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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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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11-27 18:29 조회1,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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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 채탄막장에서는 4진의 김창태가 단단한 탄벽을 압바우함머로 까부수어 내느라고 무아지경에 빠져 있어서 등 뒤에 사람이 온 것도 모르고 있었다. 살펴보니 아직 한 틀 자리도 까내지 못한 채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던 에릭크가 답답하다는 듯 '내가 시범을 보여 줄 터이니 너희들끼리 얘기하면서 봐라' 하고 압바우함머를 넘겨받아 탄벽에 달라붙었다. 에릭크는 간간 요령을 일러주면서 능숙하게 단 20분만에 한 틀을 세울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한 다음 다시 한번 압바우함머를 탄벽에 꽂는 시범을 보이면서 요령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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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바우함머는 공간이 생긴 탄층의 이동 하중을 최대한으로 이용하는 채탄기구다. 다시 말해서 채탄갱도가 열리고 공간이 생기면 탄층의 상하 좌우에는 지층의 압력과 암반의 무게 때문에 공동(空洞)이 생긴 쪽으로 이동하려는 힘이 생긴다. 이때 지층의 압력을 지압(地壓)이라 하고 머리 위 암반의 압력을 반압(盤壓)이라고 하는 데, 이 지압과 반압을 가장 크게 받고 있는 부분의 탄벽을 찔러주면 크게 힘들이지 않아도 탄벽이 무너진다."
   김창태가 찌를 때는 압바우함머가 아무리 오래 굉음을 내도 부스러기만 떨어지던 탄벽이 에릭크의 솜씨 앞에서는 덩어리 덩어리로 떨어져 내리는 광경에 5진 실습생들은 물론 김창태까지도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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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령도 요령이지만 힘이 좋은 것 같아. 왜 있잖아, 팔뚝심, 팔뚝심이 쎄니까 압바우함머를 자유자재로 휘두르잖아, 한형이나 나나 저걸 저렇게 한 손으로 휘두를 수 있어? 어림없는 일이지."
영학이 옆에서 보다가 풀 죽은 소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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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없으면 잇몸으로 사는 요령도 생기게 마련이니 미리부터 걱정하지 맙시다."

    여덟 개의 채탄막장을 둘러보고 6편 갱도로 내려온 5진 실습생들은 지하에서의 첫 식사를 했다. 성주와 영학은 직접 만든 과일 사라트를 넣은 빵과 레몬차를 가지고 들어 왔는데, 이명수는 김밥을 길게 말아 갖고 왔고, 인남은 베개 반 크기의 '캐쓸러'라는 이름의 보리빵을 통로 가지고 들어왔다. 인남은 그 빵을 손으로 큼직큼직하게 뜯어내 역시 통로 가지고 들어온 버터를 두껍게 발라 먹음직스럽게 먹었다. 백한식은 기숙사에 가서 한꺼번에 몰아 먹는다고 빈손으로 들어왔고, 이건우와 이기선은 카스라 빵을 들고 들어와 먹었는데, 이를 본 에릭크는 혀를 차면서 카스라 먹고는 금방 꺼져서 일 못하니 빵 가게 가서 '밀쉬브로트''오버랜더' 사다가 놓고 갖고 다니면서 먹으라고 알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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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넌 한국광산 경력도 있다고 들었는데, 오늘 둘러본 소감이 어떠냐 ? "
   꼭 한국의 도시락같이 생긴 철통에 꼼꼼한 솜씨로 토마토와 고기조각을 넣은 조각 빵을 하나씩 꺼내어 먹으며 에릭크가 성주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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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한국광산하고는 채탄의 개념이 다르다. 내가 한국에서 배우기는 서독은 장벽식 채탄법을 쓰고 있는 호벨막장이 있다던데, 오늘 본 막장은 역시 경사 때문에 호벨 설치가 안 되는 모양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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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희 나라에서 그걸 배웠다? 맞다. 여긴 경사 때문에 호벨을 놓을 수가 없으니까 사람이 직접 압바우함머로 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지. 그러나 여기 6갱도에서 새 구스타프 갱도 쪽으로 나 있는 운반갱도를 따라 14킬로미터를 가면 호르텐 수직갱도에서 들어오는 6편 갱도와 만나는데 거기 9번 갱이 호벨막장이다. 너희 나라 광산에서는 어떻게 채탄을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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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내가 개념이 다르다고 했지? 그건 독과 한국의 탄층 모양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야. 여기 23갱은 경사 탄층인데도 불구하고 탄층은 떡시루 비스듬 세워 놓은 것 모양으로 마치 규격을 지키는 것처럼 일정한데, 한국은 이게 모두 제멋대, 내 판단으로는 한국과 독일의 지층 형성 과정이 달라서 그럴 . 독일은 석탄층 형성기 직후 빙하기에 들어가 오랜 세월 지층의 변동이 없어서 석탄층이 꼭 시루떡 층처럼 보전되었고, 한국은 석탄층 형성 이후 지진과 화산활동으로 지각 변동이 심해서 독일처럼 규칙적으로 연결된 탄층은 없고 모두 석탄 창고처럼 뭉쳐 있거나 불규칙한 모습으로 곡선을 그리며 달리고 있다. 그래서 채탄방법도 너희하고는 다르다. 내가 보니 너희 경사 탄층이나 수평 탄층이나 모두 장벽식 채탄법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데 이 방법은 불규칙한 한국의 광상(鑛床)에는 응용할 도리가 없다. 한국광산에서는 '위경사 붕낙채탄법'이라는 방식으로 채탄하는데, 눈앞의 생산 경비가 적게 드는 대신에 석탄 매장량의 60% 정도밖에 캐내지 못하고 안전사고율이 높은 비경제적인 방법이다. 한국의 탄광업자들은 대부분 영세업자이어서 석탄산업에 대한 장기 투자 같은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하기 때문에, 매장된 석탄의 90% 이상을 캐어내면서도 높은 안전도를 자랑하는 독일식 구획 채탄법을 쓰지 못하고 있다. 첫째가 돈이다. 한국 탄광업자들은 안전하고 경제성 있는 채탄을 위해 너희처럼 구획 정리를 위한 사전 작업에 투입할 자금의 여유가 없다. 우선 당장 석탄이 상품화되어야 노임도 주고 자재도 살 수 있기 때문에, 채탄갱도를 열면 가장 른 시일 안으로 채탄할 방법을 택하다 보니 장기적 안목에서 볼 때는 가장 비경제적인 방법을 택하고 있는 셈이지---"
"도대체 그 채탄법은 어떤 건데, 있는 석탄매장량60%밖에 캐어내지 못하지 ?"
   에릭크는 보온병에 담아온 따뜻한 커피를 한 잔 따라 성주에게 건네주며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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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잘 설명해도 여기 하고는 상황이 전혀 다르니까 이해하기 어려울 . 독일광산은 탄층 위 아래로 우선 상반갱도(Kopfstrecke)와 하반갱도(Bandstrecke)를 열고 구획을 정리해서 상반갱도에서 하반갱도까지 뻗은 평균 길이 250미터의 긴 탄벽을 호벨로 깎아 내면서 전진하거나, 여기 23갱처럼 급경사 탄벽일 경우에는 장벽식 계단 막장(Knapp)을 만들어 밀고 나가는 방식을 쓰고 있다. 그러니 묻혀 있는 석탄 거의 모두를 캐낼 수 있지. 또 전진하면서 뒤에 생기는 채탄을 하고 난 후의 공간을 폐석과 모래로 채우는 것도 한국광산에서는 엄두도 못내는 경비가 많이 드는 안전조치다. 한국에서 책을 통해 이론으로만 알고 있던 채탄 공간 충진의 현장을 오늘 처음 보았다.

   한국광산의 위경사붕낙채탄법이란, 독일과 같이 상반갱도와 하반갱도를 열고 탄층 구획을 정리하고 나서 채탄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편반갱도(Sohlenstrecke)를 열고 탄층이 있는 지역에 이르면 탄층 하부에 좌-우로 갱도를 여는 데 이를 좌연층갱도 우연층갱도라고 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좌-우 두 개의 연층갱도가 편반갱도 바닥의 암반 위가 아니라 탄층 위에 열린 갱도라는 점이다. 당연히 안전성에 문제가 있는 극히 위험한 갱도일 수밖---, 이 좌-우 연층갱도에서 탄층을 향해 경사막장을 만든다. 실제로 여기 23갱처럼 바닥이 경사진 암반이기 때문에 경사막장이 되는 것이 아니라 철판을 깔아 석탄이 저절로 막장 밖 광차까지 미끄러져 나오도록 일부러 경사를 만들면서 막장 전진작업을 하기 때문에, 이를 두고 '위경사(僞傾斜)'라 하는 것이고, 이 좌우의 경사막장이 탄층의 끝 부분에 이르면 거기서부터는 다이마이트 발파를 해서 탄층을 털어내면서 후퇴를 한다. 그래서 '붕낙채탄법'이라고 하는데 한국광부들은 털어먹기 후퇴가 시작되는 막장을 보통 '케빙 막장'이라고 부른다. 아마 19세기 말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근대식 금광을 개설했던 미국인들이 그런 작업을 하는 막장을 가리켜 '케빙 Cabin오두막'이라고 한 데서 유래한 것 같다. 하여튼 이 캐빙 막장은 언제 어떻게 무너져 내릴지 모르는 위험 속에서 일해야 하므로 노련한 경험자들이 순전히 육감으로 일한다. 여기는 광산보안감독청이 지정한 광산보안규정이나 안전수칙이 통하지 않는 최악의 작업장이어서 광상학(鑛床學)이니 채탄기법이니 하는 이론의 말발이 서지 않는 막장 중의 막장이다."
   성주는 설명하다가 한국 광산의 '막장'을 독일어로 정확하게 번역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굴진 막장'은 독일어로 'Vor Ort'로 번역이 되지만 한국광산의 채탄막장을 독일식 최전방 채탄작업장인 'Knapp'이라고 직역하기에는 독일의 Knapp과 한국의 막장 상황이 전혀 달랐기 때문이었다. 할 수 없이 성주는 '막장'을 발음 그대로 'Makjang'이라고 말하고 나서 한국과 독의 채탄방식과 작업개념이 너무나 달라서 정확하게 번역할 단어를 찾을 수가 없다고 하면서 '막장'에 대해 설명하자 에릭크는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세 해 동안 자신들이 일할 일터를 둘러보고 나서 지상으로 올라가기 위해 6편 갱도 수갱탑 앞에 모인 5진 햇내기 광부들은 그냥 둘러보기만 했는데도 땀과 석탄먼지로 범벅이 된 시커먼 얼굴들을 서로 손가락질해 가며 한심스러워했다. 그중에서도 23갱의 이기선과 구스타프갱의 고성렬은 아예 풀이 죽어 입을 꼭 다물고 있었다. 궂은일이라고는 해 본 적이 없는 귀공자 타입의 이 두 사람은 난생처음 지하 채탄막장을 구경만 하고도 질려 버린 것이다.
   수갱탑 닭장을 타고 수직으로 840미터를 올라와 지상으로 나온 햇내기 광부들은 햇이 그렇게 눈부시다는 사실을 처음 실감한다고 저마다 한 마디씩 지껄였다. 성주를 비롯해 민준기,진흥섭,김영봉,박선태,홍성표,백한식 등 광산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빙긋이 웃으며 눈 부신 햇살을 새삼스러워하는 동료들을 둘러보았다.
5진 햇내기 광부들이 동기라고는 하지만, 서른여덟 사람 모두가 한 자리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발가벗고 서서 머리 위에서 쏟아지는 물줄기로 목욕하기는 처음이어서 그런지 서로 옆 사람 아랫도리를 유심히 보면서 장난기들이 발동했다. 궂은 건우가 목욕을 하다 말고 옷장에 가서 나무막대 자를 갖고 와서 누구 물건이 가장 큰지 서열을 정해야 한다고 하면서 이리 저리 피하는 동기들을 궂게 아 다니면서 길이를 측정해 즉석에서 서열을 발표했다.
   발기하지 않은 보통상태에서 측정한 수치임을 강조하면서 건우는 춘성이 22센티로 가장 크고, 그 다음이 인남, 준상이라고 걸걸하게 웃으며 공표를 했다. 그날부터 김춘성, 정인남, 이준상은 이름 앞에 성() 대신 순위가 붙어서 '()춘성, ()윤남, ()준상'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제12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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