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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겨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조회 2,732회 작성일 12-11-27 18:26

본문

 
마침내 지하 채탄작업장으로 처음 들어가는 아침이 밝았다. 광산 경험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흰색 면작업복에 노란 안전모를 쓰고, 안전등 축전지와 만약의 경우를 위한 일산화탄소 필터 마스크를 양쪽 허리에 차고 발가락 부분에 쇠가 들어 있어서 묵직한 안전구두를 신은 데다가 물통과 빵 봉지를 상의 양쪽 주머니에 불룩하게 챙겨 넣고 나선 모습들이 서로 흡사 공상과학영화에나 나옴 직한 외계인 같이 보였다.
엿새 후에는 파독간호사와 결혼식을 올리고 나서 광산근무를 끝내고 신부의 직장이 있는 함부르크로 떠난다는 엄화섭 통역이 광산 안전과장과 함께 교육실로 들어와 일산화탄소 필터 마스크의 중요성을 설명하면서, 아차 하는 순간에 개죽음하지 않기 위해 무겁더라도 절대 필터 마스크 통을 허리에서 떼어놓지 말라고 거듭 강조했다.
성주는 한국 광산에서 갱내 폭발이 있거나 불이 났을 발생하는 일산화탄소 가스로 인해 떼죽음을 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은 들어 알고 있었어도, 개인 휴대용 일산화탄소가스 필터 마스크가 있다는 것은 독에 와서 광산 장비를 지급 받으면서 처음으로 알고 탄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이것만 있었어도 수많은 사람이 억울한 개죽음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과 땡스님 염불하듯 입만 열면 '광산 보안''안전 작업'을 뇌까리는 상공부 광산보안 감독관들과 광산경영주들에 대한 미움이 새삼스럽게 솟구쳐 올랐기 때문이다. 필터 마스크는커녕 제대로 된 안전구두 하나 없이 고무장화 신고 군복 검정 물들인 작업복을 땀과 석탄먼지로 찌들어 송장 썩은 냄새가 나도록 입으며 지치도록 일했던 검정돼지 시절과 장비를 지급 받으면서 짐작할 수 있는 독광산의 노동환경을 비교하면서 성주는 독의 노동자들이 비교적 많은 것을 누리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 광산에서 '탄복(炭服)'이라고 하는 광산작업복만 해도 그렇다. 광산마크가 붙어있는 잿빛 작업복은 행사용이거나 가뭄에 콩 나듯 광산을 둘러보는 높고 귀하신 어른들을 위한 의전용일 뿐 실제 일하는 광부들에게 지급되는 일은 없다. 광부들은 대부분 시장에서 군복을 물들인 검정 작업복을 두 벌 사서 일주일에 한 번씩 갈아입는 데, 물론 빨래는 안사람의 몫이고 총각과 독신자들은 스스로 빨아 입거나 삯을 받는 빨래 아줌마에게 맡기기도 했다.
국영광산이고 개인 광산이고 간에 광부를 위한 개인장비 지급이란 아무것도 없이 탄복·장화·장갑은 시장에서 개인이 사야 했고, ·곡괭이··천공장대(발파공을 뚫을 때 쓰는 2미터 길이의 철창·흔히 '혼노미'라는 일본말로 불) 등 작업도구는 우선 지급하고 노임에서 공제했다. 그런데 독일광산에서는 작업복에서부터 작업화, 방진 마스크, 방진 안경, 스 필터, 장갑, 심지어 팬티, 닝샤쓰, 양말, 수건에다가 비누까지 철마다 무상으로 지급하니 비교를 아니 할 수가 없었다.
성격이 깔끔한 영학이 목욕비누를 석 달장씩 주면 부족하지 않겠느냐고 묻자, 엄 통역은 의미 있는 미소를 지으면서 '우리 한국광부들은 지급 받은 비누가 남아돈다."고 대답했다. 그로부터 한 해쯤 지난 뒤에야 그 미소의 의미를 알 수 있었는데, 체질이 약한 한국광부들은 병가(病暇)를 받는 횟수가 잦아서 비누가 남아돌았던 것이었다.
가스 필터 교육이 끝나고 5진 동료들은 배정받은 갱도별로 헤어지고, 거기서 또다시 2명씩 짝을 지어 빨간 안전모를 쓴 교육조교(Ausbilder)가 한 명씩 따라붙었다. 성주는 영학과 한 조가 되어 서른 살 중반쯤 돼 보이는 에리크라는 이름의 조교의 인솔하에 마치 한국의 닭장수들이 자전거 짐칸에 층층이 닭을 싣고 팔러 다니는 닭장처럼 생긴 수직갱도 곤라를 타고 지상에서 수직으로 630미터 아래의 5편 갱도로 들어갔다. 편반갱도는 비교적 넓고 높다는 한국 광산의 운반갱도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넓고 높고 견고했다.
한국의 광산은 복선운반갱도일지라도 여섯 자 동발에 아홉 자 갱목을 얹는 것이 고작이지만 에발트 광산의 5편 운반갱도는 반지름 2미터의 원형 철근 크리트로 견고하게 축조되어 지진이 일어나도 무너질 염려가 없을 듯싶었다.
" ! 여기가 너희 일할 23갱 입구다. 23갱은 여기 5편 갱도에서 840미터의 6편 갱도까지 30도 경사로 뻗어 있는 높이 1미터 80, 길이 약 260미터의 탄층에서 탄벽을 허물어 아래로 내려보내고 탄을 캐낸 자리에 동발을 세우는 채탄갱도로서 최근 새로 열었다. 너희 동료들이 간 안나 갱도나 구스타프 갱도에 비해서 탄질이 좀 단단해 채탄에 애를 먹겠지만, 그 대신 무너지는 일은 없어 낙반사고는 좀처럼 없을 것이다. 이 점은 너희 위해서 다행한 일이다. 오늘은 첫날이니까 5편 갱도에서 6편 갱도로 내려가며 구경만 하고, 내일부터는 6편 갱도로 들어가 배정된 막장으로 올라가 작업 요령을 익힌다. 교육 기간은 두 사람이 한 조가 되지만, 교육이 끝나면 한 막장에 하나씩 붙어 도급작업을 하게 된다."
에릭크는 갱도를 걸어가며 다정한 목소리로 이것저것 보이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작업에 대 설명을 해 주었다.

성주와 영학의 뒤에는 이기선과 이명수 조가 또 한 명의 조교를 따라 불안한 표정으로 설명을 들으며 걷고 있었고, 그 뒤에 정인남과 이건우가 역시 불안한 모습으로 사방을 기웃거리며 따라오고 있었다. 이윽고 5편 갱도에 빠끔하게 열려 있는 막장 입구로 들어선 30도 경사의 막장에서 기숙사에 보던 3진과 4진의 선진 동료들이 땀을 흘리며 작업하는 광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압바우 함머라고 하는 압축공기를 이용한 채탄기 소리가 요란한 데다가, 떨어져 나온 석탄 덩어리가 30도 경사의 암반 위로 굴러 내려가는 소리와 석탄 먼지에 겁을 먹은 이기선은 첫 막장에서 동발을 부여안고 발을 떼지를 못하고 울상을 지었다.
"
이형, 왜 그래? 좀 소란스러워서 그렇지 하나도 위험하지 않으니까 겁먹지 말고 내려와"
재촉하는 소리에 이기선은 간신히 발을 떼어 밑에 서 있는 동발을 와락 끌어안으며 울먹이는 소리를 내뱉었다.
"
이런 데서, , 이렇게 일해야 단 말이지, 난 못해, 죽어도 난 못해. 한형! 광부가 이런 건지 난 정말 몰랐어. 이런 줄 알았으면 나 독에 안 왔어 정---"
"
태권도 사범 담력은 다 어디다 팔아먹었? 겁내기는, 이 정도면 한국광산에 비하면 신선놀음이야. 지레 겁먹지 말 차근차근 눈여겨 보라, 별거 아닐 테니까."
이기선은 성주의 말에 조금은 안도가 되는지 조심조심 내려가기 시작했다.

"고생하십니다."
"
고생은 뭘, 앞으로 같이 고생할 텐데"
첫 번째 채탄막장에서 석탄을 캐어낸 공간에 동발 틀을 짜 맞추느라 분주하게 일하다가 일일 견학생들을 위해 잠시 일손을 멈춘 3진의 유대영은 방진 마스크와 방진 안경을 벗고 이마와 목덜미의 땀을 닦으며 성주가 내민 손을 반갑게 잡았다.
"
할 만합니까 ?"
"
누가 등 떠밀어서 온 거 아니, 어차피 돈 벌어 보자 왔는데, 할 만하 안 하가 어디 있나. 다 팔자려니 여기고 하루하루 넘기는 거지"
성주는 유대영이 일하다 멈춘 막장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유대영은 지금 다섯 치 굵기, 길이 일곱 자 반 들보의 머리를, 먼저 완성해 놓은 윗틀의 들보 끝에 쇠를 박아 고정시키고 들보 끝 부분은 뒷틀의 들보에 지른 살장으로 받쳐 천반에 고정시켜 놓고 가운데에 다섯 치 굵기 여섯 자 높이의 동발을 세워 놓고 있었다. 들보와 천반 사이에는 큰 목침을 들보 하나에 적당한 간격으로 세 개씩 받쳐 넣어 천반의 하중을 들보가 직접 받지 않고 밑에 세운 세 개의 동발이 나누어 받도록 했다. 이제 들보의 양쪽 끝에 두 개의 동발을 10파운드 함머로 때려 박아 넣으면 한 틀 작업이 끝나는 것이다.
23
갱은 새로 연 채탄 갱이어서 아직 도급작업 기준이 확정되지 않았지만 대충 두 틀 반이 될 것이라고 오랜 경험이 있는 에릭크가 일러주었다. 지상 교육을 받으면서 확인한 도급작업 임금 기준표에 의하면 채탄갱도 작업부의 임금 등급인 10등급이 86마르크니까, 8시간 동안 폭 2미터 높이 1,8미터 길이 7,5미터(채탄량으로는 27)의 탄벽을 허물어 내고, 그 빈자리에 세 틀의 지주(持柱)를 세우면 도급 기준량을 20% 정도 웃돌게 되니까 하루 노임이 1백 마르크가 조금 넘는 셈이었다.
그러나 독일광부나 터키·모로코 광부들에 비해 체격이 매우 작은 한국광부들이 이 도급량을 채울 수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
어때요 유형, 도급량 해내기는 ?"
"
여긴 아직 도급량이 정해지지 않아서 지금 모두들 두 틀씩만 하고 있지. 독일 애들도 마찬가지야, 도급량 줄이기 위해서 모두 입을 맞추고 두 틀에서 두 틀 반으로 작업을 마치고 있는데, 죽어라 하고 매달리면 세 틀까지는 할 수 있을 것 같"
체격이 다부지고 성주의 한 배 반은 될 정도로 우람한 손을 가진 유대영은 자신만만하고 문제없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11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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