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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여성해방의 세기1-10세기말 20세기초의 여성운동 -Hedwig Dohm

페이지 정보

작성자 자유로니이름으로 검색 조회 2,389회 작성일 02-03-14 17:05

본문

■ 해방의 세기: 여성해방

  다음은 슈피겔지99.3.1일자 기사를 정리한 것임.

◆ 10세기말 20세기초의 여성운동 -Hedwig Dohm

라이프찌히의 신경과의사 Paul Julius Möbius는 1900년 "여성의 생리적 취약성"에 대해 언급하면서 여성은 "선과 악의 분별능력이 결여"되어 있다고 혹평했다. 여성은 "본능"적인 존재로 동물적이고 의존적이며, 무사안일에 젖은 가벼운 존재라는 것이다. 여성에게 교육은 적합하지 않으며 결혼을 하면 여성은 금새 정신적인 후퇴를 시작한다는 것이다.

frau1.jpg다섯 자녀의 어머니 Hedwig Dohm(69)은 1902년 뫼비우스의 책에 반박하는 "반페미니스트"라는 책을 썼다. 그녀의 책에는 70년대 페미니스트 저작 못지 않을만큼 자세하고 날카롭게 그의 주장을 반박했다. 그녀는 반페미니스트를 4종류로 분류했다. 1. 고루한 신념의 신봉자. 2.성격적인 단점과 정신적인 빈곤을 보여주는 남성권리주의자. 3. 실용적인 에고이스트. 4. 성모마리아의 기사.(여성의 무덤에서 흐느꼈던 Jeremiasse처럼) 그 책에서 말해지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로 그녀는 노골적인 조소와 함게 그의 주장을 압도했다.

20세기 내내 여성의 권리를 위해 투쟁한 여성들이 있었다. 여성은 자립적으로 행동하는 존재로 간주되지 않았다. 1900년에 발효된 시민법전은 남편을 부인의 후견인으로 인정했다. 즉 여성이 돈을 벌려면 남편의 허락이 필요한 것이다. 여성들은 선거권도 없었고, 보통의 경우 고등교육을 받을 수도 없었다. 프로이센법은 여성의 정치참여를 금지했다.

그러나 금세기초반 여성들은 몰래 숨어서 금지된 그것을 했다. 특히 "여성단체들"(Frauenvereinen)에서. 멋지게 차려입은 숙녀들이 함께 모임을 갖고 낙태, 교육, 직업활동 그리고 특히 선거권에 대해서 토론했다. Helene Stöcker, Anita Augspurg, Helene Lange와 Lily Braun과 같은 이름이 신문지상에 등장했으며 특히 Hedwig Dohm은 빈번히 날카로운 위트를 선보였다.

1.jpg◁ 영국의 여성참정권론자 Charlotte Despard의 연설모습(1910년)

이들은 1908년 투쟁을 통해 여성의 대학교육을 받을 권리를 획득했다. 같은 해 프로이센의 법은 자유화되었다. 이제 독일여성들은 영국의 여성참정권론자(Suffragetten)처럼 거리를 행진했다. 이런 꼴사나운 모습을 보다못한 Alfred Jaffe라는 한 교육학을 배우는 대학생은 베를린 경찰청장에게 편지를 보내 "남성화된 여성들의 치명적인 영향"에 대해 불평했다. 연약한 여성이 남성의 힘과 자부심을 병들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해로운 행동"을 즉각 중지시킬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러한 해로운 행동은 시간이 갈수록 자꾸만 더욱 번져나갔다. 시민계급여성들에게 물질적 곤궁함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권력과 복종의문제, 진부함에의 강요, 공공의 장에서 여성배제, 그리고 참상에 가까운 소녀교육과 같은 문제들이었다.

명망있는 공장주집안의 딸이었던 Helene Dohm은 적어도 결혼과 함께 행운을 잡았다. 그녀의 남편 Ernst Dohm은 풍자잡지 "Kladderadatsch"의 편집장이었다. 그래서 이 두사람의 살롱에는 Ferdinand Lassalle, Alexander von Humboldt, Bettina von Arnim과 같은 당대의 지성인들이 출입했다. 그녀는 열심히 경청하면서 배웠고 이후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그녀는 문필가이자 19세기말엽 형성된 시민여성운동에서 가장 급진적인 여성권익주창자의 한사람이 되었다.

그녀는 교육에서 남녀공학(Koedukation)을 주장했다. 또한 일할 권리를 미혼여성만이 아니라 기혼여성을 위해서도 요구했다. 낙태문제에 있어서는 마침내 여성에게 자유로운 선태권을 돌려주어야 하며 정치는 모든 남성과 여성에게 똑같이 개방되어야 한다. 그녀는 가정내에서 여성이 경제적으로 자립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아버지도 자녀교육에 힘써야 한다는 당시로서는 매우 용감한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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