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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6) 첫 국가별 대전 (독일-스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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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천사이름으로 검색 02-03-15 06:23 조회5,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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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첫 국가별 대전 (독일:스위스)


◁ 정장 차림의 독일선수단, 1911년

▶ 경기전술 대신 연회복

1908년 4월 5일은 역사적인 날이다. 이 날 처음으로 독일축구팀의 첫 국가별 시합이 스위스팀을 상대로 열렸다. 당시의 여러 상황으로 미루어서 이 시합은 무모해 보였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학교학생들이었고 국가대표로 선발된 소식을 신문의 한 구석에서 읽을 수가 있었다. 곧일축구협회로부터의 초청은 바로 3일 전에 있었다.

경기보다 중요한 것은 당연히 시합에 따르는 연회모임이었다: 선수들은 각자 연회복을 지참하라는 지시가 있었다. 경기직전의 작전회의에서도 중요했던 것은 경기진행과 경기후의 깨끗한 자세에 관한 것이었다.

▶ 패배한 첫 경기

바젤에 모였던 4000명의 관중들 앞에서 독일 축구사상 최초의 국가대항전 골이 프랑크푸르트 출신의 프리마너 프리츠 (Primaner Fritz) 에 의해서 터졌다. 그러나 종내에는 3:5로 패배.

다음 몇 년간도 대표팀은 패배의 행진을 계속했다: 경기의 작전이라고는 없었고, 그렇다고 최고의 선수들이 대표선수로 뽑힌 것도 아니었다. 선수단은 각 주 협회로부터 골고루 보낸 선수들로 선정되었다. 그래서 어느 경기에서는 다섯 명의 미드필드 선수가 공격수로 뛰기도 했단다.

▶ 6번째 시합에서 첫 승

대표팀이 거둔 첫 승은 역시 스위스팀과의 대전에서였다: 첫 시합으로부터 꼭 1년 뒤, 1909년 4월 5일, 카알스루헤에서 스위스를 1:0으로 이긴 것. 이 날은 다른 의미에서도 뜻 깊은 날인데, 북독일과 중부독일 출신 선수들만으로 구성된 독일대표팀이 부타페스트에서 헝가리ㅗ아 경기를 벌였다.

이 시기에 시합에서 이긴다는 것은 예외적인 것이었다. 특히 근대축구의 형성지 영국은 경기운영면에서 볼 때 독일보다 훨씬 앞서 있었다. 1909년 옥스포드에서 벌어진 0:9의 패배는 오늘날 까지도 독일선수단이 경험한 최악의 패배였다.

▶ 영원한 기록

그러나 축구초창기에는 다른 기록도 있었다: 1912년 스톡홀름 올림픽에서 러시아를 상대로 16:0으로 DFB 사상 최고의 스코어를 냈다. 카알스루헤 출신의 푹스가 혼자서 10골을 터뜨렸다. 물론 이 시합이 승부와는 관계없는 ‘위로경기’이긴 했지만 - 이 경기 전에 독일은 오스트리아를 상대로 1:5의 스코어를 내면서 졌다.

대체로 제 1차 세계대전 이전의 독일축구는 아직 세간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그늘에 묻혀있었다. 제대로 교육받은 코치도 없었고, 오늘날 가장 인기있는 종목인 축구가 신문에서는 드물게 모퉁이 기사를 장식하곤 했다.

출처: Oliver Brandt (www.sport1.de)
베를린천사 2000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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