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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구동독출신 의사들의 관점에서 본 독일 의료통합의 문제점

페이지 정보

작성자 Horntrich이름으로 검색 조회 6,419회 작성일 02-03-14 16:44

본문

작성일 : 2000/12/19 조회수 : 26 , 줄수 : 148  

한독의학 심포지움 99/4/2-3

구동독출신 의사들의 관점에서 본 독일 의료통합의 문제점

카를 팀 대학병원 전 병원장
Josef Horntrich 교수


신사 숙녀 여러분!

서울로 저를 초청해 주신데 대해 충심으로 감사드리며 크나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제가 운좋게도 경험했던 독일통일에 대한 강연 제의를 저는 기꺼이 수락했습니다. 그 통일이 한국에서도 멀지 않았다고 봅니다.

한국의 분단도 독일에서와 마찬가지로 자유의사에 의한 것이 아니라 강권정치에 의해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국사람도 통일에 대한 권리가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분단된 국민들이 서로 다른 정치체제하에서 살다보면 제 각각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래서 통일은 양측 국민들에게 커다란 문제점을 야기시킵니다.  독일에서와 같이 한국에서도 한쪽 국민은 민주주의하에서 발전을 해왔고 다른 한쪽에서는 총체적인 공산주의 체제하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한국의 상황은 독일에서의 그것과 비교가 된다고 보겠습니다.


1. 일반적인 정치상황

의료상의 문제점에 대해 논하기 전에 먼저 제가 경험했던 공산주의 체제의 일반적인 정치상황에 대해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것으로써 의료문제와 관련된 배경을 설명할 수가 있다고 보며, 아마도 한국의 북한공산주의체제와는 상이한 점이 있을 수도 있겠씁니다.

* 정치상황

전체주의적인 관념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국가는 개혁성향이 없습니다. 유럽에서도 그러한 국가는 순식간에 예고도 없이 붕괴됩니다. 그에 대한 동기는 외적요소로서 민중들에게 있을 수가 있습니다. 붕괴의 날은 3달후에 혹은 3년후에 올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시점을 염두에 두고 통일에 대한 대책이 준비되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독일의 경우에는 서독 행정부내에 이러한 대책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가까운 장래에 통일을 이룰 커다란 기회를 더 이상 믿질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막강한 군대가 개입되고 공산당과 보안당국이 아주 철저하게 국민들을 통제했기 때문입니다. 허나 공산주의 체제의 근간은 부패했었으며 경제는 병이 들었고 공산주의를 통한 세계인민해방에 대한 믿음은 사라져버렸습니다.


* 경제적 발전

서부독일에서는 사회주의적인 시장경제가 형성되었는데 이른바 자본주의 양상을 어느정도 띤 것이었고 동부독일에서는 산업과 경제를 모두 국가가 장악하고 중앙에서 통제했습니다. 물가지수 또한 제 구실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식료품 및 주거공간과 같은 생활에 필수적인 것들은 가치가 재대로 매겨지지 못했습니다. 의류나 자동차같은 사치품들은 매우 비쌌습니다. 전반적으로 볼 때 결핍상황은 다소나마 늘 상존해 있었습니다.

국가는 충실한 가장으로서의 핵심역할을 이행했습니다. 그리고 국민들은 국가에 감사해야 했습니다. 국민들은 스스로를 위해 걱정해서는 안되었고 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국민들은 거대한 국가라는 틀속에서 굴러가는 작은 바퀴였고 그 바퀴는 구동 틀 속에서 모두 똑같았습니다. 정의는 동일화와 획일화 속으로 묻혀버렸습니다.

임금격차는 경미했고 작업능률은 떨어져서 생산성이 전무하다시피 했습니다. 그로 인해서 공장에는 실제 필요한 노동력 이상으로 인력이 남아돌았으며 노동효율도 낮아지고 재무조직 또한 열악했꼬 재투자는 거의 없었습니다.


* 심리적 상황

공산주의식 학교교육을 통해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은 사회주의적 인간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부모의 양육권은 얌심의 자유 및 종교의 자유와 더불어서 극히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출세를 원하는 사람은 사회주의 국가정당에 가입해야만 했습니다. 1961년까지 약 200만에 이르는 사람들이 서부독일로 탈출을 해 이데올로기의 압박으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그러고는 장벽이 세워졌고 철의 장막이 가리워졌습니다. 서부독일로 여행이 금지되었으나 라디오와 TV를 통해서나마 동독인들은 서구국가의 발전상을 접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동독정부의 대국민 선전은 단지 일부에게만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폐쇄된 체제하에서 압박을 받고 살아와서 그런지 그들의 행동은 자주 정신분열적인 양상을 보였습니다. 그들은 서구적인 사고방식을 가졋으나 동구적인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사회주의체제에 대해 믿음을 표시했었습니다. 일부는 실제로 설득되어서 그랬고 일부는 역설적 현상으로서 선택의 여지가 없는 독재에 대한 불안감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에 대해 오히려 경의를 표시하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김일성의 장례식에서처럼 스탈린의 장례식에도 관철되어졌습니다.


2. 동독 보건복지제도의 구조와 상태

보건복지제도는 예외사항 없이 모두 중앙정부에서 그에 대해 조직하고 예산을 편성했습니다. 외래진료 영역에서의 개업은 더이상 허가되지 않았고, 그대신에 국유의 외래진료소(Poliklinik)가 소련의 모델을 모방해서 세워졌습니다.

보건복지는 이데올로기의 방품림속에 놓여 있었고, 의사와 간호사들은 휴머니즘이라는 기치아래 높은 직업윤리의식을 고수하고 있었습니다.

의학전문 잡지나 서적은 서구로부터 매우 제한적으로 공급되어졌고, 그것을 통해서만이 의학분야의 새로운 지식이 도입되어졌습니다.

의료장비의 개발은 희망사항으로 남겨져 있고 자체기술에 의한 생산품은 첨단기술에 비해 10-2-년 낙후되어 있었습니다. 만성적인 외환부족때문에 장비수입은 거의 없다시피합니다. 최소한으로 필수적인 장비들은 몇몇 군데에만 투입되고 집중적으로 사용되어졌습니다.

또한 병원신축을 위한 투자는 그 수요를 따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세계대전 이전에 쓰였던 건축자재가 그대로 사용되거나 그 당시에 파괴된 건물이 보수되어 쓰여졌습니다. 70년대에는 대형병원이 신축되어졌으나 내장된 설비는 보잘 것이 없었습니다.

의약품조달은 질적 양적으로 자체 해결이 되었으나, 차세대 항생제나 항암제는 수요를 따르지 못했습ㄴ다.

동독의 의과대학교육은 서독과 비교해서 전문과목별로 큰 차이는 없다하겠습니다. 그러나 모든 학생들은 추가해서 막시즘 과목을 들어야 합니다.

1961년에 장벽이 생기고 의사들이 서독으로 빠져나가는 길이 막히자 동독내 의사의 일자리는 거의 모두 차게 되었고 1980년대에 이르러서는 더이상 의사부족현상은 없었습니다.

보건복지제도의 재정은 이원화되어 있었습니다. 병원건립관계는 모두국가에서 관장을 했고, 병원과 외래진료소의 예산은 유일한 의료보험조합인 사회보험으로부터 조달되었는데, 그 가입회원은 모두 국유기업의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이었습니다. 월급의 약 5%로 규정에 명시된 10년이 넘도록 변함이 없는 보험료로는 필요한 재정의 일부분만을 충족시킬 뿐이었습니다.

나머지 재정과 계속 증가하는 재정수요는 국가가 충당을 했습니다. 이렇게 보험료와 세금으로부터 조달되는 혼합 재정체제로 운영되고 있었다 하겠습니다.

보건복지제도의 구조와 재정은 국가에서 관장을 했습니다. 그리고 전문적 지도와 연구방향설정 및 보수교육은 전문위원회와 의학협회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학문적 활동에 대한 개인적 제안 또한 어느정도 가능했습니다. 서독과 비교해 볼 때 다음과 같은 결과가 도출되어지겠습니다.

- 증가된 중앙집중적 기획
- 외래진료기관과 외래진료의 국유화
- 의료 요양급여에 있어 경제적 상황에 상응하는 열악한 수준
- 의학적 기초지식은 동서 모두 동등햇습니다.


3. 국가의 통일과 보건복지제도의 통일

국가의 통일

고르바쵸프는 유럽정치변혁의 선구자였습니다.그는 더이상 동독의 구정당정책에 힘을 실어주지 않았습니다. 소비에트 연방은 군중소요로 인해 위태로운 동독정부를 더이상 옹호할 형편이 되질 못했습니다. 국외 탈출은 늘어났고 1989년 여름과 가을에 평화의 시위는 더욱 거세만 갔습니다. 1989년 11월 9일에 장벽이 무너지면서 동독은 끝이 나고 말았습니다. 국가적 단일성을 향한 외침은 도처에서 들렸고 결국은 콜 서독 연방수상이 모스크바의 동의 아래 통일을 위한 일치단결된 힘을 발휘해 1990년 10월 3일에 독일은 통일의 날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정치적인 개혁은 매우 빠르게 진행되었으나 장기적인 정책을 위한 신간은 충분하지가 못했습니다. 생활수준이 가능한 한 빨리 보정되어져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무엇보다도 젊은 사람들이 매력적인 서독으로 이주할 것입니다. 헌법은 새로 만들어지지 않고 서독의 헌법을 그대로 답습했습니다. 그것은 동독의 1600만 국민이 서독의 6400만 국민과 연결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서독의 민주주의 헌법은 더이상 나무랄 데가 없었으나, 동독의 생활습관을 고려한 측면에서 볼 때는 개정되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보건복지제도의 통일

중앙으로부터 통제되었던 동독의 경제는 한순간에 사유화되었습니다. 국가가 관장했던 동독의 보건복지제도는 서독연방주의 구조를 채택했습니다. 그것은 1945년까지 동독에서 시행되어졌던 것과 동일한 것이었습니다.

변화의 여러 양상

* 단일화된 사회보장보험 대신에 다수의 보험회사가 생겨났습니다.국유의 독점권은 경쟁으로 인해 없어졌고 그와 더불어 장단점이 생겨났습니다. 즉, 이전에는 오직 한 보험회사와 담판을 지었는데 이제는 다수의 보험회사와 얘기를 해야만 했습니다. 그것이 때로는 어려운 문제이기도 합니다.

* 병원의 재정은 예전처럼 이원화된 체제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병원건립비용은 주정부에서, 운영비는 의료보험료를 걷어서 조달했습니다. 예산은 대부분 보험료에서 조달되었고 약 10%정도만 세금에서 조달되었습니다. 그것은 예산이 정부의 재정상태로부터 독립적으로 운영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올해에는 건물의 신축과 현대화를 포함하는 광범위한 병원립계획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외래진료분야에는 급격한 변화가 생겼습니다. 여러 전문의들이 상호부조하는 외래진료소는 해산되었고 의사들은 개업을 해야했습니다. 그것은 곧 각자가 개인의 영리를 위해 일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 건물에서 개업을 하더라도 그들은 각자 새로이 기구 및 장비를 구입하고, 각각 필요한 직원을 고용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급격한 변화는 높은 투자비용과 상호협동의 비효율성 때문에 많은 문제점이 제기되었습니다. 외래진료소에서 시행되었던 긴밀한 협조체제의 필요성이 다시 거론되고 있으며, 개업의간의 상호공조체제가 개선되어져야 하겠습니다.

* 연금제도는 세대계약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근로세대는 현재의 연금수령세대를 위해 연금보험료를 납부하고 있습니다. 연금수령인구는 증가추세에 있는데 전 인구의 20%에 근접하고 있습니다. 연금보험료가 충분히 수납되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방법에 의한 노후보장이 검토되어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자본준비금(Kapitaldeckung)을 통한 추가보장보험이 있다 하겠는데 이것은 안정된 경기를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 사회보장체제에 있어서 보험료로써 의료보험과 사회보장보험에 필요한 재정을 충당하는 방식이 세금으로 충당하는 방식보다 더 좋은 해법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세금충당방식은 빠른 시간내에 재정조달을 해야 할 때에 비효율적이기 때문입니다.

* 급격한 통일은 동서 양지역간의 생활수준에 있어 급격한 평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생활수준이 향상되고 사회제도가 개선되기 위해서는 서독으로부터 동독으로 많은 원조가 필요하고, 또한 많은 시간이 요구될 것입니다. 4:1의 인구대비와 막대한 경제규모를 가진 서독의 입장에서 볼 때, 그것은 실로 커다란 도전이라 하겠습니다.

* 동독지역의 20%에 이르는 높은 실업율은 국가적 통합작업에 있어 많은 부담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전의 양독진영때보다 통일독일의 실업율이 많이 낮아졌다고는 하나, 실업자들은 여전히 불만족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실업ㄷ율과 생활의욕의 상실로 인해 독일의 동부지역에서는 사회주의 후속정당에 대해 여전히 높은 지지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모든 노동자들에게 사회주의가 부르짖고 있는 평등대우사상은 작업능률을 저하시킵니다. 외래진료분야의 사유화 이후 1/3이상의 사람들이 해고되었습니다.이러한 현상은 산업계뿐만 아니라 보건의료계에도 있었습니다.


4. 통일에 있어서의 문제점들

* 정치, 경제, 사회의 모든 제도들이 호환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이들은 보완되어져야 합니다. 양측의 예측을 불허했던 급격한 통일은 서독으로부터 동독으로 대량의 원조를 요구했습니다. 서서히 진행되는 통일이었다면 살기 좋은 곳으로 한꺼번에 이주하는 것을 억제하기 위해 단계적으로 국경개방을 했을 것입니다. 이 방법이 경제적으로는 더 효과적이었을 것입니다.

* 통일후 주된 문제점은 사람들의 심리적인 상태라고 여겨집니다. 동독의 국민들은 TV와 라디오를 통해 서독의 정치 경제적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었으며, 대다수의 사람들은 민주주의 체제를 원했습니다. 정부구조의 개혁에서는 고위직만 교체하는 것으로 충분했습니다. 이러한 고위직에는 서독출신의 경험있는 공무원들로 채워졌는데, 무엇보다도 사법과 행정분야에서 그렇게 교체되었습니다.


한국에서도 같은 방법으로 북한의 고립사회 안으로 새로운 제도의 정착을 위한 가능성이 존재하는지 검토해 볼 만하다 하겠습니다. 구체제 인사로는 새로운 구조조직을 정착시킬 수가 없다 하겠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고립사회속에서 교조된 사상을 그들의 정신속으로 심화시켰다는 것이 문제라 하겠습니다.

5. 요약

- 무력에 의해 분단된 국민의 통일은 양국민에게 있어 당연한 권리입니다.

- 50년동안 분단되어 서로 다른 체제하에서 이루어진 환경은 사고구조를 바꾸어 놓습니다. 교조화된 사고와 행동양식이 올바른 쪽으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선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 전체주의 국가와 민주주의 국가간의 경제 행정구조는 양립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나라 전체에 걸쳐 민주주의 체제로 넘어가게 됩니다.

- 체제의 평준화를 위해선 많은 시간과 투자가 필요합니다. 통일이 빠르게 진행될수록 재정적 수요는 더욱 커집니다.

- 임금을 생산성과 연계시킨다면 복지화로 가는 시간은 길어집니다. 이 시간동안 구공산주의 지역으로부터 빠져나가는 것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국경을 단계적으로 개방할 필요가 있다 하겠습니다.

- 통일은 수십년이 소요되는 국가적 사업입니다. 보건계의 통일 또한 여러가지 문제들 중에 하나일 뿐입니다.

- 의사들의 불만족이 있다면 그것은 다음 3가지 이유에 그 원인이 있다고 봅니다.

1) 독일의 보건복지제도상의 결핍
a) 독립된 단독 개업의에 의한 외래진료에는 공동진료소(Arztehaus)의 공동 공조체제하의 진료시보다 더욱 많은 비용과 인력을 필요로 합니다. 이전의 외래진료소(Poliklinik)는 공동개업의(Praxisgemeinschaft)로 전환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b) 중앙으로부터 하달된 예방 및 치료에 대한 적정한 프로그램은 건강수준을 높일 수 있습니다.
..의무예방접종프로그램
.. 갑상선종 예방을 위한 일반식염의 요드화
.. 집중적인 당뇨병치료 및 교육
.. 중앙 종양등록처

2) 동독의 특수한 문제점들
a) 동독의 의사들은 서독의 의사들과 비교해서 똑같이 근무하고도그들의 85%밖에 안되는 보수를 받고 있습니다. 20%에 이르는 동독의 높은 실업율로 인해 의료보험료의 수입이 충분치 않다는데에 그 원인이 있다 하겠습니다. 동독에서 개업을 위해 많은 투자를 해야 했떤 의사들에게는 이러한 차이가 커다란 어려움을 가져다 줍니다.

b) 동독에서 고령으로 정년퇴직한 의사들은 추가생계보장을 위한 어떠한 가능성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봉급생활자들처럼 다만 기본연금만을 수령하고 있습니다.

3. 양측독일의 문제점들

유럽의 다른나라와 같이 독일에서도 학문적 연구투자 및 고령화 사회에 증가하는 재정적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실행되는 사업에 조달할 보건복지예산이 충분하지 못한 형편입니다. 그래서 수준에 맞게 재정을 맞춰 편성하던가 아니면 보험수입과 세금으로부터 예산을 더 늘리던가 양자택을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전체적으로 볼 때 동독의 의사들과 환자들은 지난 8년간의 발전상에 대해 매우 만족스러움을 표시하고 있씁니다. 의사들은 눈에 띄게 높은 보수를 받고 있고, 환자들은 근본적으로 양질의 진료를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더 잘 지내고 있습니다. 허나 아직도 구연방주내에 존재하는 여건상의 차이가 불만족으로 남아있습니다.유감스럽게도 독일사람들은 결코 완전히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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