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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환경선진국독일 3] "2021년 원전 완전폐쇄" 부푼 녹색희망

페이지 정보

작성자 한겨레 이름으로 검색 조회 5,496회 작성일 02-03-14 15:44

본문

한겨레 2000.6.21

“집권당이 앞으로 바뀔지도 모르는데 그걸 어떻게 딱부러지게 전망하겠는가.” 베를린에 있는 독일 환경부의 간부인 프란츠요제프 샤프하우젠은 원자력발전소 폐쇄정책의 지속가능성에 관한 질문에 이렇게 답변했다. 경제기술부의 클라우스 글라스마허 국장은 태양광·태양열·풍력·지열·수소에너지 등 재생가능 에너지의 보급전망에 관한 질문을 던지자 “민간부문이 시장에서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고 말했다.
이런 미지근한 답변은 의외였다. 지금 독일은 원전 폐쇄정책이 본격 실행단계에 접어들면서, 원자력을 대체할 재생가능 에너지의 활용 확대가 초미의 과제로 떠오른 상황이다. 따라서 당연히 원전폐쇄 정책의 선진성을 자랑하고 재생가능 에너지의 활용 촉진을 위한 정책의지를 과시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독일 관리들이 이런 태도를 보인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원전 폐쇄와 재생가능 에너지 보급은 서로 맞물린 과제인 동시에, 정치적으로 민감한 쟁점이며 산업적 이해관계도 걸린 문제다. 사민당과 녹색당의 적록연정은 집권하기 전부터 원전폐쇄를 공약했으나 집권 후 1년반이 넘어서야 원전 업계와 폐쇄의 일정·방식에 합의할 수 있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는 지난주 업계 총수들과 가진 마지막 담판에서 모두 19기가 남아있는 원전의 수명을 각각 32년으로 설정한다는 데 합의했다. 이는 가장 최근의 원전이 89년에 지어졌기 때문에 앞으로 20년 뒤인 2021년까지 모두 폐쇄된다는 뜻으로 일단 해석됐다.

그러나 이런 합의가 발표된 뒤에도 정치적 갈등은 계속되고 있다. 녹색당내 좌파들은 최종 원전폐쇄 날짜를 명기하지 않은 채, 폐쇄되는 원전의 전력생산 쿼터 중 남는 부분을 다른 원전에 이전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는 점에서 “업계에 대한 굴복”이라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2021년 이후에도 일부 원전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터준 셈이라는 것이다. 녹색당은 23~24일 전당대회를 열어 이 합의에 대한 당차원의 인준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반면 기민당 등 야당들은 2002년 총선에서 집권할 경우 원전폐쇄 정책 자체를 백지화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정권이 바뀔 경우 원전폐쇄 정책이 변질되거나 뒤집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다음 총선이 치러질 2007년 이후에는 정권이 바뀌어도 정책방향 뒤집기가 현실적으로 힘들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결국 독일 원전폐쇄 정책의 지속성 여부는 정치인이나 관리들이 아니라 국민들의 손에 달려있는 셈이다.

재생가능 에너지의 보급 확대는 일과성 행정이 아니라 시장경제 속에서 유기적으로 굴러가는 체제로 추진해야 장기적으로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게 독일 정부의 입장이다. `환경친화적인 시장경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시장친화적인 환경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얼핏 민간부문에 책임을 돌리는 듯했던 글라스마허 국장의 답변은 이런 뜻이었다. 어쨋든 독일은 원전폐쇄 정책을 공식화함으로써 앞으로 20년 안에 재생가능 에너지로의 전환을 반드시 이뤄내야 한다는 배수진을 쳤다.

독일은 이미 재생가능 에너지 분야에서 다른 나라들을 앞서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예컨대 8천개 가량의 풍력발전용 터빈을 통해 미국의 2배인 4500메가와트의 전력을 생산해, 풍력발전 규모에서 세계 1위다. 독일 정부는 `10만 지붕 프로젝트' 등을 통해 태양에너지 시설 보급확대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그렇지만 국내 에너지 공급에서 재생가능 에너지의 비중은 현재 1차에너지 기준 2%, 발전량으로는 5%를 조금 웃도는 수준에 불과하다. 이에 비해 원전은 1차에너지의 10%와 발전량의 30%를 차지한다.

재생가능 에너지 활용이 크게 늘어나지 않으면 석유·석탄과 같은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져 이산화탄소 배출량 감축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어쩌면 외국에서 전기를 수입해야 할 처지가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원전폐쇄 반대론자들의 목소리가 드세질 것이다. 독일인들은 재생가능 에너지가 원전을 대체할 수 있다는 가설을 현실에서 입증해내야 하는 과제를 스스로 짊어졌다. 베를린/이주명 기자c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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