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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겨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조회 1,248회 작성일 12-12-31 19:29

본문

 
성주가 집으로 돌아온 지 사흘째 되는 날, 보쿰대학 한국유학생회에서 광주의 진상을 알리는 작은 책자를 만들어 보내왔다. 학생회관에서 함께 본 사진들을 수록하고, 김성용 신부의 증언 내용, 그리고 전남대학 학생회 선언문을 비롯한 문서자료들이 실려 있었고, 서독에 사는 한국인들에게 진상을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책자를 만들었다는 취지문이 실려 있었다. 그 가운데에서도 전남대학 학생회 선언문이 성주에게 감동을 주는 명문이었다. 민주화를 촉구하는 학생들의 평화로운 교내시위를 거리로 끌어낸 군인들의 계획된 잔인무도한 만행을 고발하면서, 아무 죄도 없이 참살당하는 학우들을 구출하기 위해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격렬한 내용이었지만, 그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뚜렷한 대의명분이 있었다.
선언문을 읽으며, 성주는 일백 년 전 전남 고부에서 고을 수령의 탐학을 견디다 못해 봉기한 동학 혁명군의 전봉준이 사발통문으로 돌린 창의문을 떠올렸다. 대의명분에 따라 봉기한 민중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예나 제나 다름이 없었다. 동학 혁명군이 그러했고 광주의 시민군이 그러했다.
성주는 그 선언문을 스무 장 복사하여 연수생들에게 나누어 주고, 보쿰유학생회에서 만든 책자는 한 사람씩 돌려가며 읽어보라고 전명훈에게 주었다. 점심시간에 성주보다 나이가 두 살 위인 연수생 이승우가 시비를 걸었다.
당신, 도대체 정체가 뭐야 ?“
정체라니요 ?“
정체가 뭐길래 저따위 빨갱이 문서를 돌리냐구 ?“
에이~이 형두, 그게 무슨 빨갱이 문서요. 보쿰대학 유학생회에서 만든 건데.“
보쿰대학이구, 보쿰교회구 모두 빨갱이인 걸 온 서독교민이 다 아는데, 당신도 한 통속인 모양이군.“
한 통속이라면 나도 빨갱이란 말 아니오?“
말귀는 빨리 알아듣네.“
옥신각신하고 있는데, 성미가 괄괄한 강일이 끼어들었다.
그러는 이 형은 정체가 뭐요? 대사관 끄나풀이요?“
? 이 새끼가...“
이 새끼라니? 뭐 이런 게 다 있어?“
마침내 욕지거리가 터져 나오면서 승우가 강일의 멱살을 틀어잡았다.
대사관이나 드나들면서 쥐새끼 노릇 하는 놈들 내가 별러왔는데, 오늘 잘 만났다. 나가자, 나가서 한판 뜨자!“
강일이 마주 멱살을 잡으며 언성을 높이자, 주위에 있던 연수생들이 달려들어 뜯어말리고, 조교들이 달려와, 여기에서 싸우면 이유 불문하고 두 사람 다 퇴교조치를 당한다고 경고하여 큰 싸움으로 번지지 않고 수그러들었다.
승우는 대사관 끄나풀이라는 말이 마음에 걸리는지, 대사관 근처에도 안 가 본 사람이라며 씩씩거리고 있었다. 성주는 자기 일에 강일이 끼어 들어 시끄러워진 게 미안해서 씩씩거리는 강일을 달랬다.
성질 급한 건 영 못 고치는 모양이지, 그러게 뭐하러 끼어 들어? 그만 진정해.“
저게 말이야, 나잇살이나 쳐먹어가지구, 똥인지 된장인지 분별도 못하면서, 어따 대고 함부로 빨갱이야 빨갱이가. 내 참 같잖아서---.“
강일도 연수원으로 오기 전에 가끔이나마 보쿰교회에 출석했기 때문에 승우가 툭하면 내뱉는 빨갱이 소리가 영 듣기 싫었던 모양이었다.
그러고 있는데 김융이 옆자리에 와 앉으며 성주에게 말을 걸었다.
어이, 한 형! 결국은 전두환이가 정권을 잡는 게 아니겠어?“
그래? 무슨 낌새라도 있어?“
돌아가는 판세가 그렇찮아? 보안사령관 겸직한 중정부장인데다가 합수부장으로 실권을 꽉 움켜잡고 있잖아? 이번 광주사태 보니까 그 지역 계엄군이 아닌 공수부대 병력을 투입했던데, 공수부대 지휘관들이 다 전두환이 키운 심복들이라고, 공수부대가 전두환의 사병부대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야. 그리고 군부에 ‘하나회’ 라는 게 있어. 모두 대구와 경북 출신의 장성들과 장교들이지. 지금 군 요직은 전부 이 하나회 장성들이 차지하고 있는데, 같은 육사 출신이라도 다른 지역 장성이나 장교들은 언감생심 기웃거리지도 못하는 철옹성인데, 그 정점에 전두환이 있거든. 최 대통령이야 허수아비니, 그가 공표한 개헌이니 총선이니 하는 것들은 다 물 건너 간 거구.“
전두환이라---.“
김융의 말이 하나도 틀림이 없는지라, 성주는 자신이 잘 모르고 있었던 새로운 인물에 대한 궁금증이 솟구쳤다. 문득 광주사태 당시 서독 제일공영방송(ARD) 화면에 잠깐 나왔던, “전두환 물러가라!“ 라고 큼지막하게 쓰인 현수막을 앞세우고 행진하던 시위 광경이 떠올랐다.
상황판단이 정확한 운동권의 대학생들은 이미 새로운 권력의 실체가 전두환을 우두머리로 하는 하나회 군인들이라는 걸 알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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