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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여성해방의 세기8-Benoîte Groult

페이지 정보

작성자 자유로니이름으로 검색 조회 1,998회 작성일 02-03-14 17:23

본문

◆ Benoîte Groult

"343명의 잡년"의 대열에 들지 못한 것을 평생 후회한다고 Groult는 말한다. 잡년?(Schlampe) "네 당시는 그렇게 불렸어요." 1971년 4월 5일 343명 잡년의 이름이 실린 "Nouvel Observateur"라는 잡지의 표제는 "나는 낙태를 했다"였다.(Ich habe abgetrieben)

그녀는 낙태문제에 대해서 꽤 소상히 잘 알고 있었다. 그녀 자신이 전후시기에 의사에게서 거절 당하고 절망한 채 집에서 부엌탁자에서 바늘과 낚시줄을 가지고 스스로 낙태를 했었다. 그녀는 심한 출혈과 갑작스런 죽음에까지 이를 수 있는 낙태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그런식의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남자들이 불쌍하다고만 생각했어요. 이건 내 죄라고 생각했어요. 그래 내가 임신한 거지 그사람이 임신한 건 아니니까."

오늘날은 믿기지 않은 이야기지만 당시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당시는 그랬다.

그런 체험후에 공포가 생기는 건 아주 정상적이었다. 그러고도 남자들하고 계속 같이 살 수 있을까? 여자들이 계속 사랑을 하려면 무엇을 해야하는가?

숙녀는 자기 남편과 피임약이든지하는 그런 것을 입에 올려선 안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숙녀였다. 확실히. 그녀는 떵떵거리는 부잣집에서 태어났으며 대학에서 공부를 했고 라틴어교사로 근무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다 큰 성인여성이  자신이 사는 나라의 법에 대해 선택할 수 없고 함께 결정할 권리가 허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해서 분노할만 것이라고 느끼지 않았다. 1944년에야 비로소 프랑스의 여성들에게도 권리가 부여되었다.

frau8.jpg프랑스여성들은 항상 "끔찍할만큼 상냥한" 상태로 살았었다고 그녀는 오늘날 말한다. 물론 그녀는 일찌감치 시몬느 드 보봐르의 1949년 발간된 '또다른 성"에 대해서 읽었지만 정작 자기자신의 문제로는 연결시켜 생각하지 않았다. 세계적으로 여성들이 페미니스트로 변해가는 와중에서야 비로서 그녀는 의식적인 각성을 하고 페미니스트적인 논문 "오이디푸스 자매", 에로틱 여성문학 "우리 피부에 소금"을 쓰며, "Madame le Ministre"를 통해 남성언어를 공격하기에 이른다.

여성언어, 여성연구 등 별안간 그 모든 것이 중요한 의미를 띠기 시작했다. 여성모임단체, 여성술집, 여성가게, 여성건강센터 등이 생겨났고, 여성의 집들이 남성폭력에 대항한 보호공간으로 세워진다. 여성의 역사가 새로 발견 발굴되고 여성의 사랑을 보게 되고 여성문학도 발간된다. 열정적인 70년대에 하나의 고유한 세계가 창조된다. 마치 여성의 통합이라는 요청에 대해 마침표를 찍어 버린 듯 행동하는 여성들의 한마당이 이루어진다. 마치 차단캡슐을 씌워 버리는 것, 더 우월한 여성적 존재로서 독자적인 삶을 사는 것이 탈출구인 것처럼.

갑자기 모든 것이 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여성들은 '하늘의 반"과 '세계의 반"을 요구했다. 단지 페미니스트들만이 아니라 사회전체가 그렇게 움직여 갔으며 새로운 사회적-자유주의적인 정부는 이런 경향에 일조했다.

4.jpg1977년에는 막강한 이혼(Scheidungsrecht)권이 만들어졌고 책임원칙(Schuldprinzip)은 폐지되었으며 생계보장의 형평이 도입되었다. 218조에 대해 새로운 협상이 이루어졌다. "Stern"지는 프랑스의 모범을 쫓아 고백하기운동을 벌이면서 사회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집권 연정은 1974년 기한내허용(Fristenloesung)을 도입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이를 다시 철회시켰다. 그렇게 해서 낙태를 둘러싼 분쟁은 90년대에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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