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여성해방의 세기9-동독의 여성해방? Nina Hag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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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자유로니이름으로 검색 조회 2,322회 작성일 02-03-14 17:28본문
■해방의 세기: 여성해방
다음은 슈피겔지99.3.1일자 기사를 정리한 것임.
◆ 동독의 여성해방? - 동독청소년들의 우상 Nina Hagen
1979년 8월 저 전설적인 ORF-Talkshow에서 동독출신의 가수 Nina Hagen은 전국에 스캔들을 불러 일으켰다. 이 토크쇼에서 확실한 손놀림으로써 여성들의 자위행위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실연해 보였던 것이다.
이로 인해 격렬한 논쟁과 소동이 벌어졌다. 서독 저편의 현실사회주의가 그런 것을 제작해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그러나 동독과 그녀는 그것을 해 보였다.
21살 때 니나 하겐은 자신의 엄마 Eva-Maria와 함께 동독국적이 박탈된 그녀의 양아버지인 Wolf Biermann을 찾아 동독바깥으로 출국여행을 했다. 그때 그녀는 이미 오래전에 동독청소년들의 숭배의 대상이었고 우상이었다. 물론 이것은 사람들이 그녀를 페미니스트로 이해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사회주의에서는 공식적으로 여성해방의 문제는 해결된으로 간주되었으니까.
동독은 1949년 서독처럼 남녀동등권을 법제화했으며 서독보다 한걸음 더 나아갔다. 여성노동은 경제적으로 필수적인 것으로 간주되었으며, 그러한 관점에서 여성노동이 장려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후 동독에서 여성해방에 가장 큰 걸림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유치원과 애기를 맡아 돌봐주는 시설은 수요를 충분히 감당할 만큼 세워졌다. 그리고 낙태권리를 위해 더 이상 투쟁하지 않아도 좋았다. 이미 오래 전에 그것은 합법화되었다.
물론 동독에서도 고위직종은 확실히 거의 남성들 차지였으며 가정내에서 남녀간의 낡은 옛 역할분담은 그대로 계속 되었다. 그러니까 여성들은 일자리에 나가 일을 했고 다시 집에 돌아와서는 거의 혼자 도맡다시피 가계를 돌봐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식적으로 여성착취는 단지 자본주의에서만 벌어지는 현상이라고 주장되었다. 이런 주장을 크게 믿지 않는 사람들도 오래 전에 여성모임 창설을 촉구하는 일 같은 것은 그만 두었다. 그에 대한 필요성은 희박한 것처럼 보였다.
1989년 장벽붕괴 이후 그 드문 여성모임이 생겨났다. 그러나 동독여성들 대부분은 서독여성들이 지속적으로 낙태나 여성의 직업캐리어, 양육문제나 남성폭력과 같은 문제를 놓고 씨름하는 것을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성을 사회적 구조물"로 파악한 포스트 페미니스트 마돈나들은 자신이 지지했던 녹색당에 불만을 피력하면서 언제쯤 마침내 비율에 따른 여성지분(Quote)이 완전히 보장될 것인지를 따져 묻곤 했다.
그러나 70년대의 열광은 오래전에 사라졌다. 물론 개개의 여성들의 성공은 있었다. 예를 들어 마가렛 대처 혹은 인디라 같디는 남성과 똑같이 단호한 철의 정치를 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성들은 직업에서 아직도 여전히 배제를 당하고 있다. 최근 미국의 페미니스트들은 "유리덮개"의 원칙을 발견했다. 이것은 보이지 않는 투명벽으로서 여성들이 직업상에서 최고위직으로 승진하는 것을 가로 막는다.
◁ 218조에 반대한 항의데모(1975)
동독여성들은 서독의 여성들이 정치가들이 "렌턴과정의 의사가 임신을 한다면..." 운운할 때 왜 그토록 흥분하는지 이와 같은 강박관념적인 집착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동독여성들은 기중기운전사를 하든지 기관사를 하든지간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렇다면 동독에서는 어떤 페미니즘도 성립할 수 없는 것인가? 웬걸 니나 하겐은 바로 이 지점에서 동독의 페미니즘을 조금은 구현하고 있다. 그녀의 노래 "'대쉬하라구"(rangehn)를 그녀는 이미 동독에서부터 불렀다. 그리고 동독에서 불렀을 때는 "달려들어 네가 원하면 대쉬해야 되는거야!" 정도가 아니었다. 훨씬 용감했다."달려들어 그녀석이 니 맘에 들거든 데쉬해야 되는거야!"(Rangehn, wenn dir'n Typ gefällt: rangehn!)
다음은 슈피겔지99.3.1일자 기사를 정리한 것임.
◆ 동독의 여성해방? - 동독청소년들의 우상 Nina Hagen
1979년 8월 저 전설적인 ORF-Talkshow에서 동독출신의 가수 Nina Hagen은 전국에 스캔들을 불러 일으켰다. 이 토크쇼에서 확실한 손놀림으로써 여성들의 자위행위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실연해 보였던 것이다.
이로 인해 격렬한 논쟁과 소동이 벌어졌다. 서독 저편의 현실사회주의가 그런 것을 제작해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그러나 동독과 그녀는 그것을 해 보였다.
21살 때 니나 하겐은 자신의 엄마 Eva-Maria와 함께 동독국적이 박탈된 그녀의 양아버지인 Wolf Biermann을 찾아 동독바깥으로 출국여행을 했다. 그때 그녀는 이미 오래전에 동독청소년들의 숭배의 대상이었고 우상이었다. 물론 이것은 사람들이 그녀를 페미니스트로 이해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사회주의에서는 공식적으로 여성해방의 문제는 해결된으로 간주되었으니까.
동독은 1949년 서독처럼 남녀동등권을 법제화했으며 서독보다 한걸음 더 나아갔다. 여성노동은 경제적으로 필수적인 것으로 간주되었으며, 그러한 관점에서 여성노동이 장려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후 동독에서 여성해방에 가장 큰 걸림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유치원과 애기를 맡아 돌봐주는 시설은 수요를 충분히 감당할 만큼 세워졌다. 그리고 낙태권리를 위해 더 이상 투쟁하지 않아도 좋았다. 이미 오래 전에 그것은 합법화되었다.
물론 동독에서도 고위직종은 확실히 거의 남성들 차지였으며 가정내에서 남녀간의 낡은 옛 역할분담은 그대로 계속 되었다. 그러니까 여성들은 일자리에 나가 일을 했고 다시 집에 돌아와서는 거의 혼자 도맡다시피 가계를 돌봐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식적으로 여성착취는 단지 자본주의에서만 벌어지는 현상이라고 주장되었다. 이런 주장을 크게 믿지 않는 사람들도 오래 전에 여성모임 창설을 촉구하는 일 같은 것은 그만 두었다. 그에 대한 필요성은 희박한 것처럼 보였다.
1989년 장벽붕괴 이후 그 드문 여성모임이 생겨났다. 그러나 동독여성들 대부분은 서독여성들이 지속적으로 낙태나 여성의 직업캐리어, 양육문제나 남성폭력과 같은 문제를 놓고 씨름하는 것을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성을 사회적 구조물"로 파악한 포스트 페미니스트 마돈나들은 자신이 지지했던 녹색당에 불만을 피력하면서 언제쯤 마침내 비율에 따른 여성지분(Quote)이 완전히 보장될 것인지를 따져 묻곤 했다.
그러나 70년대의 열광은 오래전에 사라졌다. 물론 개개의 여성들의 성공은 있었다. 예를 들어 마가렛 대처 혹은 인디라 같디는 남성과 똑같이 단호한 철의 정치를 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성들은 직업에서 아직도 여전히 배제를 당하고 있다. 최근 미국의 페미니스트들은 "유리덮개"의 원칙을 발견했다. 이것은 보이지 않는 투명벽으로서 여성들이 직업상에서 최고위직으로 승진하는 것을 가로 막는다.
◁ 218조에 반대한 항의데모(1975)
동독여성들은 서독의 여성들이 정치가들이 "렌턴과정의 의사가 임신을 한다면..." 운운할 때 왜 그토록 흥분하는지 이와 같은 강박관념적인 집착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동독여성들은 기중기운전사를 하든지 기관사를 하든지간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렇다면 동독에서는 어떤 페미니즘도 성립할 수 없는 것인가? 웬걸 니나 하겐은 바로 이 지점에서 동독의 페미니즘을 조금은 구현하고 있다. 그녀의 노래 "'대쉬하라구"(rangehn)를 그녀는 이미 동독에서부터 불렀다. 그리고 동독에서 불렀을 때는 "달려들어 네가 원하면 대쉬해야 되는거야!" 정도가 아니었다. 훨씬 용감했다."달려들어 그녀석이 니 맘에 들거든 데쉬해야 되는거야!"(Rangehn, wenn dir'n Typ gefällt: range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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