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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겨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조회 1,197회 작성일 13-01-09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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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일곱 번째 마당: 만고의 불효자

노르트라인 붸스트팔렌 한인교회연합회가 주최하는 연합체육대회가 보쿰 서남쪽 외곽의 달하우젠 강변에서 열렸다. 장 목사가 목회를 하고 있는 아헨--쾰른-보쿰-두이스부르크-도르트문트-노이키르헨 등 일곱 한인교회 교우들이 한 해에 한 번씩 한자리에 모이는 연합행사였다.
강물의 흐름을 따라 끝 간 데 없이 잔디가 펼쳐진 드넓은 둔치에서 삼백 명이 넘는 남녀노소 한국사람들이 뛰노는 광경은 마치 한국 어느 시골 마을의 초등학교 운동회를 떠올리게 했다. 남자들의 교회 대항 배구시합과 여자들의 피구시합이 벌어져 서로 제 교회선수들을 응원하는 요란한 함성이 바로 옆을 흐르는 강물을 출렁이게 하고 있었다.

성주도 응원단에 끼어 아헨교회 선수들을 응원하고 있는데, 이 박사가 잠깐 이야기를 하자며 한쪽으로 불러냈다. 둘이서 강변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이 박사는 가족들의 안부와 직장상황을 묻고 나서 신중한 음성으로 본론을 꺼냈다.
실은 말이야---, 이럴까 저럴까 망설이는 일이 있어서 한 형의 의견을 들어보려고---.“
무슨 의견을---?“
강 목사님이 국보위에 들어가셨잖아? 그래서 교계에서는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은데, 그 어른이 자꾸 나를 들어오라는 거야.“
그럼, 들어가는 거지 뭘 망설여요. 강 목사님이 들어오라고 하셨다면, 예전처럼 무슨 전향서인가 각서인가는 안 써도 되는 거 아니요?“
그렇긴해도자꾸 망설여져서---.“
망설이는 이유가 있을 것 아닙니까?“
교계와 운동권에서는 강 목사님이 변절했다는 비난도 있고, 잘못 들어갔다가 전두환 정권의 하수인이 되는 건 아닌가 하는 두려움도 있고 해서.“
변절이라---? 강 목사님이? 이 형! 언젠가 내가 육당과 현민의 변절론에 대해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기억나요?“
그거 기억하지, 요점은 그분들의 변절은 변절이 아니라는 얘기였는데, 그게 무슨 뜻이야?“
두 분이 학병 권유 강연을 다닌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만으로 변절자라고 매도하는 건, 장님들이 제각기 코끼리의 어느 한 부분만 만져보고 이러쿵저러쿵 서로 다투는 것과 다름없다는 뜻입니다. 스무 살도 채 안 된 제 나라 젊은이들을 가미가제 특공대라는 이름으로 자폭을 시키는 광란 상황에서, 당시 조선사회 최고의 지성으로 일컬어졌던 두 분이 일제의 패망을 예견하지 못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일제의 패망을 예견하면서도 학병출병을 권유해야만 했던 두 분의 고뇌를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전쟁의 막바지에 몰려 조선의 젊은이들이 최전선의 총알받이로 끌려나가 떼죽음을 당하는 상황 만은 막아야 하겠다는 노심초사 없이, 단순한 친일행위로 학병 권유를 하셨다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강 목사님의 국보위 참여도 나는 그런 맥락에서 보고 있습니다. 강 목사님이 누구십니까? 이른바 자생공산주의자라는 기상천외의 혐의를 젊은 간사들에게 뒤집어씌운 크리스찬 아카데미 사건 때도, 그 추한 누명까지 쓰시면서도 후진들을 보호하신 어른이 아니십니까? 아마도, 호랑이를 잡지는 못하더라도 호랑이 발톱이라도 잘라내야 한다는 결단으로 호랑이굴에 뛰어드셨을 겁니다. 전두환 정권의 야수와 같은 폭압으로 민주화운동의 씨앗들이 다 말라 죽는 걸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으셨을 겁니다. 우선은 내가 폭염을 막는 양산이라도 되어 씨앗만이라도 보존하리라. 그래야 새봄이 왔을 때 싹이 틀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마음으로, 주위의 눈총과 비난에 눈 딱 감고 국보위에 참여하셨을 겁니다. 그러니 지금이 가장 좋은 기회입니다. 지금 안 들어가면 또 언제 이런 기회가 온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망설이지 말고 들어가요! 만약, 이 형이 정치에 관심이 있다면 십중팔구 전두환 정권의 하수인이 되겠지만, 그렇지만 않다면야, 강단에서 후진들을 올바르게 길러 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닙니까?“
성주가 이 박사의 귀국을 적극 권하자, 이 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호랑이 발톱이라도 잘라내려고 호랑이 굴에 뛰어드셨다---. 하여튼! 한 형은 만나보지도 않은 사람의 의중을 어떻게 그렇게 정확하게 꿰뚫어볼 수가 있어? 사실은 강 목사님의 서한 내용에도 은연중에 그런 암시가 있었어.“
하면서 이 박사는 무언가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러면, 한인 사회상담실은 닫으시게?“
닫을 수는 없지. 어떻게 만들어 낸 자린데---, 한마음조합 사람들은 이영모 형이 맡기를 바라는 모양이던데 어떨까?“
그건 안됩니다!“
? 왜 안되지?“
차암~ 사람들이~ 자기들 생각밖에 안 한다니까. 이 선생도 학위가 끝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럼 바로 귀국을 해야지, 지금 나이가 몇인데 여기서 세월을 죽이라고 한답니까. 어차피 그쪽 계통의 장학금으로 공부했으니, 크리스찬 아카데미나 한신대학 쪽에 자리 하나 마련해 줄 거 아닙니까? 강 목사님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있을 때에 들어가야지요. 강 목사님 힘없어지면 누가 있어 아는 체나 하겠습니까? 강 목사님이 펼쳐 들고 있는 큰 양산 밑에서 두 분이 두 개의 작은 우산을 펴시면 적격일 겁니다.“
그럼 여기는?“
여기야 서독에 정착하고 싶어서 디아코니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우리 교인들이 있지 않습니까? 듣기로는 누군가가 곧 수료한다고 하던데, 그런 전문교육 받은 사람에게 넘겨주면 만사형통 아닙니까?“
그렇군! 장 목사님과 의논해서 그렇게 해야겠네! 오늘 고마웠어, 여러 가지로 힘이 되는 이야기를 해 주어서---.“
고맙기는, 마음속으로는 다 정해 놓고, 괜히 남의 속 떠보려고 했으면서.“
성주가 정곡을 찌르자, 이 박사는 들켰다는 듯 겸연쩍은 웃음을 지으며 손사래를 쳤다.
아니야, 오늘 한 형 말 듣고 모든 게 확실해졌어. 정말로 많이 고민했거든. 강목사님이 후진들을 보호하기 위해 큰 양산을 펼쳐드셨다는 한 형의 말 듣고, 오늘에서야 강 목사님을 확연하게 이해하게 됐어, 정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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