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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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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12-23 20:39 조회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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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 금요일 오후, 반나절의 말미를 얻은 성주는 자전거 뒤에 오복을 태우고 레데 외곽에 자리 잡고 있는 알 카우프로 갔다. 오복과 함께 한 시간이 넘도록 둘러보아도 마리아에게 줄 마땅한 선물을 고를 수가 없었다. 오복이 보석점 앞에 서더니 목걸이 하나를 가리키며 이게 어떨까 하고 물었다. 두툼한 금줄에 빨간 루비로 장식한 십자가가 달려 있었다. 가격을 보니 삼백 마르크가 붙어 있었다.
이건 너무 비싸잖아?“
성주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짓자, 오복은 목걸이가 마리아가 풍기는 분위기와 어울린다며, 가격이 그 정도는 돼야 성의가 느껴질 것이 아니냐며 막무가내였다. 성주가 가진 돈이 모자란다고 하며 다른 것 고르자고 하니까, 오복이 지갑에서 오백 마르크짜리 지폐를 한 장 꺼내어 건네주었다.
비상금으로 한국에서 올 때부터 간직하고 있던 거야. 이걸로 저 목걸이 사자.“
오복이 졸라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거금을 치르고 선물포장을 해 달라고 부탁했다. 언젠가 좀 여유가 생기면, 그런 루비 목걸이를 오복에게도 하나 사 주리라 마음속으로 새기며 성주는 오복을 다시 보았다.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은 후 둘은 천천히 걸어 마리아의 집을 찾아갔다.
마리아는 반가워하며 남편을 불러내고 시어머니를 불러내며 수선을 피우더니 과자와 커피를 내왔다. 성주가 여러 가지로 도움을 많이 주어서 고맙다는 인사치레를 하면서 들고온 선물을 건네주었다.
이건 우리 부부의 마음 표시로 마련한 선물이니 받아줘요.“
고맙다면서 선물을 풀어본 마리아가 깜짝 놀라며 성주를 나무랐다.
연수생이 무슨 돈이 있다고 이런 비싼 선물을 해, 당장 내일 가서 물러와! 생각이 없어도 분수가 있어야지.“
너무나도 호된 꾸지람에 성주가 무안해서 우물쭈물하고 있으니까, 오복이 눈치로 알아듣고 가만히 옆구리를 찔렀다.
우리 가족 평생의 은인이고, 또 누님이 되셨기에 좀 무리를 했지만, 목걸이가 하도 누님 분위기에 어울려서 샀으니 그냥 받아주시라고 해. 그래야 우리도 마음이 편하다고.“
마리아가 오복이 무슨 말을 하느냐라는 눈빛을 보내기에 성주는 그대로 마리아에게 전했다.
그래도 그렇지, 이런 선물은 못 받는다.“
노발대발하는 마리아를 엔팅씨와 노모가 보다 못해 말렸다.
마리아, 선물이 과하기는 하지만, 저 두 사람이야 네게 고마움을 표시한다고 성의를 다 한 것이니, 그냥 받아야 저 사람들도 마음이 편하지.“
그제야 노모는 탁자 위에 놓인 목걸이를 들고 들여다보았다.
참 곱다. 마리아 네게 잘 어울리겠다.“
하면서 노모는 목걸이를 마리아의 손에 들려주었다. 목걸이를 한참 들여다보다가 마리아는 정색하고 오복을 나무랐다.
성의를 보이려고 선물을 마련했다니 받기는 받겠다. 그런데 오복이 너는 손이 그렇게 커서는 평생을 가난에서 못 벗어난다. 내 말 명심해라! 가난한 연수생의 아내가 통이 이렇게 커서는 절대 안 돼! 앞으로는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마라!“
성주가 옆에서 마리아의 꾸지람을 그대로 전하니, 오복은 얼굴빛이 빨개지며 그러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리아가 노기를 풀고 목걸이를 목에 걸어 보이며, “비싼 것이어서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예쁘기는 참 예쁘다.“ 하고 좋아하는 걸 보며 성주가 화제를 다른 데로 돌릴 겸해서 물었다.
그런데 누님, 나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궁금? 뭐가 궁금한데?“
누님은 언제 결혼했길래 딱 일곱 살짜리 딸 하나뿐이오?“
성주의 물음에 마리아는 가만히 있는데, 엔팅씨와 노모가 웃음을 터뜨렸다. 영문을 몰라서 성주가 웃는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니까, 노모가 웃으며 이야기를 꺼냈다.
마리아는 고등학생 때부터 동네에 유명한 극성장이었지. 안팎으로 참견 안 하는 일이 없었고, 온 동네 일 도맡아 처리해 주는 동네대장이었다. 대학도 사회복지학과 들어가서는 동네를 벗어나 천주교 뮌스터교구를 좁다 하고 휩쓸고 다녔지. 특히 외국 난민 구제활동을 오래 했지. 그러면서도 석사학위까지 했으니, 언제 결혼할 새가 있었겠니? 마리아가 클라우젠호프 사무장으로 있을 때니까 서른다섯 노처녀 때 내 아들을 만나서 결혼했지. 아마 내 아들이 구제해 주지 않았으면 지금까지 처녀로 늙었을 거다. 안 그러냐, 마리아?“
그럼, 누님 나이는 지금 몇 살?“
성주가 손가락을 꼽으며 묻자 마리아가 웃으며 대꾸했다.
지금 마흔다섯이야, 성주보다 아홉 살 더 많지.“
클라우젠호프 사무장으로 일했다구요?“
그래, 지금 있는 뮐러부인보다는 한참 선배지, 그일 안 했으면 지금 성주 만날 일도 없었을 거야.“
성주가 오복에게 대화 내용을 다 알려주니, 오복도 쿡쿡거리며 웃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듣기도 했다.
문득 집에 아이들만 있다는 생각이 들어, 성주는 오복을 재촉하여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다행히도 아이들은 페트라와 둘러앉아 서양장기를 배우고 있었다.

이튿날 토요일엔 오복과 아이들을 데리고 동네 자전거 상회를 찾아갔다. 부인용 자전거 한 대와 어린이용 자전거 두 대를 사면서, 혼다 상표의 중고 스쿠터가 있기에 흥정을 해서 성주가 타고 다니던 자전거에 백 마르크의 웃돈을 얹어 주고 스쿠터를 샀다. 연수원을 오가는 시간을 줄이고 여기저기 볼 일도 많아질 것 같아서였다.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 동안은 자동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동네 길에서 아이들과 오복에게 자전거 타기를 가르치면서 땀을 흘렸다. 매사에 겁이 없는 윤기는 반나절 만에 혼자 타고 왔다 갔다 했고, 겁이 많은 오복과 준기는 수도 없이 넘어지면서 무릎과 팔꿈치가 상처투성이가 되면서 이틀 만에 겨우 비틀거리며 자전거 타기에 성공했다.
공연히 자전거를 배우라고 해서, 이 피나는 것 좀 봐.“
오복은 길갓집 문앞에 심어놓은 장미 위로 자전거째 넘어져 팔뚝에 박힌 장미 가시의 거스러미를 뽑아내면서 울상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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