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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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겨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3건 조회 1,498회 작성일 13-01-12 20:21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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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님의 댓글
한겨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지금 성균관대학 캠퍼스는 이때의 채석으로 공터가 된 자리에 현대식 건물을 지으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옥류산 채석의 역사는 멀리 조선의 영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영조가 청계천을 확장하는 개천(開川) 공역을 시작하면서, 옥류산 화강암을 떠다가 청계천 바닥에 박석을 깔라고 명함으로서 사상 유례없는 대공역이 시작되고, 그 캐어낸 돌을 청계천으로 운반한 길(옥류산 자락에서 비원과 창경궁의 동쪽 담을 따라 나 있는 길)을 "박석고개"라고 했습니다.
초롱님의 댓글
초롱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한겨레님 글 정말 잘 쓰셔요. 여러 광경들이 눈에 보이는 듯해요. 게다가 제가 경험하지 못한 그 당시의 사정을 알 수 있어서 흥미진진입니다.
이 소설이 꼭 출판되기를 기대하는 사람으로서 가끔씩 살짝 걸리는 곳을 발견하면 말씀드려도 될까요? 여기서 댓글로 독자들의 의견 및 이견을 받으신다면 글이 더욱 효율적으로 다듬어질 수 있을 듯한데 어떻게 생각하셔요? 그게 불편하시다면 앞으로는 제가 쪽지로 알려드리겠습니다.
첫 문단에서 막내아우라면 아버지의 막내아우인지, 성주의 막내아우인지 언뜻 읽으면 헷갈리고요, 그리고 둘째 문단에서 큰 시동생, 둘째 시동생이란 단어가 나오는데 아마 어머니의 시동생이겠지요? 화자가 성주, 아버지, 어머니 사이에서 가끔 옮겨가는데 독자의 입장에서 약간 헷갈립니다. (저와 생각이 다른 독자분들이 계시다면 활발한 의견 개진 부탁드립니다. 저 때문에 도리어 오류가 난다면 곤란하잖아요.)
외람되었다면 용서를...
한겨레님의 댓글의 댓글
한겨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초롱님, 고맙습니다. 말씀을 듣고보니 정말로 헷갈리게 이 사람 저사람으로 옮겨가며 썼네요. 어머니에게서 들은 옛이야기를 그대로 옮기려다보니 역시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의 어설픈 솜씨가 드러난 것 같습니다. 이런 데서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가 나타나는 겁니다. 여기에서는 초롱님이 말씀하신 다른 독자들의 의견을 더 듣고자 하는 마음으로 수정하지 않고, 나중에 혹 출판을 하게된다면 수정하겠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ImNebel님의 댓글의 댓글
ImNebel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한겨레님, 안녕하세요.
님이 절 저쪽 직장에서 실직시키는 바람에 하도 할일이 없어 이쪽에서는 좀 일이 있을까 어슬렁거리고 있는데요,
저도 초롱님처럼 왜 갑자기 큰아버님이 큰 시동생으로 변했을까 알쏭달쏭했어요,
님이 혹시 재혼이라도 하신 걸까...
아직 아니라고 지나가는 골목에서 시늉이라도 해주시던가,
아무튼 이제는 계속 재미있어요, 그래서 쉬는 시간이나 방학 같은 기분입니다.
안녕히계세요.
한겨레님의 댓글의 댓글
한겨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님을 제가 실직시키다니요 ? 원 천만의 말씀을---- 연금으로 겨우 살아가는 가난한 일흔 살의 노인을 마당쇠로 데려가겠다는 할머니가 나타나신다면 신상명세를 당사자 할머니에게 직접 알려드리겠다는 것이지 중간역할하시는 분을 배제하겠다는 뜻은 아니었는데---
ImNebel님의 댓글의 댓글
ImNebel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님, 잘 생각해보세요.
저의 임명은 맞춤입니다.
노엘리님은 사람 모셔오는 역할 저의 임무는 그 사람들을 서로 맞추는 건데 저의 중간거래 없이 하시겠다니 분명 전 실직이거들랑요?
초롱님의 댓글의 댓글
초롱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아이구, 그런 말씀 마셔요.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라니요? 한겨레님이 프로가 아니면 누가 프로겠습니까?
일단 문장이 참 편안히 읽히면서도 유려하고 내용이 유익합니다. 한겨레님 아니면 쓸 수 없는 내용이지요. 부디 출판되어 널리 읽혔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참견했어요.
전 글 쓸 때 누가 옆에서 지적해주면 참 좋더라구요. 사고도 한결 명확해지고 문장도 훨씬 유려해지고요. 제 생각에 한겨레님도 언제 어디서나 꾸준히 공부하시는 스타일이라 글벗들과 더불어 자신의 작품을 논하는 걸 싫어하시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을 붙였습니다.
사실은 저 아래 61, 62회에서 저는 오복의 심리가 약간 걸렸어요. 같은 여성으로서 그녀의 태도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고 해야 할까요. 제가 62회 밑에 댓글로 달겠습니다. 비밀글로 다는 것보다 공개로 하면 여러 잇점이 있을 것 같아요. 혹시 다른 여성분들도 보시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말씀해주시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어요.
괜찮으시죠?
ImNebel님의 댓글의 댓글
ImNebel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초롱님, 안녕하세요.
전번같은 님의 글 또 그런 이야기 좀 올려주세요.
님이 삐져 누워 계실 때 부군께서 넘어지셔 도움을 청했을 때 그분께는 미안하지만 너무 재미있었어요.
전 님의 삐진 모습에 동료애를 느꼈답니당!
초롱님의 댓글의 댓글
초롱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안갯속의 님, 안녕하세요.
속 좁은 제 모습에서 동료애를 느끼셨다니 왜 이리 반가운지요. 전 오복이 왜 이렇게 대범하냐고, 이게 정상이냐고 따지고 있는 중이잖아요? 하하하.
한겨레님의 댓글의 댓글
한겨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괜찮다뿐입니까, 정말 고마운 일이지요. 사실 가방끈이 짧아서 제대로된 문학수업이나 문장 작성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어 나름 많이 불안해하고 있거든요. 많은 분들이 초롱님처럼 도움말을 주신다면 제게는 그야말로 보약 정도가 아니라 뼈와 살이 될 겁니다.
초롱님의 댓글의 댓글
초롱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글이라면 한겨레님이 저보다 더 잘 쓰시지요. 제대로 된 문학 수업이나 문장 교육을 받아보지 못하기론 저도 마찬가지랍니다. 독자들이나 좋은 글벗들이 인터넷을 통해 고쳐주고 수정해주는 걸 바탕으로 공부했거든요. 근데 그게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그래서 저도 좀 나누려고요.
목로주점님의 댓글
목로주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옥류산이라면 혜화문이 있는 거기 성벽에서 이어지는 그 산인가요? 아무리 혜화동과 성대를 떠올려도 산이라고 할 곳은 거기 밖에 없는 것 같아서요. 성대가 예전에 산이었다니 그럼 그 때 다 깍아냈다는 뜻이네요.
그러니까 예전의 서울은 농업과 어업은 물론 광업까지 활발...
한겨레님의 댓글의 댓글
한겨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맞습니다 ! 혜화문에서 성곽길 따라 오르다보면 지금은 말바위라고 하는 쉼터가 있는 크지 않은 산이 바로 "옥류산"입니다. 성균관대로 내려가는 산길에 "옥류정"이라는 정자가 있고, 옥류정 앞에서 샘솟아 나오는 "약수터"가 있고 이 약수가 다시 지하로 스며들어 그 아래 비원 숲속에 조선시대 임금들이 비빈처첩들과 노닐던 태극정 앞의 "옥류천"이라는 약수터에서 다시 샘솟습니다.
삼청공원쪽에서 북쪽으로 올려다보이는 "말바위"는 제 어릴 적에는 모두 "벼락바위"라고 불렀는데, 언제부터 말바위로 바꾸어 불렀는지 모르겠습니다.
일제시대에는 총독부 청사와 총독관저에 대한 미군의 폭격을 막기 위한 고사포부대 진지가 있었던 옥류산 정상에는 1970년대초까지만 해도 청와대 공중공격을 방어하는 수도경비사의 "발칸포 중대"가 주둔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그 일대에 "와룡공원"이 조성되었다고 하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