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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겨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조회 1,337회 작성일 12-12-24 20:22

본문

 
밤사이에 눈이 내려 소복하게 쌓인 이월의 토요일 아침, 아이들과 둘러앉아 독일말 공부를 하고 있는데, 낯모르는 중년의 독일부인이 찾아와 어리둥절해 하는 성주와 오복에게 정중하게 자기소개를 했다.
나는 이 근처 초등학교의 교장인 부크만입니다. 잠시 들어가서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
! 그러세요. 들어오시죠.“
얼떨결에 거실로 안내하다가 성주는 거실에 앉을 의자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당황했다.
미안합니다. 실은 이사 온 지 얼마 안 돼서, 거실이라야 앉을 자리가 마땅하지 않은데---“
성주가 부엌 의자라도 가져오려고 서두르자 부크만 부인이 만류했다.
, 그냥 두세요. 그냥 바닥에 앉지요. 우리 세대는 종전 직후에 방도 아닌 지하실 좁은 공간에서 예닐곱 식구가 함께 기거하면서 살아 본 경험을 했기 때문에 아무 데나 앉는 일에도 훈련이 잘되어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부크만 부인은 민망해 하는 성주와 오복을 앉으라고 하면서 자신도 방바닥에 무릎을 모으고 단정한 자세로 앉았다. 오복이 인스탄트 커피라도 타 온다고 부엌으로 간 사이에 성주는 궁금해서 물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이렇게 찾아오셨습니까?“
이사 온 지 한 달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시지 않기에 오늘일까 내일일까 기다리다가, 무슨 일인가 해서 방문했습니다. 혹시 아이들이 아픈가요?“
, ! 아닙니다. 그건 저어~ 아이들이 한국에서 금방 와서 독일말을 전혀 못 알아듣고, 말을 할 줄도 몰라서, 우선은 집에서 제가 꼭 필요한 말들을 가르치고, 알파벳 쓰는 것도 익히게 한 다음에 학교에 보내려고---.“
부크만 부인이 성주의 말을 끊었다.
그건 잘못 생각한 겁니다. 말이고 글이고 학교에서부터 배우기 시작해야 바르게 배웁니다. 당신이 집에서 가르치는 것은 헛수고일 뿐입니다. 처음에 잘못 배워 놓으면 그걸 바로 잡으려면 오히려 더 힘이 들지요. 그러니 오는 월요일부터 윤기는 우리 초등학교로, 준기는 유치원으로 보내세요. 학교가 어디 있는지는 아시지요?“
, 그건 진작 알아두었습니다. 그럼 윤기는 한국에서 이 학년을 다니다가 왔지만, 여기서는 일 학년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겠지요?“
아니 그럴 필요 없습니다. 이 학년에 그대로 편입해서 다니다가 잘 따라가면 오는 팔월에 시작하는 새 학기에 삼 학년으로 올라가고, 저엉 따라가지 못하면 이 학년에 유급하면 됩니다.“
아직 독일말의 기초가 전혀 없는데, 그래도 되겠습니까?“
염려 마세요. 우선 한 달 정도만 제가 개인지도를 해서 이 학년 수준을 따라갈 수 있도록 할 테니까.“
그렇게까지나요? 정말 감사합니다. “
감사할 것까지야 없지요. 그게 교육자의 의무이니까요.“
, 잘 알겠습니다. 그러면 입학서류는 무얼 준비해야 하나요?“
시청 주민등록과와 학교청에서 벌써 학교와 유치원으로 서류가 다 와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윤기와 진기 이름과 나이를 알지요. 그냥 책가방에 필기도구만 넣어 가지고 오면, 교과서는 학교에서 주고, 유치원이야 책이 없으니까 그냥 가서 또래 아이들과 어울려 놀면서 배우면 되지요. 학교는 일곱 시에 시작하고, 유치원은 여덟 시에 시작입니다. 늦지 않도록 보내 주세요. 그럼 이만 가겠습니다.“
부크만 교장은 오복이 타내온 인스턴트 커피를 기품 있는 자태로 한 모금 마신 후 일어났다. 교장이 돌아간 후 오복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오복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었다.
세상에 참 별일도 다 많다. 아이들 학교 안 보낸다고 교장 선생이 직접 찾아오질 않나, 교장이 개인지도를 해 준다구 하질 않나. 나 어릴 때 한국에서는 어머니 혼자 농사지어서 농사일 바쁠 때에는 한 달씩 학교 안 가도 선생이 들여다보지도 않았는데, 도대체 이 나라는 어떤 나라야? 월사금도 없다면서? 처음에는 아무 데도 등 댈 데 없는 뜨내기 살림이구나 했더니 그게 아니네? 사방에서 등 대라고 돕는 사람들이 나서니, 정말 낙원이 따로 없네. 그런데 무슨 학교가 그렇게 새벽같이 시작한대?“

월요일부터는 윤기는 학교에 가고, 준기는 유치원에 가야 한다고 알려주고, 성주는 스쿠터를 타고 나가 문구점에 들려 이것저것 물어보며 책가방과 필기도구들을 사려는데, 문구점 여주인이,
우리 동네에 한국인 가족이 이사 왔다더니 당신이군요. 반갑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모양이지요.“
하고 아는 체를 하면서 알아서 필요한 것들을 챙겨주었다.

월요일 아침, 늦잠 버릇이 들어 졸려 하는 아이들을 깨워 세수를 시킨 후 아침밥을 먹이고, 성주와 오복은 먼저 윤기를 데리고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이른 아침 길을 걸어서 오 분도 채 걸리지 않는 초등학교로 갔다. 운동장에서 놀고 있던 페트라가 윤기를 부르며 달려와 반갑게 아는 체를 하면서 교장실로 안내했다. 부크만 교장은 윤기를 자기 옆자리에 앉히면서, 수업은 열두 시에 끝나니 두 사람은 돌아가라고 했다. 꼭 갓난아이를 물가에 두고 오는 것 같은 심정으로 집에 돌아와 유치원에 준기를 데려다 주는 일은 오복에게 맡기고 성주는 연수원으로 갔다.
온종일 마음이 놓이지 않아, 수업을 받는 둥 마는 둥 애를 태우다가 오후 강의가 끝나기가 무섭게 집으로 달려갔다.
윤기는 교장 선생님 옆에 앉아서, 교장 선생님이 책을 읽어주면 따라 읽고, 독일글자를 하나씩 써 주면 그대로 따라 쓰고 하다가, 노는 시간에는 운동장에 나가서 페트라와 페트라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도 하다가, 산수와 미술 시간에는 교장 선생님 손을 잡고 이 학년 교실에 들어가 공부를 했다고, 재잘재잘 그날 배운 독일말을 섞어가며 말했다.
준기는 오복이 데리고 유치원에 들어서니까, 온다는 연락을 받았는지, 여교사가 나와 맞으며 무언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몇 마디 하고나서 준기만 교실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기에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아 창문으로 교실 안을 들여다보니, 다행히도 바바라가 있어서 준기와 마주 앉아 무언가 소곤소곤 말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고 조금은 마음이 놓였지만, 그래도 눈길을 떼지 못하고 들여다보고 있으니까, 여교사가 웃으면서 뭐라고 손짓을 하는데, 눈치를 보니 그만 돌아가라는 것 같아서 집에 돌아와 있었더니, 열한 시 조금 넘어서 유치원 교사 둘이 준기를 집에까지 데려다 주고 가더라고 했다.
다음날부터는 아침마다 문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페트라와 함께 윤기는 학교로 가고, 준기는 오복이 유치원 데려다 주고, 유치원이 끝나면 여교사들이 집까지 데려다 주고, 저녁에 성주가 돌아오면 모두 모여 앉아 학교와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들을 듣는 것으로 일과를 삼는 평온한 날들이 지나갔다.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독일말이 늘어 성주도 얼른 알아듣지 못하는 새로운 낱말들을 쓰면서 날마다 페트라 남매와 어울려 자전거를 타고 숲으로 공원으로 놀러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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