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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 나지라기 제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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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겨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7건 조회 3,981회 작성일 12-11-24 03:06

본문

들어가기에 앞서

나지라기”라는 말은 '남으로부터 나지리 여김을 받는 사람이나 물건'을 가리키는 순수한 우리말입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활발하게 진행되기 시작한 1960년대의 한국을 떠나 외국에서 돈 벌겠다고 당시의 서까지 온 우리 대부분은 솔직히 말해서 당시 한국사회의 '나지라기'였습니다. 에 와서도 어언 쉬흔 해가 지나가고 있는 지금까지 우리 이주 1세대 대부분은 역시 주류사회에 진출하지 못하고, 변두리에 머물러 있는 이방인(Ausländer)이라는 '나지라기' 신세를 면하기 힘들었습니다.
특히 이 소설의 주인공 한성주와 정영주는 월북자 가족으로서 한국사회에서 남보다 많은 불이익을 당해 온 나지라기였습니다
. 이렇게 이국땅에 나그네된 나지라기들의 청춘과 사랑, 그리고 이웃들과 함께 소망을 갖고 살아온 이야기들을 써 나가려 합니다. 독자여러분의 따뜻한 격려를 기대합니다.

<1>
 
첫째 마당 : 파독광부 첫날
 
저마다 가슴속에 굽이굽이 서린 사연을 지녔음 직한 한 무리의 한국청년들이 호기심 어린 눈을 사방으로 두리번거리고 있는 프랑크푸르트의 하늘은 곧 눈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 같이 잿빛으로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 대사관에서 나온 노무관이오.„
공항 세관 검사대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경상도 말씨의 중년 사내가 이름도 성도 없이 팔짱을 끼고 고개만 까닥이며 인사말을 건네었다.
"
! 그러세요. 고맙습니다. 마중까지 나와주셔서---"
갑게 내미는 한성주의 손을 마지못한 듯이 마주 잡으며,
당신이 인솔자요?"
하고 웅기중기 서 있는 일행을 둘러보는 노무관이라는 사람의 말씨와 몸짓에서 한성주는 한국의 벼슬아치들이 순박한 백성들을 대할 때에 갖는 오만무례한 우월감을 어김없이 느낄 수 있어서 가슴 속 저 밑바닥으로부터 치밀어 오르는 뜨거운 불덩어리를 억누르느라고 얼굴이 붉어졌다.
"
뭐 인솔자라고 할 것까진 없고, 김포공항에서 여기까지 제가 일행의 입 노릇을 조금 했습니다."
"
개발공사에서 내게 전하라고 주는 것 없습디까 ?"
"
아니오. 그런 것 받은 적 없는데요."
"
어허- 그것참 ! 아니 이번 일행의 명단 같은 것도 없단 말이오 ?"
"
그런 것 받은 적 없습니다. 명단이라면 지금라도 작성할 수 있지 않습니까 ?"
"
그럼 하나 만들어주겠소?"
-
망할 자식들, 개발공사는 도대체 뭣하는 기관이며, 외공관이라는 데는 무엇 하는 곳인가 ? 수속비다 뭣이깽이 수수료다 하고 가지가지로 뜯어간 돈은 다 어디에다 넣고, 스물네 시간이나 비행기에 시달리며 외국 땅에 품팔러 온 나지라기들이 국제공항 땅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끄적거리며 제 이름을 써내야 한담-
끓어오르는 부아를 꾹꾹 눌러 참으며 일행 서른여덟 사람의 명단을 써 내려가고 있는데, "어이 거기, 명단 쓸 필요 없소 ." 하는 노무관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 쳐다보니 한 독일사람이 일행의 명단으로 짐작되는 서류를 들고 노무관과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다.
"거기-이리 좀 오시오. 이 사람이 당신들이 일할 광산에서 안내하려고 온 사람인데, 지금 공항 청사 밖에 버스를 대기시켜 놓았다고 하니까 지금부터 이 사람이 호명을 하면 대답을 하고 짐을 들고 나가서 버스에 타시오."
 
"에라- 기왕에 버린 몸, 삶아 먹든 볶아 먹든 마음대로 해라."
긴 여행의 피로와 알지 못하는 새로운 세계를 향하는 긴장감에 지친 듯, 제한중량 이십 킬로그램이 훨씬 넘어 보이는 큼직한 가방을 힘겹게 버스의 짐칸에 넣어두고 성주의 옆자리에 와 앉으며 영학이 넋두리하듯 중얼댔다.
"
왜요? 말만 들은 광산, 구경도 하기 전에 겁부터 납니까 ?"
성주는 빙긋이 웃으며 핏기없는 영학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
아니-그런 건 아니지만, 아무리 초면강산이기로 소니 첫날부터 어째 초름하니 마음에 안 들어서 그래요."
"
그거야 어디 윤형만 그러겠소, 우리 모두 다 같은 심정일 테지요."
"
그럴까요? 하기야 시위 떠난 화살 되돌릴 수 없듯이 제 와서 돌아설 수도 없는 일이니 마음에 안 들은들 어쩌겠소만, 어찌 날씨까지 이 모양이니…, 무슨 놈의 구월 하늘이 꼭 사흘 굶은 시에미 상 같아 가지"
"
전혜린이 중 염불하듯 '뮌헨의 잿빛 하늘'을 들먹이기에 그때는 그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린가 했더니, 막상 이곳에 와서 보니 알겠군요."
"
전혜린이가 누구요 ?"
"
독일유학을 한 여자인데, 너무 천재라서 일찍 죽었지요."
"
천재라서 일찍 죽다니 그건 또 무슨 소리요 ?"
"
전혜린 같은 천재쯤 되면 이 세상의 삶이 시시해지나 봅디다. 난 천재가 못돼서 그런지 몰라도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습디다만…, 아무튼 세상이 시시해 자살한 그 여자가 쓴 책을 읽은 여고생들이 자살소동을 벌이고 한 그런 여자가 있었어요. 그 여자가 쓴 '우울한 잿빛의 독일 하늘'이 자주 묘사되곤 했지요. 그 책을 읽을 때는 실감을 할 수 없었는데, 이렇게 직접 와서 보니 그 글을 쓸 때의 전혜린이라는 여자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가슴이 저네요."
"
제 보니 한형은 소설가나 시인 아니오 ?"
"
에이 윤형도…, 문학이야 팔자 좋아서 많이 배운 사람들이 하는 것이고, 나 같은 사람이야 사주팔자 잘못 타고 태어난 죄로 배운 것 없으니 태백산 밑에서 광부 노릇 하다가 기왕에 광부생활 할 바에야 벌이가 좋다는 서독광부로나 가 보자 하고 자원해서 단칸 셋방에 처자식 달랑 남겨놓고 수륙만리 떨어진 독 땅에 품팔러 오는 거 아니겠습니까? 문학은 무슨…,"
성주는 말끝을 흐리며 버스의 앞쪽으로 시선을 보냈다.

                               <2회로 이어집니다>

 

댓글목록

한겨레님의 댓글의 댓글

한겨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고맙습니다.  35년 전에 광부와 간호사로 독일에 온 사람들의 이야기이니, 그 시대의 풍조와 사유의 틀을 생각하시면서 읽으셔야 할 겁니다.  요즈음 젊은 사람들과 가치관과 생각하는 틀이 많이 틀리니까요.

Noelie님의 댓글

Noelie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한겨레님,
정말 기대됩니다.
저도 독일에 오신 간호사, 광부, 그외에 독문학 전공하신 분을 비롯 주재원으로 왔다가 나중에 다시 돌아와 영구거주하시는 여러분들에게서 전혜린의 책을 읽고 독일로 오게 되었다고 하는 분들 많이 봤습니다.

그 이후에는 김정훈부제의 책을 읽고 미국 가려다 독일 쪽으로 방향전환 했다는 분도 봤고요.
베리가 갈수록 크고 넓어진다는 생각이 듭니다.

평온한 일요일 맞으시기 바라고요.

한겨레님의 댓글의 댓글

한겨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노엘리님 ! 오늘밤에는 눈이 올 듯한 그런 날씨입니다. 전혜린 같으면, "뼛속까지 시려오는 아픔"이라고 또 엄살을 떨었을 테인데----  열심히 올리시는 새아리 기사는 잘 읽고 있습니다. 건강에 유념하시기를-----

한겨레님의 댓글의 댓글

한겨레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나지라기"는 서두에 밝힌 바와 같이 이름씨이고, "나지리"는 홀로 쓰이는 일은 없고, 대개의 경우 "나지리여기다 - 나지리보다"로 쓰이며 그 뜻은 상대하는 사람이나 사물을 하찮게 여기거나 낮추어 깔본다는 뜻으로 쓰입니다. 독일어의 Niemand (하찮은 사람), Nichts(하찮은 물건)과 같은 뜻으로 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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