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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겨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3건 조회 1,845회 작성일 13-01-11 20:21

본문

 
오복이 신신당부하고 집으로 돌아간 뒤, 성주는 어머니의 일생을 마음 속으로 더듬어 보았다.

--- 어머니는 대대로 인삼농사를 짓는 금산 명문 부호의 팔 남매 가운데 막내딸로 태어났다. 매사냥이나 다니며 시대의 울분을 달랬던 외할아버님은 위로 세 아들은 경성제국대학과 동경유학까지 보내면서도, “이런 시대에 여자가 많이 배우면 불행하게 된다. 그러니 조신하게 집에서 살림이나 배우다가 시집가면 된다.“ , 딸 다섯을 모두 글자나 깨우치게 하고 나서 집안에 들여 앉혔다고 했다.
어머니가 열아홉 살 되던 해, 일본 순검들이 농촌처녀들을 정신대로 끌어가는 난리소동이 일어나자, 외할아버님은 막내딸을 서둘러 시집을 보내려고 했는데, 때마침 만주에서 고향 진안으로 내려와 신붓감을 찾고 있는 청년의 중매가 들어왔다. 외할아버님의 부름을 받고 집에 온 청년을 문틈으로 몰래 본 어머니는 청년의 곱상한 외모와 착한 얼굴이 싫지 않아서 시집가라는 외할아버님의 분부를 두말없이 따랐다고 했다.
서둘러 혼례를 치르고, 언니들이 싸주는 짐보따리들을 들고 신랑을 따라나섰다. 대전에서 난생처음으로 기차를 타고 신의주-안동-하얼빈을 거쳐 목단강역까지 사흘 밤낮을 걸려 시댁에 도착하니, 홀 시아버님과 시동생 셋까지 홀아비만 다섯이 사는 농가였다고 했다.
열아홉 살 꽃 같은 아낙이 낯선 땅 만주에서 다섯 홀아비의 치다꺼리를 해야 하는 고된 살림을 시작하며, 부모 형제들이 보고 싶어 흘린 눈물이 얼마나 되었는지, 어머니의 회고담을 듣는 성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목단강에서 해란강을 거슬러 올라가 한나절 거리에 있는 새로 생긴 조선인 마을은 당시 러시아 국경을 넘나들며 일본군과 맞서 독립전쟁을 벌이고 있는 조선독립군의 후방보급기지였다. 아버지는 때때로 마을을 습격해 오는 마적들과 일본군에 대항하기 위해 자경단을 조직해 마을을 지키는 한편, 독립군의 연락거점이 되어 식량과 옷과 자금을 전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성주가 태어나자 홀 시아버님이 저세상으로 떠나 마을 북쪽 산기슭에 잠들어 계신 얼굴 모르는 시어머님 안동 권씨의 산소 옆에 나란히 안장해 드렸다. 고된 농사일로 분주한 살림이었지만, 시아버님이 공주처럼 떠받들며 마음을 써주어서 위안이 되었었는데, 아픈 데도 없이 홀연히 떠나시니 그렇게 허망하고 애통할 수가 없었다고 어머니는 눈물을 글썽이며 당시를 회고했었다.
성주가 태어나고 두 해가 채 안 되어 일본이 망하고 조선이 해방되었다는 소문과 함께 만주에 러시아군이 들이닥쳤다. 어머니의 회고에 의하면, 러시아군인들은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었다. 부녀자들을 닥치는 대로 강간했고, 집집마다 뒤지며 금품을 약탈했다. 반항하는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사살했다. 온 마을이 공포에 떨며 부녀자들은 머리를 풀어헤치고 가마솥 밑의 숯검정을 얼굴에 바르고도 안심을 할 수가 없어서 온종일 어둠침침한 방구석이나 곳간에 숨어 지냈다. 그런 가운데 조선으로 돌아가고 싶은 조선인들은 목단강 역으로 모이라는 통문이 돌았다. 몇몇 집들이 보따리를 싸는 것을 보고 어머니도 망설이는 아버지를 재촉해 남장하고 짐보따리를 둘러멘 시동생 셋 사이에 끼어 두 살배기 성주를 둘러업고 길을 나섰다.
 
1946. 목단강 역에 모인 귀환동포들.jpg


목단강 역에는 짐보따리를 이고 진 조선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소련군 장교 복장을 한 조선사람의 지휘로 귀환동포들을 백 명씩 나누어 곳간 차에 태우고, 곳간마다 대표자를 한 사람씩 지정해 모든 지시를 이들을 통해서 했다. 기차는 달리다가 가끔 역도 아닌 황량한 들판에 서고, 그때마다 러시아군인들이 문을 열고 총을 들이대며 눈에 뜨이는 아낙네들을 끌어내어 추행하거나 짐보따리를 풀어헤치며 금붙이나 돈을 내놓으라고 협박했다. 추행을 당하고 곳간 차에 다시 올라탄 아낙네들은 대성통곡을 했고, 남편되는 사내들은 넋을 잃고 고개를 처박았다. 그럴 때마다 나이 지긋한 어른들이 나서서, “울지말아라! 그래도 살아남아야 한다. 이럴 때일수록 서로 아껴주면서 살아야 한다. 이게 다 나라 잃은 서름이란다.“ 하면서 어루만져 주었다.
평소에 이틀이면 가는 기찻길을 닷새나 걸려 안동에 도착했다. 거기서부터는 기차가 더 못 가니 신의주까지 걸어가서 다른 지시가 있을 때까지 귀환동포수용소에서 기다리라는 통지를 받고, 압록강 다리를 건너 신의주 역 뒤쪽 너른 공터로 가니, 가마니로 엮어 놓은 수십 개의 움막이 서 있는 수용소가 있었다. 수용소에는 이 구석 저 구석에 시체들이 즐비했다. 전염병이 돌고 있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두 살배기 성주가 전염병에 걸렸다. 온몸이 펄펄 끓고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해 젖도 빨지 못했다. 아버지가 신의주 시내로 나가 백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그때까지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한 일본인 의사를 찾아냈다. 의사가 와서 보더니, “발진티푸스인데, 지금으로서는 약도 없고 어쩔 도리가 없다. “ 하면서 무슨 주사 한 대를 놓아주고, 물수건으로 계속 열을 식혀주고 그래도 열이 안 내리면 젖에 개어 목구멍으로 넘겨주라며 해열제 몇 알을 주고 돌아갔다. 알약을 깨어 젖에 개어 억지로 입을 벌려 흘려 넣어주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성주의 숨이 끊어졌다. 죽었구나 하고 울면서 한쪽으로 뉘어놓았는데 반나절 만에 다시 숨을 쉬며 우는 소리를 내기에 급히 젖을 물렸더니 젖을 빨기 시작했다며, “너는 참 명줄이 질겼다.“하고 어머니는 한숨을 내쉬며 그 참담했던 시절을 회고했다.
다시 기차를 타고 황해도 토성까지 와서, 거기서부터는 삼팔선까지 하루 반나절을 걸었다. 삼팔선에 당도하니 미군들이 맞이해서 줄을 세우고 한 사람씩 머릿속과 몸속에 디디티 가루를 펌프로 퍼부은 다음 대기하고 있는 기차에 태웠다. 여기서부터는 곳간 차가 아니고 객차였는데, 디디티 세례를 받은 이들이 머리와 몸에서 기어나와 객실 바닥을 덮을 지경이었다.
서울역에서 내린 어머니 일행은 성주의 큰아버님이 조수로 일하고 있다고 알려준 명륜동 일본의사의 집을 찾아갔다. 큰아버님은 만주가 싫다며 경성으로 올라와 대학병원 교수인 일본의사가 열고 있는 개인병원의 사환으로 들어갔는데, 교수 내외의 신임을 얻어 주경야독으로 공부해서 병원 조수로 일하면서 결혼까지 하고 슬하에 아들 하나를 두고 있었다.
주소를 들고 찾아가니, 큰아버님은 일본으로 돌아간 주인으로부터 병원 집을 물려받아 의사 노릇을 하면서 병원을 겸한 집에서 큰어머님과 성주보다 한 살 위인 아들을 키우며 살고 있었다. 반가워하는 큰아버님과는 달리 큰어머님은 들어서는 여섯 식구를, 웬 거지 떼들이냐 하는 차가운 시선으로 맞았다고 했다.
 

댓글목록

Noelie님의 댓글

Noelie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아아 가슴이 뻐근히 저려옵니다.
그런데 저런 귀한 사진을 구하실 수 있었군요. 촬영은 저 시절에 누가 어떻게 했는지 참 놀랍습니다.

한겨레님의 댓글의 댓글

한겨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고백하건데, 이 사진은 1951년 1.4후퇴 때 언제 올 지 모르는 군용열차를 기다리는 피난민들의 모습을 미군 종군기자가  영등포역에서 찍은 것입니다.  사진이 풍기는 분위기가 1946년 10월 북간도의 귀환동포들이  목단강역에 모인 광경과 조금도 다름이 없어서 올려보았습니다. 실망을 드려 죄송합니다.

Noelie님의 댓글

Noelie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전혀 실망하지는 않았고요. ^^
실은 그런 느낌이 살짝 들어서 여쭤 본 것이기도 한데요.

1.4 후퇴라는 말을 들으면 그래도 저는 최후의 남행열차, 굳세어라 금순아, 부산의 판자촌 등의 단어가 연상됩니다.  아마 80년, 90년대 생들은 (아 그리고 앞으로는 60년대 생인 안철수씨 뿐 아니라 70, 80 년 생 대통령 후보도 나오는 시기가 오겠지요) '기차 지붕위에 사람들'하면 아마 제임스 본드 007이 고속으로 달리는 기차지붕위에서 악당과 싸우는 장면을 먼저 연상하는 세대일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세대차야 어느 사회나 있다해도 한국처럼 발전이 빠른 사회에서는 세대차도 매우 크다는 것을 한국갈 때 자주 느낍니다.

한겨레님 겨울의 주말 밤 평온히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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