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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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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01-13 22:06 조회1,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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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는 오복과 아이들을 태우고, 자동차를 산 후 처음으로 고속도로를 달려 프랑크푸르트공항으로 어머니 마중을 나갔다.
아이고, 내 새끼들 많이 컸구나!“
아이들이 할머니를 부르며 달려가자, 손자들을 끌어안는 어머니의 자태가 너무 많이 늙으신 것 같아 성주는 어머니 얼굴을 바로 볼 수가 없었다. 가슴 속에 치밀어 오르는 죄스러움과 부끄러움을 참으며, “먼 길에 고생하셨지요?“하고 가방을 받아드는데, 성주의 얼굴을 말없이 쳐다보던 어머니가, “큰 애야, 너 눈이 왜 그렇게 빨가냐?“ 하고 물었다. 예사로 보아서는 잘 모를 눈 속의 상처를 보신 것이었다. 그것이 어머니의 눈이었다. 자식의 모든 것을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는 어머니의 눈에는 자식의 조그마한 변화라도 금방 알아보는 예리한 본능이 있었다.
아아~그게--- 눈을 다쳤었는데 이제 다 나았어요.“
성주는 하마 눈물이 터질 것 같았지만 억지로 참고 어머니의 손을 마주 잡았다.
죄송해요. 어머님! 사는 게 바빠서 한번 가 뵙지도 못하고, 불효가 막심합니다. 건강은 어떠세요?“
걱정 없다. 위궤양이라나 뭐라나 한참 고생했는데, 너희가 초청해서 내 평생 처음으로 비행기 타고 외국나들이 한다고 그러는지, 기운이 펄펄 나고 날아가기라도 할 것 같다. 그래, 에미, 너는 고생하지 않고 잘 있었느냐?“
성주 옆에 서서 어머니를 넋 놓고 바라보고 있던 오복이 그제야 인사를 했다.
, 어머님! 무척 멀지요? 비행기에서는 좀 주무셨어요?“
야는, 잠이 오냐? 모든 게 처음 보는 거구 신기한데, 아이들이 그새 몰라보게 컸다. 네가 고생이 많았겠지, 애비는 좀 마른 것 같기도 하고, 허기는 늘 고 모양이지 언제 몸난 적이 있었더냐 ?“

프랑크푸르트에서 아헨을 향하여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 안에서 어머니가 창밖을 내다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리셨다.
새색시가 목단강 역에서 내려 소가 끄는 구루마를 타고 느릿느릿 시댁으로 가는데, 사방천지 아무리 둘러봐도 들판 끝만 보이지 집도 사람도 안 보이지 뭐냐. 어린 마음에 겁이 더럭 나더라. 여기가 말로만 듣던 저승길이 아닌가 하고, 그때야 길이 여기처럼 좋기를 하냐? 자동차가 있기를 하냐? 여기가 꼭 그 만주들판 같구나. 사방이 산 하나 없이 들판뿐이니---.“

어머니가 온 다음 날, 회 식구들의 도움을 받아 새 집으로 이사했다.
햇빛도 잘 들고, 집이 참 좋다.“
새로 사들인 아이들의 침대와 책상, 옷장을 조립하고 있는 성주의 등 뒤에서 어머니와 오복이 성주를 거들며 말을 주고받았다.
새로 지은 집이어서 집세가 좀 비싼 게 흠이지만, 아이들 공부방이 따로따로 있어서 큰맘 먹고 결정했어요.“
잘했다. 사람 사는 집은 햇빛이 잘 들어야 한다. 어제 그 집은 어디 쓰겠더냐? 어두컴컴하고 낡아서.“
그때는 급한 데다가 달리 구할 방도 없어서 어쩔 수가 없었어요.“
오복과 어머니는 그동안 밀렸던 이야기들을 끝없이 주고받았다.

이튿날 교회에서 주일예배를 마치고, 장 목사 내외를 비롯한 교회식구들과 한 회장을 앞세운 한인회 임원들, 그리고 몇몇 아헨의 원로들이 집들이 초대에 응해 선물을 하나씩 들고 왔다. 너른 거실이 그득했다. 방 가운데 빌려 온 두 개의 교자상을 펴놓고 음식상을 차린 다음 장 목사의 축복기도로 집들이 잔치가 시작됐다.
장 목사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손등을 어루만지며 치하와 위로의 말을 했다.
훌륭한 아드님을 두셔서 얼마나 든든하십니까? 듣자하니 육이오 이후 홀로 고생하시면서 세 아드님을 키우셨다 하니, 그래 그동안 고초가 얼마나 많으셨습니까?“
모자라는 애들을 이렇게 아껴주시니 고맙습니다. 전 애들이 외국에서 외롭게 살고 있다는 생각으로 늘 마음이 편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많은 분이 오고가며 함께 사는 걸 보니 시름이 다 사라졌습니다. 이젠 정말 안심입니다.“
어머니는 외롭게 살고 있을 줄 알았던 아들 내외가 차린 잔치에 많은 한국사람들이 모여들어 아들 내외를 칭찬하는 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놓이고 매우 만족하시는 것 같았다.

손님들이 다 돌아간 후, 부엌에서 설거지하면서 어머니가 궁금한 듯 오복에게 물었다.
애비가 여기서 뭘 하기에 모두들 훌륭한 아들 두었다고 칭찬이냐? 내 보기에는 그리 잘난 아들도 아닌데.“
오복이 방그레 웃으며 장난기 섞인 말투로 대답했다.
애비가 서독 와서는 훨훨 날아다녀요. 교회 집사로 봉사도 하지만, 한국에서 살 때하고는 달리 형이야 동생이야 하고 드나드는 사람들도 많구요, 글쎄 어머니, 여기로 이사 오기 전에 살던 동네에서는 서독여자와 누나 동생 하면서 지냈는데, 진짜 친누이처럼 드나들면서 이것저것 챙겨주어서 큰 덕을 보았어요.“
그래? 그것 참 모를 일이구나.“
, 어머니가 그 전에 그러셨잖아요? 애비는 타향 땅에 나가 살아야, 잘 살 사주팔자라구.“
그랬지! 사주팔자는 못 속이는 모양이구나.“
그런데 어머니! 왜 있잖아요, 어머니 맏며느리 될 뻔했던 여자, 영주 씨요, 그 영주 씨가 여기 서독에 살고 있어요.“
뭐어? 그래서? 만나봤어?“
만나기만 해요. 제가 와서 보니까, 글쎄 오빠야 누이야 하면서 애비랑 오가고 있더라구요. 어찌나 속이 상하던지---.“
왜 안 그랬겠냐? 그 애가 서독에 와서 살고 있었구나---, 그래 시집은 갔더냐?“
결혼에 실패해서 지금은 딸 하나 데리고 서독 양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대요.“
양어머니?“
서독여자한테 양녀로 들어가서, 영주 씨 지금은 한국사람이 아니고 서독사람이에요.“
국적 바꾼다고 한국사람이 서독사람 된다드냐? 그래서, 지금도 왕래가 있냐?“
아녜요, 영주 씨가 일부러 멀리하는 것 같아요. 애비 속이야 알 수 없지만---, 한번 놀러 오라고 전화해도 그러마 하고 대답뿐이에요. 어머니 오셨다고 뵈러 오라고 전화할까요?“
아서라! 공연히 꺼진 불씨 다시 뒤적거릴 필요 없다.“
참 안됐어요. 애비를 그렇게 좋아했다는데, 지척에 두고도 만나지도 못하고 애태우는 걸 보면...“
얘가~ 얘가 ~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넌 참 오지랖도 넓다. 시앗보면 부처님도 돌아앉는다는데, 안됐다니?“
애비가 말도 못하고 애만 태우는 거 제 눈에는 보이거든요. 그러니 영주 씨는 오죽하겠어요? 모르지요, 저 모르게 서로 연락이라도 주고받는지---, 그래도 왠지 모르게 남 같지 않고 동기간 같은 생각이 자꾸 들어서, 밉지도 않고---.“
그 애가 워낙 싹싹하고 붙임성이 좋아서 다들 그렇게 느끼는 모양이더라. 그때는 참 친딸처럼 서로 끔찍하게 여겼었는데---.“
시어머니는 말끝을 흐리며 부엌창너머로 먼 하늘을 응시했다. 한 때는 친딸처럼 아끼고 귀여워했던 영주를 한 번쯤 보고 싶은 마음이 왜 없으랴 짐작한 오복은 그날 저녁 영주에게 전화를 했다.
어머니가 오시고 새집으로 이사한 걸 알린 다음, 어머니가 무척 보고 싶어 하시니 일간 다녀가라고 했다. 영주가 망설이며 근무 핑계를 대고 다음으로 미루기에, 오복은 어머니 앞에서는 아는 척하지 말라며, 실은 위암으로 여섯 달밖에 못사신다고 하니 마지막으로 한번 찾아뵙는 게 도리가 아니냐고 타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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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롱님의 댓글

초롱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앗, 조회수 1등하려고 기다렸는데 로그인하고 어쩌고 좀 꾸물대다가 5등으로 밀렸어요. 일단 댓글 1등 찍고 읽기 시작합니다. 한겨레님, 수고하셨습니다. 안녕히 주무셔요.


초롱님의 댓글

초롱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엄흐나, 꽈당. 오복씨 정말 오지랖 넓어요. 아니면 해탈한 것일까요? 나 같으면 어림도 없지. 오복 독일 오기 전에 성주랑 영주가 부부처럼 지낸 거 짐작도 못 하나봐요? 제 속이 다  터져요.


ImNebel님의 댓글

ImNebel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의 댓글

짝꿍들은 약간의 질투를 더 흥미롭게 생각하는 것 같던데 자기 좋아서 그러는 줄 알고, 사랑은 너무 대범해도 별로, 우리 집에서 450m 떨어진 이웃은 서로들 너무 대범하다 보니 결국은 둘이 할 말들이 없어져 헤어지드라구요.
그런데 초롱님은 10대 같으시고 한겨레님은 강남스타일.하하하
그나저나 저 같으면 저런 경우에 짝꿍을 당장 달나라로 쏩니다.


ImNebel님의 댓글

ImNebel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의 댓글

이 말은 제가 창조해 낸 말인데요, 제 친구들은 설명 안 해도 다 이해를 하던데...
다행히 제 짝꿍도 제가 이말 꺼내면 겁내며 금방 착해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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