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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겨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조회 1,388회 작성일 13-01-01 22:29

본문

 
그리고 팔월, 재독 동포들의 광복 삼십오 주년 경축행사를 겸한 재독한인 종합체육대회가 둘째 토요일 아침부터 쾰른 공설운동장에서 열렸다. 연수생들도 연수원에서 내어준 대형버스를 타고 가서 광복절 행사에 참석했다. 기념식 순서에서, 대통령의 경축사를 대독해야 할 주독 대사는 경축사 대신, 최규하 대통령이 하야하고 전두환 장군이 대통령의 직무와 권한을 대행하게 되었다고 발표했다. 기념식장에 늘어섰던 교민들이 술렁거렸지만, 일 년 만에 서독 전역에서 모인 이천 명 가까운 동포들은 , 한국 정치야 어찌 돌아가든 내 알 바 아니라는 듯, 축구~배구~탁구~테니스~씨름~육상~줄다리기 등의 경기가 벌어지고 있는 경기장 주변에 자리를 잡고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며 즐겼다.
한낮에 별안간 운동장 입구 바깥쪽에서 누군가 크게 싸우는 고함이 들려왔다. 무슨 일인가 하고 나가보니 운동장 큰 출입문에 큼지막한 붓글씨로 “신군부의 만행을 고발한다 ! “ 라고 써 붙여 놓고, 그 아래에 광주의 참상을 보도한 유럽 보도매체들의 기사와 사진을 확대 복사하여 설명문과 함께 눈에 잘 뜨이도록 붙여놓고, 그 앞에 교회모임에서 몇 번 만난 적이 있는 양원하 형이, 당장 치우라고 을러대는 몇 교민들의 고함을 못 들은 척 바위처럼 서 있었다.
폭도라니? 광주의 실상은 이렇다! “ “신군부 폭력의 정체” 등등 설명문의 제목을 읽으며 성주는 눈이 마주친 양원하 형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함으로써 격려를 대신했다. 원하 형이 보통의 강심장은 아니구나 하는 감탄을 하며, 동참하는 심정으로 그 앞에 서성거리고 있는데, 에발트 광산의 동기인 영석이 다리를 조금 절룩이며 다가왔다.
한형! 오랜만이요.“
야아~ 선형! 퇴원했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사는 게 바빠서 찾아가 보지도 못하고 미안해. 그래 이제 다리는 괜찮은 거야?“
성주는 반갑고 미안한 마음에 영석의 두 손을 덥석 잡으며 다친 다리의 안부부터 물었다.
다리뼈에 아직도 쇠못이 서너 개 박혀 있는데 괜찮을 리가 있소? 그럭저럭 견디고 있는 거요.“
영석은 관심이 있어서 노동자연맹에 가입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오늘 양 형하고 함께 나왔다면서, 광주사태를 전후한 노동자연맹의 활동을 대략 들려주었다. 그러고 나서 이 박사의 한민건이 지금 쾰른 대성당 앞 광장에서 광주 민중 봉기의 진상을 독일사회에 알리는 집회를 열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당장 달려가 보고 싶었지만, 지리도 모를 뿐만 아니라, 난생처음 낯선 곳에 와 있는 오복과 아이들을 건사해야 한다는 생각이 떠올라 참았다.
광주 민중항쟁의 진상을 알리고자 하는 원하 형의 사진전시는, 당장에라도 주먹을 휘두를 것처럼 게거품을 물고 고함을 질러대던 사람들이 바위 같은 원하 형의 묵묵부답에 기세가 꺾여 돌아간 뒤로는 고자 누룩 해져서 온종일 아무도 시비를 걸지 않았다. 오히려 간호사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와 사진들을 보며 설명문을 자세히 읽기도 했다.
체육대회가 끝나고, 밤에는 운동장 가까이 있는 시민회관에서, 가요 <조약돌>을 부른 한국가수 박상규와 몇 한국연예인들이 재독동포 위문공연무대를 꾸몄다. 자정이 넘어서야 공연이 끝나 집에 돌아오니 새벽녘이었다. 온 식구가 곯아떨어져 낮까지 잠을 자고 일어나 아침을 겸한 점심을 먹고 무심코 텔레비전을 켜니 때마침 어제 쾰른 대성당 앞 광장에서 열린 한민건의 집회 광경이 방영되고 있었다. 한민건의 대표로 보쿰교회의 이정우 집사가 마이크를 잡고 유창한 독일어로 슈미트 독일연방수상에게 신군부가 폭력으로 정권을 장악한 한국과의 외교관계를 중단하고, 한국의 민주화를 위한 국제연대에 앞장서 달라고 촉구하는 성명서를 읽고 있었다. 동시에 이들 집회대열을 향하여 욕설을 퍼부으며 돌을 던지는 한국인들의 모습도 방영되었다.
성주는 방송을 보면서 ”당신 정체가 무어야?“ 하고 들이대던 승우의 얼굴이 떠올랐다. 모두가 분단이 빚어낸 왜곡된 집단의식의 몸부림이었고, 군사문화인 흑백논리교육이 만들어 낸 외눈박이 백성들의 서글픈 돌팔매질이었다.

월요일 오전, 정길 노무관의 후임으로 온 최일규 노무관이 창원기술공단 이사장으로 취임했다는 홍성철 전직 보건사회부 장관을 안내하여 예고도 없이 연수원을 방문했다. 한 시간가량 가진 연수생들과의 좌담회에서, 홍 이사장은 원론적인 이야기만 늘어놓으며 연수생들을 형식적으로 격려했다.
창원 기술공단이 완공단계에 이르러 방위산업체들을 선두로 기계기술업체들이 속속 입주하고 있으며, 대규모 직업기술학교도 완공단계에 있다. 창원뿐만 아니라 전국의 공업단지마다 직업기술학교를 세울 계획이니, 여러분께서는 열심히 연수를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와 직업훈련교사로서 봉사해 주기를 바란다.“
연수생들은, 귀국한 선배들이 직업훈련교사의 위상이 신통치 않을 뿐만 아니라, 보수도 기대 이하여서 가능하면 서독으로 다시 오고 싶어 한다는 상황에 대해 질문을 해댔지만 시원한 답은 듣지 못했다.
성주가 일어나, 솔직히 말해서 지금 우리가 받고 있는 기술연수 수준이 아주 초보에 불과한데, 이 실력으로 귀국해서 직업훈련교사가 된다는 일에 자신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한국의 정국이 어수선하여 귀국에 불안을 느끼고 있다고 실토하자, 최 노무관이 성주를 유심히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공식 좌담회가 끝난 후 최 노무관이 성주에게 다가와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나도 그 점이 가장 걱정됩니다. 뭐 도와드릴 일 없습니까 ?“
실은 처자식들까지 서독에 와 있는데, 자신도 없는 직장 있다고 무작정 귀국하기도 그렇고 해서 많이들 망설이고 있습니다.“
왜 안 그렇겠습니까? 그러면 여기서 직장은 잡을 수는 있습니까?“
찾아보면 잡을 수야 있겠지만, 문제는 여권이죠. 대사관에서 여권 유효기간을 연장해서 거주여권으로 바꿔주면 되지만.“
그러면 일단 확실한 직장을 잡은 후에 고용증명서를 갖고 오세요. 제가 어떻게 하든 연장해 드릴 터이니.“
정말입니까? 그 말씀 다른 연수생들에게 전해도 됩니까?“
성주는 귀가 번쩍 뜨여서 정말인가 다짐을 하며 노무관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공식적으로 드리는 말씀이 아니니까 알아서 하시지요. 실은 이사장님은 그렇게 말씀하시지만, 노동청 쪽에서 알아본 바로는 정국이 하도 요동치니까 직업훈련소 증설 계획 따위는 지금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될 수 있는 한 여기 서독에 머무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저도 힘을 다해서 도와드리겠습니다.“
최 노무관은 낮은 목소리로 속내를 털어내 보였다.
고맙습니다. 그럼 나중에 부탁드리러 찾아뵙겠습니다.“
성주는 하루라도 빨리 확실한 직장을 잡아 서독에 정착해야 한다는 결심을 굳혔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건우가 일하고 있는 아헨광산의 하청업체 다일만-하니엘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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