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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회   

 
먼 길 오느라고 수고했구나야. 어데 얼굴 좀 보자꾸나!“
예순 살이 넘어 보이는 당차게 생긴 여인이 들어서는 영주를 양팔을 벌려 끌어안으며 반갑게 맞이했다.
처음 뵙습니다. 정영주라고 합니다.“
그래, 그래, 반갑다! 기냥 고모라고 불러라! 내레 네 부친을 오라버니로 모시니끼니 고모뻘이 아니갔네? 그리고 여기 이 어른은 허정숙 동지, 네 부친께서 누님으로 모시는 분이니 큰고모시다. 인사드리거라!“
큰고모님! 처음 뵙습니다. 영주라고 해요.“
오냐, 잘왔다. 반갑구나야. 오래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있구나야. 그래 그동안 혼자서 올마나 고생이 많았갔어? , , 앉으라무나, 앉아서 이바구 하자우.“
영주는 선 채로 흐느껴 울었다. 천애 고아인 줄 알고 살아왔는데, 갑자기 눈앞에 고모라는 사람이 둘씩이나 나타나 따뜻하게 맞아주니, 그 품 안으로 뛰어들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못나게시리 울긴 와 우네? 혁명원로 딸 같지 않게시리.“
큰고모라는 허정숙이 양팔로 영주를 끌어안으며 달랬다.
네 오마니 빼다 박았다고 하두만, 에미나이레 참 곱다. 이런 고운 에미나이 가슴에 안고 수절하는데, 장가가라고 한들 어캐 장가가갔어? 그리니끼니 아무도 눈에 안 들어 왔갔지.“
, , 그만 앉으라우요. 이바구 할 거이 백두산 같으니끼니.“
작은 고모의 재촉에 영주는 큰고모의 품에서 벗어나 자리에 앉았다.

영주에게서 온 편지와 사진을 받고 정하섭은 남매지간으로 지내는 허정숙과 여연구를 불러 의논을 했다. 친딸이 분명하니 이걸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 하는 것이었다. 그 무렵 평양에서는 당 고위층과 평양시민을 위한 ‘평양산원’의 현대화를 진행하고 있었다. 동양최대라고 할 만한 규모에 최신의료장비를 갖추기로 하고, 민간교류단체를 통해 서독의 기술지원을 받고 있었다. 서독 의료기사들이 와서 지멘스 등 서독의 최신 의료장비를 들여와 가동하면서 조선인 의료기사들을 교육하는 과정에서 언어의 장애로 애를 먹고 있었다. 동독유학을 하고 온 사람들이 있었지만, 일상적인 독일말은 그런대로 통했지만, 최신의료장비를 가동하는데 필요한 전문용어들은 동독에서 배운 독일어가 쓸모가 없었다. 게다가 머지않아 조선-서독 의학교류협회가 조직되면, 평양의 인재들을 서독으로 보내서 최신의학을 연수받고 돌아오도록 할 계획인데, 이들에게 현재 서독에서 사용하고 있는 최소한의 의료기술용어와 학술용어를 가르쳐서 보낼 교수 요원도 절실하게 필요했다.
여기에 착안한 허정숙이 서독국적을 가진 정하섭의 딸 영주를 서독 의료장비기사들과 같은 공식 경로를 통해 평양산원의 책임간호사 겸 독일어 교수 요원으로 초청하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서독에서 온 의료기사들의 통역도 하면서, 서독에서 들여온 의료장비 운영의 책임을 도맡는 막중한 자리였다. 이러한 허정숙의 제안은 김정일 지도자 동지의 재가를 받아 이미 서독의 관계 당국과 그 절차를 협의하는 중이라고 작은 고모가 그동안의 경과를 설명했다.
머지않아 서독의 관계 당국에서 통보를 할 터이니, 미리 마음 준비를 하고 신변 정리를 하고 있으라는 작은고모의 말을 들으며, 영주는 마음이 설렜다.
평양에 가면 아버님하고 같이 살게 되나요?“
거럼, 거럼! 두말하면 잔소리 아니네? 모시고 살다가 불편하면 딸내미 데리고 따로 나와 살아도 걱정 없어야. 평양산원 책임간호사면 부원장급이니끼니, 집도 나오고 승용차도 나온다.“
큰고모의 말에 영주는 겁이 덜컥 났다.
그런 자릴 제가 어떻게 감당해요?“
야래, 지금 무시기 소릴 하네? 영주 네래 혁명 원로의 딸이고, 공화국이 서독에서 초청하는 서독 최고의 간호사 아니가? 그걸 잊지말라우. 북조선엔 아직 너처럼 출신성분 좋으면서 독일말 잘하는 인재가 없으니끼니, 그런 걱정은 붙들어 매두라마. 에 또~ 뭐사니~뒤에는 우리 고모들도 있으니까네---“
, 잘 알겠습니다. 하라고 하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그런데 저어 작은고모님---“
? 뭐 할 말 있어?“
저어 이런 말씀 드려도 될지---? 실은 서독에 오기 전 한국에 있을 때, 수유리 몽양선생님 묘소를 참배한 적이 있습니다. 이 말씀 드리고 싶어서---“
뭐이야? 네가? 남조선에 있었을 때면, 어렸을 텐데, 어린 네가 내 부친을 어찌 알고?“
아버님과 몽양선생님의 관계를 제게 알려준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과 함께 두 번 참배하러 갔었습니다.“
거기는 일반인들은 못 들어가게 하지 않네?“
그렇기는 한데, 보통 때는 지키는 사람이 없어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들어가서 참배할 수 있었어요. 그때는 소식 모르는 아버님 찾아뵙는다는 마음으로 갔었는데, 이렇게 고모님을 만나 뵈니까, 그 생각이 나서---“
고맙구나야! 어서 빨리 조국통일이 되어야 부친묘소에 술 따라 놓고 울기라도 하갔구만---, 그때는 우리가 모두 곧 남조선을 해방하고 통일이 될 줄 알았지,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이야 누구래 상상이라도 했갔어? 다 그 흉악한 미제의 괴뢰도당들 때문이지.“
작은고모는 부친을 생각하는 듯 잠시 침묵에 잠겼다. 그 사이에 큰고모가 물었다.
, 영주야! 거 너와 함께 묘소 참배 갔었다는 사람은 뉘기야? 뉘긴데 네한테 몽양선생님 이바구를 해주었어?“
한성주라구, 제게는 단 하나밖에 없는 사모하는 사람이에요. 그 사람이 아니었으면, 저는 제 아버님을 사랑하는 여자를 나 몰라라 하고 버린 나쁜 사람으로 알고, 평생을 원망하며 살았을 거에요. 그 사람이 가르쳐주어서 아버님을 원망하는 마음이 존경과 그리움으로 바뀌었지요.“
그 사람 지금 어디 살고 있네?“
서독에서 살아요. 광부로 서독에 와서 살고 있어요. 그 사람 부친이 일제시대 때 북만주 독립군 연락원이었는데, 전쟁 때 서울에서 의용군으로 나가 지금까지 생사를 몰라요.“
저어런! 혁명전사의 아들이었구만, 그 사람도 어렵게 살았겠구나야.“
그래요! 일곱 살 때부터 어린 가장이 되어서, 갖은 고생을 다 하면서도 일류대학엘 들어갔는데, 군대에 가서 알았대요. 월북자 가족은 아무리 똑똑해도 한국에서는 가는 곳마다 빨강 신호등이 가로막는다는 걸. 그래서 한평생 노동자로 살겠다고 광산으로 들어가 광부가 된 사람이에요.“
그런데, 네가 사모하는 남자라면서 와 그 사람하고 혼인을 안 했어?“
운명인지 뭔지 이상하게도 자꾸 엇갈렸어요. 광부로 와서 서독에서 다시 만났는데, 결혼하고 두 아들이 있는 가장이 되어 있더라구요. 그래도 우린 아직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걸 확인해서 저는 지금 행복해요. 전화해서 목소리 들을 수 있고, 저엉 보고 싶으면 달려가서 만나볼 수도 있으니까요. 그 사람 부인이 아주 마음이 넓어요. 우리 두 사람 그런 사이인 줄 알면서도 저를 동기간처럼 대해줘요. 둘이 맺어지질 못하고 헤어진 걸 오히려 안타까워하면서 말에요. 이번에 성주 씨와 헤어지면, 세 번째 이별인데, 또 만날 날이 있을 거라고 전 믿어요. 그 사람이 그랬어요. 우린 전생에 무슨 특별한 인연이 있어서 헤어져도 또 만나게 되는 거라고.“
그래 그 사람이 몽양선생님을 잘 알더란 말이지?“
, 그 사람 어린 시절의 기억이 혜화동 로터리에서 몽양선생님이 저격당하셔서 돌아가신 사건부터 시작된다고 했어요. 부모님과 온 동네 사람들이 그 일로 수근대던 광경이 기억난다고 했어요. 그래서 해방 전후의 사회주의 운동에 관심을 갖고 공부를 많이 하게 됐는데, 저를 만나서 제 출생에 관한 이야기와 아버님 성함을 듣더니, 몽양선생님 묘소로 저를 데리고 가서 함께 참배한 후에, 아버님과 몽양선생님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어요. 그 뒤부터 저는 아버님을 존경하게 됐고, 꼭 살아생전에 뵈어야 하겠다고 결심했고, 사실 서독에 온 것도 그 길을 찾기 위해서였고, 그래서 서독국적도 받은 거구요.“

밤이 새도록 해도 다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하다가, 영주는 새벽에 다시 차를 타고 저택을 나와 중간에서 다시 택시로 갈아타고 비엔나 공항을 거쳐 집으로 돌아왔다. 두 고모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의 일로 서독교회에서 목회하고 있는 서독국적의 한국인 목사 두 분을 비롯한 기독교통일운동협의회의 해외동포들과 중요한 회의가 있어서 사흘을 더 비엔나에 머문 뒤에 평양으로 돌아간다며 재회를 기약했다.

집으로 돌아온 영주는 안젤라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다 설명하고, 연락이 오는 대로 평양으로 가겠다고 했다. 다섯 해 계약이지만 그 안에 휴가도 오고, 계약이 끝나면 다시 서독으로 와서 엄마를 모시겠다고 약속했다. 안젤라는 성주와 결합하면 어차피 자기는 함부르크 집으로 돌아가려 했었다며, 생부를 찾았다면 당연히 가서 모시고 살아야 한다며 오히려 영주를 격려했다.  (용량부족이어서 아래로 연결함.)

한겨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13-01-17 (목) 20:31 5년전
(본문에서 이어집니다)
  그러나 한나는 서독에서 공부시키는 게 좋을 듯하니 자기에게 맡기고 가라고 간청을 했다. 영주는 자신이 엄마 없이 커서 잘 안다며 한 시도 한나를 떼어놓을 수가 없다고 거절했다.
  성주에게 알릴까 말까 망설이다가 떠나는 날 편지로 알리기로 마음을 굳혔다. 미리 알리면 서로가 더 괴로울 것 같아서였다. 지난 날 있었던 두 번의 기약 없는 이별이 작별인사 없는 이별이었기에 다시 만날 수 있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이별인 줄 모르고 있다가 헤어지게 되면, 다시 또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86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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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롱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13-01-17 (목) 22:03 5년전
뜨아, 오늘도 댓글 1등 또 빼앗긴 줄 알았는데 휴~~
점점 더 재밌어져요. 정말로 있었던 일이라고 생각하니 손에 땀이 다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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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13-01-17 (목) 22:23 5년전
예, 정말로 있었던 일입니다. 당시 비엔나에서 열린 기독자통일협의회에 참석한 재독교민들이 지금도 독일에 살고 계시지요. 이름만 대면 대부분 교민들이 아시는 저명한 분들-----

이 대목을 쓰면서, 일생에 딱 한 번 뵌 허정숙 선생님의 자태를 떠올리며 저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우리나라 여성해방운동의 원조이면서도, 여성운동의 방편으로서 사회주의 이념을 채택한 까닭으로 그 엄청난 업적이 묻혀져 있다는 안타까움도 너무 크고--- 언젠가 기회가 되면 추모의 글을 쓰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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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osk21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13-01-18 (금) 05:30 5년전
파독광부 50주년이라는데 정말 그 50주년에 맞는글 이네요. 정말 감사 드림니다. 이런 글들이 많이 써지는 50주년이 되면 합니다. 열심히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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