보면, 한 선생님 없으면 이 세상 못 산다는 거 아니겠어요. 제대할 때까지 이 산골짜기에서 한 선생님 여자가 돼버려 아이라도 하나 낳으면 어머니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시겠지 하는 마음 아니겠어요 ?"

"
저 그런 욕심 없어요. 이모님. 오빠가 이모님이라고 하니 저 그냥 이모님이라구 부를 . 괜찮죠? 이모님 말씀대로 저 오빠의 여자가 되고 싶은 건 사실이지만 어머니 허락까지는 바라지 못해요. 어머니가 어떤 며느리를 기대하고 있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으니까요. 그저 여기서 제대할 때까지만이라도 오빠 옆에 있고 싶어서, 어머니 눈치 안 보고 오빠 빨래도 해 주고 입는 옷도 챙겨주고 밥상도 차려 주고 싶어서---"
두 사람의 대화를 끊고 끼어든 영주는 미처 말을 끝맺지 못하고 울먹였다.
"
정말 큰 걱정이네, 그냥 보고 싶은 정도면 일 년이 넘게 대한민국 천지 다 헤매면서 찾아다니질 않았을 테지만, 사병이 부대밖에 살림 차릴 수도 없는 것이, 또 설사 영외거주를 할 수 있다 하더래도 우리 한 선생님은 한 달 후면 월남으로 떠나야 하는 파월특명을 받고 있는---, 이걸 어떻게 하나."
박 상사 부인이 정말 안타까운 듯 영주의 손을 잡고 쓰다듬으며 하는 말을 듣고 영주는 그 자리에 무너지듯 주저앉아 넋 잃은 사람이 혼자 말하듯 중얼거렸다.
"
월남엘 간다고요? 오빠---? 안돼. 그건 안돼. 내가 얼마나 고생해서 찾아왔는데 만나자마자 헤어지라고---? "
"
영주 양, 정신 차리 일어나요. 차차 얘기해 되는 걸 내가 공연히 방정을 떨어서 이 야단이 나네, 에이 입도 방정이지. 자자 집에 다 왔네요. 내 얼른 점심상 차려 들어갈 테니까 두 사람은 방에 들어가 밀린 얘기 나눠요."
박 상사 부인이 등을 떠밀며 권하는 대로 방에 들어서자마자 영주는 기다렸다는 듯 와락 성주의 품에 안겨오며 오랫동안 참아왔던 울음을 터뜨렸다. 나이 어린 처녀가 혼자서 논산으로 김해로 춘천으로 인제로, 마음속에 간직한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 헤매다니면서 겪었을 갖은 고초와 외로움을 헤아려 보면서 성주는 품에 안겨 흐느끼는 영주의 어깨를 어루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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