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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겨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조회 2,604회 작성일 12-11-26 19:59

본문

 
세 이레 동안의 지상교육 과정이 끝나고 각자 들어가야 할 지하작업갱도가 정해졌다. 한 방에 기거하는 대성은 탄층 높이가 80센티미터 밖에 되지 않아 기어서 들어가고 기어 나와야 하는 '안나 갱도' 채탄부로, 성주와 영학은 평균 탄층 높이 1.8미터의 23번 갱도 채탄부로 들어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막장 탄층 높이 평균 2.5미터의 '구스타프 갱도'에 들어가게 된 동기들은 나중에서야 그곳이 '서독의 아오지 탄광'임을 알게 되었다.

   서독에 도착해서 세 번째 맞는 토요일, 월요일이면 마침내 싫 앞으로 세 해 동안 땀 흘리고 일해야 할 지하 막장을 처음 대면한다는 긴장감 때문인지 5진 동기들은 방마다 둘러앉아 이 사람 저 사람들로부터 전해 들은 막장 형편과 사정 이야기를 서로 주고받으며 신세 한탄 팔자타령을 늘어놓았다.
"
교육 끝나고 도급작업 들어간 4진 친구들 하는 얘기로는 여기가 '서독의 아오지', 개발공사에서 우리가 교육받을 때는 서독광산은 탄맥이 모두 수평이고 기계화되어 있어서 힘들 일이 없다고 했지만, 여기는 서독에서도 유일하게 기계화할 수 없는 악조건의 막장만 있다는 거야. 탄맥이 30도 경사로 서 있는 가파른 비탈이, 게다가 바닥은 석탄층과 맞닿았던 반질반질한 바위 층이지, 발 디디고 일하는 게 꼭 서커스 하는 것 같다는 게야."
   강원도 태백 광산지대에서 건살포 노릇을 해 온 백한식이 들은풍월만 가지고도 사뭇 한심스럽다는 듯 궁상을 떨었지만, 악명 높은 장성탄광 금천에서 그나마 가장 위험하다는 털어먹기 막장 선산부로 산전수전 다 겪은 오상석은 여유만만했다.
"
무신 사내새끼가 귓구멍이 나통 같노. 딱 부닥쳐 보도 않고 남의 말만 듣고 걱정이 무신 걱정이꼬. 지가 가파르면 얼매나 가파르겠노, 한국에는 아예 곧추서 있는 탄통도 있는 기라. 뭐시라? 싸까쓰? 싸까쓰가 무서우면 우째 광부로 왔노? 광부는 싸까스가 아니라 막장 동발에 목숨 걸어 놓고 일하는 직업인기라. 그래서 막장 인생이라 안카나. 그라고 느그들, 교육받을 때는 내 보고 꼬부랑 글씨 모른다고 피식 피식 웃었지만 두고 보래이, 서독에서도 땅속 돈은 꼬부랑 글씨가 벌어 주는 기 아닐끼다. 두고 보래이 내 본때를 보여 줄끼구마…."
   오상석은 말씨가 심한 경상도 억양인데다가 서양말에는 영 익숙하지 못한 탓으로 독일어 교육시간 내내 주눅 들었던 일이 나름대로 가슴에 앙금으로 남아 있었던 듯 누가 일을 잘하고 돈을 많이 버는지 두고 보자고 거듭거듭 다짐을 두었다.

   아침작업반의 입갱은 여섯 시부터였지만 아직 독일식 아침 식사가 싫은 햇내기 광부들은 그 이른 아침에 서투른 솜씨로 밥을 하고 찌개까지 끓여 아침밥 먹고 출근하노라고 새벽 시에 눈 비비고 하품하면서 부엌으로 들어서는 것이 일과의 시작이었다.
   서독생활에 익숙해진 선진들은 다섯 시쯤 일어나 커피 한 잔에 빵 한 조각 우물우물 씹어 삼키고 나서, 도시락 대신에 간밤에 버터 바르고 두툼한 햄 조각 하나 넣어서 냉장고에 넣어 둔 보리빵 봉지 하나 들고 여유 만만하게 기숙사를 나서지만, 스무 해 넘게 따끈한 국물에 밥을 먹어온 습관이 단 세 이레 만에 고쳐질 수 없었던 5진 동기 대부분은 출근 시간에 맞추어 아침밥 해먹는 일이 큰 일과 중의 하나였다.
12호실의 영학과 대성, 그리고 성주는 한 방에 기거하게 된 날부터 한 달 생활비로 각자 백오십 마르크를 내놓기로 하고 살림은 성주가 맡기로 했다. 세 사람 다 한국에 가족들이 있는 기혼자들이어서 생활비를 최소한도로 줄이고 송금액을 최대한으로 계산한 결정이요 합의였다. 공교롭게도 세 사람 모두 한국의 가족이 세 식구, 성주와 영학은 아들만 둘이 있었고 대성은 아들과 딸을 두었다. 나이도 동년배인데다가 가정 형편도 비슷해서 셋은 서로 뜻이 잘 통했고 그만큼 서로 위하는 마음이 남달랐다.
   주말이면 성주와 영학이 시장에 가서 배추와 무를 사다가 소금에 절여 김치 담그고, 가장 값이 헐한 돼지 발을 사다가 푸욱 고아서 하얀 쌀밥 말아먹으면 배부르고 속 든든하고 기운이 절로 났다. 그러다가 김치가 시어지면 돼지 삼겹살 2백 그람 사다가 김치찌개라도 하면 세 사람에게는 그게 더 없는 진수성찬이었다.
   한두 번은 독일 빵 먹는 습관 들여야 한다고 '밀쉬 브로트'라고 하는 베개같이 생긴 보리빵을 사다가 버터 바르고 소금에 절인 돼지 넓적다리 고기 얄팍하게 썰어 놓은 '슁켄 부어스트'를 속마음으로 "비싸다. 되게 비싸다. 이렇게 먹다간 우리 내놓는 돈이 반 달 치 생활비밖에 안 되겠다." 하면서도 독일생활 방식에 적용한다는 명분으로 한 사람 몫으로 두 장씩 모두 여섯 장 사다가 빵 사이에 넣어 커피나 우유를 국 삼아 끼니로 해 보려고 시도해 보았지만, 목구멍으로 넘어갈 때마다 목이 메고 뭔지 모르게 못 먹을 것을 먹는 듯한 개운치 않은 기분이 들어 당분간은 빵 먹는 습관들이기를 포기하고 있었다.
   성주는 아내가 아이들에게 가끔 만들어 주던 야채샐러드를 떠올려, 삶은 감자와 사과, 껍질 깐 오렌지, 그리고 오이와 당근 조각을 마요네즈에 버무린 야채샐러드를 만들어 빵 사이에 넣어 먹는 신종 '샐러드 빵'을 고안했는데, 다행히 이것이 셋의 입맛에 맞아 지상교육 세 주일 내내 점심 도시락을 대신했다. 그러나 이 '샐러드 빵'은 수분이 많은 데다가 신선도가 맛을 좌우하는 것이어서 지하작업장에 가지고 들어가게 되면 석탄 먼지와 지열 때문에 맛이 변해 먹기가 어려울 거라는 것이 셋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
한형, 월요일부터는 지하교육인데, 점심은 어떻게 해결하지?"
영학이 막막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
그러게 오늘 저녁부터라도 다시 독일 빵 먹는 연습을 합시다. 옆방 인남이 빵 먹는 거 봤지요?"
"
그 친구 식욕 따라갈 사람 아무도 없을 걸, 베개만 한 빵 반 개를 버터만 발라서 한 자리에서 해 치우는 식욕을 누가 따라가겠---, 그 보리빵이 그렇게 든든하다는데, 그게 영 넘어가야 말이지, 아참, 한형, 인남이가 어제 뭘 사다 먹었는지 알아 ?"
   영학이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
무얼 사다 먹었는데요?"
"
그 친구 엊저녁부터 통조림 개밥을 먹고 있잖아."
"
무슨 소리요 도대체?"
"
인남이 말로는 시장에서 개 그림이 그려져 있는 통조림을 보고 종업원에게 손짓 발짓으로 개고기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하더래. 값도 거저나 다름없이 싸고 해서 열 개나 사왔다는 거야. 한 방에 있는 기선이가 개밥이라고 알려주었는데도 돈 아깝다고 하나 따서 맛을 보더니 먹을 만 하다면서 한 끼니에 한 깡통씩 따서 먹는다는 거야."
"
미련스럽기는, 가서 다른 물건으로 바꾸어 오면 되지, 돈 아깝다 그걸 그냥 먹어? 인남이두 어지간하군."
"
그런데 더 기 막힌 것은, 인남이는 맛도 좋고 간편해서 계속 끼니로 먹겠다는 거야."
"
맙소사."
                                  <10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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