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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겨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6건 조회 1,362회 작성일 13-01-08 21:54

본문

 
금요일 오후에 구워 먹기 좋은 크기와 두께로 썬 삼겹살 삼십 킬로그램과 고추장, 간장, 마늘, 파에다가 후춧가루, 설탕까지 양념거리를 넉넉하게 싣고 온 성구는, 내일 야유회 장소에는 열한 시까지만 가면 되니까, 그 안에 자기 차로 홀란드 주말 시장에 함께 다녀오자며, 아침 여덟 시에 올 테니 준비하고 있으라고 오복에게 말하고 대답할 사이도 없이 가버렸다.
이튿날 아침, 약속시각에 맞춰 온 성구의 차를 타고 주말 시장에 다녀온 오복이 아래층 현관 앞에서, 내려와서 시장 보따리를 올려가라고 소리쳐 불렀다.
시장이 꼭 서울 동대문 시장 같아. 서양에도 그런 시장이 있다는 게 신기해. 채소, 과일, 생선을 산더미처럼 쌓아 놓구서 큰소리로 노래하듯 손님을 부르는데, 세상에 값을 깎을 수가 있더라구. 그동안 슈퍼마켓 시장만 보면서 값을 못 깎아 속이 다 답답했었는데, 생선가게에서도 채소가게에서도 깎아달라고 조르니까 웃으면서 깎아주고, 과일가게에서는 두어 개 더 집어서 서비스하라 하니까 슬쩍 윙크하면서 덤도 주고 하니까 얼마나 재미있어? 시장이 좀 그런 맛이 나야지, 여기 서독 슈퍼들은 모두 죽은 시장이야.“
시장 보따리를 들고 층계를 오르며, 오복은 시장에서 벌어진 흥정이야기를 신이 나서 종알거렸다. 오복은 꽤 재미있었던 듯 연신 웃으면서 부엌으로 들어가 시장 보따리를 풀었다. 싱싱한 고등어와 동태가 대여섯 마리씩, 금방 먹물이라도 뿜어낼 것만 같은 탱탱한 물오징어가 다섯 마리, 사과와 토마토가 각각 한 망태기, 배추 다섯 포기, 당근, 왜무, , 가지, 오이, 호박 등등이 식탁 위에 그득하게 쌓이고도 모자라 부엌 바닥까지 차지했다.
참 여러 가지도 사 왔네. 이 많은 걸 어떻게 차까지 들어날랐어? 주차장이 가깝지 않았을 텐데---.“
나 하고 안젤리카는 사기만 하고, 들어 나르는 건 정 총무가 다 해서 하나도 힘 안 들었어.“
안젤리카라니?“
으응 ~ , 당신은 못 봤지? 아침에 정 총무 차에 같이 타고 왔더라구. 정 총무가 집사람이라구 인사시키는데, 눈치로 보아서는 결혼은 안 하고 그냥 동거하는 것 같았어. 내가 눈치 하나는 빠르잖아---, 서독여자가 한국말도 잘 알아듣고 눈치도 빨라. 나이는 정 총무보다 조금 더 먹은 거 같기도 한데, 짐작이 안가. 난 통 서독사람은 남자고 여자고 나이를 짐작할 수 없더라. 그런데 그 안젤리카라는 여자 아주 웃기는 여자더라구. 시장이 하도 복잡하니까 장사꾼들도 정신이 없는가 봐, 글쎄 호박 여섯 개를 종이봉투에 담더니, 장사꾼이 다른 손님과 흥정하는 틈에 값도 안 치르고, 나한테 눈을 깜짝깜짝하더니, 글쎄 그냥 다른 가게로 가서 나한테 세 개를 꺼내주면서 가져가 요리해 먹으라는 거야. 그러면서 까르르 까르르 허리를 잡고 웃는 거야. 내가 차 안에서 정 총무에게 그 얘기를 하면서 웃으니까 옆자리에서 안젤리카도 알아듣고 깔깔대고 웃고, 정 총무도 ‘이 애가 가끔 그 짓을 한다’면서 웃더라고. , 주말 시장 오는 재미가 바로 그런 거라나.“

주말 시장 다녀온 오복의 이야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집에 가서 시장 보따리를 내려놓은 성구가 안젤리카를 태우고 되짚어 왔다. 고기는 엊저녁에 오복과 건우 안사람이 다 재어 놓았기에 성구의 차에 싣고, 걸어서 삼십 분도 채 안 걸리니 산책 삼아 슬슬 걸어가겠다는 성주와 오복을 막무가내로 가로막은 성구는 네 식구를 뒷좌석에 몰아넣듯 태우고 알스도르프 공원으로 달려갔다.

아헨한인회장은 에밀 마이리쉬 광산의 통역인 한성철이었다. 성주는 방을 구하러 다닐 때에 건우의 소개로 인사를 해서 구면이었지만, 오복은 처음 대하는지라 한 회장은 반갑게 맞이하면서 허리를 굽혀 정중하게 인사치레를 했다.
아이고 처음 뵙습니다. 뵙기도 전부터 염치없이 어려운 부탁을 드렸는데, 쾌히 들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오복은 모르는 남자의 그런 정중한 인사가 겸연쩍었는지 제대로 대답도 못하고 엉거주춤 돌아섰다.
정말 고마워요. 제가 해야 할 일인데, 제가 워낙 솜씨가 젬병인데다가, 교회 야유회 갔다 온 사람들이 하도 윤기 엄마 음식솜씨를 칭찬하면서 부탁을 드려보라고 해서 염치불구하고 부탁드렸어요. 제가 이 이 안사람이에요.“
하며 옆에 서 있는 한 회장을 가리키는 부인은 보기 드믄 미인이었다. 간호사로 남편과 함께 맞벌이하면서 아들 하나 낳아 키우고 있는데, 아직 집은 장만하지 못하고 광산 사택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성구는 짐을 다 내려놓고 어디론가 말없이 차를 몰고 가더니 한참 후에 건우네 식구들을 싣고 왔다.
버스 타고 오려고 정거장에 서 있는데, 이 양반이 차를 갖고 와서 호강하고 왔네.“
하면서 건우와 나란히 건우 안사람이 준하와 지영을 데리고 공원으로 들어섰다.
성주는 몸을 아끼지 않고 재빠르게 돌아다니며 제 할 도리를 다 하는 성구의 두름 성이 마음에 들었다.

공원의 넓은 풀밭에서 열린 한인회 아유회에는 이백 명 가까운 남녀노소들이 모여들었다. 풀밭 한쪽에 바람막이처럼 주욱 서 있는 키 높은 서양버드나무를 뒤로 한 큰 차일 안에 본부석이 자리를 잡고 음식상이 차려지고 있었다. 그 옆으로 불고기판이 세워져 숯불을 피우는 한인회 임원들이 서로 재촉하고 있었다. 성구는 다른 임원들과 함께 풀밭 사방에 말뚝을 박고 도로공사장에서 쓰는 알록달록한 플라스틱 띠로 연결한 다음 가운데에 그물망까지 드리워 그럴듯한 배구경기장을 만들었다. 다른 쪽에는 같은 방법으로 피구경기장까지 만들었다.
교회식구들은 거의 모두가 다른 지역에서 옮겨온 새로운 가족들이거나 한국에서 온 지 얼마 안 되는 아낙네들이어서 인사와 소개에 분주했다.
정오가 되자 모두 자유스럽게 본부석 앞에 모여 한 회장의 간단한 인사말을 들은 다음 점심을 먹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갓 온 교회의 아낙네들이 한 가지씩 집에서 만들어 온 순 한국식 음식들이 차려진 점심상은 호화찬란했다. 쑥갓과 채 썬 빨간 고추를 얹어 꽃처럼 지져낸 현수네 생선전, 범기네의 곰식은 멸치젓, 세정이네의 문어회, 준이네 동그랑땡 전, 윤기네 산적, 준하네가 한국에서 가져왔다는 청양고추가루와 목포 새우젓으로 버무려 온 겉절이 김치, 혜영이네의 오징어회, 거기에다가 한인회에서 준비한 삼겹살 숯불구이와 청어구이, 상추, 깻잎, 풋고추 등등의 산해진미가 식욕을 돋웠다.
성주도 서독에 와서 처음 대하는 진수성찬이었지만, 서독남자와 결혼한 한국간호사들은 물론, 부엌일을 해보지 않고 학교 마치고 병원에만 근무하다가 처녀로 서독에 와서 한국남자와 결혼한 간호사들도 오랜만에 먹어보는 제대로 된 한국 음식에 정신을 빼앗겨 문자 그대로 야단법석이었다.
아낙네들이 이 지경이니 남정네들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자기 안사람에게 제발 이분들한테 음식비결을 배우라며 티격태격하는 부부들도 있었다. 배가 터지게 잘 먹었다는 말이 있지만, 정말 모두들 배가 남산 만하게 부르도록 먹고 마셨다. 어떤 이들은 이 맛있는 걸 조금이라도 더 먹어야 하겠다며, 나무 그늘 밑으로 가서 소화가 빨리 되라고 겅중겅중 뜀뛰기를 하기도 했다.
식사가 거의 끝나자, 정 총무의 지휘에 따라서 홍군-백군-청군-황군의 네 패로 나뉘어 배구와 피구, 달리기 경기를 해서 입상자들에게는 한인회가 마련한 상품을 나누어 주었다. 어른들에게는 부엌살림에 필요한 물건들이, 아이들에게는 학용품이 골고루 돌아가 모두들 흡족해하는 가운데 해가 저물어 갔다. 한 회장은 오는 시월 초, 음력으로 추석이 되는 주말에 마리아도르프 축구경기장에서 동네 대항 축구경기를 겸해서 추석 잔치를 연다고 발표하고 야유회를 끝냈다.
뒤치다꺼리에 바쁜 임원들의 일손을 좀 거들어 주고 나서 성주는 아이들을 앞세우고 오복과 함께 집으로 향했다.
당신, 아무래도 빨리 운전면허를 따야겠어. 앞으로 차 쓸 일이 많을 텐데, 남의 신세만 질 수 없잖아?“
그래야겠지. 월요일에 운전학원에 등록해야겠어.“
성주는 바로 운전학원에 등록하고 이론공부와 운전연습을 병행했다. 말로만 들었던 한국 운전학원과는 달리 첫날부터 시가지 운전으로 시작하는 바람에 크게 긴장했지만, 실습교사의 꾸지람을 몇 번 들으며 매일매일 새로운 것을 배웠다. 클라우젠호프에서 독일어 공부를 할 때, 브릴 선생과 함께 운전면허시험문제집을 교재로 공부한 득을 보아 이론시험을 두 주일 만에 만점으로 합격해버리니 운전학원 원장이 눈을 크게 뜨며, 학원이 생긴 이래 처음 있는 일이라고 놀라워했다. 그리고 세 주일 후에 실기시험도 거뜬하게 합격했다.
성주는 오복의 재촉으로 중고 포드 타우누스를 사천 마르크를 주고 샀다. 운전 연습한다고 아이들까지 태우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큰 네거리 한복판에서 차가 서버리는 소동도 벌이고, 길가에 세워놓은 남의 차를 긁을 뻔한 아슬아슬한 위기도 몇 번이나 넘기면서 운전이 익숙해지자, 오복은 가까운 시장도 짐이 무겁다는 핑계로 차를 태워달라고 졸랐다.
 

댓글목록

Noelie님의 댓글의 댓글

Noeli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초롱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언젠가 한복입고 찾아 뵐날을 기다리는 노엘리가
한겨레님 사랑방에서 뵙고
세배올립니다.

초롱님의 댓글의 댓글

초롱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노엘리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원하시는 일 다 이루이지기를 바래요. 법륜 스님 말씀이 세상에 원하는 일이 다 이루어질 수도 없고 또 그래서도 안 된다고 하셨지만 한겨레님과 노엘리님께는 특별히 그런 일이 일어나기를... 하하.

한겨레님의 댓글의 댓글

한겨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초롱님 ! 재미있다고 해 주시니 고맙고 힘이 납니다. 사실은 너무 평범한 일상의 이야기일뿐이어서 소설이라고 어디에 내놓기도 부끄럽습니다.

노엘리님도 계속 읽어주시는군요. 고맙습니다.

triumph님의 댓글

triumph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한겨레님, 저도 Moers 에 고기 먹으러 간 적이 있는데요.  Venlo 에 도 자주 갔었고요, 제가 살던 곳이 얼마 멀지 않은 Kerken  이였거든요.  그래서인가 친구한테 옛날이야기 듣는 느낌입니다.

한겨레님의 댓글

한겨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뫼어스 공원 잔치라면 주로 캄프린트 포트 한인회 야유회이거나 노이키르헨 또는 두이스부룩 한인교회 야외예배일텐데.
케어켄에 사셨다면, 캄프린트 포트 한인회 회원이셨겠군요. 회원이 아니시라면 지금은 문 닫은 노이키르켄 한인교회 혹은 두이스부륵한인교회 교우이셨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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