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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겨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1,350회 작성일 12-12-30 20:09

본문

 
      열다섯 번째 마당: 역사의 흐름

오월 하순,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오복이 거실에 있던 텔레비전을 부엌으로 옮겨 놓고 저녁 식탁을 차리고 있었다.
왜 텔레비전을 부엌으로 옮겼어?“
평소에 그런 일이 없었기에 성주가 물었다.
한국에서 난리가 났어. 낮부터 시시때때로 나오는데, 코리아 소리 나오면 놓치지 않고 보려구 부엌으로 갖다 놓았지.“
? 무슨 일인데? “
광주라고 하는데, 군인들이 몰려다니면서 학생들을 개 패듯이 두드려 패고, 두 손을 뒷짐결박 해서 줄줄이 묶어 끌고 가고, 길거리에 널브러진 학생들은 아마 죽은 거 같아. 도대체 무슨 일이래?“
성주는 마음이 급해서 채널을 여기저기로 돌려보았다. 서독 텔레비전방송의 뉴스 시간은 밤새도록 광주사태를 보도하느라고 들끓었다. 전남대학 교문을 사이에 두고 학생들과 군인들이 밀고 밀리는 광경을 비롯하여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는 도서실로 난입하는 군인들, 달아나는 학생을 뒤쫓아가 곤봉으로 때려눕이는 장면, 열 댓 살밖에 안되어 보이는 까까중머리 어린 소년들을 줄줄이 앞세우고 총을 겨누고 따라가는 험악한 군인들의 폭행들을 화면으로 보여주면서 논설기자는, “전쟁도 아닌 상황에서 제 나라의 학생들을 이렇게 잔인하게 살상하는 군인들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다.“라고 분노의 목소리를 높였다.
해설과 논평을 하는 시간에는 저명한 논설위원이 나와서, 박 대통령 저격 사건 이후 이른바 ‘서울의 봄’으로 불린, 김대중 김영삼 등 기성정치인들의 정치활동이 다시 시작된 과정을 소개하고, 최 대통령이 민주화 일정을 대국민담화로 발표했지만, 실권을 잡고 있는 정치군인들의 책동으로 그 실행이 지지부진해질 수밖에 없었다고 진단했다. 이에 학생들과 시민들이 민주화 일정의 실천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는데, 신군부는 이들의 시위를 교묘하게 조장하여 대규모 극렬시위로 유도했다며, 수만 명이 운집한 서울역 광장의 극렬시위 광경을 영상으로 보여주었다.
논설위원은 계속해서, 이러한 극렬한 대규모시위를 빌미로 신군부는 이미 계획한 대로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정치인들과 재야인사들을 연행 구속하거나 자택연금을 시킨 후에, 광주에 계엄군을 투입해 학교교정에 모여 있는 대학생들을 살상하기 시작했다면서, 특히 도서실에서 공부하고 있는 어린 학생들을 공격해서 살상하는 잔인한 폭행은 “정치군인들의 광란”이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고 탁자를 두드리며 분노의 목청을 높였다.
논설위원은, “광주의 학생과 시민들이 외부와의 연락이나 연결이 철저하게 봉쇄당한 채 고립되어 있으며, 살아남기 위해서 ‘미친 군인’들에 대항하여 싸우고 있으므로 사태가 어떻게 진전될지 예측할 수가 없다.” 라고 끝을 맺었다.

이튿날 아침, 연수원에 들어서니 연수생들은 물론 독일인 교사와 조교들까지 삼삼오오 모여 서서 광주 이야기로 얼굴들이 상기되어 있었다. 대부분 군인들의 만행을 성토했지만, 몇 사람들은 어디에서 들었는지, 빨갱이들의 사주를 받은 불온분자들이 일으킨 폭동이라며, 강경하게 빨리 진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주는 서독방송의 논설위원이 말한 대로 학생과 시민들이 폭동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군인들이 먼저 학생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고 말해 주고 싶었지만, 평소 그들의 언행으로 보아 쇠귀에 경 읽기가 될 것이 뻔하기에 입을 다물었다. 심지어 그들 중의 하나는 전두환 장군이 정권을 잡아야 우리나라가 빨리 안정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점심시간에 잠깐 밖으로 나가 이 박사에게 전화하니 계속 통화 중으로 연결이 안 되었다. 이 박사도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상황을 파악하는 중이리라 짐작이 갔다.

저녁 뉴스에는 마침내 시위대들이 광주 근교의 경찰서 무기고를 습격하여 총기를 탈취해 군인들과 맞서 총격전을 벌이기 시작했다며, 총을 든 시위대들이 트럭을 타고 어디론가 질주하는 장면과 건물 옥상에서 시민을 향하여 조준사격하는 군인의 모습을 대비시켜 보여 주었다.
저녁을 먹고 나서야 가까스로 통화가 된 이 박사도 답답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사태를 알만한 서울의 지인들은 모두 전화 연결이 안되고, 전남대학 교수회관 역시 전화가 먹통이라며, 서독방송에서 보도한 대로 광주가 외부와는 철저하게 차단된 게 분명하다고 말했다.

며칠 후 서독방송은, 전남도청을 향하여 장갑차를 앞세우고 진군하는 군인대열을 화면으로 내보내면서, 광주시민의 저항이 수많은 사상자를 내고 군인들에 의해 진압되었다며, 이로써 한국의 민주주의 역사는 한 걸음 퇴보했다고 보도했다.
한 주일이 지난 후, 이 박사로부터 서울에서 온 광주사태에 관한 자료들이 일본인 목사 편으로 왔으니, 주말에 꼭 오라는 연락을 받은 성주는, 약속장소인 보쿰대학 학생회관으로 갔다. 학생회관 작은 회의실에는 유학생 정현화와 한국유학생회 회장단 세 사람, 학위를 마치고 귀국일이 가까워져 오는 늦깎이 유학생 이영모씨, 그리고 광주 김성용 신부의 육성 녹음테이프와 몇가지 유인물을 숨겨서 서울을 빠져나와 일본을 거쳐 서독까지 온 일본인 목사가 모여 있었다. 먼저 김 신부의 증언이 담긴 녹음테이프를 들었다. 당시 광주는 완전하게 봉쇄되어 외부와의 통신이나 연락을 할 수 없었고, 일반인들도 통행이 금지되어 광주를 빠져나가거나 들어가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목숨을 걸고 탈출하여 서울에서 광주의 진상을 폭로한 내용이었다. 녹음 현장이 시끄러워서 녹음상태가 좋지 못했지만, 귀를 기울이면 그런대로 알아들을 수가 있었다. 그 증언에서 김 신부는 임산부 살해와 여학생 유방 난자 사건은 풍문으로만 들었지 확인하지는 못했다고 밝히고, 당시의 정황으로 미루어보아 그런 참혹한 일이 있었을 거라고 증언했다.
또 홍남순 변호사, 조아라 여사 등 광주의 유지들이 평화적인 수습을 위해 시민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시민군과 계엄군 사이를 오가며 중재를 하면서, 시민군의 무기까지 회수해 전남도청 지하실에 쌓아 놓았지만, 계엄군이 약속을 어기고 새벽에 장갑차를 앞세우고 전남도청으로 진입해 잔혹하게 진압했다고 비통한 음성으로 보고했다. 또 광주를 빠져나오면서 살펴보니 광주 외곽은 미군 병력이 진을 치고 봉쇄하고 있는 것 같았다고 덧붙였다. 참석자들은 녹음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광주의 진상을 들으며 모두 치를 떨었다.
이어서 이 박사가 국제사면협회에서 수집한 스무 장이 넘는 현장사진을 돌렸다. 두 광주 현장에서 취재활동을 한 외신기자들이 촬영한 보도사진들로 그동안 방송이나 신문에 보도되지 않은 새로운 것들이었다. 사진들은 한 마디로 경악을 금할 수 없는 잔혹한 장면들을 담고 있었다.
숨을 죽이고 사진들을 들여다보다가, 성주는 한 장의 사진을 들고, 끓어오르는 분노에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시신들을 관에 안치한 사진이었는데, 미처 관 뚜껑을 덮지 않은 네 구의 시신에 화염방사기의 화염 세례를 받은 흔적이 뚜렷했기 때문이었다.
이 죽일 놈들, 어떻게 시민에게 화염방사기까지---“
성주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분노의 신음만 내뱉었다.
한형! 왜 그래? 뭔데 그래?“
건너다보며 묻는 이 박사에게 성주는 들고 있던 사진을 건네주었다.
이 사진을 좀 봐요! 이건 그냥 총 맞아 죽은 시신이 아니라 화염방사기에 희생된 시신입니다.“
화염방사기? 그게 뭔데?“
군대를 안 갔다 온 유학생들은 화염방사기가 무엇인 줄을 몰랐다.
기름 덩어리, 철판이나 암벽에 엉겨붙는 인화성이 강한 화학물질과 함께 화염을 쏘아대는 공격용 무기요. 월남에서 미로와 같은 지하동굴 속의 베트콩을 공격할 때 쓰던 무기인데, 기름 덩어리가 일단 엉겨붙으면 불길을 끌 수가 없어서 그냥 다 타버리는 거요. 아마도 도청을 공격할 때 건물 안에서 대항하는 시민군을 향해 화염세례를 한 모양인데, 그렇다면 계엄군이 단순히 시민군을 제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모조리 죽이려는 목적을 갖고 진입했다는 말이 됩니다. 이 사진의 시신들을 자세히 봐요. 여기저기에 타다 남은 시꺼먼 기름찌꺼기가 묻어 있지 않소?“
세상에, 그런 잔인한 무기를---“
정현화가 사진을 받아서 보며, 빨갛게 충혈된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씻을 생각도 잊은 채 희생자들의 명복을 비는 기도의 자세를 하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참석자들은 모두 말을 잃었다. 아니 넋을 잃었다. 김 신부의 증언과 그 증언에 일치하는 믿을 수 없도록 잔인한 장면의 사진들이 광주의 참상을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댓글목록

연금술사님의 댓글

연금술사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한겨레님, 오늘도 잘 읽고 갑니다. 그때는 인터넷이 없었으니 정말 소식을 들을 수 있는 창구가 제한이 되었겠어요. 언론마저 통제되면 왜곡된 정보만 듣게되는...
좋은 글 감사합니다. 한겨레님, 새해 복 많이 많이 받으세요~!!!

한겨레님의 댓글

한겨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당시 언론통제하의 한국에서 발행되는 일간지만 읽고 북한이 배후에서 사주한 빨갱이들의 폭동이라고 믿는 교민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저와 같이 진상을 알리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빨갱이라고 욕설을 퍼붓고 심지어는 집에까지 찾아와 협박하며 전두환을 "구국의 국부"라고 까지 치켜세웠던 친구도 있었지요. 지금은 다같이 고희를 낼 모래 앞둔 나이로 그저 옛말하며 이웃으로 지냅니다.  그런 친구들 여전히 박정희 숭배자고 박사모 회원입니다.
연금술사님, 새해도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이 모두 잘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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