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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겨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4건 조회 1,156회 작성일 13-01-21 19:44

본문

 
일이 다 끝났다. 선별작업과 마무리작업은 과수원에 한 달 더 머무는 폴란드사람들 몫이었다. 떠나는 날 아침에 조니가 은행에 가서 돈을 찾아와 한 사람씩 봉투에 넣어 나누어 주고 나서, 조합에서 만든 사과술 두 병씩을 여줄가리로 주었다. 그리고 사과와 배는 창고에 가서 가져갈 수 있을 만큼 가져가라고 했다.
세균은 한 달을 꼬박 일해서 이천칠백 마르크를 받았고, 성주는 사흘 늦게 시작해서 이천사백 마르크를 받았다. 그리고 오고 갈 때의 자동차 기름값이라고 따로 백 마르크씩을 더 얹어주었다.
창고 앞에 차를 대어놓고, 성주는 우선 배를 다섯 상자 싣고, 짐칸과 뒷좌석에까지 들어갈 수 있는 대로 사과 상자를 실었다. 앞좌석까지 실으니 모두 열두 상자가 실렸다. 자그마치 이백오십 킬로그램이 넘는 양이었다.
차를 산 뒤로 처음으로 무거운 짐을 실어보는 것이어서 운전하기가 조심스러웠다. 차의 앞부분이 들리는 느낌이 들었다. 성주는 겁이 나서 속력을 크게 내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차를 몰았다. 세 번이나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쉬면서 집에까지 오니 밤 일곱 시였다. 찾아갈 때 여섯 시간 걸린 길을 자그마치 여덟 시간이나 걸린 것이었다.
차에서 꾸역꾸역 내리는 사과와 배 상자를 보고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렀지만, 오복은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이 많은 걸 어떻게 다 싣고 왔대? 자동차 바퀴가 고장 안 나고 견디기 다행이네.“
네 식구가 나서서 모두 지하실 창고에 들여놓고, 과일바구니에 사과와 배를 여남은 개씩 담아서 거실로 올라왔다.

오복이 차려놓은 저녁식탁 앞에서 성주는 자랑스레 돈 봉투를 꺼내어 오복에게 주었다.
, 여보! 여기 이천오백 마르크! 결혼하고 나서 처음으로 당신에게 주는 보너스야. 당신 다 줄 테니까 당신 사고 싶은 거 사고, 마음대로 써 !“
처음으로 오복에게 부리는 호기였다.
어머, 이걸 다 나 준다고? 고마워라! 그렇게 힘들게 번 돈인데 함부로 쓸 수야 없지. 표나게 써야지. 여보, 이걸로 이참에 우리 거실 응접세트 들여놓자. 손님들이 와도 넓은 거실에 응접세트가 없으니까 꼭 이사갈 집 같아서 보기에 안 좋았거든---.“
당신 돈이니 당신이 알아서 해! 내 돈 아니야, 우리 돈도 아니고 당신 돈이야!“
성주는 아예 드러내놓고 생색을 냈다.
그래요, 고마워요 여보! 알았으니까 생색 그만 내요. 그나저나 참 오지네, 당신 한 달 월급하고 같네.“
오복의 말소리가 가볍게 들떠있었다.
그래서, 내년에도 간다고 이름 적어넣고 왔어.“
내년에도? 힘 안들었어? 당신 허리도 안 좋은데---“
괜찮아, 그런대로 할 만하던데 뭘.“
가끔은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플 때도 있었지만, 남의 돈을 그냥 벌랴 하고 이를 악물고 사과를 땄지만, 오복에게 그런 속내를 보이기는 싫었다.
휴가를 끝내고 다시 광산일을 들어간 첫날, 성주는 시월 치 노임명세서를 받아다 오복에게 주었다.
여보! 이 달에는 뭐가 이렇게 많아?“
, 이번 달이 성탄절 보너스 나오는 달이어서 본봉의 백 퍼센트가 더 나오니까 그렇지.“
정말 옹골지네! 일년 열두 달이 늘 이번 달만 같으면 살 맛 나겠네!“
오복은 거의 석 달 치 월급이 한꺼번에 들어오자 살맛이 난다고 했다. 한국의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에게도 맛있는 것 사 드시고 용돈 쓰시라고 송금도 하고, 응접세트도 가구점에 가서 마음에 드는 걸로 들여왔다. 아이들 겨울 외투도 한 벌씩 사고, 비싸서 망설여왔던 영주가 선물한 것과 같은 상표의 영양크림도 사고, 고물 흑백텔레비전을 버리고 십칠 인치 천연색 텔레비전도 한 대 사들였다.
거실이 훤하게 달라진 것을 둘러보며 오복은 이제야 사는 것 같다고 흐뭇해했다. 오복이 흐뭇해 하는 것을 보는 성주의 마음도 즐거웠다. 가정의 행복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조금은 여유있게 벌어서, 사고 싶은 것 마음 놓고 살 수 있고, 아이들 건강하고 공부 잘하고, 그리고 부부간의 금실 좋으면, 그보다 더한 행복이 어디 있으랴 싶었다.
 
며칠 후, 이 박사 내외가 영구귀국을 한다며 전화로 작별인사를 해왔다. 아이들을 먼저 보내놓고 오랜 서독생활을 정리하다 보니 할 일이 너무 많아 그동안 너무 바빠서 보지 못하고 떠나게 되어 미안하다며, 가끔 서독에 들르게 될 터이니 그 때 만나자며 전화를 끊었다. 대대로 기독교신앙을 지녀온 유복한 가정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고생을 모르고 자라 박사가 되었으면서도, 가난한 사람들의 편에 서서 억눌림과 억울함을 벗겨주고자 스스로 몸을 낮추어 노동자들의 벗이 되었던 사람, 그러면서도 온화한 인품을 지녀 억울한 소리를 들어도 한 번도 성내는 얼굴을 보이지 않았던, 착한 성품과 덕을 갖춘 사람, 그 사람이 이제 곁을 떠나간다 생각하니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다.
 

댓글목록

초롱님의 댓글

초롱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일등 찍고 들어갑니다. 오늘은 좀 오지게 아파서리... 일찍 자야 내일 일하러 갈 수 있거든요.

오늘도 잘 읽었어요. 모든 베리님들께 평안한 저녁을...

한겨레님의 댓글의 댓글

한겨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초롱님, 한 때는 유적지 발굴하면서 황량한 들판에서 야숙을 해도 끄떡없던 건강체질이셨는데, 요즘은 자주 편찮으시네요. "세월 앞에서는 장사 없다!"라는 옛어른들의 말씀이 실감 납니다.
편안히 푸욱 주무시고 건강 회복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Noelie님의 댓글

Noeli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초롱님 이틀 전에도 아프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아직 완쾌되신 게 아니시군요. 날씨 때문에 감기 몸살 나신거 아닌가 합니다. 꼭 다시 건강해지시기를 노엘리가 빌어드립니다.

한겨레님
당시 한 달 과수원에서 일한 월급이 2천 7백 마르크였군요.
이런 것도 참 흥미롭습니다.

내리는 사과와 배상자를 보고 아이들이 환호성을 질렀다는 부분에 어린 시절 기억이 떠오릅니다. 한국에 요새도 있는 지 모르겠지만 제가 꼬마 시절에 큰 나무상자에 사과가 들어있어 그곳을 뒤져서 사과를 찾는 재미도 여간 아니었지요.

한겨레님의 댓글의 댓글

한겨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ㅎㅎㅎ~~~ 노엘리님도 그 왕겨 속에 묻힌 사과를 찾으신 추억이 있으시군요. 그 시절의 나무 사과상자는 사과 다 먹고나서 여러가지 용도로 쓰였지요. 모두들 가난했지만 서로를 위하는 정(情)만은 극진했던 시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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