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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생태와 환경정치-1. 국제적 차원의 환경보호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경래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조회 7,048회 작성일 02-03-14 15:29

본문

작성일 : 2000/03/11조회수 : 84 , 줄수 : 44  
  
생태와 환경정치

유로진에서는 앞으로 생태와 환경정치라는 주제하에 7회에 걸쳐 독일에서의 환경정치/정책에 대해 다루고자 합니다. 각각의 주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1.국제적 차원의 환경보호 2.전지구적인 환경문제의 실상과 세계적인 요구 3. 독일의 환경정치/정책 -그 역사와 목표 그리고 원칙 4. 환경보호를 위한 조직들 5. 환경보호에 있어 동반자들 6. 환경법과 그 도구들 7. 환경보호의 지속을 위한 독일의 길
먼저 그 첫 번째로 이번 달에는 국제적 차원의 환경보호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1. 국제적 차원의 환경보호

1972년 6월 5일 유엔은 스웨덴의 수도 스톨홀름에서 인간의 환경에 관한 회의를 개최하였다. 세계적으로 환경문제에 관해 논의하는 첫 번째의 커다란 회의인 동시에 국제적 차원의 환경정책의 출발이었다. 이의 단초는 1968년 환경보호에 있어 주도적 역할을 하였던 미국과 스웨덴에 의해 마련되었다. 이러한 노력은 놀라운 것이 아니다. : 50년대 이후로 인간은 자신들의 삶과 경제적 방식으로 인해 환경을 심각하게 파괴하고 있다는 것이 명백하게 나타났으며 마침내 다음과 같은 현상들을 초래하였다.

◇ 50년대 중반이후 일본 남쪽의 항구도시인 미나마타의 주민들에게 팔, 다리의 마비,시각,청각 장애가 나타났다. 이 미나마타병은 화학공장에서 배출된 수은의 중독에 의한 것이다.  
◇ 미국의 생물학자 라첼 칼슨(Rachel Carson)은 1962년 출판된 자신의 저서 <말없는 봄>에서 지방조직내에 DDT라는 유해물질을 함유한 새들의 죽음에 대해 기술하면서, 독자들에게 생태계에 대한 의식을 일깨웠다.
◇ 1967년 3월 리베리아의 유조선 토레이 캔욘(Torey Canyon)가 영국의 해안에서 암초에 부딪쳐 침몰하였다. 117,000리터의 기름이 북해로 흘러들었고 영국, 프랑스 그리고 네덜란드의 해안을 오염시켰다.
◇ 스웨덴의 학자들은 중부유럽에서 북유럽으로 이동하여 스칸디나비아 지역의 숲에 악영향을 미치는 대기중의 오염물질에 대한 분석을 제안하였다. 이외에도 이들은 발트해 지역의 새들과 물고기에 유해물질들이 많음을 밝혀냈다.

최초의 UN기구로서 학문, 교육 그리고 문화를 담당하는 UNESCO가 이러한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UNSECO의 도움하에 10년동안 준비가 되어 인간과 환경의 관계에 대한 연구를 담당하는 국제생물연구계획(Internationale Biologische Programm, IBP)이 출범하였다. 1968년UNESCO는 3년 뒤에 학문적으로 방향이 정해진 <인간과 생물 서식권>이라는 프로그램을 제안하였다. 또한 서유럽의 민주주의 국가들이 구성원이 되어 1949년 설립된 국가들간의 위원회인 유럽회의가 선도자적 역할을 맡았다. 1967년 자연보호를 위한 유럽 정보센터(Europ ische Informationszentrum)는 자신들의 업무를 착수하였고, 1년 뒤 유럽회의는 유럽의 물헌장(Europ ische Wassercharta)를 선포하였다. 이는 생태학적인 원칙에 입각한 하천의 관리를 요구하는 것이며, 대기오염을 막기 위한 조치에 관한 성명을 통과시키는 것이었다. 또한 유럽회의는 1970년을 유럽의 자연보호를 위한 해로 지정하여 대중들의 환경의식을 높이고, 회원국들에게 자연과 환경의 보호를 후원하게 끔 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해 4월 22일 2천만명의 미국 시민들이 첫 번째 지구의 날에 다양한 행동으로 참여하였다. 미국은 일련의 주도권을 가지고 환경보호에 있어 모범이 되는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1970년에 공포된 환경정책에 관한 법률과 같은 해에 창설된 환경보호청은 특히 미국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서유럽의 국가들에게는 모범적인 것이 되었다.

환경보호에 있어 이러한 최초의 초보적인 발전에는 하나의 사진이 그 계기를 제공하였다. 즉 미국의 우주선이 달에서 보내온 푸른 행성의 사진은 지구 전체는 하나의 생태학적 체계이며 이러한 지구의 보호는 전체 인류의 과제라는 점을 분명하게 한 것이었다. 볼프강 자크스(Wolfgang Sachs)가 표현한 것과 같이 인류는 무엇보다도 달을 통해 지구를 발견한 것이다. 시종일관되게 유엔의 환경회의의 구호는 "단 하나의 지구"이었다. 비록 이러한 회의를 통해 전세계적으로 환경에 관한 인식이 생겨나기는 했으나 이는 곧 다시금 잠잠해 졌다. 단지 두 가지만이 계속적인 영향을 보여주었다. 스톨홀롬의 결정을 근거로 유엔총회는 인간의 환경에 관한 유엔의 회의 개최의 날, 즉 1972년 6월 5일을 환경의 날로 선언하였다. 그리고 유엔의 환경계획을 마련하였다. 113개의 참여국들은 남북갈등에 관한 장시간의 토론이후에 협정문서에 서명하였는데, 제3세계의 대표들은 이러한 환경의 문제를 무엇보다도 빈곤과 기아에 대한 투쟁으로 해석하였다. 이들은 선진국과 같은 수준의 복지를 원하였고, 이러한 것을 자신들 경제의 성장과 뒤쳐진 산업화의 극복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회의에서 합의된 인간의 환경에 관한 선언은 다음과 같은 문구를 담고 있다. 즉, 모든 국가의 환경
정책은 발전도상국들의 현재와 앞으로의 발전 잠재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그 잠재력을 향상시키며, 모든 이들을 위한 더 좋은 생활조건을 마련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1972년 로마클럽이 발표한 보고서 <성장의 한계>는 "이미 산업화를 달성한 국가들과 발전도상국들에 의해 추진되고 있는 경제성장은 환경과 인간을 그 비용으로 하는 것이다"는 내용을 명확하게 하였다. 지구의 자원은 한계가 있으므로 인류는 이를 아껴야 한다는 것이다. 산유국들이 기름 값을 급작스레 올리면서 발생한 1973/74년의 석유위기는 결정적인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 이는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 이상의 것이었다. 선진국들은 생태학적인 주제에 주목을 하였고, 환경을 담당하는 부서를 설치하였고 또한 법률을 발표하였으며, 생태학적 연구에 투자를 하였다. 정치에 있어 이러한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온 것은 유엔의 환경회담도 아니었고, 로마클럽(Club of Rome)의 보고서도 아니었고, 이 보고서와 거의 대등하게 고려되는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Jimmy Carter)가 1980년에 발표한 글로벌 2000(Global 2000)도 아니었다. 비록 이 글로버 2000은 학문적 연구는 아니었지만 전지구적인 환경문제에 관한 진단과 조사로 세계적으로 활발한 논의를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기본적인 방향은 변하지 않았다. 즉 경제적인 이익은 환경과의 문제와 대치될 때 항상 우선을 차지한다는 기본적인 생각을 바꾸지는 못했다.

비록 1970년대 초에 이미 사람들은 기후변화, 동식물의 사멸, 사막화 또는 물, 공기의 오염과 같은 주된 환경문제에 의해 지구상의 어떠한 나라도 그 피해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수년이 지나 학자들이 기후변화와 오존층 파괴의 엄청난 결과에 대해 지적하자 올바르고 명확하게 인식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국제적인 환경정책이 시작된 25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성공을 거두고 있지 못하다. 지금까지도 유엔의 환경프로그램에 대해 모든 유엔의 보고서는 환경의 상황이 더 좋아 진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더 나빠지고 있다고 혹평하고 있다.

스톨홀롬의 환경회의 이후 유엔총회에서 마련된 유엔의 환경기구는 1973년 초에 자신들의 업무를 시작하였다. 총회는 사무국의 위치를 케냐의 나이로비로 정하였다. 이 프로그램은 그 사무국이 제3세계에 위치한 첫 번째 유엔의 기구이다. 다른 유엔의 조직체들이 경우에 따라서는 환경문제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기 때문에 유엔의 조직체계 내에서 유엔의 농업기구(FAO) 또는 유네스코(UNSECO)와 같은 자치권이 있는 특별기구는 아니다. 대신에 이 기구는 유엔총회에서 보고의무가 있는 유엔의 경제, 사회위원회(ECOSOC)의 특별 기구이다. 이 기구의 창설자들이 제한 없는 자치권을 부여하지 않은 것은 이들이 맡은 업무와 관련이  있다. 즉, 이 기구 구성원의 대부분은 스스로 자신들의 업무를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유엔의 조직체와 함께 긴밀하게 업무를 집행하는 것이다. 독일정부는 1996년 이 기구를 세계환경기구로 조직을 격상시키자는 제안을 하였으나 아직까지 다른 국가들로부터 호응을 얻고 있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이 기구는 여전히 그 조직적 측면에 있어 조그마한 기구이다. 사무국의 직원은 300명 정도에 이르고, 일년 예산은 미국 달러로 약 5천만 달러에 달
한다. 수입은 다음의 3가지 방법으로 충당하고 있다. 먼저 몇몇 국가들이 자유로운 의지에 의해 충당되는 환경기금에 의해 자신들의 계획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고 있으며, 관리비용은 유엔의 예산에 의해 충당되고 있고, 특별한 계획을 위한 비용은 신탁기금으로 마련한다.   이 기구가 담당할 업무의 기본 방향과 예산은 58 회원국들의 대표들로 구성되며, 유엔총회에서 4년마다 선출되는 행정위원회가 결정한다. 사무국과 지역사무소의 지도는 실행위원장의 책임하에 있다.

자신들의 부족한 재정과 인원에도 불구하고 유엔의 환경기구는 홀로 주목할 만한 성공을 거두웠다. 이 기구의 사전작업에 의해 위험에 처한 동식물의 보호(1973)에 관한, 오존층의 보호(1985) 또는 유해한 산업폐기물의 발전도상국으로의 수출 금지(1991)와 같은 국제적인 협약들이 체결되었다. 그런데 유엔의 이 기구에는 몇몇의 협약-사무국들이 존재하고 있다. 긴급한 조치들로 파악된 영역들을 실행하기 위해 1982년에 체결된 몬테비데오의 환경프로그램은 장기적으로 많은 국가들에서 환경법의 제정에 영향을 미쳤다. 환경집행의 발전에 있어 계획과 도움을 주는 것 이외에 수집, 평가 그리고 전지구적인 환경상황에 관한 자료의 처리가 중요한 과업중의 하나이다. 유엔의 환경기구는 이를 위해 일련의 정보체계와 자료은행을 설치하였다. 대략 6,000개의 전세계적인 환경과 발전영역에서 비 정부조직기구와 가능한 한 폭넓은 결과를 얻기 위해 함께 일을 하고 있다. 확대재생산자로서 유엔의 환경프로그램을 위한 국가적인 위원회가 몇몇의 국가 독일, 프랑스 그리고 일본을 중심으로 생겨났다.

전 세계적인 환경기구의 상부조직으로서 1948년에 설립된 국제자연보호연맹(IUCN-International Union for the Conservation of Nature)이 그 기능을 발휘한다. 연맹의 회원으로는 대략 70개국 100개의 정부기구와 같은 600개 이상의 국가적인 환경기구들이다. 스위스의 그란드에 위치한 이 기구는 자원의 환경계약에 의한 사용을 위한 전략과 프로그램을 발전시키고 있다. 60년대 이후로 연맹은 학문적인 근거에 입각해 위험에 처한 동물과 식물의 종에 관한 목록을 작성하였다. 더욱이 이 국제자연보호연맹은 1961년 영국에서 설립되었고, 스위스에서는 재단으로 등록된 세계자연기금(WWF-World Wide Fund for Nature)과 밀접하게 공동으로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1986년 이후에야 이러한 명칭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 연맹의 설립자들은 자신들의 기구를 세계야생기금(World Wildlife Fund)라고 명명하였다. 먼저 이 기구는 위험에 처한 동물류의 보호를 위한 행동에 몰두하였고, 80년대 초 이후 업무의 중심점에 광범위한 내용들을 채울 수 있었다. 전체 삶의 공간의 보호가 격리된 동식물의 보호에 앞서는 우선적인 것이다. 학문적인 업무이외에도 세계자연기금의 국가적인 기구는 지금까지 5,000개 이상의 계획을 실행하였다. 전 세계에 위험에 처한 동식물을 위한 많은 보호지역의 지정은 그들의 노력에 의한 것이다.  세계자연기금의 최고의 위원회는 의장단을 뽑는 명예직의 기금위원회이다. 세계자연기금의 대표가 양기관의 의장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한다. 중앙의 업무집행은 총재의 소관이다. 중앙과 각국의 세계자연기금의 행정경비는 세계자연기금의 상징의 사용에 대한 특허와 같은 재단의 재산에 의해 충당된다. 따라서 후원자들의 기부금은 거의 절대적으로 계획의 실행에 있어 유용한 것이다.

세계자연기금과는 달리 국제그린피스는 무엇보다도 고래잡이, 기각류의 포획 또는 핵쓰레기의 수송에 반대하는 등의 규모가 큰 행동으로 대중과 정치가들이 환경보호에 대해 의식을 갖게끔 시도한다. 이 조직을 만드는데 노력을 한 사람들은 1971년 알라스카지역으로 핵무기를 이동하려는 시도를 공동의 행동으로 저지한 소수의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이듬해에 그린피스 협회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 그리핀스 협회는 무엇보다도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그리고 유럽의 많은 사람들에 의해 창설되어진 것이다. 초기의 지도자인 데이비드 맥타거어트(David McTaggetr)는 1979년 이 조직체를 그린프스 협의회 산하로 통합시켰다. 이것이 바로 국제 그린프스의 창설이 된 것이다. 1985년 6월 프랑스의 정보기관이 그린피스의 배 (Rainbow Warrior)의 침몰로 국제 그린프스 회원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이 조직체는 각국으로부터 연대의 의지를 획득하게 되었다. 이 국제 그린피스의 최고 의결기관은 모든 30개의 각국의 분과에서 파견하는 대표들로 구성되는 대표단회의 이다. 이 대표단 회의에서는 국제대표단을 선출한다. 국제대표단은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 위치한 국제사무소를 이끄는 사무총장을 임명한다. 세계자연기금과는 달리 이 그린피스는 산업체로부터의 재정적 후원을 거부하고 있다. 따라서 비용은 책, 티셔츠 그리고 다른 물건들의 판매 수익금과 후원자들의 기부금 그리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자본의 이자등으로 충당된다.

세계자연기금과 그린피스는 회원들 또는 기부자들이 단지 큰 영향력을 갖지 못하면서, 무엇보다도 선진국들에서 중심이 되며, 엄격하게 지도되는 조직체인 반면에,지구의 친구들(FoEI-Friends of
the Earth International)은 발전도상국들의 많은 환경조직체들을 대표한다. 이들은 각국 환경조직
체들의 연방주의적 방식으로 건설된 네트워크이다. 모든 회원들은 어떠한 계획에 적극적인 참여여부에 대해 스스로 결정한다. 캠페인에 있어 정보의 교환과 공동 협력을 통해 이 조직체는 서로들간에 협조를 하고 있다. 이 조직체의 사무국은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 위치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조직체들 중에서 로마클럽은 특별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모임은 이탈리아의 산업가인 아우렐이오 페치(Aurelio Peccei)와 스콜트랜드 학자인 알레산터 킹(Alexander King)에 의해서 주도되어 졌다. 이들은 1968년 4월 로마에서 36명의 사람들과 함께 지금은 단지 전문적인 분야의 사람들만이 관심을 갖는 제3세계의 빈곤, 인구성장, 환경파괴, 그리고 무기경쟁에 관한 세계의 문제에 대한 논의를 가졌다. 이들은 1972년 <성장의 한계>라는 자신들의 연구 결과를 발표하면서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 조직의 회원들은 최대 100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들은 거의 남자들로 세계 50개국의 다양한 분야의 학자, 기업가, 지식인들이다. 회원들은 어떠한 직위에 임명되어지며, 단체를 위해 훌륭한 연구서를 작성하여야만 한다. 이러한 연구결과는 일반적으로 <클럽에 대한 보고>로 발표되어진다. 또한 이러한 연구결과는 무조건적으로 공동의 일치된 견해가 아니라 저자의 의견이 존중되어 진다. 그러나 모든 회원들은 연구결과의 발표에 있어 그것이 <로마클럽의 발표>라는 것에 대해 일치된 견해를 갖고 있다. 예를 들어 1972년에 발표된 <성장의 한계>는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지만 그것이 모든 회원들의 동의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또안 <인류의 상황에 대한 로마클럽의 발표>라는 독일어 부제가 올바른 것이 아니었다는 점에 있어서도 내부에서는 많은 이견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로 회원들은 거의 의장단의 퇴진을 주장하지는 않았다. <로마클럽의 독일 모임>과 같은 대략 36개국의 조직체들이 이 조직의 활동에 도움을 주고 있다. 사무국의 위치는 1984년 로마에서 파리로 옮겨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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