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는 오복과 아이들을 태우고, 자동차를 산 후 처음으로 고속도로를 달려 프랑크푸르트공항으로 어머니 마중을 나갔다.
“아이고, 내 새끼들 많이 컸구나!“
아이들이 할머니를 부르며 달려가자, 손자들을 끌어안는 어머니의 자태가 너무 많이 늙으신 것 같아 성주는 어머니 얼굴을 바로 볼 수가 없었다. 가슴 속에 치밀어 오르는 죄스러움과 부끄러움을 참으며, “먼 길에 고생하셨지요?“하고 가방을 받아드는데, 성주의 얼굴을 말없이 쳐다보던 어머니가, “큰 애야, 너 눈이 왜 그렇게 빨가냐?“ 하고 물었다. 예사로 보아서는 잘 모를 눈 속의 상처를 보신 것이었다. 그것이 어머니의 눈이었다. 자식의 모든 것을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는 어머니의 눈에는 자식의 조그마한 변화라도 금방 알아보는 예리한 본능이 있었다.
“아아~그게--- 눈을 다쳤었는데 이제 다 나았어요.“
성주는 하마 눈물이 터질 것 같았지만 억지로 참고 어머니의 손을 마주 잡았다.
“죄송해요. 어머님! 사는 게 바빠서 한번 가 뵙지도 못하고, 불효가 막심합니다. 건강은 어떠세요?“
“걱정 없다. 위궤양이라나 뭐라나 한참 고생했는데, 너희가 초청해서 내 평생 처음으로 비행기 타고 외국나들이 한다고 그러는지, 기운이 펄펄 나고 날아가기라도 할 것 같다. 그래, 에미, 너는 고생하지 않고 잘 있었느냐?“
성주 옆에 서서 어머니를 넋 놓고 바라보고 있던 오복이 그제야 인사를 했다.
“네, 어머님! 무척 멀지요? 비행기에서는 좀 주무셨어요?“
“야는, 잠이 오냐? 모든 게 처음 보는 거구 신기한데, 아이들이 그새 몰라보게 컸다. 네가 고생이 많았겠지, 애비는 좀 마른 것 같기도 하고, 허기는 늘 고 모양이지 언제 몸난 적이 있었더냐 ?“
프랑크푸르트에서 아헨을 향하여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 안에서 어머니가 창밖을 내다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리셨다.
“새색시가 목단강 역에서 내려 소가 끄는 구루마를 타고 느릿느릿 시댁으로 가는데, 사방천지 아무리 둘러봐도 들판 끝만 보이지 집도 사람도 안 보이지 뭐냐. 어린 마음에 겁이 더럭 나더라. 여기가 말로만 듣던 저승길이 아닌가 하고, 그때야 길이 여기처럼 좋기를 하냐? 자동차가 있기를 하냐? 여기가 꼭 그 만주들판 같구나. 사방이 산 하나 없이 들판뿐이니---.“
어머니가 온 다음 날, 교회 식구들의 도움을 받아 새 집으로 이사했다.
“햇빛도 잘 들고, 집이 참 좋다.“
새로 사들인 아이들의 침대와 책상, 옷장을 조립하고 있는 성주의 등 뒤에서 어머니와 오복이 성주를 거들며 말을 주고받았다.
“새로 지은 집이어서 집세가 좀 비싼 게 흠이지만, 아이들 공부방이 따로따로 있어서 큰맘 먹고 결정했어요.“
“잘했다. 사람 사는 집은 햇빛이 잘 들어야 한다. 어제 그 집은 어디 쓰겠더냐? 어두컴컴하고 낡아서.“
“그때는 급한 데다가 달리 구할 방도 없어서 어쩔 수가 없었어요.“
오복과 어머니는 그동안 밀렸던 이야기들을 끝없이 주고받았다.
이튿날 교회에서 주일예배를 마치고, 장 목사 내외를 비롯한 교회식구들과 한 회장을 앞세운 한인회 임원들, 그리고 몇몇 아헨의 원로들이 집들이 초대에 응해 선물을 하나씩 들고 왔다. 너른 거실이 그득했다. 방 가운데 빌려 온 두 개의 교자상을 펴놓고 음식상을 차린 다음 장 목사의 축복기도로 집들이 잔치가 시작됐다.
장 목사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손등을 어루만지며 치하와 위로의 말을 했다.
“훌륭한 아드님을 두셔서 얼마나 든든하십니까? 듣자하니 육이오 이후 홀로 고생하시면서 세 아드님을 키우셨다 하니, 그래 그동안 고초가 얼마나 많으셨습니까?“
“모자라는 애들을 이렇게 아껴주시니 고맙습니다. 전 애들이 외국에서 외롭게 살고 있다는 생각으로 늘 마음이 편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많은 분이 오고가며 함께 사는 걸 보니 시름이 다 사라졌습니다. 이젠 정말 안심입니다.“
어머니는 외롭게 살고 있을 줄 알았던 아들 내외가 차린 잔치에 많은 한국사람들이 모여들어 아들 내외를 칭찬하는 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놓이고 매우 만족하시는 것 같았다.
손님들이 다 돌아간 후, 부엌에서 설거지하면서 어머니가 궁금한 듯 오복에게 물었다.
“애비가 여기서 뭘 하기에 모두들 훌륭한 아들 두었다고 칭찬이냐? 내 보기에는 그리 잘난 아들도 아닌데.“
오복이 방그레 웃으며 장난기 섞인 말투로 대답했다.
“애비가 서독 와서는 훨훨 날아다녀요. 교회 집사로 봉사도 하지만, 한국에서 살 때하고는 달리 형이야 동생이야 하고 드나드는 사람들도 많구요, 글쎄 어머니, 여기로 이사 오기 전에 살던 동네에서는 서독여자와 누나 동생 하면서 지냈는데, 진짜 친누이처럼 드나들면서 이것저것 챙겨주어서 큰 덕을 보았어요.“
“그래? 그것 참 모를 일이구나.“
“왜, 어머니가 그 전에 그러셨잖아요? 애비는 타향 땅에 나가 살아야, 잘 살 사주팔자라구.“
“그랬지! 사주팔자는 못 속이는 모양이구나.“
“그런데 어머니! 왜 있잖아요, 어머니 맏며느리 될 뻔했던 여자, 영주 씨요, 그 영주 씨가 여기 서독에 살고 있어요.“
“뭐어? 그래서? 만나봤어?“
“만나기만 해요. 제가 와서 보니까, 글쎄 오빠야 누이야 하면서 애비랑 오가고 있더라구요. 어찌나 속이 상하던지---.“
“왜 안 그랬겠냐? 그 애가 서독에 와서 살고 있었구나---, 그래 시집은 갔더냐?“
“결혼에 실패해서 지금은 딸 하나 데리고 서독 양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대요.“
“양어머니?“
“서독여자한테 양녀로 들어가서, 영주 씨 지금은 한국사람이 아니고 서독사람이에요.“
“국적 바꾼다고 한국사람이 서독사람 된다드냐? 그래서, 지금도 왕래가 있냐?“
“아녜요, 영주 씨가 일부러 멀리하는 것 같아요. 애비 속이야 알 수 없지만---, 한번 놀러 오라고 전화해도 그러마 하고 대답뿐이에요. 어머니 오셨다고 뵈러 오라고 전화할까요?“
“아서라! 공연히 꺼진 불씨 다시 뒤적거릴 필요 없다.“
“참 안됐어요. 애비를 그렇게 좋아했다는데, 지척에 두고도 만나지도 못하고 애태우는 걸 보면...“
“얘가~ 얘가 ~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넌 참 오지랖도 넓다. 시앗보면 부처님도 돌아앉는다는데, 안됐다니?“
“애비가 말도 못하고 애만 태우는 거 제 눈에는 보이거든요. 그러니 영주 씨는 오죽하겠어요? 모르지요, 저 모르게 서로 연락이라도 주고받는지---, 그래도 왠지 모르게 남 같지 않고 동기간 같은 생각이 자꾸 들어서, 밉지도 않고---.“
“그 애가 워낙 싹싹하고 붙임성이 좋아서 다들 그렇게 느끼는 모양이더라. 그때는 참 친딸처럼 서로 끔찍하게 여겼었는데---.“
시어머니는 말끝을 흐리며 부엌창너머로 먼 하늘을 응시했다. 한 때는 친딸처럼 아끼고 귀여워했던 영주를 한 번쯤 보고 싶은 마음이 왜 없으랴 짐작한 오복은 그날 저녁 영주에게 전화를 했다.
어머니가 오시고 새집으로 이사한 걸 알린 다음, 어머니가 무척 보고 싶어 하시니 일간 다녀가라고 했다. 영주가 망설이며 근무 핑계를 대고 다음으로 미루기에, 오복은 어머니 앞에서는 아는 척하지 말라며, 실은 위암으로 여섯 달밖에 못사신다고 하니 마지막으로 한번 찾아뵙는 게 도리가 아니냐고 타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