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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겨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조회 1,159회 작성일 12-12-19 21:39

본문

 
최규하 총리가 대통령 직무대행을 하는 가운데, 전두환 보안사령관에 의해 김재규가 체포되고, 합동수사본부가 설치되고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중정부장을 겸직하면서 합동수사본부장이 되어 기자회견을 하는 등 서서히 정국의 중심인물로 떠오르는 숨 가뿐 시간이 흐르는 가운데, 오복과 아이들이 서독에 도착했다.
영주가 제 차를 가지고 함께 마중을 가자는 걸 사양하고, 성주는 기차를 타고 프랑크푸르트 공항으로 갔다. 대한항공기가 도착하고 한참을 기다리자 맏아들 윤기와 둘째 준기가 바퀴 달린 커다란 가방을 하나씩 밀고 나오고, 그 뒤를 청바지에 흰 블라우스를 입고 한창 멋을 부린 오복이 또 하나의 큰 가방을 밀며 나왔다.
윤기야! 준기야! 여기다! 아빠다!“
성주가 부르며 손짓을 하니, 두 아이는 잠시 멀뚱멀뚱 쳐다보다가 “아빠” 하며 두 팔을 벌리고 있는 성주에게 달려와 안겼다.
어이구 많이 컸구나! 우리 아들들, 보고 싶었다.“
당신, 나는 보이지도 않는가 봐. “
오복이 반가움 가득한 얼굴로 성주 앞으로 다가섰다.
혼자서 고생 많았지? 미안해 여보!“
성주는 오복을 살며시 끌어안았다. 결혼 이후 처음으로 남들 보는 앞에서 하는 포옹이어서 그랬는지 오복은 얼른 몸을 뺏다.
남들이 보잖아---.“
괜찮아, 여긴 한국이 아니라 서양이야, 부부가 오랜만에 만나서 서로 끌어안고 뽀뽀하는 게 당연한 나라야.“
하면서도 실은 성주도 어색했다.
공항 구내 중국식당에서 처음으로 네 식구가 푸짐한 외식을 하고 나서, 기차를 타고 가는 동안 아이들은 긴 여행에 지쳤는지 잠이 들어 곯아떨어졌다.
광산에서 해고당하고 무슨 기술 연수받는다고 하더니, 갑자기 왜 식구들을 초청했어?“
오복이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이들 대학공부 마칠 때까지만 서독에서 살려고. 남들은 많은 돈을 들여서 외국유학도 보내는데, 여기서 살 길이 보이는데, 굳이 한국 들어가서 고생할 필요가 없쟎아? 여기 서독은 대학까지 학비가 없어, 모두 나라에서 부담해. 그래서 당신과 내가 좀 힘들더라도 아이들 대학공부 마칠 때까지만이라도 뒷바라지해주고, 그다음엔 저희에게 맡기고, 우린 한국에 돌아가서 노후를 둘이서만 편안하게 보내면 좋챦아. 어때 당신 생각은?“
내가 뭘 알아. 당신이 그렇다면 그런 거지. 그런데 말도 안 통하는 데서 아이들이 잘해낼까?“
아이들은 걱정 없어. 학교 다니기 시작하면 금방 익혀. 걱정이야 당신이 걱정이지. 말도 안 통하고 주위에 한국사람도 없으니. 외로워도 조금만 참아, 우선 여기서 살다가 다른 직장 얻어서 한국사람 많은 큰 도시로 이사 가서 살 계획이니까.“
성주는 낯선 외국 땅에 첫발을 들여놓으며 가늠할 수 없는 미래를 불안해하는 오복을 안심시키기 위해, 앞으로 서독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자상하게 일러주면서 오복의 두 손을 다정하게 잡았다.
어머니가 많이 서운해하셨어. 살 길을 마련해 놓았으니 가족을 불러가겠지. 하시면서도, 사주에 타향에 가서 살아야 잘 된다고 하더니 팔자는 못 속이는 모양이다 하시면서 눈물을 흘리셨어.“
그러셨겠지. 고등학교 땐가 어머님이 어디 가서 점을 치고 오셔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걸 들은 적이 있어. 명색이 맏아들이면서도 어머님에게는 큰 불효를 하고는 있지만, 어떻게 해? 한국에서는 살아가는 게 도무지 자신이 없었는데 여기서는 자신만만해. 아무래도 그 점괘가 맞는 모양이야. 그러니 당신도 염려하지 말고 기운을 내.“
그래. 당신 똑똑한 사람이라는 큰언니 말만 믿고, 처음 만난 당신하고 덜컥 결혼해버린 난데, 똑똑한 당신을 믿을 수밖에 다른 도리가 있겠어?“
오복이 처음으로 살며시 웃으며 성주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드넓은 밭 한가운데 오롯이 서 있는 외딴 농가의 뒷방에 들어서며 오복은 실망하는 빛이 역력했다. 짐 가방 정리는 다음 날로 미루고 서둘러 아이들을 침대에 뉘어 재운 뒤, 목욕하고 나온 오복이 혼잣말처럼 푸념을 늘어놓았다.
서양이라고 해서 영화에 나오는 그런 서양을 떠올리며 왔더니, 이게 뭐야, 농사꾼 딸도 살아보지 못한 외딴 농가에 사방을 둘러봐도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들판뿐이니, 게다가 달랑 방 하나지 이런 데서 어떻게 살아?“
여기서는 잠깐이야. 한 달도 채 안 걸려. 곧 집을 얻어서 이사할 거니까 그동안만 참아줘 여보.“
쩔쩔매며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는 남편의 모습을 처음 보는 오복은 곧 마음이 풀어져 머리가 젖은 채 성주에게 달려들었다. 두 해하고도 석 달 만에 만나 나누는 부부의 정이 피워 올리는 불꽃이 밤을 지새웠다.
이튿날 아침, 오복이 밥을 짓는 동안에 성주는 욕조 안에 아이들을 들여앉혀 놓고 씻겨주면서, 가정이란 이렇게 오붓한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들었다.

그날의 연수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반색을 하고 뛰어나왔다. 오복은 시무룩한 얼굴을 하고 성주의 책가방을 받아들었다.
아이고 내 새끼들 잘 놀았어? 엄마 말 잘 듣고?“
놀게 뭐가 있어야 놀지. 낮에 잠깐 주인집 아이들이 같이 놀자고 데려갔었는데, 말이 안 통하니까 재미가 없었는지 곧 돌아와서 온종일 심심해하면서 마당이나 들락날락하면서 하루를 보냈구만. 아무리 밖을 내다보아도 사람 발그림자 하나 얼씬 안 하구, 자동차가 다니길 하나, 완전히 절간이야.“
그래그래, 당신하고 살려고 얻은 방이 아니라서 그래. 길게 잡아 한 달만 참아. 곧 이사 갈 거니까.“
그런데 당신 참 웃겨.“
? 뭐가 웃겨?“
아니, 아무리 우리 네 식구만 산다구 해도 그렇지, 따악 밥그릇 네 개, 접시 네 개, 수저 네 개가 뭐야, 여긴 손님도 안 오나? 가끔 손님이라도 오면 무얼로 밥 먹으라고 모두 네 개씩만 사 놓아? 또 아이들 이불은 그게 뭐야, 아이들은 크지도 않고 맨날 그대로 있나? 그렇게 작은 이불 일부러 찾기도 힘들 거야, 정말 웃겨---.“
성주는 오복의 빈정거림에 쿡하고 민망한 웃음이 나왔다.
정말 그러네, 난 그저 우리 식구만 생각했지, 손님 온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네. 내가 이렇게 생각이 모자라는 사람이라구. 한국 떠날 때 아이들 모습만 생각했지 애들이 큰다는 생각도 못했고. 당신 참 큰일이네! 이렇게 모자라는 사람을 남편이라고 데리고 살자면. 그래, 이사해 놓고 이것저것 필요한 것 더 사자구.“
하면서 성주가 무안해하자, 오복은 그게 재미있다는 듯 쿡쿡대며 밥상을 차렸다.
우리 온다고 김치를 저렇게 많이 담가 놓은 모양인데, 순 엉터리야, 배추가 아주 흥덩한 김칫국물에 잠겨 있던데, 어떻게 담갔길래 저 모양이지?“
? 난 늘 그렇게 담가 먹었는데? 맛있잖아, 시원하고---“
에구, 퍽도 맛있더라. 그나저나 시장이 어딘지 알아야 낮시간에라도 반찬거리가 무엇이 있는지 구경이라도 하지. 어둡지만 아직 초저녁이니까 지금 나가 볼까?“
아냐, 여기 서독은 저녁 여섯 시면 가게들이 모두 문을 닫아. 지금 벌써 닫기 시작했을 거야. 그러지 말고 내일 오후에 가. 내가 지난 주말시험에 일등을 해서 그 상으로 받은 반나절 자유시간이 있거든, 그걸 받아 올 테니까, 점심 먹고 기다리고 있어. 아이들하고 같이 나가서 시장 보게.“
이튿날 오후, 성주는 자전거에 두 아이를 태우고 오복과 함께 딩덴 중심가의 슈퍼마켓과 정육점 등을 여기저기 구경하면서 달걀, 식용유, 돼지고기, , 무 등 몇 가지의 반찬거리를 샀다.
참 재미없는 나라네, 무슨 놈의 시장이 값을 깎을 수가 있나, 덤을 주기를 하나. 장사꾼들이 무뚝뚝하기는 왜 또 그렇게 무뚝뚝해.“
돌아오는 길에 오복은 투덜거리고, 아이들은 보이는 대로 독일말로 어떻게 말하느냐고 물으며 외우기에 열중했다.
그날 저녁은 성주가 담가놓은 배추김치를 꼭 짜서 돼지고기와 함께 썰어 넣은 김치찌개와 결혼 후부터 오복이 자신 만의 비법이 있다고 자랑하는 달걀찜으로 네 식구가 포식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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