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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겨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조회 1,213회 작성일 13-01-07 21:02

본문

 
기혼자들의 가족이 한국에서 오기 시작하자, 총각들도 앞다투어 한국으로 휴가를 가서 결혼을 하고 곧바로 새색시들을 대동하고 돌아왔다. 몇몇 총각들은 광산에서 부부별거수당과 자녀수당을 타기 위해서 멀쩡한 이웃집 처녀를 호적에 아내로 올려놓고 낳지도 않은 아들 딸까지 호적에 올려 세 해 내내 혜택을 보다가, 한국으로 가서 그 이웃집 처녀와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고 함께 서독으로 돌아왔지만, 낳지도 않은 아이들은 데려올 수가 없는지라, 이번에는 허위 사망신고를 하고 오는 웃지 못할 사연도 있었다.
이런 일들을 보면서 건우는, 서명운동 당시 아헨에서 외톨이가 됐던 일이 못내 가슴 속에 응어리로 남아 있었는지, 이들을 향해 빈정거리는 말을 던지기도 했다.
불과 한 해 전에 우리가 체류제한 풀어달라는 청원 운동할 때, 연대서명은커녕 외면하고 욕하더니, 막상 풀리니까 좋기는 좋은 모양이지---.“

건우는 맏아들 준하와 딸 지영, 진하는 맏딸 혜영과 아들 해준, 영우는 맏아들 석근과 딸 미혜, 진우는 외아들 한영을 슬하에 두고 있었다. 남편들의 초청으로 말도 안 통하는 외국 땅에 도착한 아낙네들과 아이들은 모두 고만고만한 또래여서 아낙들은 아낙들끼리,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금방 친해져서 서로 오가며 잘 어울렸다.
이들이 모두 식구들을 다래다래 거느리고 한인교회에 나오기 시작하자, 한동안 횅댕그렁했던 교회가 삽시간에 그득해졌다. 예배가 끝나고 점심을 먹는 시간에는 이들 한국에서 갓 온 아낙네들이 솜씨를 뽐내며 장만해 갖고 온 한국 음식들로 말미암아 서독이 아니라 한국의 어느 잔칫집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오랫동안 이러한 한국의 분위기를 잊고 살았던, 서독생활 이십 년의 김연순 집사는 시끌벅적하게 서로 음식을 권하는 한국아낙네들이 다 딸 같고 며느리 같다며 즐거워했다.
뒤늦게 에밀마이리쉬 광산의 김세균이 한국에서 불러온 부인과 큰아들 영식과 딸 미애를 데리고 교회에 나오자 뒤이어 이종운도 새색시와 함께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다. 이 무렵에 보쿰의 에링광산이 문을 닫게 되어, 그곳에서 일하던 광부들이 계열광산인 아헨의 에밀 마이리쉬 광산으로 옮겨 오게 되면서, 보쿰교회의 장재범 집사 내외와 갓 태어난 아들, 도르트문트 교회의 최영섭 내외와 두 아들, 그리고 카스트롭-라욱쎌에서 오재인 내외와 맏딸 세정과 아들 광식, 유성필 내외와 아들 현수 등등이 제트리히에 있는 광산아파트로 이사를 와서 모두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많아지자 부랴부랴 주일학교를 열고 급한 대로 성주가 교사가 되어 성경공부를 겸한 한글 수업을 하는 한편으로는 한국에서 갓 온 큰 아이들을 위한 독일어 기초공부도 함께 시작했다. 아헨 시내에 한글학교가 있었지만, 수요일 오후에만 수업을 하므로, 대부분 자동차도 없을 뿐만 아니라, 세 교대로 바뀌는 광산 일 때문에 정기적으로 등교시킬 수가 없는 교회식구들을 위한 궁여지책이었다.
알스도르프에 한국 아이들이 많이 왔지만, 그러한 이유 때문에 한글학교에 가지 못하고 교회 주일학교에서 한글공부를 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한글학교 운영자들이 나서서 알스도르프 지역에서 토요일에 교실을 빌려줄 수 있는 학교를 수소문했지만 성과가 없었다.
이들 한인교회 식구들은 예배가 끝나도 그냥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알스도로프 공원으로 몰려나가 불고기파티도 하고, 아이들과 어울려 운동회를 하다가, 날씨가 더우면 야외수영장으로 몰려다니기도 하고, 그래도 헤어지기 싫어 저녁은 그날 초대하는 집으로 몰려가 웃고 떠들고 놀다가 밤이 늦어서야 헤어지는 나날을 보냈다. 이런 소문을 들은 어느 아헨토박이 교민은, “이러다가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뽑아내는 거 아니야 ?“ 했다는 소리도 들려왔다.

그러던 어느 날, 아헨한인회 총무라는 정성구가 뜬금없이 성주의 집을 찾아와 교회의 김정렬과 파독동기라고 하면서 초면 인사를 했다.
실은, 이 댁 형수님과 마리아도르프 형수님이 음식솜씨가 기가 막히게 좋다고 하길래, 다음 주말 아헨한인회 야유회에서 구워 먹을 돼지 삼겹살 삼십 킬로그램을 맛있게 양념을 해 버무려 주십사 하는 부탁을 드리려고 왔습니다. 수고비는 따로 못 드리지만 고기와 양념은 모두 사다가 드리겠습니다.“
정성구는 정이 들게 하는 말씨와 태도로 스스럼없이 말했지만, 때마침 성주의 집에 놀러 와있던 건우의 안사람이 충청도 특유의 느린 말씨로 지청구했다.
마리아도르프 형수라면, 지를 말하는 것 같은데유~ 워떡혀서 지가 집의 형수가 된대유?“
아따 형수님! 건우 성님이나 성주 성님이나 다 저보다 연배가 높으시니까 성님, 형수 하는 게 당연하지라.“
정성구는 마치 오래 사귄 사이처럼 건우 아낙의 두 손을 덥석 맞잡으며 반죽 좋게 살살거렸다. 오복이 어떻게 하느냐는 눈빛으로 성주를 쳐다보길래, 성주는 성구의 말씨와 태도가 밉상이 아니어서 그렇게 하라고 눈짓으로 답을 했다.
오복이 고기를 버무려주겠다고 승낙하자, 성구는 희색이 되어 전화 한 통만 쓰자고 하면서, 주인의 허락이 떨어지기도 전에 송수화기를 들었다.
회장님, 여기 한성주 성님댁인데, 두 분 형수님이 고기 버무려주신다고 승낙하셨습니다. , 그럼, 그렇게 알고 계십시오.“
성구는 전화를 끊고 나서, 그 옆에 놓여있는 전화번호부를 들여다보더니, 오복이 알아보기 좋게 성주가 또박또박 친지들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어놓은 글씨체를 보더니 성주에게 물었다.
이거 성님이 쓰신 거요?“
그런데요, 왜 그러지요?“
아니~, 이건 손으로 쓰신 게 아니라 꼭 인쇄한 것 같아서, 참 필적이 좋으시구마 잉~. 부탁하는 김에 한 가지 더 부탁합시다, 성님!“
이번엔 또 무슨 부탁인데요?“
실은 지가 명색이 한인회 총무인데, 필적이 좋지 않아서 공문 한 장 내보내려면 밤새도록 끙끙대며 그리기는 하는데, 그려놓고 보면 글씨도 게 발 그리듯 엉망이고 맞춤법도 틀리고, 창피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니어서 고민을 해왔는디, 이거 성님 필적 보니 구세주 만난 것 같소 잉. 이제 공문 보낼 일 있으면 성님한테 올 테니 좀 써 주십사 하구 이렇게 부탁합니다.“
가끔씩 남도사투리를 써가며 붙임성 있게 부탁하는 성구가 싫지 않았다.
그거 뭐,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한인회에 한글 타자기 하나 없어서 공문을 손으로 써서 보낸단 말이오?“
한글 타자기는 한국에서 못 가져 나오지 않습니까. 있을 턱이 없지요. 광산 사회과에 오래된 고물타자기가 하나 있기는 하지만, 일일이 허락받아서 쓰기도 번거로운 데다가 매번 광산사무실까지 찾아가 빌려달라기도 민망스럽기도 해서, 여태까지는 그냥 손으로 써 왔구만이라.“
대사관에서 한인회에는 그런 배려를 좀 하지, 타자기가 무슨 국보 문화재라고 국외반출 금지품목에 포함시키는지 차암!“
그게 다 빨갱이 단체들이 극성스럽게 불온문서들을 찍어 돌리기 때문에 그런다고 안합디여 ?“
성주는 빨갱이 단체들이라는 말이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괜히 순박한 사람을 앉혀놓고 콩이야 팥이야 하다가는 오히려 지지한 오해만 받기에 십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귓전으로 들어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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