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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생활 리포트] 독일 특파원-휠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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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놈이름으로 검색 02-03-14 16:31 조회6,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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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일보
1998.9.28.월
뮌스터에서 "촌놈" 특파원

뮌스터의 "자전거"와 "버스"에 이어, 오늘의 이야기는 "휠체어"이다.

7_t1_1.jpg 이곳의 길거리를 돌아다녀 보면, 눈에 확 띄는 것이 있다. 휠체어를 탄 사람들이 참 많다는 것이다. 이상하다.. 한국은 독일보다 자동차 사고율도 훨씬 높은데, 오히려 독일에 더 휠체어 탄 사람들이 많다니!

점심 무렵처럼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한 시간에 시내에 나가보면, 과장이 아니라, 몇 미터 간격으로 휠체어 이용자들을 만나게 된다.

휠체어 역시 가지가지다. 손으로 굴리면서 가는 보통의 휠체어에서부터, 전기장치로 움직이는 것에 이르기까지 모양도 다 다르다.

보통은 뒤에 한 사람이 휠체어를 밀어 주지만, 어떤 사람들은 완전히 자기 힘만으로 휠체어를 움직이기도 한다.

처음에는 그냥, 독일에는 지체장애인들이 많은가 보다 생각했었다. 좀 더 살다보니, 이곳에서는 휠체어를 타고도 편하게 돌아다닐 수 있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마음놓고 나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지체장애인들이 밖에 나올 엄두를 내기 힘들고,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하기에 눈에 잘 띄지 않았을 뿐이었다.

이곳 뮌스터에서는 도대체 어떻게 그런 것이 가능한지, 이제 살펴보도록 하자.




본 특파원이 휠체어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개인적인 이유에서이다. 이곳에서 사귀게 된 친구 슈테판(Stefan)이 휠체어 이용자이기에, 가끔 그 친구의 휠체어를 밀면서 여러 생각들을 하게 된 것이다.

이곳 독일의 공공건물은 2층 이상이라면, 반드시 승강기를 갖추어야 한다. 바로 휠체어 이용자를 위해서이다. 꼭 공공건물이 아니더라도, 백화점이나 서점, 식당처럼 사람들이 많이 찾는 건물에는 빠짐없이 승강기가 갖추어져 있다.

가령 점심때가 되면 슈테판과 나는 다른 친구들과 함께 대학에서 나와 시내로 간다. 이 길은 걸어서 10분도 걸리지 않지만 우리가 일하는 대학 건물을 내려갈 때, 다른 대학건물을 하나 통과할 때, 합쳐서 두 번 승강기를 이용한다. 가장 자주 가는 곳은 대성당 건너편의 공무원 식당(값이 싸기 때문에)인데, 5층에 있는 이 식당까지 올라가는 동안 또 다시 2번 승강기를 이용한다.

휠체어 이용자는 계단을 이용할 수 없기 때문에 승강기가 절실히 필요하다. 식사를 하고 나서 가끔 들르는 서점은 3층으로 되어 있는데, 역시 승강기가 있다. 다만 출입구에 계단이 1개 있어서 다소 불편하다. 그럴 때에는 뒤에서 휠체어를 살짝 밀어주면서 올라가야 한다. 큰 규모의 가게에는 대부분 승강기가 있지만, 작은 가게들에는 계단이 있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는 참 난처하다. 아예 포기를 하거나, 아니면 뒤에서 밀어주는 사람이 무척 힘을 써야 한다.

한편 건물의 문들에는 장애인들이 쉽게 열 수 있도록 전동장치가 되어 있어서, 가볍게 버튼을 눌러주기만 하면 되고 이곳 대학 구내식당처럼, 승강기가 없는 대신 계단 옆에 휠체어를 이동시킬 수 있는 장치를 따로 두기도 한다.

7_t1_2.gif 우리가 휠체어를 밀면서 길을 건널 때 이곳의 자동차들은 철저하게 우리에게 우선권을 준다. 워낙에 보행자와 자전거 우선 운전이 원칙인 곳이지만, 유모차와 휠체어는 특별히 우대를 받는다.

이미 지난 번의 "버스" 이야기를 통해, 이곳의 버스들은 차체가 낮고 또 정류장 쪽으로 차체를 기울일 수 있어서, 유모차나 휠체어가 쉽게 버스를 타고 내릴 수 있다고 말씀드린 바 있다.

그러나 휠체어 이용자가 버스를 타는 것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아무리 차체를 낮추어도 지면에서 차체까지는 약간의 간격이 있어서, 혼자 힘으로 오르고 내리기는 역시 어렵다.

동행자가 없는 경우에는, 손님들이 재빨리 내려가서 휠체어 이용자를 도와 준다.

7_t1_3.gif그러나 대부분의 휠체어 이용자들은 버스보다는 승용차를 선호한다. 작은 승용차에는 휠체어를 실을 만한 공간이 없으므로, 약간은 큰 웨곤형(독일에서는 "콤비"라고 부름)의 차를 선택해야 한다.

7_t1_4.gif슈테판 역시 멋진 메르체데스 벤츠 웨곤을 타고 다닌다. 두 발을 전혀 쓸 수 없기 때문에, 두 손으로만 운전을 할 수 있도록 개조한 것이다. 오른손만 사용해서 기어 변속과 제동을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장애인이 차를 구입할 경우에는, 차 가격의 대부분을 국가가 보조한다. 그러나 슈테판은 워낙 수입이 많기 때문에 (대학교수는 월급을 대단히 많이 받는다), 차 가격을 자기가 거의 다 지불했다. 다만 차의 개조비용은 의료보험에서 지불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차를 타고 내릴 때이다. 휠체어에서 내려서 운전석에 앉으면, 휠체어를 뒷 트렁크에 실어 줄 사람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차에서 내릴 때에도 누가 뒤에서 휠체어를 내려서 앞좌석 옆으로 가져와 주어야 한다.

보통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부탁을 한다. 그렇지만 가령 날씨가 안 좋거나 주말이어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없으면, 한참을 우두커니 차 안에서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결국 슈테판은 무선전화를 구입했다. 그는 주차장에 도착할 무렵 연구소로 전화를 한다. 그럼 연구소에서 전화를 받은 사람이 즉시 달려 나간다.

7_t1_5.gif가끔 휠체어를 뒷칸에 실으면서, 움직이지 못하는 내 친구의 다리를 보면 마음이 침울해진다.

내가 발명가는 아니지만, 무선조종으로 휠체어를 차에 싣고 내릴 수 있는 그런 장치가 있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간절하다.

그러면 슈테판 혼자서 휠체어를 차에 실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장애인 운전자에 대한 또 하나의 중요한 혜택은 주차장이다. 어느 주차장을 가더라도 장애인을 위한 자리는 가장 좋은 자리에, 우선적으로 확보되어 있다. 주차할 자리가 거의 없는 곳에서도 좋은 자리가 비어 있는 것을 본다면, 틀림없이 장애자용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생색을 내기 위해 한 두 자리 확보해 놓은 것이 아니고, 정말 어느 건물에, 어느 주차장에 가더라도 가장 좋은 자리는 바로 장애자들을 위해 마련되어 있다.

휠체어 이용자가 기차를 이용할 경우에 대한 배려도 잘 되어 있다. 우선 모든 역, 전철 승강장에는 반드시 승강기가 설치되어 있다. 시골의 아주 작은 역, 복잡한 도시의 지하철 역도 마찬가지이다. 반드시 승강기가 있어야 한다.

휠체어 이용자가 열차에 탈 경우에는, 보호자가 이것을 도울 수도 있겠지만, 열차의 승무원이 이것을 돕는다. 한번은 이런 광경을 본 적이 있다. 열차가 서자 여자 차장이 내렸는데, 잠시 후 무엇을 보았는지 100미터 달리기 하는 속도로 뛰기 시작했다. 한 휠체어 이용자가 열차를 타려고 하는 것을 보고, 플랫포옴 한 쪽에 세워져 있는 "휠체어 옮김 장치"를 가져오기 위해서 서두르는 것이었다. 이 장치를 이용해 휠체어를 열차 안으로 간편하게 옮길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장치는 꽤나 크기 때문에 남자들에게도 만만치 않은 무게이다. 그 여승무원은 전력 질주하더니, 즉시 그 장치를 끌고 와서 무사히 휠체어 이용자를 열차에 실었다.

그 바람에 열차가 몇 분 연착을 하였다. 그렇지만 이에 대해 불평을 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연착을 하는 것은, 정확히 시간을 지키는 것보다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차 안은 어떨까? 휠체어 이용자를 위한 빈 공간이 역시 마련되어 있다. 휠체어 이용자는 의자에 앉는 것이 아니라, 자기 휠체어에 계속 앉아 있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내 친구 슈테판에 대해 조금 더 말씀드리고 싶다. 그는 나이가 본 특파원보다 열 네살이나 많으며(그런데도 친구이고), 대학교수로서 일한다. 그는 수강생 20-30명 정도의 작은 강좌에서는 그냥 휠체어에 앉아서 강의를 하고 칠판에 쓸 것은 대신 OHP (Overhead Projector)를 이용한다. 수백명이 듣는 대형강의에서는 이것이 다소 어려워서, 슈테판은 서서 강의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를 구입했다. 수천 마르크나 하는 이 장치의 비용은 전액 의료보험에서 지불되었다.

슈테판은 지난 1학기까지는 뮌스터대학에서 전임강사를 하다가, 가을부터는 포츠담대학의 교수로 부임하게 되었다. 그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교수로 뽑히는 데에 장애인이라는 이유가 혹시 문제가 되지는 않았는지 독자들은 궁금하실 것이다.

이곳의 임용규정에는, "동일한 자격인 경우, 여성이나 장애인을 우선적으로 채용한다"는 원칙이 있다. 물론 슈테판은 경력 면에서, 그리고 학생들을 상대로 한 "시험 강의"(교수 지망자들이 교대로 강의를 하게 되어 있다)에서 경쟁자들보다 월등했기 때문에 그 규정은 굳이 들먹일 필요도 없었다. 한편 내 친구의 부임이 결정된 후 포츠담 대학은 건물의 승강기 보수공사를 실시했다고 한다.

한번은 본 특파원이 한 학기 동안 슈테판의 강의를 수강한 적이 있다. 강의실은 오래된 5층 건물의 꼭대기였는데, 승강기를 타고 간 후에 다시 몇 개의 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강의 전후에 늘 학생들이 함께 휠체어를 도와서 들고 내렸다. 강의 내용도 훌륭했지만, 휠체어에 앉아서 열심히 강의하는 친구의 모습을 보면 늘 가슴이 찡했다. 학생들의 반응도 참 좋았는데, 교수가 장애인이어서가 아니라, 강의의 질이 우수했기 때문이었다.

내 친구는 스티븐 호킹 박사처럼 "루게릭 씨 병"을 앓았다. 더 이상 악화되지는 않고 있지만, 건강 문제에 항상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매주 병원에 들러서 물리치료를 받아야 하고, 약국에도 수시로 들러서 필요한 약품들을 사 간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 비용들이 의료보험을 통해 해결된다는 점이다.

슈테판의 휠체어를 밀고 시내에 나갈 때면, 이곳과 비교되어 한국의 모습이 떠오른다. 문득 한국의 장관들과 국회의원들은 한 달에 한 번씩 의무적으로 휠체어를 타고 출근을 하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가 휠체어를 타고 버스도 타 보고, 전철도 타 보고, 또 주차할 곳이 없어서 고생을 해 봐야 장애인들의 어려운 처지를 깨닫을 수 있을 것 같다.
왼쪽은 독일 수상 헬무트 콜,
오른쪽은 원내총무 볼프강 쇼위블레


7_t1_6.gif참고로, 현재 독일의 수상인 헬무트 콜의 후계자이며 당내 제2인자인 볼프강 쇼위블레(55세, 원내총무)는 휠체어 이용자이다.

연방의회 회의석상으로 휠체어를 끌면서 들어오는 그의 모습을 뉴스에서 자주 보게 된다.

유권자들에게는 그가 장애인이라는 사실이 아니라, 그가 지향하는 정책의 내용만이 중요하다.

우리의 국무총리가 휠체어 이용자라고 한번 상상해 보라...

휠체어 이용자들이 마음놓고 활보하는 서울의 거리를 꿈꾸며...  

 

- 뮌스터에서 "촌놈" 특파원 (remus@uni-muenster.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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