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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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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01-14 19:41 조회1,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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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영주가 한나를 데리고 달려왔다. 방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영주는 어머니를 부여잡고 통곡을 터뜨렸다. 어머니는 당황한 낯빛으로 영주의 등을 쓰다듬으며 눈물을 흘렸다.
이 애가 전에 안 하던 짓을 하는구나. 그래 그동안 얼마나 날 원망했으면 이러겠느냐? 알았다! 알았다, 내가 잘못했다. 다 내 잘못이다. 어린 너를 그렇게 밀어내는 게 아니었는데. 알았으니 그만 울어라!“
아니에요, 아니에요, 어머니! 어릴 때 사랑해주신 생각만 했어요. 어머니 어디 얼굴 좀 봐요. 우리 어머니 생각보다는 많이 안 늙으셨네, 아직도 고와요. 어디 좀---.“
영주는 어머니의 얼굴을 두 손으로 더듬으면서도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얼굴을 더듬는 것이 영주의 버릇이었다. 인제에서 성주를 만났을 때에도, 서독에서 성주를 뜻밖에 만났을 때에도 영주는 그렇게 성주의 얼굴을 더듬었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 채 한 달이 안 되는 한나가 영주의 그런 모습을 말똥말똥 쳐다보다가 어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이 애가 네 딸이냐? 예쁘게 생겼구나, 이름이 뭐지?“
한나야, 인사드려라. 할머니시다.“
영주가 한나에게 할머니께 인사드리라고 하니까, 한나는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안젤라 할머니 말고, 할머니가 또 있어?“
으응, 한나야, 이 할머니는 한국할머니야.“
한나는 영주의 말에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귀엽게 인사를 했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한나에요.“
오냐, 내 새끼, 어디 이리 좀 오너라.“
어머니는 영주를 피붙이라고 여겨왔던 터라 서슴없이 내 새끼라며 한나를 끌어안고 볼을 비벼댔다.
애비 안 닮은 모양이구나, 제 에미 빼다 박았구나.“
어머니는 소중한 듯 한나를 품에 안고 내려 놓을줄을 몰랐다.
 
근무일 텐데 어떻게 왔어?“
오복이 영주에게 소리를 낮추어 물었다.
언니 전화받고, 병원에 전화해서 급한 일이라고 떼를 써서 한 주일 휴가 받았어.“
한 주일이나?“
, 나도 어머니 모시고 구경 다니는데 따라다니려고, 그래도 되지 언니?“
영주 씨가 그래주면 나야 좋지. 그런데 윤기 아빠가 어떨까 몰라---.“
왜요, 언니?“
몰라서 물어? 어머니도 옆에 계시겠다, 무심결에 착각하고 영주 씨하고 나하고 바꿔서 생각할 지도 모르잖아.“
호호호~ 언니도 차암~ 웃기는 소리도 잘하셔, 설마 그럴라구?“
영주는 어색할 수도 있는 오복의 뼈있는 농담을 요란스러운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얘는 금방 울다가 금방 호호거리기는, 애 엄마가 됐어도 어릴 때 그대로구나. 참 잘도 웃더니---.“
어머니는 오복의 눈치를 살피며 영주를 가볍게 나무랐다. 그건 나무람이 아니라 영주를 딸로 여겼던 시절에 대한 회상이었다.
글쎄, 어머니, 호호호, 언니가 아직도 오빠를 확실하게 믿지 못하는 모양이에요. 오빠가 어머니 옆에서는 언니하고 나를 바꿔서 생각할지도 모른대요, 호호호~. 그런데 참 언니! 이젠 그런 걱정 안 해도 돼.“
영주는 호호거리며 웃다가 무슨 생각이 났는지 정색을 하고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오복이 물었는데 영주는 어머니에게 대답했다.
어머니, 나 어쩌면 이북으로 갈지 몰라요. 아버지를 찾은 거 같아요.“
뭐어? 이북으로? 그리고 아버지를 찾은 거 같다니? 찾았으면 찾은 거지, 찾은 것 같다는 건 또 뭐냐?“
제가 서독어머니한테 양녀로 들어가서 서독국적을 갖고 있거든요. 그래서 오래전에 서독적십자사를 통해서 북한으로 가신 제 생부의 생사를 확인해 달라고 탄원서를 낸 적이 있거든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회가 되면 알아봐 준다고만 했었는데, 보름 전에 연락이 왔어요. 마침 서독적십자사 직원들이 평양에 들어갈 기회가 있어서, --섭이라는 분이 평양에 살고 계시는 걸 조선적십자사를 통해 확인했는데, 정작 본인은 남조선에 자녀가 없다고 하시더래요. 그도 그럴 것이 아버지는 제가 세상에 태어난 사실을 모르시고 이북으로 가셨거든요. 그래서 그런 사연을 말하고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하니까, 제가 태어날 때의 전후 사정과 어머니의 이름을 밝히는 편지를 써서 제 사진하고 보내면, 조선적십자사를 통해서 그분에게 전하겠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아버님께서 육이오 전후에 함께 사셨던 무당 소화가 제 생모이며, 저는 아버님께서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계실 때 옥중에서 태어났고, 생모는 산욕으로 옥중에서 숨을 거두었다는 내용의 편지와 제가 서독에 와서 처음 찍은 사진하고, 요즈음 찍은 사진을 보냈거든요. 답이 오고 아버지가 확실하면, 저 이북으로 가서 아버지 모시고 살려구요.“
, 그러지 말고 여기서 착한 사람 만나 결혼하고 살아라. 북한 땅이 어떤 곳인지도 모르면서 또 낯선 곳으로 간다고 그러냐. „
어머니가 애타는 듯한 목소리로 말렸지만, 영주의 결심은 확고했다.
아니에요! 전 아버지를 꼭 만나야 해요! 만나서 생모의 억울한 한을 풀어드리고, 태어난 이후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아버지의 사랑도 받고 싶어요. 결혼이요? 결혼은 다시 안 해요. 언니한테는 미안한 일이지만, 죽을 때까지 나는 오빠를 가슴에 품고 살 거야. 오빠는 나 철들 때부터 내게는 하늘이었고, 아버지였고, 단 하나뿐인 남자였으니까. 이렇게 말해서 언니 미안해! 하지만 나 언니한테는 빤한 거짓말 하기 싫어. 언니가 다 알고 있는데, 거짓말한다고 믿지도 않을 거구, 그리고 나 멀리 떠날 거니까 다 털어놓을거야.“
그래, 괜찮아, 영주 씨! 어차피 윤기 아빠 가슴 속에는 지금도 영주 씨 품고 있는 거 내가 진작부터 알고 있는 사실이니까 마음 놓고 털어놓아. „
그러고 있는데, 병원에 마지막 검진을 받으러 갔던 성주가 돌아왔다.
? 영주 왔네? 어떻게 알고?“
언니가 전화해서 왔지. 눈 다쳤다면서? 이젠 괜찮아?“
으응, 다 나았대.“
한나가 아이들 방에서 쪼르르 달려나와 외삼촌을 부르며 성주의 팔에 안겼다.
오냐! 한나도 왔구나.“
한나를 번쩍 들어 안으며 성주는 오복의 눈치를 살폈다. 오복과 영주의 분위기가 어쩐지 예사롭지 않아서였다.
영주 씨가 아버님 소식을 들었대.“
오복이 한나를 받아 안으며 성주에게 알렸다.
? 어떻게?“
성주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영주에게 물었다.
평양에 살고 계시데. 서독적십자사에서 조선적십자사 통해서 찾았는데, 아버님은 남조선에 자식이 없다고 하시더래. 당연하지 뭐, 내가 옥중에서 태어난 걸 아실 턱이 없으니까.“
그래서?“
내가 자세한 내용을 편지로 써서 사진하고 같이 적십자사에 갖다 주고 답장을 기다리는 중이야.“
참 잘됐다! 하지만 아버님이 확실하면 어쩌려구?“
어쩌기는? 만나뵈어야지! 방도가 있다면 내가 이북으로 가는 게 제일 좋챦아 ?“
북한으로? 그건---, 좀 생각해보자.“
성주는 가슴을 찌르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아버지를 만나러 북한으로 가겠다는 영주의 심정을 너무나도 환하게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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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elie님의 댓글

Noelie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가슴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하는데요. 당시 동서독은 가족 방문이 가능했지만 한국은 어떤 시절이었데......

가슴이 너무 아픕니다. 한겨레님 소설 읽으면서 우리 윗 세대분들의 삶 때문에. 사실 당시 한반도에서 누구의 삶인들 크게 나았을까 싶어서 입니다.


초롱님, 한겨레님 두 분 모두 재통일 이전에 기차타고 베를린 가셨던 기억이 생생하시지요?  동독을 통과할 때 기차안에서 여권에 도장을 찍는데, 한국인의 경우는 그게 너무 위험해서 안된다고 독일 정부에서 따로 조처를 해주었지요. 여권에 직접 도장을 찍는 게 아니라 별도의 종이에 통관도장을 찍는 방식으로요.


한겨레님의 댓글

한겨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의 댓글

동료광부가 서베를린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는 고향소꼽장난 시절의 각시를 찾아간다고(속마음으로는 청혼하려고), 싸구려 중고차 한 대 사 갖고, 동독지역을 지나 서베를린까지 찾아가는데 동승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소꼽장난 각시의 환대를 받았지만 피로에 지친 1박 2일의 여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Frankfurt 표지판만 따라가다보니 아무래도 이상한 겁니다. 서독에 온지 석 달밖에 안됐는데 서독의 Frankfurt/am Main 말고 동독에 Frankfurt/am Oder가 또 있는 줄을 깜깜 모르고 열심히 Frankfurt 표지판만 따라 동독 깊숙히 들어간 겁니다. 결국 아우토반 경찰초소에 들러 물어보니 반대방향으로 들어간 겁니다.  경찰이 알려주는대로 서독으로 가는 아우토반을 밤새 달려 서독으로 나오니 또 한번 황당!!!  갈 때는 하노버를 거쳐 동독국경으로 들어갔는데, 나올 때는 하노버와는 2천리도 더 떨어진 남독의 어느 이름모를 소도시로 탈출, 출발지인 레크링하우젠까지 돌아가는데 장장 또 8시간, 그래도 동독 오지에서 미아 신세가 되어 북한으로 끌려가지 않은 것만도 천만다행이라고 안도의 숨을 내어쉰 일도 있었답니다.


Noelie님의 댓글

Noelie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의 댓글

깔깔깔깔깔.....숨 넘어 갑니다.^^  겨울 밤에는 한겨레님 모시고 밤이 새도록 이런 이야기 듣고 싶습니다.

당시 누구는 한국의 부모님이 그리워서 집주인 전화를 가지고 한국에 몇 시간 전화를 했더니 전화 요금이 세 달치 집세보다 더 나와서 다 물어주고 쫒겨 났다는 이야기. 그때는 1분에 1유로 정도 했었지요? 이런 이야기 들이요.

아 그런데 철딱서니 없이 웃다보니, 그 당시 실제로 납북되는 경우도 있었지요.

한겨레님, 그런데 독일어가 에고 정말 해괴한 언어입니다.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마인강은 남자(Der Main)인데 풀란드 국경에 있는 오더강은 여자(Die Oder)라는 군요. 그래서 그 도시는 Frankfurt an der Oder, 라인(Der Rhein)강은 남자고 엘베(Die Elbe)강은 여자고. 무슨 남녀는 그러고 가리는 지 원.

오늘 밤 안녕히 주무세요.


한겨레님의 댓글

한겨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의 댓글

아하 ! Frankfurt/an der Oder 였군요 ?  그 때는 그저 겁이 잔뜩 나서 비몽사몽 가운데 Frankfurt만 보고 달렸으니 an der Oder 인지  am Mein 인지 구별도 못했지요. ㅎㅎㅎ.
재독교민 납북사건을 다룬 단편소설 <라인강의 갈매기>를  이 소설 연재 끝나면, 올려드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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