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hwul은 형용사일 뿐이고 동성애자를 가리키는 명사로는 독일말도 Homo예요. 혹은 Homosexuelle라고 우리와 비슷한 말을 씁니다. 영어가 판치는 세상이니 독일에서도 속어로는 Gay라는 말도 쓰이구요. 어쨌거나 독일말의 호모(혹은 슈불한 사람)가 우리말의 호모보다 어감이 더 낫다면 그것은 독일의 동성애자의 권리가 그만큼 신장된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지 이런 문제가 근본적으로 말을 바꾼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고, 아직은 독일도 정도의 차이일뿐 부정적인 어감이 완전히 가신게 아니예요. 독일이 우리보다 현실이 낫긴 하지만 보뵈라이트처럼 나 동성애자라고 커밍아웃하기 시작한거 얼마 안된 얘기예요. 얼마전까지도 어둠속의 자식이었습니다.

게이라는 단어는 아직은 우리나라에서는 합의가 제대로 안이루어지고 이상한 뜻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혼란이 두려워 제가 호모라는 말을 쓴건 아니예요. 저도 호모라는 말은 가급적 안쓰려고 하지만 꼭 써야되는 자리에서 어떻게 그 단어를 안씁니까? 아무리 바람직한 방향으로, 중립적인, 혹은 호의적인 의미로 동성애를 지칭하는 단어가 사회적인 합의에 도달해 널리 쓰이게 되더라도 보뵈라이트의 말을 번역할 땐 그런 단어 쓰면 안됩니다.

그래 나 (잘난) 게이야 글코 것도 건대로 괜찮여 - 이건 빵점입니다. 틀린거예요.
그래 나 (니들이 뒤에서 업신여기고 수근대는) 호모다 슈불이다 그래서 어쩔텨? 니들이 나보다 잘난게 뭔데? - 이게 말의 맥락을 살린 번역입니다.

좋은 단어만 골라쓴다고 좋은 번역이 아니예요. 번역은 맥락입니다. 맥락을 살려쓰는게 좋은 번역이예요. 맥락을 살리자면 호모라는 말 이외에 대안은 없습니다. 제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다시한번 풀어서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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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hwul이 부정적인 어감이 있다는게 정 이해가 안되거든, 보뵈라이트의 말이 왜 말이 되는지, 왜 울림이 있는지 정말 한번 곰곰히 생각해보세요. 그 자체에 이미 충분한 해답이 있어요. 제 생각엔.

"Ich bin schwul, und das ist auch gut so."

이렇게 말할 때 그는 항변하고 있는겁니다. 도대체 슈불이 어쨌다는거냐고 항변하고 있는겁니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겁니다.

Ich bin schwul, na und? Verdammt nochmal! Was ist Problem damit?

슈불이 중립적인 말이라면 위의 발언은 요해가 불가능합니다. 좋은 대접 받고 살고 있고, 슈불이란 말만 들어도 좋은 느낌이, 고마 필이 팍팍 꽂히는데 거기다 대고 새삼 좋다고 중언부언할 이유가 있나요? 그런 시건방진, 수사법의 ABC도 모르는 말이 인구에 회자될 이유가 없죠. 가령

나는 이성애자야 그리고 그것도 좋은거야.

이 무슨 사람 약올리는 말입니까. 이런건 울림이 없어요. 그렇기때문에 보뵈라이트의 말처럼 널리 가십거리가 되질 못해요. 패러디라면 또 모를까.

보뵈라이트의 명언 "Ich bin ( ), und das ist auch gut so"에 무슨 말이든지 대입해보세요. 그 말을 넣어서 말이 되면 그건 사회적 약자 및 소수로 부당하게 업신여김을 당하고 있는 부류에 속하는 겁니다. 사회적으로 불리한 어감을 동반하는, 부당하게 수모당하는 말들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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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저는 외국인입니다. 그리고 저는 Ich bin Auslaender라고 당당하게 말합니다. 그렇다고 Auslaender라는 말이 중립적인 말인가요? Deutscheste들이 한 하늘 한땅에서 살고 있는한 결코 그럴수 없어요. 한번 위의 문장에 대입해보세요.

나는 독일사람이야, 그리고 그것도 나쁘지 않아 - Voellig Quatsch!. 헛소리
그래 나 외국넘이다. 그게 무슨 문제가 되냐 - 말되는 소리

근데 이런 불평등한 현실을 반성하는 의미에서 외국인들을 Mitbuerger(같은 시민)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위의 문장에 대입해보세요.

그래 나 Mitbuerger다. 그래서 그게 어쨌다는 거냐. - 나도 그래서? 약발이 떨어지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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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모님이야 그리고 그게 얼마나 좋은건데. - 그래서 쌍년야.
그래 나 아줌마다 그래서 어쨌다는거냐 - 말되는 항변
그래 나 아주머니야 그래서 어쨌다는거냐 - 하마 하품하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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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나 사지가 멀쩡해 그리고 그것도 나쁘지 않아 - 그래 니도 한번 사고를 당해봐라
그래 나 병신이다. 니들이 거에 보태준거 있어 썅 - ..........-.-............
그래 나 장애우다. 왜 사람대접 안해주냐 - 맞는 얘기지만 역시나 약발이 우수수 떨어지는 소리가 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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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설대출신이야, 나 잘났지. 용용 - 이런 찢어 죽일넘을 봤나.
지방대출신이라고 아예 기회도 안주냐 실력으로 해 새끼들아 -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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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네요. 그래도 아무려면 어때요. - 이런 말 들어본 분 손 한번 들어보세요
따님입니다. 그래도 뭐. 요즘세상은 딸이 더 좋대요. - 들리는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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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이 세상의 불평등한 현실을 반영합니다. 자꾸 사회적인 현실과 분리된 어떤 추상적인 언어의 중립성을 거론하면 안되는 겁니다. 중립적인 말 따위는 없어요. 그래서 학문를 하는데 일상어를 차용해 쓰는 것이 문제가 되고, 인공적 학술어를 만든다든지 개념에 대한 정의를 분명히 하는 등 갖은 수를 써가며, 이런 일상의 어감, 그 속에 묻어있는 특정한 가치판단을 탈색시키고 차단하려고 노력하는 겁니다. 제 기사에서는, 보뵈라이트의 문제의 발언에서는 역으로 그것을 살려야 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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