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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쉰들러 1] - 쉰들러의 여행가방

페이지 정보

작성자 고스라니이름으로 검색 조회 7,687회 작성일 02-03-15 02:41

본문

◆ 쉰들러 리스트 발견

schindler%20koffer.jpg스카 쉰들러가 죽은 뒤 25년 후 그의 유품이 발견되었다. 슈투트가르트에 사는 한 부부는 자신들의 부모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수백 통의 편지, 서류 등이 들어있는 커다란 여행 가방을 발견했다. 이는 쉰들러의 2차대전과 전후 그가 사망한 1974년까지의 행적을 담고 있다.

이 가방에는 쉰들러가 구해낸 1,200명의 유태인 강제노역자의 이름이 적혀진 '쉰들러 리스트'로 들어있다. 이 가방으로 쉰들러가 그가 구해낸 소위 '쉰들러 유태인'과 전후에 맺었던 관계, 스티븐 스필버그의 1994년 영화 이전에 할리우드가 그의 생애를 영화화하려 했던 계획들, 쉰들러의 사업 실패, 독일에서 그에 대한 이미지, 쉰들러의 사랑 등이 재조명될 수 있게 되었다.

▶ 쉰들러 여행가방

이 가방은 회색이고 많이 닳았다. 첫눈에는 특별히 다른 것이 없는 평범한 Samsonite 가방이다. 그러나 이 가방에는 "오스카 쉰들러"라는 명패와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암 하우프트 반호프 4"라는 명패가 붙어있다.

수십년간 이 가방은 힐데스하임의 다락방에 쳐박혀 있었다. 오스카 쉰들러가 74년 10월 사망하기 직전 친해졌던, 그의 마지막 연인으로 추정되는 한 여성(안네마리 슈태어)이 이 가방을 이곳에 보관하고 있었다. 그녀가 1984년 사망했을 때도 이 가방은 여기 머물러 있었다. 그녀의 남편이 죽고 나서야 이 가방이 발견되고 개봉된 것이다. 이 안에는 40-60년대에 뮌헨, 부에노스아이레스, 프랑크푸르트, 비 버리힐스, 뉴욕, 예루살렘, 텔아비브, 하이파에서 쉰들러가 쓰고 그에게 보내진 수백통의 편지가 들어있다. 여기에는 이스라엘에서 보낸 엽서, 미국, 독일, 이스라엘 정부에 대한 탄원 편지 등이 들어있었고 또한 누렇게 변한 보험증서들, 신문 스크랩, 사진, 쉰들러 공장의 도면, 서류, 압류 결정서류 등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여기에는 1,200명의 유태인 이름이 여러번에 걸쳐서 타이핑된 여러장의 카본지 복사지들이 들어있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쉰들러 리스트인 것이다.

이는 1944년 크라카우에서 법랑도기(에나멜) 공장을 운영하던 오스카 쉰들러가 1,200여명의 유태인이 그로스-로젠과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로 끌려가는 것을 막아낸 것을 증명하는 문서이다.

이 문서는 바로 슈필버그의 영화 이름이기도 하다. 슈필버그의 영화는 한 야심차고 교활하며 이기적인 기업인이 체코슬로바키아와 폴란드에서 독일인들의 학살을 목격하고 유태인을 구하기 위해 나서게 되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 '쉰들러 리스트'

스필버그의 영화를 보면 하나로 정리된 쉰들러 리스트가 존재하는 것처럼 보여진다. 그러나 실은 쉰들러 리스트는 수많은 목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목록이 도대체 몇가지나 되는지는 현재 잘 알 수 없다. 이 리스트는 크라카우에서 브륀리츠로 공장을 이전하던 시기 뿐 아니라 1944.10.15 브륀리츠에서의 시기, 1945.5.8 종전 후에도 계속 새롭게 씌여졌다.

크라카우 에나멜 공장에서도 이 1,200명의 유태인을 담은 이 리스트가 1주일간 여러번에 걸쳐 씌여졌다. 브륀리츠에서는 이 크라카우 리스트가 여러번에 걸쳐 또다시 새로 타이핑되었다. 우선 쉰들러가 종전 몇 개월전 기차에서 구해낸 120명의 이름이 새로 올라갔다. 게다가 쉰들러는 브륀리츠 지역에서 도망치다 잡힌 유태인들을 총살시키지 않고 자신에게 넘길 것을 나치와 협약했다. 그래서 이 리스트는 더욱 길어졌다. 1945.4.18 작성된 리스트가 전쟁 전의 최종판이고 가장 많은 유태인들을 담고 있다. 그 이전의 리스트 원본들은 새로운 리스트가 작성되면서 대부분 소멸시킨 것으로 보여진다.

쉰들러가 1956년 이스라엘의 쉰들러 유태인들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그가 야드 바셈의 홀로코스트 기념관에 자신의 리스트를 제공했고 나중에 돌려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념관측에 따르면 이 리스트도 1945.4.18자로 되어 있는데, 이는 원본의 카본지 복사본이다.

▶ 쉰들러 가방 소유권 분쟁

이번에 발견된 쉰들러의 가방을 둘러싸고 소유권 분쟁이 일어나고 있다. 현재 이 가방을 보관하고 있는 일간지 슈투트가르터차이퉁은 이 가방을 이스라엘의 야드 바셈 기념관에 보낼 것이라고 밝혔고 일부에서는 이 가방이 이스라엘로 넘어가지 않고 독일 본의 역사회관(Haus der Geschichte)에 전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현재 아르헨티나에 생존해 있는 쉰들러의 미망인 에밀리에 쉰들러(92세)와 조카딸 게르트루트 페라리(64세)가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게르트루트 페라리는 2차대전 당시 크라카우와 브륀리츠 시절 쉰들러 부부와 함께 지냈으며 50년대 쉰들러 자신의 구술로 전기를 쓰려 했던 사람이다. (◁미망인 에밀리에 쉰들러)

이들이 이 가방이 상속권을 가진 자신들에게 넘겨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대해, 슈투트가르터차이퉁은 쉰들러가 생전에 자신의 마지막 연인이었던 안네마리 슈태어(사망)에게 이 가방을 넘겨주었고 자신들은 안네마리 슈태어의 아들로부터 이 가방을 받은 만큼 자신들이 이 가방을 처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가방의 상속권을 둘러싼 법률적 상황은 복잡한데, 일부 전문가들은 쉰들러 상속권자들이 가방이 안네마리 슈태어에게 선사되지 않았음을 입증해야 한다고 보고 있는 반면 다른 전문가들은 슈태어의 아들이 자신의 어머니가 이 가방을 선사받았음을 증명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제 오랜 시간이 지나 이러한 증명이 거의 불가능한만큼 어느 쪽이 입증 의무를 가지느냐에 따라 가방의 소유권은 달라지게 된다.

쉰들러는 아르헨티나에서의 사업이 실패하고 부채를 안게 되자 1957년 독일로 돌아오면서 부인을 아르헨티나에 남겨 두었고 그후 다시는 그녀를 방문하지 않았다. 에밀리에 쉰들러는 오스카 쉰들러가 자신을 여러번 속였다면서 자신은 이 가방을 통해 단지 그의 삶이 진짜로 어땠는지를 알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

- 고스라니(gosrani@berlinreport.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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