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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낙태와 태아의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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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승희 이름으로 검색 조회 9,092회 작성일 02-03-14 18:33

본문

작성일 : May 13, 2000  Hits : 122 , Lines : 72  

우리는 살아나가면서 일상생활 속에서 윤리적인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많다. 낙태는 그 중에서도 다행히도 아주 흔한 일상생활의 결정에 속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의 어느 순간에서 만나게 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종교적인 색채를 배제하고 순전히 윤리학적인 측면에서 낙태문제가 어떻게 논의되는지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물론 철학자들은 전문지식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무엇이 유용한 것인지에 대해서 의견을 표명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특히 낙태문제와 같이 어느쪽이 맞다고 명확히 하기 힘들 때, 윤리적인 측면에서 서로의 상치되는 면을 제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낙태문제뿐 아니라 안락사 문제, 장애자문제, 부자와 가난한 자들의 문제등 앞으로 다루고 싶은 분야는 많지만 우선 낙태와 태아의 권리에 대해 2부에 걸쳐서 연재하고자 한다.


1. 문제제기
낙태 문제가 오늘날 서로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된 상태에서 논의되고 있다. 1967년까지 낙태는 스웨덴과 덴마크를 제외하고는 불법에 해당되었다. 그후 영국에서 여러 사회적 근거에서 낙태가 허용되도록 법이 개정되었고, 미국에서도 1973년, 임신 6개월 이전에는 낙태할 권리를 가지도록 대법원에서 판결을 내렸다. 유럽에서도 이태리, 스페인, 프랑스 등 카톨릭 국가에서도 낙태법을 자유화하였다. (아일랜드 제외)

그러나 낙태반대자들도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 보수적인 미국 주정부에서는 여러 방식으로 낙태자체의 허용을 어렵게 하고 있다. 동유럽에서도 공산주의붕괴이래로 낙태에 대한 문제제기가 높아지고 있다. 원래 사화주의하에서 낙태는 허용되었었는데, 폴란드처럼 종교적 색채가 짙은 나라에서는 다시 낙태금지법이 등장하였다.

1978년 루이제 브라운(Louise Brown)의 탄생으로 인간의 삶에 대한 새로운 문제가 제기되었다. 처음으로 인간의 몸바깥에서 수정된 수정체(Embryo)에서 인간이 태어난 것이다. 물론 이렇게 체외수정이 성공하기 이전까지는 수많은 태아가 실험에 이용되어졌다. 이제 수정체는 냉동되어서, 여자몸에 이식되기 전까지 몇 년을 보관할 수도 있게 되었다. 이러한 냉동 수정체에서는 아주 정상적인 아기가 태어날 수 있는데, 이로 인해 전 세계에 엄청난 숫자의 수정체가 특수 냉동고에 보관되고 있는 현상을 가져왔다. 여성의 난자를 축출하여 수정시킨 후 다시 자궁으로 이식되는 방법이 많이 사용되기 때문에, 수많은 냉동수정체들은 버려지거나 실험실로 넘겨지거나 또는 수정이 불가능한 부부에게로 이식되기도 한다.

또한 수정체를 유전이상 진찰이나 치료에 이용하는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수정후 17일이 지난 수정체는 여러 악성 혈액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혈액기본세포(Blut-Stammzellen)를 생성해 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제 우리는 미래에 장기를 필요로 하는 환자를 위해 장기를 보관하는 수정체나 태아은행을 가지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수정체나 태아를 죽이는 낙태나 실험은 심각한 윤리문제를 제기한다. 왜냐하면 인간존재의 발전은 단계적인 과정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수정체를 이식되기 이전에 버린다면 그것을 하나의 죽음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수정된 난자는 하나의 세포이다. 며칠이 지난다 하더라도 아직도 작은 세포덩어리일 뿐이다. 수정이후 14일까지도 우리는 이 수정체에서 한명이 태어날지 쌍둥이가 태어날지 알 수 없다. 14일 이후에서야 처음으로, 나중에 척추로 발전되는 Corda dorsalis가 만들어진다. 이 시기에 수정체가 의식이나 아픔을 느낀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성인 인간을 죽이는 것은 살인을 의미한다. 수정된 난자와 성인 인간을 가르는 분명한 선은 없다. 여기서 문제가 제기된다.임신중절문제뿐 아니라, 이로 야기되는 태아실험과 태아조직을 의료목적에 사용하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2. 보수적 입장
임신중절에 대한 반대입장은 다음과 같이 논리적으로 요약할 수 있다.
가정 1: 죄가 없는 인간을 죽이는 것은 옳지 않다.
가정 2: 인간의 태아는 죄가 없는 인간이다.
결론: 따라서, 인간의 태아를 죽이는 것은 옳지 않다.

대부분 진보적인 측면에서는 두 번째 가정에 대해서 여러 의견이 존재한다. 태아가 인간인가 하는 문제와 또는 언제 인간의 삶은 시작되나 하는 문제는 긴밀하게 연결된다. 이 부분에서 보수적인 쪽에서는 수정된 난자와 아이 사이의 연속성을 주장하면서 진보적인 쪽에게 어떤 단계적인 과정에서 도덕적으로 의미있는 단면이 존재하는지 논리적인 설명을 요구한다. 만약 이러한 단면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보수적 입장에 따라 태아의 지위와 어린 아이의 지위가 같다고 주장해야 한다. 어떤 부모도 자신의 아이를 자기의 판단에 따라 죽이지는 않는다. 따라서 태아도 어린 아이처럼 보호되어져야 한다.

수정된 난자와 어린아이 사이에 서로 도덕적으로 구별되는 점이 없다는 것이 사실일까? 주로 출생, 생존능력, 태아의 움직임, 의식형성 등이 차이점으로 제기된다.

2.1. 출생
출생은 우리가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경계에 해당된다. 이 논점은 특히 진보적인 쪽에서 주로 주장되는데, 우리가 눈으로 본 적도 없고, 들을 수도 없고, 사랑해 줄 수도 없는 태아의 죽음은 그다지 우리에게 어린 아기의 죽음보다는 큰 상처를 주지 않는다. 그런데 한 생명을 죽여도 되고 안되고에 출생을 경계로 삼아도 되는 것일까? 보수주의자들은 태아나 어린 아기나 자궁내에 있든 바깥에 있든 같은 정도의 의식수준과 능력, 통증지각을 가지는 같은 생명이기 때문에 출생을 경계로 하는 의견에 반대한다. 이 점에서 8개월째 태어난 조산아는 9개월된 태아보다 덜 발달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나의 생명이 어디에 존재하느냐는 (자궁안이든 바깥이든) 그 생명을 죽여도 되냐 안되냐의 경계선으로 삼을 수 없다.

2.2. 생존능력
출생을 경계로 볼 수 없다면 태아가 자궁바깥에서 살아날 수 있느냐로 경계를 잡아도 될까? 1973년 미 대법원에서도 생존능력을 그 경계로 보았는데, 당시판결문: "국가는 자궁밖에서 살 수 있는 능력을 가지는 태아의 잠정적인 생명을 보호하고자 한다." 이 판결에 따르면 엄마의 생명이 위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생존능력이 있는 태아를 낙태하는 것은 위헌에 해당한다.

생존능력을 그 경계로 보는데 반대하는 근거로서, 의학기술의 정도에 따라, 태아가 자궁밖에서 살 수 있느냐가 결정된다는 것을 들 수 있다. 30년 전만 해도 예정보다 두달 이상 일찍 태어난 아기는 살 수 없었다. 그런데 요즘은 3개월 일찍 태어난 6개월째 된 아기도 의학기술의 도움으로 살 수가 있다. 또는 경우에 따라 그보다 더 일찍 태어난 아기도 사는 경우가 있다. 30년전만 해도 가능했던 임신 6개월째의 낙태가 오늘날은 금지된다고 할수 있을까? 하지만 시간 뿐만 아니라 장소에 따라서도 달라진다고 할 수 있다. 생존기회는 아기가 뉴욕이나 런던에서 태어나느냐, 아니면 아프리카 오지에서 태어나느냐에 따라 또 커다란 차이가 있다. 뉴욕에서 사는 6개월 된 임산부가 아프리카 오지를 여행한다고 가정할때, 현대적인 의료시설이 있는 도시로 다시 돌아가는데 급한 상황에서 시간적인 어려움이 있다. 그렇다면 뉴욕에서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불가능했던 낙태가 아프리카 오지에서는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여행이 태아자체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닌데...

2.3. 태아의 움직임
엄마가 태동을 느꼈을때를 하나의 경계시점으로 할 수도 있다. 전통카톨릭 신학에서는 이 시점이 태아가 영혼을 받은 순간이라고도 한다. 영혼이 바로 동물과 사람을 구별한다는 크리스트 전통에 따라, 태아의 움직임을 그경계로 삼아도 될까? 그러나 태아가 어느 시점에 영혼을 받는다는 것은 오래된 미신에 해당되고 오늘날 카톨릭 신학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태동은 태아가 움직이기 시작한 한 순간일 뿐이지, 이 순간 이전에도 태아는 존재해 왔다. 초음파검사에 의하면, 엄마가 느끼기 훨씬 이전인, 수정된지 6주만에 벌써 움직인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따라서, 물리적인 운동력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는 그 누군가가 계속적으로 살 권리가 있느냐 없느냐와 별로 상관이 없다.

2.4. 의식
의식의 한 형태로 움직임을 들 수 있고, 의식, 생존능력, 기쁨과 아픔을 느끼는 것 또한 도덕적 의미를 가진다. 낙태를 찬성하는 쪽의 주장으로는, 수정이후 6주 이후에 벌써 움직임이 시작되고, 7주째에는 뇌의 활동이 시작된다고 해서, 이러한 임신초기에 수정체가 아픔을 느낀다고 결론내리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생명은 살 권리를 가지고 어떤 생명은 살 권리를 가지지 않는 뚜렷한 경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태아의 어떤 발전단계에서 임신중절이 허락될수 있는지는 증명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보수주의자들의 의견으로는, 태아에서 영아로의 발전은 하나의 단계적인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3. 진보주의자의 의견
3.1. 제한적 법의 결과
낙태금지법은 낙태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낙태의 불법화를 촉진한다. 낙태를 결심한 임신부는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불법적인 방법이나 원시적인 방법으로 낙태를 직접 행할 수 있다. 의사를 통한 임신중절은 안전하지만, 자격이 없는 사람을 통한 임신중절은 매우 심각한 사태를 초래하거나 심지어는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따라서 임신중절을 금지시킨다면, 임신중절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원하지 않는 임신을 한 여성의 어려움과 위험성만 늘어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논리는 낙태법 입안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캐나다의 Royal Commision on
the Status of Women의 예를 들면, "좋은 결과보다는 나쁜 결과를 초래하는 법은 나쁜 법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과 같은 형태로 법이 존재한다면, 수많은 여성들이 법을 어기게 될 것이다."이러한 낙태금지법에 반대하는 논리는 낙태가 나쁘다는 것에 반대하는 의견이 아니다. 이 논리에 따르면, 낙태를 원하는 여성이 상담을 받는다는 조건하에서 법적으로 낙태를 허가받을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은 낙태법 입안에 관한 문제일 뿐이지, 낙태의 도덕성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보수주의자의 의견처럼 낙태가 죄도 없는 한 생명을 빼앗고, 하나의 살인에 해당된다는 주장을 반박할 수도 없다. 이러한 의견을 갖는 사람은 임신부가 불법영업을 하는 사람에게서 낙태수술을 더 이상 받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만족해 하지도 않는다.  

3.2. 법과는 관련이 없는 문제인가?
두 번째 주장 또한 낙태법에 관한 문제로서 임신중절에 대한 도덕성과는 관련이 없다. 동성연애자와 매춘에 대한 영국 정부의 법입안에 대한 연구보고에 따르면, "법과는 관련없이 개인의 도덕성이나 비도덕성에 관한 분야가 필요하다." 이러한 생각은 자유주의적 전통에 의해 보급되었는데, 특히 John Stuart Mill의 자유론(On Liberty)에서 찾아볼 수 있다. Mill에 의하면 "한 문명사회의 어떤 일원의 의사와 반해서 행해질 수 있는 정당한 권력의 단 한가지 목적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는데 있다. ... 어느 누구도 자신에게 더 낫다거나 더 행복한 결과를 가져온다거나 다른 사람 생각에 옳다고 해서 강요되어서는 안된다."

Mill의 이러한 문장은 "피해자가 없는 범죄(Verbrechen ohne Opfer)" 에 대한 법안 폐지요구시에많이 인용이 되는데, 예를 들면 동성연애, 마리화나 등 마약 사용, 매춘 등의 법적 금지등이 이에 해당된다. 낙태 또한 여기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는데, 범죄학자인 Edwin Schur의 Crimes without Victims에 의하면, 낙태를 피해자가 없는 범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인간은 낙태에 관하여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하는지 원하는대로 할 권리가 있다. 어떤 다른 사람도 당사자에게 자신의 생각을 강요할 권리는 없다. 다원주의사회에서는 우리는 다른 사람의 도덕관에 대해서 관대해야하고, 낙태를 하고 안하고는 그 당사자에게 달려있는 문제이다.

낙태를 피해자가 없는 범죄로 보는 견해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낙태반대자들에 의하면 낙태의 피해자는 태아라고 할 수 있다. 낙태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들은 태아를 진정한 의미에서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반론을 제기한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도로 행동에 제한을 주어야 한다는 Mill의 생각은 낙태가 다른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전제 하에서 적용이 가능하다. 바로 이 부분을 우리가 법의 원칙을 적용하기 전에 확실히 논증하여야 할 것이다.  
  
3.3. 페미니스트의 주장
세 번째로 낙태를 찬성하는 의견은, 여성은 자신의 몸에 대해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견은 여성해방운동과 관련지어서 나왔으며, 미국의 여성 철학자들(페미니스트들로 불린다)에 의해서 주장된다. 특히 Judith Jarvis Thomson이 대표적인데, 예를 들어, 당신이 아침에 일어났는데, 바로 당신의 침대 옆에 의식불명인 한 남자가 당신과 연결되어서 누워있다. 이 남자는 신장병을 앓는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인데, 자신의 심장순환기와 자신과 같은 혈액형을 가진 사람과 연결된 상태에서만 살아날 수 있다. 그리고 같은 혈액형을 가진 유일한 사람이 바로 당신이라고 가정하자. 이 남자의 열성 팬들이 당신을 납치해서 당신은 지금 그 남자와 연결된 상태이다. 다행히 병원측의 알선에 따라서 당신이 원한다면 그 바이올리니스트와 연결된 상태를 해지할 수는 있다. 물론 바이올리니스트는 100% 죽게된다. 그러나 당신이 9개월만(?) 그 바이올리니스트와 연결되어 있다면, 그 남자도 건강해지고 당신도 그 남자에게 해를 주지 않고 자유로와질 수 있다.

Thomson의 주장은 이러한 원하지 않았던 불쾌한 상황에서 바이올리니스트에게 9개월동안 자신의 신장을 사용하도록 할 도덕적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당신이 매우 친절하게도 그것을 허락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해서 당신이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Thomson도 바이올리니스트가 살아나갈 권리가 있다는 사실에는 찬성한다. 그러나 자신이 살 권리가 있다고 해서 남의 육체를 사용할 수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설사 남의 육체를 사용하지 않고는 자신이 죽는다 하더라도 ...

특히 강간에 의한 임신인 경우에는 더욱 명백하다고 할 수 있다. 강간에 의해 임신한 여성은, 바이올리니스와 연결된 사람처럼, 자신의 생각과는 관계없이 태아와 9개월동안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임신부는 9개월동안 침대 위에서 생활하지 않아도 된다. 막 태어난 아기를 입양보내는 것은 심리적으로 바이올리니스트가 다 나은 다음에 헤어지는 것보다 더 힘들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사실이 태아를 죽여도 되는 충분한 이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태아가 완성된 인간이라고 가정한다면, 임신중절은 바이올리니스트와의 연결을 끊는 것과 도덕적으로 같은 의미를 가진다. 바이올리니스트를 방치하더라도 나쁘다고 말할 수 없다는 Tomson의 의견에 우리가 찬성한다면, 임신중절 또한 나쁘다고 말할 수 없다.

Thomson의 의견은 강간에 의한 경우가 아니더라도 해당된다. 당신이 팬클럽에 의해 납치된 것이아니라 병원에 입원해 있는 친구를 문병갔다고 가정해 보자. 당신은 실수로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잘못 눌러서, 다른 누군가와 연결되어서만 살 수 있는 환자가 있는 병동에 가게 되었다. 의사는 당신을 자발적인 기증자로 보고, 바로 마취주사를 놓고 당신을 환자와 연결시켜버렸다. 이 경우 무지와 한 번의 실수가 이렇게 9개월이라는 커다란 희생을 치르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강간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무지와 부주의에 의해 임신한 수많은 여성에게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다시한번 Thomson의 예를 달리 정리해 본다면, 내가 아주 심각한 병에 걸렸고 내가 나을 수 있는 단 한가지 방법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배우가 내 이마에 손을 얹어주는 것이다. 그러나, Thomson에 의하면, 내가 생명을 이어나갈 권리를 가진다고 해서 그 영화배우가 다음 비행기를 타고 나를 구하러 와야한다는 도덕적인 의무를 갖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Thmson은 우리가 여러 상황을 고려해 보고, 가장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는 행동을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행동의 결과와는 관계없이 권리와 의무에 따라서 행동해야 한다고 Thomson은 생각한다.

이로써 보수주의에 반대하는 진보주의자들의 의견들을 다 모아보았다. 우리가 보았다시피, 진보주의자들은 태아와 영아의 도덕적경계를 규명해내지는 못했으며, 낙태문제에 대해, 태아가 하나의 인간이라는 보수주의자들의 논거와 관계없이 정당화시키고 있다. 보수주의자들의 낙태반대의견이 현재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다음 단락에서는 생명의 가치에 대한 논쟁에 대해 한 번 알아보도록 하겠다.

참고문헌:
Singer, Peter: Praktische Ethik, 2. Aufl., Stuttgart 1994
Singer, Peter/Kuhse, Helga: Muss dieses Kind am Leben bleiben?, Erlangen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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