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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겨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3건 조회 1,498회 작성일 13-01-12 20:21

본문

 
우선 큰집에 기거하면서 아버지는 만주에서부터 꽁꽁 감추어 갖고 온 얼마 안 되는 돈으로 중고자전거를 한 대 사서, 부평에 있는 미군 부대를 오가며 양키물건장사를 시작했다. 얼마 후에는 규모가 커져서 미군들이 직접 지프차로 남대문시장까지 물건들을 실어다 줄 정도로 장사가 잘되어서, 두 해 후에는 명륜동 삼가 맨 끝머리 비원 담장 밑의 한옥 건넛방을 세로 얻어 막내아우를 데리고 큰 집을 나왔다. 큰어머님의 구박이 심해서 동서끼리 싸움이 잦은데다가 큰아버님이 폐결핵으로 누워있어서 집안이 뒤숭숭했기 때문이었다.
큰 시동생은 요리사가 된다고 명륜동 네거리의 큰 음식점에서 숙식했고, 둘째 시동생은 남대문 시장 양키물건 가게에서 혼자 기거하고 있었다. 이사한 후 아버지는 양키물건장사를 둘째 시동생에게 물려주고, 명륜동 네거리에서 창경원 쪽으로 가는 길목에 구두수선점을 차렸다. 재봉틀 모양의 가죽봉제기구를 하나 들여놓고 손으로 꼼꼼하게 하는 수선솜씨가 소문이 나서 멀리 미아리와 아현동에서도 손님이 찾아왔다. 물자가 귀한 시절이어서 너나없이 구두를 고쳐서 신었지만, 당시만 해도 서울 장안에 솜씨 있는 구두수선점이 몇 안 되었기 때문에 벌이가 아주 좋았다고 했다.
이사한 집에서 어머니는 성주 밑으로 두 아들을 낳았다. 여기서부터는 성주가 기억하고 있는 유년시절이었다. 성주의 어린 시절 기억은 집 건너편 멀리 있는 채석장으로부터 시작된다. 바위에 구멍을 뚫고 다이나머이트를 넣은 다음 사방에 사람들의 근접을 막고 심지에 불을 붙이면 잠시 후 콰앙~쾅 우르르하면서 집채만한 바위덩어리들이 하늘 높이 떠올랐다가 평지에 굴러떨어진다. 그러면 석수장이들이 달려들어 먹줄을 튕기고 끌과 망치로 네모 반듯하게 다듬어서 그 옆에 짓고 있는 성균관 대학 본부 건물터로 옮겨 놓는다.
발파광경과 돌을 다듬는 석수장이들의 손놀림도 구경거리였지만, 그 큰 돌을 옮기느라고 굵고 긴 홍두깨 양쪽 끝을 두 사람의 어깨에 걸치고 동아줄로 묶은 돌을 들어 올려 영차영차 하면서 네 사람이 발을 맞추면서 나르는 목도질도 흥이 나는 구경거리였다. 더 재미있는 것은 멀리 옥류산 중턱에서부터 대학건물 공사장의 언덕까지 철로를 깔고, 기차 바퀴 여섯 개가 달린 튼튼한 목판차에 큰 돌들을 하나 가득 싣고 달려 내려와 쏟아내는 광경이었다. 구경하다가 마음씨 좋은 아저씨를 만나면 한 번씩 목판차를 타고 내려오는 아슬아슬한 횡재도 있었기에, 성주는 막냇삼촌을 졸라 날마다 동네 조무라기들과 온종일 채석장에서 살았다.

채석장 아래 언덕길을 조금 내려가다가 보면 오른쪽으로 옛날 조선 시대에 성균관 유생들이 기거하며 공부를 했다는 방들이 줄지어 붙어 있는 행랑이 길게 이어져 있고, 그 너머로 비원 담장 밑의 성주네 집이 건너다보였다. 조금 더 내려가 평지에 이르면 왼쪽으로 기와를 얹은 담장이 나오고, 담장 모퉁이에 나 있는 덜밋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명륜당이 나왔다. 명륜당 뜰에는 가지가지 정원수들이 심어져 있었고, 그 뒤편에 오백 년이 넘었다는 우람한 은행나무 두 그루가 마주 보고 서 있었다. 그리고 은행나무 뒤로 대성전이 보였다. 대성전에서는 가끔 갓 쓰고 도포 입은 근엄한 할아버지들이 구름처럼 모여 제사를 지내며 큰 소리로 무얼 읽는 광경도 큰 구경거리였다. 이 모든 곳이 성주의 어린 시절 놀이터였다.
아버지는 구두수선으로 돈이 조금 모이자, 내 집 마련을 한다며 산등성이 하나 넘어 명륜동 삼가 산 일 번지 공동묘지 건너편, 해방 이후 월남한 이북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는 ‘특설반’이라고 불리는 산비탈 동네 아랫자락에 방 두 칸짜리 자그마한 집을 한 채 샀다.
성주의 기억으로는, 마루에서 내려서서 대여섯 발자국 걸어나가면 맑은 물이 흐르는 실개천이 있고, 그 실개천 건너로 빈터가 있어서 어머니는 그 빈터에 밭은 일구어 열무와 배추를 심었다. 나중에는 그 자리에 우리를 만들고 돼지도 키워 어느 만큼 크면 돼지장사꾼이 와서 사가기도 했다.
이사를 하던 해 사월에 성주는 산등성이 너머에 있는 혜화 국민학교에 입학했다. 입학하는 날 맏아들의 손을 잡고 학교 정문을 들어서며 흐뭇해하던 아버지의 모습이 지금도 엊그제 일처럼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그리고 두 달이 조금 더 지나 육이오 사변이 터졌다. 어머니는 그때 사람들은 모두 육이오 사변이라고 했다며, 육이오 동란이니 육이오 전란이니 하는 말들을 마다하고 꼭 육이오 사변이라고 말했다.
한강 다리가 끊겨 꼼짝없이 서울에 갇혀 있다가, 어느 날 밤 찾아온 만주시절의 독립군 동지를 따라나가서 소식이 끊긴 아버지를 기다리며 늦은 밤 마루에 나가 혼자 오도카니 앉아 날이 새도록 숨죽여 흐느껴 울던 어머니의 애간장은 아마 그때부터 타들어 가기 시작했으리라. 스물여섯 살의 청상과부가 전쟁통에서도 세 아들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암탉이 병아리들을 죽지 아래 숨기듯 감싸안고 갖은 험한 일을 겪으며 먹이고 키우는 동안의 숱한 가슴앓이가 타들기 시작한 애간장을 더욱 달구었을 것이고, 온 동네의 칭찬과 부러움을 사며 착하게 자란 맏아들이 기대와는 달리 엇나가기 시작했을 때부터 어머니의 속은 숯검정이 되었으리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성주는 돌이킬 수 없는 회한에 울음을 터뜨렸다.
아아~ 이 만고의 불효자야! 제 앞갈망도 못하면서 네가 무슨 의식이 있는 놈이라고 게 꽁지만 한 알음알이를 가지고 주제넘게 역사가 어떻구, 민주화니 사회정의니 하고 나불거리고 있는가? 하늘에 부끄럽지도 않은가?“
수없이 자신을 질책하며 성주는 밤을 꼬박 새웠다. 자식 노릇 하나 제대로 못 하는 주제에 여기저기에서 잘난 척 나서서 역사니 사회니 하고 떠든 자신이 너무나 부끄럽고 죄스러웠다.

다친 눈이 아물고 눈가리개를 떼어낸 후, 물체가 정확하게 보이는지, 다른 물체가 겹쳐서 보이지는 않는지, 움직이는 물체를 눈동자가 정확하게 따라가며 보는지 등등 첨단장비를 이용한 검사를 다 마친 다음에야 한 주일에 한 번씩 두 번만 더 병원에 와서 마무리 치료를 겸한 검진을 받고 나서 일터로 복귀하라는 의사의 처방전을 받고 성주는 퇴원했다.
퇴원하는 날, 광산사택을 관리하는 회사로부터 편지 한 장이 왔다. 일 년 반 전에 신청한 광산사택이 이제야 차례가 되었으니 보러 오라는 통지였다. 일곱 세대가 살도록 지어진 아파트식 사층 건물로 지은 지 한 해밖에 안되는 새 건물이어서, 옛 광산사택보다는 집세가 비쌌지만 그래도 개인 집보다는 헐했다.
넓은 거실과 부부침실, 침실을 겸한 아이들 방 두 개, 넓은 부엌과 욕조가 있는 화장실과 아니들 방 옆에 작은 화장실이 또 하나, 그리고 부엌보다 조금 작은 발코니로 나가는 문은 넓은 미닫이 창문으로 되어 있었다. 지하실에 침실 크기의 창고를 하나 전용으로 사용할 수 있었고, 위층 지붕 밑 공간은 세탁물 공동건조실로 사용하게 되어 있었다.
오복이 마음에 든다고 좋아라했다. 무엇보다도 학교 다니는 아이들이 점점 커가는데 좁은 방 하나에서 부비대는 걸 보면서 애를 태우던 차에 저마다 방 하나씩을 차지하게 되고 화장실도 따로 있다는 게 아주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집이 비어있어서 당장 이사하겠다고 했으나, 관리회사에서 전기, 수도, 배수관의 점검이 끝나야 입주할 수 있다며, 그다음 주 토요일로 이사 날짜를 잡아주었다. 한국에서 어머니가 오시는 다음 날이었다.
 

댓글목록

한겨레님의 댓글

한겨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지금 성균관대학 캠퍼스는 이때의 채석으로 공터가 된 자리에 현대식 건물을 지으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옥류산 채석의 역사는 멀리 조선의 영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영조가 청계천을 확장하는 개천(開川) 공역을 시작하면서, 옥류산 화강암을 떠다가 청계천 바닥에 박석을 깔라고 명함으로서 사상 유례없는 대공역이 시작되고, 그 캐어낸 돌을 청계천으로 운반한 길(옥류산 자락에서 비원과 창경궁의 동쪽 담을 따라 나 있는 길)을 "박석고개"라고 했습니다.

초롱님의 댓글

초롱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한겨레님 글 정말 잘 쓰셔요. 여러 광경들이 눈에 보이는 듯해요. 게다가 제가 경험하지 못한 그 당시의 사정을 알 수 있어서 흥미진진입니다.

이 소설이 꼭 출판되기를 기대하는 사람으로서 가끔씩 살짝 걸리는 곳을 발견하면 말씀드려도 될까요? 여기서 댓글로 독자들의 의견 및 이견을 받으신다면 글이 더욱 효율적으로 다듬어질 수 있을 듯한데 어떻게 생각하셔요? 그게 불편하시다면 앞으로는 제가 쪽지로 알려드리겠습니다.

첫 문단에서 막내아우라면 아버지의 막내아우인지, 성주의 막내아우인지 언뜻 읽으면 헷갈리고요, 그리고 둘째 문단에서 큰 시동생, 둘째 시동생이란 단어가 나오는데 아마 어머니의 시동생이겠지요? 화자가 성주, 아버지, 어머니 사이에서 가끔 옮겨가는데 독자의 입장에서 약간 헷갈립니다. (저와 생각이 다른 독자분들이 계시다면 활발한 의견 개진 부탁드립니다. 저 때문에 도리어 오류가 난다면 곤란하잖아요.)

외람되었다면 용서를...

한겨레님의 댓글의 댓글

한겨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초롱님, 고맙습니다. 말씀을 듣고보니 정말로 헷갈리게 이 사람 저사람으로 옮겨가며 썼네요. 어머니에게서 들은 옛이야기를 그대로 옮기려다보니 역시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의 어설픈 솜씨가 드러난 것 같습니다. 이런 데서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가 나타나는 겁니다. 여기에서는 초롱님이 말씀하신 다른 독자들의 의견을 더 듣고자 하는 마음으로 수정하지 않고, 나중에 혹 출판을 하게된다면 수정하겠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ImNebel님의 댓글의 댓글

ImNebel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한겨레님, 안녕하세요.
님이 절 저쪽 직장에서 실직시키는 바람에 하도 할일이 없어 이쪽에서는 좀 일이 있을까 어슬렁거리고 있는데요,
저도 초롱님처럼 왜 갑자기 큰아버님이 큰 시동생으로 변했을까 알쏭달쏭했어요,
님이 혹시 재혼이라도 하신 걸까...
아직 아니라고 지나가는 골목에서 시늉이라도 해주시던가,
아무튼 이제는 계속 재미있어요, 그래서 쉬는 시간이나 방학 같은 기분입니다.
안녕히계세요.

한겨레님의 댓글의 댓글

한겨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님을 제가 실직시키다니요 ? 원 천만의 말씀을----  연금으로 겨우 살아가는 가난한 일흔 살의 노인을 마당쇠로 데려가겠다는 할머니가 나타나신다면 신상명세를 당사자 할머니에게 직접 알려드리겠다는 것이지 중간역할하시는 분을 배제하겠다는 뜻은 아니었는데---

ImNebel님의 댓글의 댓글

ImNebel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님, 잘 생각해보세요.
저의 임명은 맞춤입니다.
노엘리님은 사람 모셔오는 역할 저의 임무는 그 사람들을 서로 맞추는 건데 저의 중간거래 없이 하시겠다니 분명 전 실직이거들랑요?

초롱님의 댓글의 댓글

초롱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아이구, 그런 말씀 마셔요.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라니요? 한겨레님이 프로가 아니면 누가 프로겠습니까?

일단 문장이 참 편안히 읽히면서도 유려하고 내용이 유익합니다. 한겨레님 아니면 쓸 수 없는 내용이지요. 부디 출판되어 널리 읽혔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참견했어요. 

전 글 쓸 때 누가 옆에서 지적해주면 참 좋더라구요. 사고도 한결 명확해지고 문장도 훨씬 유려해지고요. 제 생각에 한겨레님도 언제 어디서나 꾸준히 공부하시는 스타일이라 글벗들과 더불어 자신의 작품을 논하는 걸 싫어하시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을 붙였습니다.

사실은 저 아래 61, 62회에서 저는 오복의 심리가 약간 걸렸어요. 같은 여성으로서 그녀의 태도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고 해야 할까요. 제가 62회 밑에 댓글로 달겠습니다. 비밀글로 다는 것보다 공개로 하면 여러 잇점이 있을 것 같아요. 혹시 다른 여성분들도 보시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말씀해주시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어요.

괜찮으시죠?

ImNebel님의 댓글의 댓글

ImNebel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초롱님, 안녕하세요.
전번같은 님의 글 또 그런 이야기 좀 올려주세요.
님이 삐져 누워 계실 때 부군께서 넘어지셔 도움을 청했을 때 그분께는 미안하지만 너무 재미있었어요.
전 님의 삐진 모습에 동료애를 느꼈답니당!

초롱님의 댓글의 댓글

초롱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안갯속의 님, 안녕하세요.

속 좁은 제 모습에서 동료애를 느끼셨다니 왜 이리 반가운지요. 전 오복이 왜 이렇게 대범하냐고, 이게 정상이냐고 따지고 있는 중이잖아요? 하하하.

한겨레님의 댓글의 댓글

한겨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괜찮다뿐입니까, 정말 고마운 일이지요. 사실 가방끈이 짧아서 제대로된 문학수업이나 문장 작성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어 나름 많이 불안해하고 있거든요. 많은 분들이 초롱님처럼 도움말을 주신다면 제게는 그야말로 보약 정도가 아니라 뼈와 살이 될 겁니다.

초롱님의 댓글의 댓글

초롱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글이라면 한겨레님이 저보다 더 잘 쓰시지요.  제대로 된 문학 수업이나 문장 교육을 받아보지 못하기론 저도 마찬가지랍니다. 독자들이나 좋은 글벗들이 인터넷을 통해 고쳐주고 수정해주는 걸 바탕으로 공부했거든요. 근데 그게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그래서 저도 좀 나누려고요.

목로주점님의 댓글

목로주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옥류산이라면 혜화문이 있는 거기 성벽에서 이어지는 그 산인가요? 아무리 혜화동과 성대를 떠올려도 산이라고 할 곳은 거기 밖에 없는 것 같아서요. 성대가 예전에 산이었다니 그럼 그 때 다 깍아냈다는 뜻이네요.

그러니까 예전의 서울은 농업과 어업은 물론 광업까지 활발...

한겨레님의 댓글의 댓글

한겨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맞습니다 ! 혜화문에서 성곽길 따라 오르다보면 지금은 말바위라고 하는 쉼터가 있는 크지 않은 산이 바로 "옥류산"입니다. 성균관대로 내려가는 산길에 "옥류정"이라는 정자가 있고, 옥류정 앞에서 샘솟아 나오는 "약수터"가 있고 이 약수가 다시 지하로 스며들어 그 아래 비원 숲속에 조선시대 임금들이 비빈처첩들과 노닐던 태극정 앞의 "옥류천"이라는 약수터에서 다시 샘솟습니다.
삼청공원쪽에서 북쪽으로 올려다보이는 "말바위"는 제 어릴 적에는 모두 "벼락바위"라고 불렀는데, 언제부터 말바위로 바꾸어 불렀는지 모르겠습니다. 
일제시대에는 총독부 청사와 총독관저에 대한 미군의 폭격을 막기 위한 고사포부대 진지가 있었던 옥류산 정상에는 1970년대초까지만 해도 청와대 공중공격을 방어하는 수도경비사의 "발칸포 중대"가 주둔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그 일대에 "와룡공원"이 조성되었다고 하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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