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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나지라기 제6회   

 <6>
           둘마당 : 새로운 만남

독에서의 첫 아침이 밝아왔다. 방 맞은 편에 있는 세면장과 화장실 동료들이 드나드는 소리와 그 옆 부엌에서 밥을 하는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눈을 뜬 성주는 누운 채로 낯 설은 방안을 둘러보았다. 휴게실 바로 옆 12호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영학의 침대가 길게 벽을 따라 놓여있고 그 끝머리에 놓인 낡은 냉장고를 경계로 하여 그 너머에 대성의 침대가 역시 벽을 따라 길게 놓여있다. 방문에서 마주 보이는 유리창 문턱 아래로 증기난방장치가 설치되어 있고, 그 창문턱을 따라 성주의 침대가 가로놓여 있다. 방문의 왼쪽 벽을 따라 철제 옷장 세 개가 나란히 서 있고 방 한가운데에 식탁 겸 책상이 하나 놓여있는데, 방바닥은 낡은 목재여서 걷는 대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곤 했다. 눈어림으로 대충 폭 삼 미터 길이 사 미터의 방이 앞으로 세 해 동안 세 홀아비가 함께 살아야할 공간이었다.

"
제기랄, 한숨도 못 잤네"
  성주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자 밤새도록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던 대성이 투덜대며 일어나 침대에 걸터앉아 담배부터 찾아 물었다.
"
그런데 한형은 잘 자던데..."
"
피곤했던 모양이죠"
"
피곤한 건 다 마찬가지지 뭐, 그러나 저러나 앞으로가 큰일이네. 밤새도록 고상고상 잠 못 자며 세어보니까, 아마 한 십오 분 간격으로 한 대씩 기차가 지나가는 모양인데, 그때마다 건널목에서 딸랑딸랑 종치고 차단기 올렸다 내렸다하지, 게다가 기차 지나갈 때 이놈의 집은 또 왜 그렇게 흔들려 ? 아마 땅 속 기초부터 흔들리는 모양인데 침대에 누워있는 내 골속까지 울리더라구. 이래 갖구서야 어디 사람 꼴이 되겠어 ? 그래두 한형하구 윤형은 잘 자던데-"
"
어이구 말 마 ! 나도 그놈의 땅울림 때문에 자는 둥 마는 둥했어"
  영학이 내뱉듯이 말하며 일어나 침대에 걸터앉았다.
"
첫날이라 그래요. 사나흘 지나면 기차 소리가 자장가로 들릴 테니 두고봐요."
  성주는 법랑냄비에 세 사람 몫의 쌀을 퍼담아 부엌으로 나가며 두 사람의 말을 거들었다.
"
거 밥을 어떻게 하는 건지 나두 배워야 하잖아, 나이 사십 줄에 들어서 밥하는 걸 배워야 하구 내 팔자도 기박하구나."
  영학이 뒤따라 나오며 한탄하다가 뒤돌아보는 성주와 눈이 마주치자 열없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침밥을 먹을 무렵에 교회에 다닌다고 하는 선진 두셋이 방마다 돌아다니며 권유한 보람이 있었는지, 오후 2시에 삼층 휴게실에서 열린 환영예배에 5진 동료들은 독일에 먼저와 있는 친구들을 찾아 나선 서너 사람만 빠지고 모두 참석했다. 기숙사로부터 이십 킬로미터 가량 떨어진 보쿰이라는 도시에 있는 한인교회의 담임이라고 하는 장 목사는 쉰 살 안팎으로 보였는데 가끔씩 함경도 억양이 섞인 목소리로 설교를 했다.
" … 여러분은 어릴 때 꿈속에서, 절벽에서 공중을 날거나 무서운 짐승에게 쫓겨서 놀라며 깨어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어른들은 키가 크느라고 그런 꿈을 꾼다고 말해주곤 합니다. 구태여 심리학자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그것이 깊은 잠재의식의 발로라고 한다면, 생명을 가진 존재는 위기 가운데 떨어질 때에 성장하는 신비한 힘을 갖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삼십 년 가까이 살던 고국을 떠나서 책에서만 보던 낯선 독 땅에 왔습니다. 이 사실을 우리는 여러 면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단순하게 경제적이나 정치적인 면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나를 비약시키는 인생의 도약대로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신앙의 눈으로 볼 때에만 가능합니다.
여러분의 의식의 깊은 곳에 '독에나 가보자' 하는 스스로도 설명하기 힘든 모험심이 있었습니다. 이 모험을 해보자 하는 정신이야말로 우리가 갖고있는 모든 것 중에서 가장 귀중한 정신인지도 모릅니다.
고향을 버리고 부모나 처자를 뒤에 두고 떠나는 이의 마음은 단순한 마음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게 떠나온 이곳은 또 어떻습니까? 여러분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듣던 독과 내가 경험하는 독은 판이합니다. 여러분은 이곳 루르지방 광산의 외국인 노동자일 뿐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게 된 것은 귀중한 일입니다. 이곳에 온 것을 지난날의 경험으로 미루어 천하게 생각하거나 어제의 때묻은 상황의 연장으로 삼지 말고 새롭고 신기한 것을 쳐다보는 어린아이처럼 순진한 심정으로 모든 것을 볼 때, 여러분은 여기에서 새로운 미지의 세계를 본다는 말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에 나오는 모세도 지루하기만 한 미디안의 황무지에서 양떼를 지키며 새로운 마음을 찾았습니다. "하느님이 나를 여기에 보내셨다"고 하는 신앙의 마음을 찾았습니다. 여러분들도 '하느님께서 나를 여기 서독 땅에 보내셨다.'고 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면 여러분의 삶은 새롭게 변할 수가 있습니다. 파독광부 생활 삼 년을 요령부리지 않고 진지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일과 대결하자면 정말 그 생활 속에서 무언가를 잡고 살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곳 광산촌은 서독에서도 유명한 곳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눈물과 비탄 속에 청춘의 꿈을 앗기며 지나간 곳이지만, 아무런 말이 없는 어떻게 보면 무서운 스핑크스와 같은 곳이기도 합니다. 여기서는 두 가지 일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인생살이에 빠지느냐 ? 하느님을 만나느냐 ? 하는 것입니다. 인생살이에 빠진다는 것은 인생의 재미를 맛보다가 그만 그 속에 빠져 헤어나지 못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 광산촌의 말로 하면 '물새'가 된다는 말입니다.
'
인생의 맛을 다 맛보았다'는 말은 정신적으로 다시 모험을 할 수 없다는, 순수성을 잃는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어느 나라나 광산촌은 다 같습니다. 밤마다 춤이 있고 노래가 있고 술과 여자가 있습니다. 거기에 빠져서 지내다보면 일을 기피하게 됩니다. 소위 말하는 요령을 부리게 됩니다. 이것이 가장 무서운 병균입니다. 요령은 핑게를 낳고 핑게는 무책임을, 무책임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결국 신의를 잃게 만들어서 현실로부터 버림을 받게됩니다. 결국은 고향 잃은 실향민이 되어 처자를 볼 면목이 없는 사람으로 전락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모세처럼 "나를 왜 여기에 보내셨습니까 ?" 하고 하느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모세는 양을 치던 지루한 광야의 불붙는 떨기나무 옆에서 변화되었습니다.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는데도 타지 않는 광경을 모세는 가까이 가서 살펴보았습니다. 여러분 모세와 같이 신기한 것을 보는 눈을 가지십시오. 인생의 젊은 시기를 외국에서 산다는 것은 축복이 될 수 있습니다. 타야할 것이 타지 않는 이상한 것을 살펴보는 자세를 지닌 사람에게 하느님은 말을 거십니다.
마하트마 간디는 일등석의 차표를 갖고도 삼등석으로 가야하는 인종차별에 느낀 바가 있어서 분연히 일어나 변호사가 되어 남아프리카로 갔고, 그 일이 계기가 되어 7억 인도인의 지도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호지명은 먼 앞날을 내다보며 십대의 소년시절부터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배웠습니다.
모세는 호랩산에서 비로소 하느님의 일꾼인 모세가 되었습니다. 그는 호랩산에 혼자 있다가 하느님을 만났습니다. 하느님이 어떤 분입니까 ? 하느님은 우리와는 다른 분이지만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엄청난 일을 하시는 분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하느님을 만난 분이 계십니까 ? 없으시다면 내가 여러분에게 하느님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하느님은 광야에서 양을 치고있는 모세에게, 당시 세계의 최강국인 애굽에서 종살이하며 시달리고 있는 이스라엘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여 살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아무리 우리의 처지가 힘들다 하더라도 나보다 더 못한 사람에게 눈을 돌리고 행동하라는 것이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또 그렇게 해야만 하느님을 만나게 됩니다.
오늘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향하여,
'
네가 독에 온 것은 네 마음대로 온 것이 아니라 내가 보냈다. 내가 네 조국 한국을 아시아의 , 즉 잘 살 수 있는 나라로 만들려고 하는데 네가 나를 도와서 이 일을 하겠는가 ?' 하고 물으시면서, 여러분을 한국의 모세로 세우시겠다고 하십니다. 민족의 새 일꾼, 지금까지 여러분이 생각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인간, 그것은 거창하게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있는 그대로를 갖고 하느님을 위해 일하면 됩니다. 하느님은 지금 여러분을 부르고 계십니다. 이 광산의 일터는 하느님의 일터이고 여러분은 하느님의 일을 한다고 믿고 일하면 호랩산의 모세처럼 내 민족을 종살이의 구렁텅이에서 건져내는 한국의 모세가 될 것입니다. 다 함께 기도합시다."
설교가 끝나고 기도, 찬송, 축도의 순서로 예배가 끝났다. 장 목사는 한 사람 한 사람 돌아가며 악수를 하며 등을 두드려주었다. 그 얼굴에는 마치 한 집안의 맏형이 멀고 험한 길을 떠나는 막내아우를 안쓰러워하면서도 격려하여 떠나보내는 애틋함이 서려있었다.
 
                                   <7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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